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왕-279화 (278/293)

279화. 회복 ― 이겨 내야 해 (1)

마교 소교주 악준기는 자신의 방에 홀로 앉은 채 양손으로 이마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짙은 수심이 가득했다.

“하아.”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고,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천무진 덕분에 마교에 숨겨져 있던 십천야의 핵심 세력 일부를 뿌리 뽑았다. 그로 인해 다소 상황이 나아지긴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교주와 소교주 파로 양분된 현재의 마교.

이 모든 일은 십천야가 흑주염을 통해 만든 몽혼약으로 교주인 악자헌을 중독시키면서 벌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둘은 무척이나 사이좋은 부자지간이었으니까.

십천야에 포섭당한 이들이 계속해서 두 세력을 서로 이간질시켜 왔고, 그건 그들 중 상당수가 사라졌다 해도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는 설령 십천야가 모두 사라졌다 한들 교주파와 소교주파의 문제가 되었기에 이들 사이에 생긴 깊은 고랑은 쉬이 메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두 세력 간의 관계는 최근 들어 더욱 안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악자헌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흑주염으로 인해 원래부터 상태가 좋지 않던 그가 신분을 위장한 천운백이 가져다준 해독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하다 최근 한 달 가까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교주 쪽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더욱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소교주 쪽 세력들은 이걸 기회 삼아 확실하게 상대를 짓누르고자 했다.

그로 인해 마교 내부에서는 다툼이 잦아진 걸 넘어서 피를 부르는 혈투까지 벌어지곤 했으니 현재 모든 책임을 도맡고 있는 악준기로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최근 벌어지는 이 일련의 모든 일들을 어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수하 한 명이 찾아왔다.

“소교주님, 시간 되셨습니다.”

자신을 향한 말에 악준기는 입술을 깨문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키지는 않지만 악준기는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악자헌을 찾아가곤 했다.

둘의 관계가 어떻든지 간에 악자헌은 그의 아버지이자 마교의 교주였고, 아픈 상태인 그를 찾아가는 건 악준기로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하루 일과였던 것이다.

그렇게 악준기는 수하들을 대동한 채로 곧장 교주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교주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악준기가 도착하자 교주전을 지키고 있는 무인들이 다가왔다.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부복한 그들은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에 악준기는 익숙하게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풀었다.

이곳은 교주전이기에 함부로 무기를 착용한 채로 들어설 수 없었다.

그건 소교주인 악준기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몸에 있는 모든 무기를 꺼내어 상대에게 건넨 후에서야 교주전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악준기는 뒤편으로 고개를 돌려 수하들을 향해 짧게 말했다.

“금방 돌아올 테니 대기들 하고 있어.”

“예, 소교주님.”

원래부터 허락받은 이들만 드나들 수 있는 교주전은 최근 악자헌의 상태가 나빠지며 그 절차가 더욱 복잡해졌다.

그랬기에 교주전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는 건 매번 악준기 혼자뿐이었다.

교주전으로 들어선 악준기는 익숙한 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장소는 교주인 악자헌이 오랫동안 누워 있는 그의 방이었다.

말이 방이지 그곳은 교주라는 직위에 맞게 꽤나 커다래서, 방이라기보단 대전에 가까웠다. 그곳에 들어선 악준기가 막 걸음을 옮기던 도중이었다.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악준기가 교주인 악자헌이 누워 있는 침상을 바라본 채로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악준기의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어둠 속에서 여섯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악준기는 자신의 뒤편과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상대들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악자헌은 이들 여섯 모두를 알고 있었다.

교주파의 인물들로, 오랜 시간 악준기와 척을 져 왔던 관계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자 이들의 실질적인 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좌도십천 유문풍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소교주님.”

굳이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악준기는 자신의 뒤를 잡은 이들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이처럼 함정을 파 놓고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긴다는 건 알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소교주인 자신을 직접 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악준기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그 여섯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이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교주님이 죽지 않으시면 저희가 죽게 될 상황입니다. 그렇게 죽을 바에는…… 차라리 소교주님을 죽이고 살 방도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말을 내뱉은 유문풍이 슬며시 검을 들어 올렸다.

이들 여섯 모두가 마교에서 알아주는 뛰어난 실력의 고수들이었다. 거기다가 교주전에 들어서며 지니고 있던 무기마저 빼앗긴 악준기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후우.”

짧은 한숨과 함께 악준기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쉬운 싸움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함정에 빠져 얌전히 죽어 줄 생각도 없었다.

이를 악문 채로 악준기가 막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쿨럭.”

갑작스레 들려온 기침 소리에 악준기도, 그를 죽이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여섯 명의 무인들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소리가 난 장소는 다름 아닌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교주 악자헌의 침상이었다.

그들이 놀란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는 바로 그때였다.

침상에 누워만 있던 악자헌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고개를 숙인 채로 힘겹게 일어선 그가 이내 손을 뻗어 침상의 기둥을 손으로 짚었다.

그 상태로 악자헌이 입을 열었다.

“손대지 말거라.”

말을 내뱉은 악자헌이 비틀거리면서 어렵게 침상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갑자기 깨어난 악자헌을 보며 잠시 놀라긴 했지만 이내 악준기는 무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싸우기 위해 뿜어내던 투기 또한 거두지 않았다.

