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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52화 (251/293)

252화. 진행 ― 충분하거든 (2)

“복귀를 승낙하지.”

하루 만에 만난 천지광은 큰 선심을 쓰는 것처럼 말했다.

천무진의 복귀는 천지광 또한 바라던 바 중 하나였지만, 그는 마치 그 일을 어렵사리 정한 것처럼 굴었다.

허나 천무진 또한 그의 승낙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자신이 마교에서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황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 생각했으니까. 그랬기에 천무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뜻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어디로 움직이면 되겠습니까?”

“흐음, 아무래도 호남 거점이 좋겠지. 지금 네가 있는 마교와도 그리 멀지 않고 말이다.”

십천야의 거점은 꽤나 많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곳들 중 천지광의 선택은 호남성이었다.

방금 이야기를 한 것처럼 천무진이 지내 온 마교와도 근접한 곳이었고,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중 하나도 자리하지 않은 덕분에 십천야의 입장에서는 보다 활동하기 수월한 장소이기도 했다.

“형동(衡東)으로 오거라. 그럼 내가 알아서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지.”

비밀 거점으로 안내하는 방식은 이번과 비슷했다. 정확한 위치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안내를 한다.

아마도 외부에 자신들의 거점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이 같은 방식을 택하는 것이리라.

승낙이 떨어지자 천무진은 준비해 두었던 부탁을 꺼냈다.

“그리고 하나 더 드릴 청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현재 마교에 함께 있는 두 사람도 대동하고 싶습니다.”

“적화신루의 그 둘을 말하는 게냐?”

“예, 그렇습니다.”

천무진의 말에 천지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음 같아서는 무슨 헛소리냐고 큰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천무진에게는 최대한 인자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천지광이다.

거기다가 주변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 무섭게 천운백을 죽일 계획에 들어간 것도 걸리지 않았던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뜻 안 된다고 강하게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에게 도움 하나 되지 않을 일을 승낙할 천지광이 아니었다.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면 불만스럽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자신의 명령대로 따르는 꼭두각시인 그니, 결국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 터.

천지광이 괜히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다 이내 짧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후우,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것 같구나. 십천야는 그렇게 아무나 받아 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죠. 그들은 어르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찾으시는 게 남아 있으시잖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귀문곡을 다시 손에 넣으시려고 한 거 아닙니까?”

천무진의 말에 천지광은 움찔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생을 되돌리기 전 천지광은 필요한 모든 걸 미리 알아 두려 했다. 이미 귀문곡을 통해 수많은 영약들의 위치나, 사라졌던 무공 비급들의 위치를 확인한 상황이다.

바로 이다음 생을 위해서.

그는 새로운 인생에서 절대자가 되기를 원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천외천의 존재.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영약들과, 무공들이 필요했다.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이 있어야 휘하에 수많은 이들을 끌어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영약과 무공만큼 무인들의 눈을 멀게 만드는 건 없었다.

그랬기에 사전에 많은 정보들을 모아 두었고, 과거로 돌아가는 즉시 그 모든 걸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다만 귀문곡의 정보력으로도 아직 찾지 못한 몇몇 것들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거의 적화신루에게 먹히다시피 당해 버렸다.

그로 인해 그와 관련된 정보들을 더욱 구하는 건 어려워진 상황이었는데…….

이미 많은 걸 알아 둔 천지광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그보다 더욱 많은 걸 가지고 싶었다.

특히나 칠신기(七神器) 중 하나인 구마진갑(九魔鎭鉀)만큼은 꼭 손에 넣고 싶었다.

세상 모든 공격을 받아 낸다는 전설의 갑옷.

이것만 있다면 다음 생에서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천무진의 말에 구미가 당겼는지 천지광이 입을 열었다.

“귀문곡도 아직까지 못 해냈던 일인데, 적화신루가 해낼 수 있겠느냐?”

“아시지 않습니까. 각자 정보 단체의 세력권이 다른 건. 귀문곡이 큰 정보 단체이긴 했지만, 그 힘은 사파들의 세력권에서만 빛을 발했었습니다. 반면 적화신루는 다른 쪽으로 정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네 말이 맞는다만…….”

천무진의 말대로 적화신루는 귀문곡과 아예 다른 정보망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가 귀문곡은 이미 적화신루에 흡수되어 버린 거나 마찬가지.

