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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77화 (276/293)

277화. 복수의 시작 ― 재밌을 것 같네 (1)

싸움을 끝마친 천무진 일행이 있는 곳으로 의선이 찾아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천무진은 의선에게 싸움이 벌어지는 인근에서 대기하도록 부탁했었고, 이내 그가 일행들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의선은 곧장 일행들의 상태를 살폈다.

사실 천무진은 아예 멀쩡하다시피 했고, 단엽 또한 외상을 입긴 했지만, 치명상은 없는 상태였다. 백아린은 외상과 내상을 꽤 입은 상태였으나, 회복에 문제는 없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한천은 달랐다.

외상 자체도 백아린보다 컸지만, 그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귀명신단을 복용한 후유증이었다.

하지만 한천은 자신의 그런 몸 상태를 일행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마주한 의선만이 그 사실을 눈치챘을 뿐이다.

놀란 듯 말을 꺼내려 드는 의선을 향해 한천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삭신이 쑤셔서 그런데 상태를 좀 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말을 하는 한천은 크게 아파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은 작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저 조금씩 밀려드는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해 이를 악문 채로 최대한 버티고 있는 것뿐이었다.

한천의 행동에서 의선은 그가 귀명신단을 비밀리에 구해 달라고 했을 때처럼 최대한 자신의 상태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걸 눈치챘기에 의선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이들을 향해 말했다.

“부총관의 부상이 가장 심한 듯하니 먼저 아래에 준비된 장소로 이동해서 치료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해요, 의선 어르신.”

백아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진짜 속사정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아 가장 큰 부상을 입은 것이 한천이었기에 백아린으로서는 걱정이 드는 상황이었다.

치료를 위해 먼저 움직이는 의선을 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한천이 잠깐 뒤편에 있는 일행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가볍게 인사했다.

“저부터 먼저 가서 좀 쉬고 있을 테니 세 분이 제 몫까지 뒷정리 부탁드립니다. 역시 이럴 땐 환자가 최고라니까요? 하하!”

웃고 있는 그를 향해 백아린이 답했다.

“하여튼 쓸데없는 소리는. 됐으니까 빨리 가서 치료나 해.”

“이왕 이렇게 모였는데 술 한잔들 해야죠. 그럼 제 걱정 마시고 이따 뵙지요.”

한천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일행들을 바라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점점 밀려드는 고통에 얼마나 큰 괴로움을 견뎌야 할지는 체감됐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세 사람.

이들이 모두 무사한 상태로, 한자리에 모여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겪어야 할 지독한 고통 정도는 얼마든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귀명신단을 복용하는 건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그로 인해 벌어질 일들로 동료들에게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자신이 감내해야 할 싸움이었으니까.

의선의 옆으로 다가간 한천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가시죠, 어르신.”

“……그러지.”

곁눈질로 한천의 안색을 확인하며 의선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중 단엽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은 척하는 거 같은데…….”

그 말에 천무진과 백아린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천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굴었지만, 이들 중 그걸 눈치채지 못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려 일 년이다.

그 시간 동안 매일 붙어 지내던 그들이었기에 한천의 지금 행동이 자신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세 사람은 오히려 한천 앞에서는 모르는 척 그의 장단에 맞춰 준 것뿐이었다.

잠시 한천이 사라지는 걸 바라보던 세 사람.

그에 대한 걱정에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던 도중 백아린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회복한 거예요?”

그녀는 천무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화제를 바꿨지만, 실제로 무척이나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백아린이 알기론 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자모충을 제거할 어떠한 해결 방법도 찾지 못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천무진은 놀랍게도 천지광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였다. 그것은 곧 자모충으로 인해 벌어진 모든 상황들이 해결됐다는 의미기도 했다.

백아린의 질문에 천무진은 자신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남윤을 통해 의선을 만났고, 극단적인 실험을 했으나 천룡성의 절기를 익혀 가는 과정에서 얻게 된 효과로 인해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이렇게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말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백아린의 얼굴은 갖가지 표정들로 복잡해졌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천무진이 이곳에 자신을 구하러 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몸 안에 있는 자모충을 없애고 모든 일이 잘 풀리긴 했지만 조금만 어긋났더라면 결코 천무진은 살아서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게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백아린은 마음이 아팠다.

그랬기에 그녀는 천무진을 향해 말했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어요. 당신 죽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서야.”

“네?”

천무진의 대답에 백아린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을 때였다. 그녀와 시선을 맞춘 채로 천무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죽고 싶지 않아서. 당신이 없다면 내가 살 수 없을 테니까.”

천무진의 그 말에 백아린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런 그녀를 향해 천무진이 물었다.

“상처는 좀 어때? 응급 처치를 끝내긴 했지만, 상처들이 제법 깊은데.”

걱정스러운 천무진의 질문에 백아린은 힐끔 자신의 몸 상태를 내려다봤다. 천무진의 말대로 부상들이 꽤나 많았고, 개중 일부는 무척이나 깊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진 아팠는데…… 이젠 하나도 안 아파요.”

말과 함께 백아린이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한 시선을 주고받는 바로 그때였다.

“큼큼. 저기 방해해서 미안한데 앞으로의 계획이 어떤지 좀 물어봐도 될까?”

옆에서 단엽이 헛기침과 함께 끼어들었다.

그제야 단엽의 존재를 기억했는지 천무진과 백아린이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단엽의 질문. 그리고 백아린 또한 궁금하다는 듯 시선을 돌려 천무진을 바라봤다.

이제 천무진이 정신을 차렸으니 남은 건 십천야의 수장인 천지광을 박살 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그곳에 돌아갈 생각이야.”

