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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4장. 둘이 함께 길을 걷다(1)
담호를 내려다보는 현소 진인의 눈빛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담호의 전신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초들이 짓이겨진 채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요혈에 미세한 은침이 꽂혀 있었다.
담호를 살리기 위해 현소 진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의술을 총동원했다. 오 년 전 담호를 살리기 위해 배웠던 의술이 또다시 담호를 살리고 위해 발휘되고 있었다.
현소 진인이 손을 뻗어 담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호야, 절대로 포기하지 말거라. 이제까지 늘 그래 왔듯이.”
담호는 그야말로 처참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그동안 신체를 단련해 오지 않았다면 다시 걷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현검 진인의 전언은 이로써 확실해졌다.
“아예 무공을 익힐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건가? 정말 잔인하구려, 현검 사형.”
이 정도 상처를 완벽히 회복하려면 최소 삼 년은 필요할 터였다. 지금이 담호에겐 무공을 익힐 최적의 시기였다. 삼 년이란 시간을 헛되이 보내 근골이 굳어져 버리면 무공을 익혀도 최상의 성취를 얻기가 불가능했다.
결국 현검 진인은 담호가 무공을 익힐 여지를 교묘히 없애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허나 사형의 뜻대로는 안 될 것이오.”
현소 진인이 손을 뻗어 담호의 맥문을 잡았다. 그러자 미세한 기운이 느껴졌다.
비록 담호의 신체는 엉망으로 망가졌지만, 그의 내부는 치명적인 상처는 피했다.
“중천심결이 담호의 심맥을 보호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원시천존의 뜻일 터. 내 더 이상 천명을 거르지 않으리라.”
중천심결로 형성된 기운은 무겁고 둔탁하다. 하지만 강인하면서도 끈질기다. 그런 특성이 담호의 내부를 보호했다.
지금 당장은 운용이 힘들어 내기 상태로 머물지만, 대성을 이루면 화산파의 모든 무공을 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호야. 이 사부가 너를 일으켜 세울 테니.”
한참이나 담호를 바라보던 현소 진인이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결연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현소 진인이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주복내견선유(舟覆乃見善游)라.”
배가 뒤집어져야 마침내 잘 헤엄치는 것이 나타나듯이 인간은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기 마련이다.
현소 진인은 담호도 그럴 거라 자신했다.
“금방 돌아오마.”
현소 진인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화산을 내려갔다.
꼬박 반나절을 걸어 현소 진인이 도착한 곳은 험준한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화산을 마주 보는 삼공산(三公山)이었다.
화산의 주봉들을 향해 마주 보고 있는 세 노인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삼공산, 마치 검이 거꾸로 꽂혀 있는 것처럼 산세가 날카롭고 뾰족했다.
어디에도 사람이 발을 디딜 만한 공간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곳을 현소 진인이 올랐다.
현소 진인의 몸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학도사로 평생을 살아온 현소 진인이었다. 그의 육체적인 능력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못했다.
얼마 오르지 않아 다리가 딱딱해지고 숨이 가빠졌다.
“휴!”
잠시 현소 진인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화산 지척에 있지만 누구도 찾지 않는 험악한 곳, 현소 진인도 이곳을 찾는 것은 삼십여 년 만이었다.
발을 살짝 헛딛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만큼 위험천만한 곳,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곳으로 오는 것을 피했었다.
만일 제자 담호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절벽 끝에 서자 절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현소 진인이 문득 탄식을 내뱉었다.
“수십 년을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공부했지만 절벽 앞에 서니 다 소용이 없구나. 어리석도다, 현소야.”
그러면서 깨달았다.
“절벽을 향해 내디딜 단 한 걸음의 용기는 결코 책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현소 진인이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현소 진인의 눈은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차분해져 있었다.
현소 진인은 아찔한 능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오르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현소 진인은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휘잉!
능선을 타고 바람이 불어왔다. 순간 현소 진인의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용케도 균형을 잡았다.
“허억, 허억!”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지만 현소 진인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아니라 제자를 위해서.
***
“으음!”
담호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그러자 제일 먼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렸느냐? 다행이구나.”
“사……부님?”
“그래, 사부다. 호야.”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바라보는 현소 진인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족히 십 년은 더 늙은 듯한 사부의 모습에 담호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사부님.”
“그래!”
“죄……송합니다.”
“네가 왜 죄송하느냐? 네가 무얼 잘못했다고? 넌 잘못한 것 하나 없다. 그러니 죄송해할 필요도 없다.”
담호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사지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제야 담호는 자신이 수경과의 대결에서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윽!”
담호의 두 눈이 벌겋게 물들었다.
