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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91화 (290/293)

291화. 마무리 ― 무림을 부탁하마 (1)

수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비밀스럽게 중원에 뿌리박고 있었던 십천야가 무너졌다.

비밀 거점에 자리하면서 얻게 된 정보들 덕분에 알게 된 십천야의 세력들, 거기다가 주란이 관리하던 비밀 장부까지 손에 넣은 천무진은 그 안에 적힌 정보를 무림맹과 마교 쪽에 동시에 전달했다.

그리고 그건 중원을 뒤흔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보여 줬다.

무림맹의 근간이 되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수많은 문파와 가문들.

그리고 마교에서 오랫동안 힘을 지니고 있던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십천야와 알게 모르게 연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꽤나 많은 숫자가 연루된 사건이었기에 그 후폭풍을 염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무림맹주인 추자후와 전권을 위임받은 마교 소교주 악준기의 결단은 과감했다.

오랫동안 썩어 온 뿌리다.

이걸 놔둔다면 결국 나무 자체가 죽어 버리게 될 거라 판단을 한 그들은 십천야와 연관된 정도와, 벌인 일들을 조사하여 그 당사자가 누가 되었든 간에 엄벌에 처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이번 십천야의 일에 관해서는 무림맹과 마교가 손을 잡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정보 또한 교환하는 식으로 오랜 시간 무림에 존재했던 십천야의 잔존 세력들을 뿌리 뽑는 데 힘을 합쳤다.

그렇게 하루에 수도 없이 많은 정보들을 접하고, 그걸 바탕으로 회의를 진행하며 십천야와 관련된 이들에 대한 처벌을 내리느라 정신없이 바쁜 추자후는 저녁 시간이 돼서야 간신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던 그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십천야와 관련된 이들을 벌하는 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무림맹에서 중요한 일을 해내던 이들조차 벌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추자후는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죄의 경중만으로 모든 일들을 공평하게 처리했다.

의자에 기대어 앉은 추자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리도 많은 자들이 십천야에게 넘어갔었을 줄이야.’

십천야라는 존재가 위험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그대로 두었다면 무림맹이 아니라 무림 자체가 발칵 뒤집혔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세력이었다.

이런 이들이 서로 힘을 합치기 전에 찾아냈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막을 수 있었기에 실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천무진과 그 일행들이 이 일을 막아 내지 못했다면……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피바람이 불었을 것이 분명했다.

수만, 아니 어쩌면 수십만 명 이상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미래를 그 네 사람이 막아 낸 것이다.

그렇게 추자후가 상념에 잠겨 있던 사이, 그의 거처에 손님이 찾아왔다.

“맹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추자후가 문 쪽을 향해 시선을 주며 답했다.

늦은 저녁 찾아온 손님은 다름 아닌 총군사 위지겸이었다.

승낙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위지겸이 곧장 추자후에게 다가와 예를 갖췄다. 추자후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방금 전까지 질리도록 같이 있지 않았는가. 그새를 못 참고 이리 찾아와서야 원.”

추자후가 바쁜 것처럼 그의 손과 발이 되어 줘야 하는 위지겸 또한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말과 함께 앉으라는 추자후의 손짓에 위지겸이 그 반대편에 착석했다.

그러고는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급히 보고를 드릴 일이 몇 가지 있어서 왔습니다.”

“뭔가?”

“방금 전에 사천당문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도망쳤던 당자윤을 잡았고, 곧바로 무림맹으로 압송하겠다는 전언이었습니다. 한 열흘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 그거참 반가운 소식이로군.”

십천야와 관련된 이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당자윤 또한 처벌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게다가 그의 악행은 꽤나 컸다.

실질적으로 십천야를 도왔고, 그들에게 필요한 독을 몰래 빼돌려 말도 안 되는 일에 사용되게끔 했다.

거기다가 무림맹 동료들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기에 무림맹에 끌려오는 즉시 엄벌에 처해질 예정이었다.

당자윤을 잡았다는 보고를 끝낸 위지겸이 곧바로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천 공자가 어디에 계신지 찾았습니다.”

천무진에 대한 이야기에 추자후가 두 귀를 쫑긋 세운 채로 물었다.

“그래? 지금 어디에 계신다던가?”

“산동으로 향하고 있으시다는 것 같습니다.”

“산동? 그렇다면…….”

“네, 아마도 천운백 대협을 찾아뵈려는 거겠지요.”

십천야와의 싸움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천무진과 그의 일행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랬기에 그들이 어디에 있나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끝에, 마침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낸 것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인 조수아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함정에 뛰어들었던 천운백은 그 이후에도 몸을 추스르며 계속해서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사실 추자후는 지금 천무진의 도움이 필요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무진과 그의 일행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 맞을 게다.

천룡성의 무인이라는 천무진과 뛰어난 정보력을 지닌 적화신루. 그리고 중원의 남쪽 지역에서 상당한 힘을 자랑하는 사파의 거두인 대홍련의 련주 단엽까지.

그들이 도와준다면 현재 무림맹으로서도 쉽사리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 큰 보탬이 될 것이 자명했다.

그랬기에 어떻게든 천무진을 찾으려 했던 것인데…….

그가 천운백을 만나기 위해 산동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추자후가 침묵하고 있을 때였다.

위지겸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연락을 넣어서 이쪽으로 와 달라고 부탁을…….”

추자후가 고개를 저었다.

분명 무림맹의 맹주인 그에게 천무진과 그의 일행이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했다.

허나 그것은 너무도 큰 욕심이었다.