그 말은 곧 서로 다른 두 개의 정보망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커다란 파급력을 지닌 일이었다.

여태까지는 별것 아니었던 정보가 다른 쪽의 것과 합쳐지며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적화신루의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미련이 생기긴 했지만, 쉽사리 납득이 갈 문제가 아니었기에 천지광이 물었다.

“그런데 적화신루가 나를 위해 움직이겠다고?”

여태까지는 적대 관계였던 그들이다.

아무리 돈으로 정보를 사고파는 정보 단체라 해도 십천야와는 안 좋은 악연들이 제법 있었으니, 자신을 따를 거라는 생각이 쉬이 들지 않았다.

그런 그의 질문에 천무진이 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적화신루는 저를 위해 움직일 겁니다.”

천무진의 말에 천지광은 움찔했다.

그런 그를 향해 기다렸다는 듯 천무진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저를 움직이시는 건 어르신이라는 걸.”

천무진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마음먹은 대로 자신을 조종할 수 있으니, 적화신루는 결국 어르신을 따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걸.

“…….”

천지광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든 귀문곡을 다시금 십천야의 휘하로 돌려놓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게 불가능해졌다는 것도.

그런 상황에서 귀문곡을 집어삼킨 적화신루의 정보력을 얻는다……?

‘나쁘지 않군.’

과연 천무진에게서 천룡혼을 받아 이번 생을 매듭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일까?

한 달? 두 달?

제아무리 길어야 반년을 넘지 않을 게다.

그 시간 동안 적화신루를 통해 몇 가지 필요한 것들을 찾게끔 한다.

결국 천지광은 천무진의 부탁을 수긍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자신에게 이득이라는 판단이 섰으니까.

하지만…….

‘네가 원하는 대로 모두 해 줄 수는 없지.’

혹시 모를 위험은 사전에 차단할 생각이다.

생각을 정리한 천지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의 뜻을 내비쳤다.

“네가 그리 말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 적화신루와 손을 잡고 그들을 가까이에 두는 것까지는 허락하지만…… 본거지에 그들을 들일 수는 없다.”

그들에게 허락하는 것은 천무진에게 오라고 했던 일차 접선지인 형동까지다. 그곳보다는 더욱 깊게 십천야의 본거지로 다가오게 할 생각은 없었다.

말을 끝낸 천지광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로 눈을 빛냈다.

이 제안만 승낙한다면 사실 천지광의 입장에선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어차피 십천야의 거처는 쉽사리 찾을 수 없게 되어 있었으니까. 형동은 이미 천무진에게 말해 준 위치였고, 제아무리 적화신루라 해도 그곳에서부터 십천야의 비밀 거점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얻는 것만 있을 뿐, 그 어떠한 것도 잃지 않을 거래.

천무진이 얻을 수 있는 건 고작 그들의 얼굴을 종종 볼 수 있다는 것 정도일 게다.

지금 천지광의 조건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내건 것인지 천무진 또한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거면 충분해.’

적화신루를 계속 안고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백아린과 한천이 있다는 건 지금의 천무진이 취해야 할 최고의 패였다.

그걸 알기에 천무진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답했다.

“그렇게 하죠.”

천무진과 천지광, 두 사람의 거래가 성립됐다.

서로 각자의 생각을 품은 채로.

* * *

백아린은 머물고 있던 귀림원의 입구 부분을 서성이고 있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올 시간이 한참은 지났는데.’

길어야 닷새가 안 걸릴 거라고 했던 여정이었다.

그런데 무려 칠 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천무진은 돌아오지 않았다. 약속했던 닷새 동안도 무척이나 초조해하던 그녀는 그 시간을 넘어간 이후부터는 계속 이렇게 바깥을 서성였다.

두려웠다.

혹시나 천무진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이대로 영영 이별이 되는 건 아닐까 너무도 무서웠다.

그러자 후회가 밀려왔다.

정말 그날이 마지막이었다면 조금 더 볼 걸 그랬다고. 손도 더 오래 잡아 보고,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다고.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던 백아린이 갑자기 멈칫했다. 아주 멀리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형태가 무척이나 낯익다.

낯익은 옷차림에 익숙한 발걸음.

다가올수록 점점 뚜렷해지는 상대의 모습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던 백아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 상대가 천무진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타다닥!

걸음은 어느새 달리기가 되었고, 순식간에 천무진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백아린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품에 껑충 뛰어들었다.

