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8화 (8/500)

 8

8화 3장. 제자는 스승을 바라보고, 스승은 제자를 위로한다(2)

담호는 바닥에 널브러져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담호가 일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개중에는 수경의 손속이 과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수경도 편한 표정은 아니었다. 순수한 오행이형권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매화보까지 펼쳐 담호의 약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수경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되었겠지. 더 이상…….”

그 순간 미동도 없이 널브러져 있던 담호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코와 입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경을 바라보는 담호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수경이 말했다.

“사제, 이제 그만하는 것이…….”

“계속하라.”

그 순간 현검 진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경이 현검 진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천경의 투지가 꺾이지 않았다. 상대가 항복하지 않았는데 너 혼자 끝낼 생각이냐? 나는 그렇게 느슨한 자에게 무공을 전수해 주고 싶지 않다.”

수경이 이를 악물었다.

현검 진인의 의도는 명백했다.

담호의 의지를 꺾는 것, 그래서 무공에 대한 집념을 없애는 것. 그것이 담호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사제.’

수경이 근처에 있던 목검을 들고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흐트러진 매화처럼 현란한 수경의 보법이 담호의 눈을 어지럽혔다. 담호는 일단 뒤로 한발 물러났다. 일단 거리를 벌리면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겠다는 뜻이었다.

쉬익!

코끝을 수경의 발이 스쳐 지나갔다.

소엽퇴법(掃葉腿法).

바닥에 쌓인 나뭇잎을 쓸어버리는 것처럼 허공을 가르는 수경의 발길질. 담호를 스쳐 지나가는가 싶던 발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더니 그대로 정수리를 향해 내리 꽂혔다.

퍼억!

담호는 양손을 교차해 수경의 소엽퇴법을 막았다.

강렬한 충격이 양 팔뚝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나 갔다. 극렬한 통증에 담호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수경은 소엽퇴법과 이십사수매화검을 적적히 섞어서 공격했다. 날카로운 검초와 현란한 발길질에 담호는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물러나는 듯했다.

“저, 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대제자들의 얼굴에 안타까운 빛이 떠올랐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담호를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일방적으로 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동정심이 이는 것이다.

운경이 무경에게 말했다.

“저것이 현실입니다.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차이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천경에게 무인의 길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형은 미래의 화산을 이끌어갈 분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운경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무경에게 확실히 전해졌다.

“쯧!”

무경이 애꿎은 혀를 찼다.

그사이 수경은 더욱 무섭게 담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검과 다리의 연환 공격에 담호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을 찾지 못한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끝이다.”

수경의 검이 담호를 향해 쏘아졌다.

매화만개(梅花滿開)의 초식이었다. 화산파의 수많은 매화가 일제히 만개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화려한 초식이었다.

매화에 노출된 담호에게 피할 곳은 보이지 않았다.

수경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지금이다.’

그때였다. 담호의 눈이 빛났다.

흥분을 했는지 수경의 동작이 커졌다. 그 때문에 파탄이 일어났다.

팟!

담호가 오른발로 대지를 박찼다.

단 한 걸음의 전진, 그리고 단 한 번의 주먹질.

퍼억!

담호의 주먹은 매화만개를 뚫고 분명 수경의 가슴에 작렬했다. 다행히 내공이 보호해 줬기에 큰 타격은 입지 않았다.

처음으로 수경의 얼굴에 당혹한 빛이 떠올랐다. 만일 담호의 주먹에 정상적인 내력이 실렸더라면 이번 일격에 그의 가슴은 송두리째 박살이 났을 것이다. 그만큼 허점을 찌른 일격이었고, 매서운 반격이었다.

수경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절름발이라고 우습게 봤는데, 의외의 한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한 수는 수경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위력적이었다.

‘만일 녀석의 주먹에 내공이 실렸으면 이번 일격으로 나는 죽었다.’

수경이 자신도 모르게 현검 진인을 바라봤다. 현검 진인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비무를 끝낼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남아 있었다.

수경이 소엽퇴로 담호의 허리를 쓸었다.

퍼억!

담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리가 꺾일 만큼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담호의 입가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단순한 외상이 아닌 깊은 내상을 입었다는 증거였다.

비틀거리는 담호의 귀로 현검 진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는 분명 놀라운 재능을 가졌다. 방금 전 일수가 그 증거지. 허나 육신과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런 놀라운 재능도 소용이 없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니까 현실을 깨닫고 포기하거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담호가 고개를 저었다.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터져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온몸이 아팠다. 마치 쇠망치로 계속해서 후려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특히 왼쪽의 무릎이 아팠다. 이대로 누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면 편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담호는 버티고 섰다.

