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회복 ― 이겨 내야 해 (2)
대장군 조휘.
사람들은 그런 그를 황제의 검이자, 최고의 충신이라 칭했다.
허나 진짜 속사정을 아는 이들은 조휘를 이리 불렀다.
더러운 시궁창의 개.
황궁에는 아귀견(餓鬼犬)이라는 자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황제를 위한 특수 부대와도 같았다. 모두가 음지에서 활동하기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고, 그 대부분이 임무를 수행하다 죽는다.
조휘 또한 이 아귀견 출신이었다.
어릴 때 황궁으로 끌려와 지독한 훈련을 견뎌 낸 후 정식으로 아귀견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음지에서 활동했고, 어떠한 일을 계기로 두각을 드러낸 이후부터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검은 가면을 쓰고 움직여야 했다.
그의 얼굴을 아는 이는 오로지 황제 하나여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두각을 드러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이후 조휘는 숱한 전장을 떠돌아다녔다. 사실 대부분이 그가 그리 오래 버틸 거라 생각지 못했다.
허나 놀랍게도 그는 뛰어난 무공으로 중요한 전투 대부분을 승리로 이끌었고, 덕분에 수하들의 두터운 신망까지 얻었다.
그 모든 걸 갖춘 그는 결국 황제의 검이라 불리는 대장군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뛰어난 실력과 업적으로 대장군의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조휘는 아무런 배경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라면 깔볼 만한 비천한 신분이라고 봐야 옳았다.
비밀부대 아귀견은 사실 더러운 뒤처리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
그런 아귀견 중 하나가 대장군의 위치까지 올랐으니 그걸 고깝게 여기는 이들 또한 분명 많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승상 안균이었다.
허나 안균은 조휘를 건드리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황제에게 조휘는 결코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황제가 그를 중용하는 이유는 그가 이용하다가 버리기 좋은 자이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기에 조휘를 못마땅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있어야 모든 것이 편해진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알려지게 된다면 손가락질 받게 되는 일들이 있다. 누군가는 그 모든 걸 껴안고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역할을 맡아야 했고, 당연히 그런 임무를 하는 자의 직책은 높을수록 좋았다.
천한 출신에 그리 많지 않은 나이.
그런 자를 대장군의 자리에 올린 이유는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자신들이 지은 모든 죄를 떠안고 죽는 역할을 하기 위해.
그리고 예정보다 빠르게…… 그때가 오고야 말았다.
휘황찬란한 대전에는 단 두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황제와 승상 안균.
안균이 건넨 보고서를 받아 든 황제의 표정이 묘했다. 턱을 쓰다듬는 그의 얼굴에 불쾌감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황제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대장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군. 이러다가 짐의 자리까지 위협하겠어.”
농담처럼 던진 말이긴 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가시가 느껴졌다. 황제의 말에 안균이 서둘러 답했다.
“그럴 일이 있을 리가 없지요. 모든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황제 폐하가 아니십니까.”
안균의 말에도 황제의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이미 군부의 절반가량이 자신보다 대장군인 조휘를 더욱 믿고 따르고 있다.
하찮은 아귀견 출신이 황제인 자신과 비교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했고, 기분이 나빴다.
결국 황제가 결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슬슬 대장군을 바꿔야 할 때가 온 듯하군.”
그의 말에 안균이 놀란 듯 답했다.
“하오나 황제 폐하 아직 하시던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조휘는 황제나 황실에서 벌어진 수많은 악행들을 뒤집어쓰고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런 연유로 대장군이 된 그이거늘 아직 그의 쓰임새는 다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조금 더 두고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짐이 왜 그 녀석이 평생 가면을 벗지 못하게 했을 것 같은가?”
황제가 빙긋 웃더니 이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건 조휘의 얼굴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지. 그리고 그 말은…… 그 가면을 쓴 자가 누가 된다 한들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할 거라는 의미고.”
“설마 다른 자로 바꿔치기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역시 승상은 이해력이 빨라서 좋군.”
어차피 허울뿐인 대장군으로 세워 놓으려 했다.
다만 조휘의 능력이 워낙 출중했기에 이렇게까지 상황이 오게 됐지만…… 새롭게 뽑을 이는 그저 허수아비처럼 그곳에 자리만 지키고 있게 만들 작정이었다.
어차피 모든 오물을 덮어쓰고 죽어 주기만 하면 되는 자이기에 능력 따위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황제가 명했다.
“조휘와 비슷한 덩치와 목소리를 지닌 놈을 구해 놓도록.”
“예, 황제 폐하.”
