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왕-290화 (289/293)

290화. 최후 ― 용이 되고야 말았구나 (2)

천룡성의 절초인 천추나락.

그건 순간적으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어 믿을 수 없는 파괴력을 내게 하는 초식이었다.

그랬기에 천무진은 계속해서 혈도를 넓혔고, 그러면서 마침내 절초인 천추나락을 완성시킨 상태였다.

밀려드는 천지광의 무수화를 받아 내며 천무진은 서둘러 내력을 끌어올렸다.

천지광이 이 싸움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처럼, 천무진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굳이 내공 싸움으로 천지광에게 기회를 줄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둘의 무공은 똑같이 천룡비공이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이 절초인 천추나락의 유무였다. 천무진에겐 천추나락이 있었고, 천지광에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싸움의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 차이였다.

무수화를 받아 내는 도중에 천무진의 혈도가 자연스럽게 넓어지기 시작했고, 그 길을 따라 내공의 흐름 또한 터져 버린 둑을 따라 퍼붓는 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단전에서부터 시작되는 내공의 흐름이 바다가 되어 흘러넘쳤다.

온몸에 폭발적인 힘이 맴돌았고, 덩달아 모든 감각이 미쳐 날뛰었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전신을 맴도는 그때.

천무진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천추나락을 제대로 본 건 단 한 번뿐이었다.

스승인 천운백이 천무진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해 펼쳤던 그때 말이다.

천무진의 몸이 머릿속에 남아 있던 당시의 기억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회전했고, 손에 들린 천인혼이 부르르 떨렸다. 검마저 깨어져 나갈 것 같은 진동,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내공까지.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힘이 억눌러 왔지만 천무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모든 힘을 고스란히 천인혼에 담았다.

순간 천인혼이 하얀빛에 감싸이는 듯싶더니 이내 무수히 많은 기운들이 앞으로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천룡비공 절초 천추나락!

그 전설의 절초가 천무진의 손에 의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웅!

잠깐의 떨림, 그리고 이내 천인혼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들이 커다란 폭풍이 되어 상대방을 향해 밀려 나갔다.

천무진의 기이한 모습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천추나락을 떠올리며 위험을 감지해 냈던 천지광이었다.

으드드드드드!

땅이 갈라지며 무시무시한 공격들이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혀 왔다.

순간 천지광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막아야 한다!’

천무진의 공격이 펼쳐진 곳을 기점으로 하여 땅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갈라졌다. 그리고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늘과 허공마저도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천지광은 다급히 모든 내력을 방어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빛이 시야를 뒤덮었다.

천지광은 천룡비공의 천강기(天剛氣)까지 펼치며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 내려 했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앞을 가로막는 벽이 형성되었지만 천추나락의 힘이 닿는 순간 천강기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금이 간 틈 사이로 밀려드는 천무진의 기운들. 그걸 보는 순간 천지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런 젠……!’

그가 눈을 부릅뜨는 순간 천강기가 박살이 나며 천무진이 펼친 천추나락이 그대로 천지광을 덮쳤다.

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이어져 나왔고, 이내 천무진의 공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있던 모든 것들은 무(無)로 돌아갔다.

오로지 단 하나, 천지광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천무진의 천추나락이 휩쓸고 지나간 바로 그곳에 천지광이 있었다.

그때였다.

울컥.

갑자기 몸을 가볍게 떤 천지광이 입에서 몇 사발은 될 정도의 많은 피를 토해 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한쪽 팔은 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고,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더는 버티는 것도 어려웠는지 결국 천지광이 무릎을 꿇었다.

털썩.

애써 무너지려는 몸을 한쪽 무릎으로 버티긴 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싸움을 이어 가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천지광의 얼굴은 방금 전 마지막 격돌을 하기 전보다 한층 더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내력을 쥐어짜며 공격을 막아 내던 탓에 결국 얼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힘마저 다 사용하고야 만 것이다.