현검 진인의 말처럼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게 된다.

강한 무인이 되겠다는 일념, 이제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담호의 변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눈빛에 현검 진인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빛났다.

“뭐하느냐? 수경. 아직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멀뚱하게 서 있을 생각이냐?”

현검 진인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수경이 어깨를 움찔했다.

‘제기랄!’

수경이 이를 악물고 담호를 공격했다. 소엽퇴 한 방으로 담호는 이미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런 이를 상대로 계속해서 무공을 펼치라니?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퍼버버벅!

수경의 소엽퇴가 연신 담호의 전신을 두들겼다. 그때마다 담호의 몸이 가죽 부대처럼 형편없이 흔들렸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전신이 검붉은 피멍으로 뒤덮였지만 담호는 끝까지 버티고 섰다.

오죽했으면 수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발 포기하란 말이다, 천경.”

때리는 그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가 원한 것은 정당한 비무였지, 이런 무자비한 폭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검 진인의 차가운 눈빛이 그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천경아.”

“으음!”

그 모습이 어찌나 잔인했던지 일대제자들 중 상당수가 고개를 돌려 외면했을 정도였다. 그중에는 담호가 무공을 익히는 것을 반대했던 운경도 있었다.

“그냥 쓰러져라.”

오죽했으면 운경이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그만큼 담호의 모습은 처참했다.

두 눈의 실핏줄이 터져 세상이 온통 붉게 보였다. 흐릿해지는 세상 속에서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이 신경마저 마비시킨 것이다.

“쿨럭!”

담호가 피를 토해 냈다. 가슴에 묻은 검은 피가 그가 입은 내상이 보통 지독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담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의지는 아직도 굳건했지만, 그의 육체는 이미 버틸 수 없는 단계에까지 다다랐다.

담호가 마지막으로 현검 진인을 바라봤다. 순간 현검 진인이 흠칫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담호의 두 눈 때문이다.

그 두 눈에 담긴 처절함과 지독한 살기, 그리고 결코 꺾이지 않을 독기가 현검 진인의 심기를 건드렸다.

청정한 도가 문파인 화산파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 처절한 모습에 현검 진인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본능적인 거부감. 그의 마음이 담호라는 존재를 거부하고 있었다.

멈추게 해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선을 넘어서면 담호는 무인의 길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생활마저도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일어난 거부감이 그의 입을 막고 있었다. 그사이 담호는 수경에게 소엽퇴를 몇 대 더 허용했다.

담호가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결코 포기하지…….”

퍼억!

그 순간 수경의 마지막 일격이 그의 관자놀이에 작렬했다.

담호의 정신을 붙잡고 있던 끈이 뚝 끊겼다. 담호는 끈 떨어진 연처럼 흐느적거리다가 툭 쓰러졌다.

“천경아!”

그제야 무경과 한소유가 담호를 향해 달려갔다.

수경이 눈을 감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의 이마에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현검 진인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뭐하고 있느냐? 패자들은 진무궁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서릿발 같은 음성에 패배한 제자들이 담호를 들쳐 입고 진무궁 밖으로 나갔다.

현검 진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비무를 계속한다.”

“사숙!”

일대제자들 몇 명이 현소 진인의 거처로 뛰어들었다. 그들 중 한 명의 등에 만신창이가 된 담호가 업혀 있었다.

현소 진인이 기겁해서 평상에서 뛰어내렸다.

“호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비무를 하다가 그만…….”

“비무? 이게 무슨 비무를 한 자의 모습이란 말이냐? 생사결을 한 자의 모습이 아니더냐? 도대체 어떻게 된 일……. 아니다. 어서 자리에 뉘여라.”

일대제자들이 담호를 급히 평상에 뉘였다.

담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니, 최악이었다.

기식은 엄엄했고, 코와 입에서 계속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도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호……야!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현소 진인의 목소리가 마구 떨려 나왔다. 하나뿐인 제자의 안위 앞에 현소 진인의 부동심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대체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냐?”

“사숙, 고정하십시오.”

“고정? 그래, 고정해야지.”

현소 진인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품을 뒤졌다. 그러자 조그만 나무 상자가 잡혔다.

나무 상자를 열자 새까만 단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소 진인은 급히 단환을 물에 개어 담호의 입에 조금씩 흘려 넣었다.

“호야! 꼭 살아야 한다. 호야! 이 사부를 두고 어디를 가려는 것이냐?”

단약을 모두 복용시킨 현소 진인이 급히 담호의 전신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호야, 담호야! 이 녀석아…….”

현소 진인의 울부짖음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