황제의 의중을 알았으니 안균 또한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조휘다.
조휘를 대신한 다른 누군가를 세운다는 사실이 안균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막 예를 갖추고 대전을 나서기 위해 옆으로 물러나는 그때였다.
황제가 입을 열었다.
“아 참, 그리고 승상.”
“하명하시지요.”
고개를 조아리는 안균을 내려다보던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내 그가 말했다.
“금의위(錦衣衛)를 준비시켜.”
금의위.
황제의 명령만을 따르는 황궁 최고의 무력단체.
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려 이백 명에 가까운 숫자가 투입된 이번 작전은 놀랍게도 단 한 명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피 칠갑을 한 두 명의 사내가 어두운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은 달린다기보다는 거의 질질 끌려가고 있다고 봐야 옳았다.
한쪽 어깨로 힘겹게 상대를 부축한 채 달리고 있는 이는 바로 검은 가면을 쓴 사내, 조휘였다. 그리고 그의 부축을 받고 있는 건 언제나 함께하는 측근인 임무열이었다.
항상 웃고 여유 넘치던 임무열의 얼굴엔 고통만이 가득했다.
다리에는 큰 부상을 입었고, 그 외에도 전신이 상처로 가득했다. 수많은 검에 찔리고 베이면서 그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리고 그런 임무열을 데리고 도망치는 조휘의 상태 또한 좋지 못했다.
오른팔은 심각한 부상으로 피투성이였고, 몸 이곳저곳에 치명상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움직이고 있던 임무열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아, 하아. 대장군…… 전 버리고 가십시오.”
“멍청한 소리! 난 부하를 버리지 않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오는 조휘의 외침에 임무열은 이 상황에도 잠시나마 고통을 지우고 히죽 웃음을 흘렸다.
실로 대단한 사내다.
죽어 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이곳까지 달렸다. 벌써 이틀을 금의위에게 쫓기며 그들과 싸워 가며 말이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의 부상은 점점 심해졌고, 그건 조휘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휘는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부상을 입은 임무열을 버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를 데리고 도망치며 조휘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렇지만 임무열은 알 수 있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조휘이이이!”
누군가의 외마디 고함 소리와 함께 여섯 명의 금의위들이 날아올랐다.
그들은 빠져나가려는 길목을 막아선 채로 두 사람을 향해 검을 겨눴다.
여섯 사내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조휘, 조휘 떠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했거늘…… 과연 대단하구나. 금의위 정예 백 명을 베고 이곳까지 빠져나올 줄이야.”
사내의 입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에서는 짙은 감탄이 느껴졌다.
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내.
그것이 바로 조휘였다.
자신의 앞을 막아선 여섯 명의 사내를 바라보며 조휘가 부축하고 있던 임무열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거의 박살이 나다시피 망가진 오른손으로 힘겹게 검을 쥔 채로 답했다.
“어쩌지? 이제 그 사망 명단에 너희 여섯도 넣어야 할 것 같은데.”
도발에 가까운 언사.
여섯 명의 금의위가 조휘를 덮치고 들어왔다.
“쿨럭.”
기침을 하는 조휘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금의위 여섯 명의 공격을 홀로 받으며 조휘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그들 모두를 베어 넘겼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배와 등에 커다란 부상을 하나씩 더 입었고, 잔부상들 또한 이곳저곳에 생겨났다. 거기다가 엉망이 되어 있던 오른손은 이제 검을 쥐기도 힘들었다.
뼈가 모두 부서졌는지 엉망으로 덜렁거리는 손.
조휘는 자신의 오른팔을 움켜쥔 채로 고통 어린 신음 소리를 토해 냈다.
“끄으윽.”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힘겹게 이동하던 조휘와 임무열.
그런데…… 얄궂게도 그 두 사람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절벽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절벽 끝까지 다가가 봤지만, 이곳은 꽤나 높이가 높았다. 절벽 아래에 흐르는 물줄기는 거셌고, 지금 몸 상태로는 이곳을 내려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더는 퇴로가 없는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두 사람은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여기까지 어떻게 도망쳐 오긴 했지만 이제 더는 버틸 재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조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넌 도망치거라. 어차피 노리는 건 나 하나 아니더냐.”
“부하도 대장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면서 웃고 있는 임무열의 모습에 검은 가면 속의 조휘 또한 픽 하고 실소를 흘렸다.
임무열은 그런 조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실로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전장을 함께 달렸고, 황궁으로 돌아와 점점 높은 자리에 오르는 그의 옆을 계속해서 지켜 왔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 가면 속 상관의 진짜 얼굴을.