지금은 교주인 악자헌의 입장에서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윽.

힘겹게 고개를 치켜든 악자헌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악준기의 차갑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눈빛에서…… 오래전 사라졌던 따스함이 느껴졌으니까.

너무도 놀란 악준기가 자신도 모르게 살기를 거두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악자헌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내 소중한 아들이다.”

그 한마디에 악준기의 눈에서 수년간 참아 왔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 * *

“끄아아아악!”

침상에 누운 그가 몸부림쳤다.

이미 사지는 결박당해 있었고, 그로 인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한천은 이리저리 마구 몸을 꺾으며 비명을 질러 댔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며 그의 오른손을 아예 조각조각을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려 반 시진이다.

그 시간 동안 한천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치료하기 위해 옆에 자리하고 있는 의선은 지금도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준비해 둔 약재를 서둘러 입에 넣었고, 혈도에 침을 놓으며 기의 흐름을 도왔다.

한천의 얼굴은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져 있었고,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귀명신단을 먹은 대가로 그 이후 찾아든 지독한 고통과 싸우고 있는 한천이었다.

괴로움과 싸우고 있는 한천을 보며 의선 또한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버티게!’

처음 오른손을 다쳐 못 쓰게 되었던 당시 한천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랬기에 오른손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천의 옆에는 의선이라 불리는 최고의 명의가 있었다.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엉망인 상태였지만, 의선은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그건 한천이 생각보다 무리를 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귀명신단을 먹고 그 힘이 다할 때까지 싸웠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반작용처럼 밀려들었을 게다.

그리고 오른손은 더욱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테고. 그렇게 되었다면 어쩌면 의선이 있었다고 해도 한천의 상태를 회복시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천이 모든 힘을 다하기 전에 단엽이 나타나 줬고, 그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손에 무리를 하지 않고 쉰 덕분에 지금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의선은 준비해 두었던 마지막 약재를 한천의 입안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이내…….

투욱.

고통에 몸부림치던 한천이 손을 툭 떨어트리며 혼절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을 꼭 쥔 채로 의선이 간절히 중얼거렸다.

“이겨 내야 해. 그래야만 자네가 살아.”

지독한 고통 속에 혼절한 한천.

모든 약재들을 먹였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들을 해 줬다. 이제 이걸 이겨 내고 말고는 의선이 아닌 한천 본인 스스로가 해내야 할 일이었다.

* * *

세상이 온통 어두웠다.

한천은 쉽사리 눈꺼풀을 들지 못했다.

무척이나 피곤했고, 정신이 멍했다. 마치 쇠망치로 맞은 듯이 머리가 지끈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도착했습니다, 대장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한천이 번쩍 눈을 떴다. 그러고는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한천을 향해 옆에 있던 사내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뭐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물어 오는 질문에 한천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자리한 이는 한천도 잘 아는 이었다.

대장군부 소속의 무인, 임무열(林武悅)이었다.

임무열은 한천의 최측근으로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인물이었다. 나이는 한천보다도 열 살가량 많은 중년의 사내였는데 인상은 평범했지만, 항상 웃고 다니는 자였다.

임무열을 발견한 한천은 잠시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한천의 시선을 느껴서일까?

임무열이 본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어색하게 웃었다.

“제 얼굴에 뭐 묻은 거라도 있습니까?”

“아니, 잠깐 멍했을 뿐이다.”

한천의 입에서 나온 말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싸늘하면서도 딱딱했다.

한천을 향해 임무열이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평소답지 않으시군요.”

“평소다운 게 뭐지?”

“그거야…… 아, 저녁은 뭐가 좋으시겠습니까?”

“쯧.”

대답을 못 하며 스리슬쩍 말을 돌리는 그를 향해 한천이 불만스럽다는 듯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러고는 이내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지 한천은 곧장 마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내려섰다.

바깥의 공기는 어느덧 싸늘했다.

옆에 선 임무열이 입을 열었다.

“또 겨울이 오려나 봅니다.”

“겨울이라…….”

“맘에 안 드시는 것 같은 목소리십니다. 겨울이 오는 게 싫으신 겁니까?”

“좋을 일이 있겠느냐. 가난한 백성들에게 겨울은 너무도 잔혹하니까.”

한천의 말에 옆에서 웃고 있던 임무열이 움찔했다.

그러고는 이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역시 대장군님이십니다. 대장군께서 이런 멋진 사내시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할 터인데…….”

“실없는 소린 됐다, 가지.”

말을 툭 자르며 한천이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곧장 옆에 자리한 건물로 들어섰다. 고관대작의 거처로 보이는 곳에 들어선 두 사람은 익숙하게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낯익은 장소에 도착한 한천이 침상에 턱 하니 걸터앉았다.

“후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다.

‘많이 지친 모양이군.’

최근 들어 일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이마를 손으로 짚기 위해 움직이던 한천이 움찔했다.

얼굴에 딱딱한 무엇인가가 자리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걸 느낀 순간 한천은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커다란 거울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울에는…… 새카만 가면을 쓴 한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면의 사내.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이 사내를 대장군 조휘라 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