와락!

푹 안기며 가슴팍에 기대어 오는 백아린의 행동에 천무진이 서둘러 양팔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품에 안긴 백아린이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조금 더 늦었으면 아마 여기 왔어도 절 못 봤을 거예요.”

“왜?”

“기다리다 목이 빠져서 죽었을 테니까요.”

“뭐? 하, 하하!”

순간 당황했던 천무진이었지만 그는 평소답지 않게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여인.

어찌 이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백아린을 꼭 껴안은 채로 천무진이 말했다.

“미안해 늦어서.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는데…… 일이 좀 있었어.”

당자윤의 일과, 일부러 시간을 끌어대던 천지광의 계획까지 겹치며 이틀가량 도착이 늦어졌다.

백아린을 품에 안고 있던 천무진이 이내 말을 이었다.

“아 참, 바로 준비해.”

“뭘요?”

슬쩍 고개만 들어 올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천무진이 답했다.

“같이 갈 수 있게 됐어.”

천무진의 그 말에 백아린의 안색이 환해졌다.

“마교를 떠난다고요?”

갑작스러운 백아린의 말에 한천이 놀란 듯 되물었다. 어제……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런 것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런데 천무진이 돌아오기 무섭게 곧장 이 같은 사실을 전한 것이다.

한천은 천무진과 백아린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물었다.

“그럼 이제 우린 어디로 갑니까? 이런 추운 날씨에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신세는 영 질색인데요.”

창밖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는 그를 향해 천무진이 말했다.

“십천야의 본거지 근처에서 지내게 될 거야. 난 아예 본거지로 들어갈 거고.”

천무진의 말에 한천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금 천무진이 내뱉은 말들이 모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십천야의 본거지는 어떻게 알아낸 건지도 이해가 안 갔지만, 그곳에 천무진 본인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더욱 알아듣기 어려웠다.

이마를 긁적거리던 한천이 물었다.

“무슨 소리인지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한천의 질문에 천무진은 슬쩍 백아린을 바라봤다.

지금 이 일을 설명하려면 최근 들어 있었던 모든 걸 한천에게 말해 줘야 했다.

백아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나한테 최근에 일이 생겼어. 두 사람이 적화신루의 일로 마교를 떠났을 때…….”

천무진은 백아린에게만 했던 그간의 이야기를 한천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매유검이 찾아와 자신이 기억을 되찾은 것부터, 자모충의 이야기도. 그리고 십천야와 있었던 일들까지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했다.

제법 긴 이야기였고, 그 모든 말들이 끝날 때까지 한천은 평소답지 않게 단 한마디조차 꺼내지 않았다.

그만큼 심각한 이야기였으니까.

모든 이야기들이 충격적이었지만 역시나 한천을 가장 놀라게 한 건 천무진이 십천야의 일원이었다는 점이다.

최근 천무진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걸 한천 또한 알고는 있었다.

매일 같이 지쳐서 들어오고, 무엇인가 수심이 깊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 언제나 옆에 있는 한천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다만 스스로가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그 이유에 대해 따로 묻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이런 일과 연관되어 있었다니…….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잠시 뜸을 들이던 한천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곳으로 가자는 겁니까? 이렇게 셋이서요?”

“응,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인 것 같아서.”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꽤나 큰 사건에 한천이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일 때였다.

그를 잘 아는 백아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부총관은 무서우면 빠져도 돼.”

“정말 빠진다고 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그냥 데리고 가야지.”

“아니, 그럼 애초에 제 의사는 물어볼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총관인 내가 가는 길에 부총관이 같이 움직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이거야 원, 결국 이러나저러나 끌려갈 운명이네.”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애초부터 한천의 답 또한 같았다.

백아린이 간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함께한다.

그게 한천이다.

두 손을 번쩍 든 한천이 소리쳤다.

“에휴, 모르겠다. 뭐 좋습니다. 갑시다, 가.”

이번 일에 큰 위험이 따른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대로 있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승부를 걸어 보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한천이 툴툴거리듯 말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가죠.”

“언제나처럼이라니?”

물어 오는 백아린을 향해 한천이 검지를 추켜세운 채로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열심히 싸운다. 그리고…… 우리가 이긴다.”

한천의 그 말에 천무진과 백아린이 동시에 피식 웃었다.

천무진이 한천을 향해 말했다.

“그거 맘에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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