임무열이 입을 열었다.
“대장군, 그거 아십니까? 제가 대장군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내 얼굴을 드러내지 말라는 황제의 명령이 있었으니까.”
황제의 명이기에 따랐다.
하지만 이제 생각하니 실로 억울했다.
십수 년간 단 한 번도 따스한 햇볕 아래를 자신의 얼굴로 걸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이 검은 가면 뒤에 자신을 가렸고, 또 감정 또한 감췄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 그런데 그 충성의 대가가 바로 지금이었다.
그때 임무열이 말했다.
“죽기 전에 대장군의 얼굴을 한 번 볼 수 있겠습니까?”
물어 오는 질문에 조휘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그가 천천히 손을 뒤로 뻗어 가면을 고정시켜 놓은 끈들을 풀었다. 그리고 가면의 앞부분을 움켜쥔 조휘가 천천히 그것을 얼굴에서 뗐다.
그렇게 드러난 조휘의 얼굴.
조휘의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한 임무열의 눈동자에 놀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가면 뒤의 얼굴을 종종 생각해 봤던 임무열이다.
그렇지만 드러난 조휘의 얼굴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곱상했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임무열이 입을 열었다.
“뭐야…… 우리 대장이 이리도 미남이셨습니까?”
그의 말에 조휘가 피투성이의 얼굴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며 임무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아, 억울하군요. 이리도 미남인 줄 알았다면 주변에 자랑이라도 잔뜩 하고 다니는 건데…….”
그 말과 함께 임무열이 갑자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조휘가 쥐고 있는 검은 가면으로 향했다. 그런 임무열의 움직임에 조휘가 잠시 아무 반응 없이 시선만 주는 그때였다.
임무열은 조휘가 쥐고 있던 검은 가면을 조용히 뺏어 들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대장군.”
“왜?”
“꼭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무슨…….”
“죄송합니다, 대장군.”
그 말이 끝이었다. 임무열은 힘겹게 앉아 있던 조휘를 갑자기 힘껏 뒤로 밀쳤다.
긴 싸움에 이미 자신의 몸 하나 지탱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 있던 조휘였다. 조휘는 임무열의 어깨에 떠밀려 그대로 절벽 아래로 밀려 나갔다.
놀란 듯 조휘가 서둘러 손을 움직여 뭔가를 움켜잡으려 했지만, 허공으로 떨어져 내리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조휘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고, 아주 찰나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조휘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놀란 듯했고…… 아주 슬퍼 보였다.
그렇게 떨어져 내리는 조휘를 바라보던 임무열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살아야 했다.
조휘 저 사내는 이렇게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대장군이 없었다면 저도 죽었을 목숨입니다. 절대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말과 함께 임무열은 자신의 손을 천천히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의 손바닥에서 뜨거운 기운이 피어올랐다.
치치치칙!
“으으읏!”
얼굴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그는 곧 원래의 형상을 알아보기 힘든 몰골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엉망이 된 얼굴에 임무열은 쥐고 있던 조휘의 검은 가면을 천천히 가져다 댔다.
꾸욱.
그렇게 마지막으로 가면의 고정까지 끝내는 순간.
슈슈슈슉!
날아든 그림자들이 자신의 맞은편에 착지했다.
조휘를 죽이기 위해 움직인 금의위의 무인들이었다.
임무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스스로 얼굴을 망가트린 임무열이다. 어차피 조휘의 얼굴을 아는 것이 정말로 황제뿐이라면, 자신이 그를 대신하는 건 이 정도로도 충분할 테니까.
임무열이 소리쳤다.
“나 대장군 조휘! 네깟 놈들에게 쉬이 죽어 주지 않겠다!”
악에 받친 듯 내뱉는 외침.
그리고 이내 날아든 수십여 개의 검이 임무열의 몸에 쑤셔 박혔다.
동시에 임무열은 몸 안에 있는 기운을 끌어 올렸다.
화아아악!
몸에 불꽃이 피어오르며 그의 몸을 화마가 뒤덮었다.
검을 쑤셔 넣었던 금의위들이 순간적으로 물러났고, 그 상태로 임무열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얼굴만 지져져 있다면 의심할지도 모른다 생각하여 스스로 몸까지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야겠다 마음먹은 임무열이다.
불꽃에 휩싸인 채로 바닥에 쓰러진 임무열이 힘겹게 손을 뻗었다.
‘대장군……꼭 살아서…… 행복하게…….’
투욱.
부들거리던 임무열의 손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