천무진과 그의 동료들은 무림을 위해 너무도 많은 싸움을 해 왔고, 그로 인해 맹주의 입장으로선 갚기 어려울 정도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추자후가 천천히 창가에 가서 섰다.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천 공자는 이미 우리에게 과할 정도로 많은 걸 해 줬다네. 그러니 이제 남은 뒤처리 정도는…… 우리가 마무리하도록 하지. 한동안 푹 쉴 수 있도록 괜한 방해는 안 하는 게 좋겠군.”

말을 내뱉는 추자후를 바라보던 위지겸이 이내 피식 웃었다.

추자후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위지겸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고, 또 그중에 일부는 정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위지겸이 툴툴댔다.

“한동안 잠은 다 잤군요.”

한숨과 함께 내뱉는 위지겸의 말에 추자후가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 * *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앞에 둔 채로 두 명의 사내가 마주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천운백과 천무진이었다.

십천야와의 싸움이 끝나고 잠깐의 정리를 끝내기 무섭게 천무진은 천운백을 만나기 위해 산동으로 움직였다.

천운백은 조수아와 함께 모습을 감춘 채로 지내고 있었다. 십천야의 눈을 속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몸을 감추고 지내던 곳은 천무진을 위해 두 사람을 구해 냈던 방건이 마련해 준 자그마한 장원이었다.

주변에 인적도 드물고, 외부에서 누군가가 드나들지 않아 바깥으로 정보가 흘러나가지 않을 만한 장소였다.

자리에 앉은 천무진이 곧장 천운백을 향해 물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보면 모르겠느냐. 다 낫다 못해 힘이 넘칠 지경이란다.”

뇌신적벽탄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었었지만 오랜 시간 여유를 가지고 회복에 집중한 덕분에 천운백은 무척이나 좋아진 상태였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고, 분명 눈으로 보기에도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천무진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자신이 천지광이 심어 놓은 아이라는 걸 알면서도 평생을 부모처럼 돌봐 준 사람.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믿어 주었던 사람…… 그런 그가 자신과 연관된 일로 인해 죽을 뻔했거늘 아무런 것도 해 주지 못했다.

천무진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지켜드리지 못해서.”

목숨은 멀쩡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마음이 너무도 컸다.

사과를 하는 천무진을 향해 천운백이 말했다.

“내가 해야 할 사과를 네가 하는구나.”

“사부님이 제게 왜 사과를…….”

이해가 안 간다고 되묻던 천무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천운백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진지함 때문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널 지켜 주지 못해서. 너에게 끔찍한 고통을 경험하게 해서. 이 사부가 해결했어야 했는데…… 그 모든 걸 네가 짊어지게 만들었구나.”

천룡성에 얽힌 지독한 악연이었다.

그리고 그걸 떠안은 것이 천무진이었고, 그로 인해 그는 아픈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천운백은 미안했다. 자신이 그 모든 걸 미리 매듭지었었다면 결코 천무진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천운백의 그 말에 천무진이 크게 고개를 저었다.

“사과하지 마시죠. 사부님의 잘못이 아니니까.”

천무진의 그 말에 천운백이 픽 웃으며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이놈아, 그럼 너도 사과하지 말거라. 네 잘못도 아니니까.”

말과 함께 눈을 부릅뜨는 천운백의 모습에 결국 천무진도 더는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천무진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럼 앞으로 무림의 일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어쩌긴. 말하지 않았더냐. 이제 천룡성의 주인은 너라고. 믿고 맡길 만한 제자가 있으니…… 슬슬 은퇴를 할까 생각 중이란다.”

“이렇게 정정하신 분이 불쌍한 제자한테 다 맡기고 은퇴를 하시겠다고요?”

“허허,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나이를 먹으면 겉이 아닌 속부터 골병이 드는 게야. 그러니 젊은 네 녀석이 이제 열심히 해 줘야지.”

장난스럽게 말을 내뱉은 천운백이었지만 이내 그는 앞에 놓인 찻잔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의 모습에 천무진은 조용히 그가 상념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참으로 긴 세월이었구나.”

천천히 의자에 기댄 천운백이 팔짱을 낀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나이에 천룡성에 들어와, 무공을 배우고 점점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천룡성의 주인이 된 이후부터는 참으로 바쁜 삶을 살았다.

천룡성의 주인으로서 무림의 많은 걸 지켜 냈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해야만 했던 삶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조수아, 그녀였다.

평생 자신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여인 조수아.

그로서는 십천야에게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긴 했지만, 실로 오랫동안 홀로 지내게 했다.

다치고 나서 한동안 이곳에서 지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천운백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평생을 살며 이토록 편안하게 그녀와 단둘이 지냈던 적이 없었으니까.

천운백이 말을 이었다.

“평생을 무림을 위해 살아왔단다. 그러니 이제…… 내 남은 시간만큼은 그녀를 위해 살고 싶구나.”

그 말을 끝낸 천운백이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천무진과 시선을 맞춘 채로 물었다.

“내가 그래도…… 되겠느냐?”

천룡성의 무인으로 많은 짐을 짊어진 채 살아온 천운백이다. 그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아는 천운백이었기에 천무진에게 이 같은 말을 한다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었다.

조심스레 건넨 그 한마디.

그리고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기에…….

“그렇게 하시죠. 나이를 먹어서 힘들다는 사부님에게 억지로 일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최대한 편안하게 모든 것에서 손을 놓을 수 있도록 천무진이 농담을 섞어 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천운백이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천무진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 상태로 천운백이 입을 열었다.

“무진아.”

“네, 사부님.”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춘 채로 천무진이 답했다.

오랜 시간 무림을 지켜 온 천룡 천운백.

모든 일을 끝마친 그가 천무진을 향해 말했다.

“무림을…… 부탁한다.”

어깨를 꽉 움켜쥐며 건네는 그 한마디에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심을 담아 답했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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