괴물이 된 얼굴로 천지광이 힘겹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발아래부터 인근 주변이 모두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뭉그러진 눈꺼풀 때문에 가늘게 뜬 눈동자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이것이 천룡성의 진짜 힘인가.’

놀람과 함께 찾아온 감정은 욕심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진짜 힘. 그 힘을 눈으로 보았으니까.

덩달아 화가 치밀었다.

그 힘을…… 자신은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주변을 둘러보던 천지광이 재차 피를 토해 냈다.

“컥.”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온 피로 인해 입 주변은 더더욱 엉망으로 변해 버렸다.

입에서 쏟아져 나온 검붉은 피를 보며 천지광은 지금 자신의 상태를 체감할 수 있었다.

부서져 버린 것이다.

이 빌어먹을 몸뚱이가.

“으, 으으으으으!”

천지광이 분한 듯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일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긴 어려웠다. 그러기엔 이미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를 향해 천무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번의 공격을 쏟아 냈을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무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거기다가 이마와 목 언저리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천추나락은 막대한 내공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는 초식.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 천지광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다가오는 천무진을 바라보는 천지광의 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모든 걸 망친 상대.

그 목숨을 빼앗아도 화가 풀리지 않을 터인데 도리어 엉망이 된 건 자신이었다.

분한 듯 부들부들 떨던 천지광은 순간 피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피 웅덩이라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일그러진 얼굴을 확인하는 건 가능했다. 흉물스러운 자신의 외모를 보는 순간 천지광은 간신히 움직이는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힘겹게 주춤거렸다.

자신의 망가진 얼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천지광은 지금 이 상황이 충분히 끔찍했다.

다가오는 천무진을 향해 천지광이 서둘러 소리쳤다.

“보지 마!”

“…….”

그의 외침에도 천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거리를 좁혀 갔다.

그렇게 둘 사이의 거리가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천무진이 걸음을 멈추고 한쪽 무릎만 꿇은 채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천지광을 내려다봤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천지광은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 크큭! 건방진 눈빛이구나. 네놈이 다 이겼다고 생각하느냐?”

“응. 여기서 네 목숨을 끊는 걸로 우리의 긴 악연도 끝이 날 거야.”

덤덤하게 말을 하는 천무진을 바라보던 천지광이 그의 속을 긁어 대기 위해 말을 꺼냈다.

“날 이겼다고 생각하며 무척이나 기분 좋은 모양인데 이거 어쩌나. 네 사부인 천운백은 제자 놈의 배신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데. 지옥에서 만나서 내가 이 이야기를 해 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토록 믿었던 제자 놈이 널 배신했고, 그로 인해 죽게 된 거라고 말한다면 아마 그놈의 표정이 꽤나 볼만하게…….”

어떻게든 천무진의 속을 뒤집어 놓기 위해 내뱉던 말. 그런데 그 말을 듣던 천무진이 도리어 픽 웃음을 흘렸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천지광이 움찔할 때였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어쩌지. 내 사부는 살아 계시는데.”

“……뭐?”

“살아 계신다고. 아주 멀쩡하게. 지금쯤 사랑하는 그분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실걸.”

천운백 또한 한천과 마찬가지로 부상이 심하고 워낙 멀리 있었던 탓에 이번 싸움에는 끼지 못했지만, 그의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상황이다.

천지광은 천운백의 이야기를 꺼내서 어떻게든 천무진의 이번 삶 또한 지옥으로 만들고 싶었겠지만…….

천무진이 손에 들린 천인혼을 강하게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천지광, 이번 생에서 넌 내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못했다.”

모든 고통을 겪고 과거로 돌아왔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그리고 사부의 목숨도.

또 이번 생에서 함께한 소중한 동료인 백아린과 단엽, 그리고 한천까지.

그 모든 걸…… 천무진은 지켜 냈다.

그랬기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이겼다, 천지광.”