비록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지만, 자신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졌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상처라면 무공을 익히는 것은커녕 몸을 회복시키는 데만 족히 몇 년은 걸릴 터였다.
그때 현소 진인이 손을 뻗어 담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호야.”
“사부님.”
“몸을 회복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현소 진인이 담호의 상체를 일으켰다. 그제야 담호는 자신의 온몸에 약초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굳이 묻지 않아도 사부 현소 진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담호를 벽에 기대게 한 후 현소 진인이 방구석에 놓여 있던 커다란 목함을 가져왔다. 목함을 열자 검붉은 색 단환 수십 개가 보였다.
“이건?”
“몸에 좋은 거다.”
현소 진인이 단환 하나를 꺼냈다.
순간 담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환을 꺼내는 현소 진인의 손이 온통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사부님, 그 손은…….”
“별거 아니다. 신경 쓰지 말거라.”
평생 도경만 읽던 사부의 손에 상처가 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자신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약초를 구하기 위해서 화산을 뒤지다 보니 생긴 상처일 게다.
사부의 헤진 능라의가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분명 옷 안쪽에는 그보다 심한 상처들이 존재할 것이다.
“어서 복용하거라.”
“사부님.”
“왜, 사부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거냐?”
현소 진인이 인자하게 웃었다.
“그게 아니라…….”
“그럼 어서 복용하거라.”
“예!”
담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단환을 복용했다.
“이젠 중천심결을 운용해서 약효가 퍼지도록 하거라.”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운공에 들어가자 현소 진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담호에게 복용시킨 것은 운양단(沄陽丹)이라는 영약이었다. 학도사들 사이에 비법이 전해져 오는 영약으로 이젠 그 이름을 아는 이조차 거의 없었다.
화산파의 최고 영약이라는 매화신단처럼 한 번에 공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지는 않지만, 장복하면 공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근골이 튼튼하게 바뀐다.
현소 진인은 운양단의 재료가 되는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사흘이나 삼공산을 헤집고 다녔다. 재료 자체는 평범한 것들이 많았지만 자생지가 절벽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있다 보니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몇 번이나 굴러떨어지고, 계곡에 빠졌지만 현소 진인은 결국 운양단의 재료가 되는 약초들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약초를 구한 후에도 현소 진인은 쉴 수가 없었다. 약초들을 운양단으로 연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 조절을 잠깐이라도 잘못했다가는 수일 적공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만큼 운양단을 만드는 작업은 지난했다.
몇 날 며칠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운양단 수십 알을 겨우 만들었다.
“중천심결이 무쇠로 된 화로와 같다면 운양단은 바짝 마른 장작이나 마찬가지. 마른 장작이 불을 지피니 화로가 뜨겁게 달아오를 터.”
학도사로 수많은 무공 서적을 기억하고 있는 현소 진인이었다. 몸으로 펼치지 못한다 뿐이지, 식견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공에 대한 이해도만큼은 일반적인 무인들을 웃돌았다.
현소 진인은 팔짱을 끼고 앉아 담호가 운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창백하기만 하던 담호의 얼굴에 서서히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번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
그래도 마냥 안심할 수 없기에 현소 진인은 담호의 상태를 예의 주시했다. 일각, 이각,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담호의 운공이 끝난 것은 다음 날 새벽 무렵이었다.
“후!”
담호가 호흡을 고르며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이는 역시 현소 진인이었다. 밤새 담호를 지켜본 것이다.
“사부님?”
“괜찮느냐?”
“많이 좋아졌습니다.”
괜히 안심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운공 전에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한결 호흡하기가 쉬웠다.
“다행이구나.”
“사부님 덕분입니다.”
“당분간은 운양단을 복용하고 중천심결을 운공하거라. 어차피 당분간 운신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소 진인이 그런 담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담호도 현소 진인을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들었다. 수경과 비무 했다고?”
“그렇습니다.”
“휴우! 수경이를 원망하지 말거라. 그 아이의 뜻은 아니었을 테니까.”
“알고 있습니다.”
“현검 사형은 예로부터 과격한 면이 많았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마다하지 않지.”
“알 것 같습니다.
“이 사부가 대신 사과하마.”
“사부님이 잘못하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모든 것은 이 사부의 잘못이다. 내가 조금 더 빨리 결단을 내렸다면 네가 이런 꼴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소 진인이 잠시 입을 다문 채 창밖을 바라봤다. 열린 창문 사이로 저 멀리 연화봉이 보였다. 담호도 사부를 따라 창밖을 바라봤다.
연화봉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현소 진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호야!”
“예! 사부님.”
“내가 돕겠다. 너에게 맞는 무공, 우리 함께 만들자꾸나.”
담호의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