너무도 의외의 말에 백아린과 단엽이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천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가 말했다.

“일말의 실패 가능성조차 완벽히 지울 계획을 하나 준비했거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힘이 필요해.”

말을 내뱉는 천무진의 눈동자가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오랜 시간 천지광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천무진이다.

저번 생에 이어 이번 생까지.

그렇지만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지금부터는 자신의 차례가 된 것이다.

이제 되갚아 줄 시간이다.

* * *

백아린과 한천을 궁지로 몰아넣은 장소 인근에는 아직까지도 십천야의 일부 무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뇌룡검대의 무인들로 백아린과 한천이 혹시라도 탈출을 시도할 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포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이들이었다.

애초에 뇌룡검대는 두 개로 나뉘어서 그 절반은 백아린을 죽이는 일에 투입되었었고, 나머지가 이곳을 지키고 있던 상태였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단엽과 대홍련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은밀히 제거했지만, 아직 생존해 있는 이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장소에 자리한 채로 내부에서 누군가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삼엄한 감시가 이어지는 그곳으로 갑자기 누군가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상대의 등장에 입구를 막아서고 있던 뇌룡검대 무인들은 곧장 검을 들어 올렸다.

“누구냐!”

이곳의 무인들을 이끌고 있는 곡균상이 소리쳤다.

검을 든 채로 상대를 향해 살기를 쏟아 내던 그때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건…… 엉망이 된 장포를 눌러쓰고 있는 사내, 바로 매유검이었다.

매유검을 알아본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때였다.

힘겹게 걸어오던 그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이내 무너질 듯 주저앉은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엉망이 된 숨소리, 거기다가 피투성이가 된 손까지.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곡균상이 서둘러 매유검에게로 달려갔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곡균상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함께 매유검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자신을 향해 물어 오는 질문에 매유검이 목이 쉬어 버린 것처럼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했다.”

“예? 그게 무슨…….”

“당했다고! 망할 단엽과 대홍련이 개입했다.”

단엽과 대홍련이라는 말에 곡균상을 비롯한 뇌룡검대의 무인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결코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곡균상이 서둘러 물었다.

“설마 위쪽에 올라간 이들 모두 당한 겁니까?”

그의 질문에 매유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분하다는 듯 소리쳤다.

“젠장! 표적이었던 둘을 죽이기 위해 너무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어. 그 이후에 들이닥친 대홍련 무인들을 막아 낼 재간이 없었다. 그 둘은 확실히 숨통을 끊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식으로 당하다니!”

주변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매유검.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표적이 되었던 백아린과 한천 모두 죽지 않았으니까.

바로 그 순간 잠시 주저앉았던 매유검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지금 상황을 어르신께 보고해야…….”

바로 그 순간.

피잉!

날아든 하나의 검기가 매유검의 등에 적중했다.

그러자 매유검이 장포 안쪽에서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간 뒤편에서 흉흉한 기세를 한 백 명이 훌쩍 넘는 대홍련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든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이, 어딜 도망치려고 그래.”

대홍련 무인의 자신만만한 표정.

곡균상이 놀란 듯 자세를 잡으려는 그때, 바닥에 쓰러진 매유검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라…… 그래서 꼭 이번 일을 어르신께…….”

그 말을 끝으로 매유검이 축 늘어졌다.

그의 명령을 전해 들은 곡균상은 이를 악물었다.

위쪽에 투입된 병력들이 모두 죽었다면 지금 자신들만으로는 단엽과 대홍련을 막아 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하나였다.

곡균상이 소리쳤다.

“모두 도망쳐라!”

그 외침에 자리에 있던 뇌룡검대 무인들 전원이 대홍련 무인들과의 거리가 더 좁혀지기 전에 빠르게 뒤편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매유검에게서 반드시 살아남아 이번 일에 대해 보고하라는 명령까지 받았으니, 도망치는 것에 대한 명분도 충분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약 절반가량의 대홍련 무인들이 그렇게 달려가는 이들을 뒤쫓았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사실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들은 진짜로 도망치는 적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뇌룡검대 무인들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그들의 뒤를 대홍련 무인들이 쫓는 그때.

백 명 중 약 다섯 명만이 죽어 있는 매유검을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매유검에게 다가간 다섯 명 중 하나가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다 갔습니다. 이제 일어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련주님.”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앞으로 쓰러진 채 미동도 없던 장포를 눌러 쓴 매유검이 반응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입을 열었다.

“하다 하다 이제 시체 흉내까지 내게 하다니. 하여튼 망할 주인이라니까.”

투덜거리는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장포를 벗어던지자 그 안에서는 단엽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슬쩍 주변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이곳에 가득했던 뇌룡검대 무인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홍련 무인들이 뒤쫓고 있으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명령대로 비밀 거점으로 가서 지금 매유검의 흉내를 낸 단엽이 내뱉은 말을 그대로 보고하게 되겠지.

천무진은 적들이 백아린과 한천의 생존을 모르길 바랐다.

그래야만 이후에 또다시 그 둘에게 위험이 닥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일에 있어서도 이런 거짓말은 반드시 필요했다.

대홍련이 개입되었다는 걸 알린 이유는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에 투입된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이 납득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린 것이 가까스로 도망쳤던 매유검이라 생각할 터이니, 이번 작전은 천무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게다.

비어 있는 공간을 바라보던 단엽이 입을 열었다.

“시체 흉내를 낸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이번 작전은 제법 재미있을 것 같네.”

몸을 돌려 위쪽에 있을 일행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단엽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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