말과 함께 천무진의 손이 움직였다.

* * *

털썩.

한 명의 무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숨을 거둔 그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십천야의 일원이자 화산파의 권력자. 그리고 반맹주파의 실질적인 수장이기까지 했던 자운이었다.

자운의 모습은 아주 엉망이었다.

얼굴은 피투성이에,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정파 무림을 이끌 미래로 평가받던 그를 쓰러트린 당사자는 단엽이었다.

그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숨을 거둔 자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단엽에게 쏠리고 있었다.

무림맹의 무인들을 이끌고 이곳까지 온 사하봉은 굳은 얼굴로 단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자운은 적이었고, 반드시 쓰러트려야 할 상대였다.

그가 쓰러진 건 분명 아군에게 있어 축하할 일이었지만…….

‘자운을 이리도 쉽게 꺾다니.’

자운은 무림맹을 대표하는 고수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무너졌다.

그것도 사파의 젊은 고수에게.

게다가 이건 종이 한 장 차이의 승부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분명 자운 또한 단엽에게 부상을 입히고, 꽤나 위협적인 공격을 펼친 건 사실이었지만 솔직히 이 정도 차이라면, 백번 싸운다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리라.

사하봉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향후 수십 년은 사파가 위세를 떨치겠구나.’

대홍련 련주의 자리까지 오른 단엽의 실력을 눈으로 보자 훗날 정도 무림의 미래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단엽의 무위는 압도적이었다.

정도 무림에서는 비교할 만한 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사하봉이 놀랄 일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쿠웅.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오듯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건 다름 아닌 이미 혼절한 주란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주란과 함께 백아린이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백아린은 주란을 죽이지 않고 이곳까지 끌고 온 상태였다. 숨어 있는 십천야를 발본색원하기 위한 증인으로 특별히 목숨은 살려 둔 것이다.

가볍게 착지한 백아린이 주변을 훑어보다 단엽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다가갔다.

그녀가 물었다.

“자운은 어디 있어?”

“어디긴. 바로 여기지.”

단엽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발아래를 가리켰고, 백아린은 엉망이 된 시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못 말리겠다는 듯 말했다.

“하여튼 넌 적당히라는 걸 모른다니까.”

“야, 네가 남 말할 때냐?”

단엽이 기가 차다는 듯 백아린이 질질 끌고 온 주란을 향해 시선을 줬다.

그녀 또한 숨이 붙어 있긴 했지만 백아린의 대검에 아주 곤죽이 될 정도로 두들겨 맞은 상태였다. 당연히 성한 곳 하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단엽의 말에 순간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인 백아린이 이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라 이상하네. 난 살살 했는데 왜 저러지?”

“어련하시겠어.”

“아니 진짜로 난…….”

뭔가 더 말을 이어가려던 백아린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건 단엽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서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곳의 어둠을 등진 채로 걸어오는 사내.

천무진이었다.

천무진을 발견하는 순간 백아린과 단엽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다가오는 그를 바라봤다.

이내 끌고 다니던 주란을 그대로 바닥에 팽개친 채로 백아린이 빠르게 천무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단엽 또한 그 뒤를 따라 천무진에게 향했다.

천무진의 코앞까지 다가간 백아린이 고개를 치켜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천무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이 싸움이 천무진에게 있어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도 잘 알고 있는 백아린이다.

그처럼 지독히도 끔찍했고, 긴 싸움이 끝났음을 알기에…….

그녀가 천무진의 손을 꼭 잡은 채로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요.”

자신을 향해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백아린과 단엽을 앞에 두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천무진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려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

그런 천무진의 행동에 백아린이 깜짝 놀란 듯 움찔하다가 이내 볼을 붉게 물들였을 때였다.

백아린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로 천무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모두들.”

고맙다는 천무진의 그 말에 백아린과 단엽의 입가에 잔잔하게 미소가 번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