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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6화 (1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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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6장. 세상 밖의 세상으로……(1)

담호는 새벽 일찍 일어났다.

아직 여명이 뜨기 전이었다. 담호는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그때 담호의 곁으로 연소하가 다가왔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도와 드릴 것은 없나요?”

“없습니다.”

담호가 딱 잘라 말했다. 너무나 단호한 담호의 말에 연소하가 살짝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담호는 연소하를 신경도 쓰지 않고 보관해 두었던 나물을 꺼내 조물조물 묻히기 시작했다.

연소하는 그런 담호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무당파에 입문한 이래 그녀는 단 한 번도 음식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속가제자나 이대제자도 아닌 일대제자의 신분이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청허 진인의 제자. 한가하게 음식을 할 시간에 무공을 익히는 것이 무당파를 위해서도 나았다.

담호도 화산파의 일대제자였다. 그런 그가 직접 음식을 하니 신선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음식을 하는 담호의 마음도 남달랐다.

담호가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히면서 요리는 사부 현소 진인이 전담했다. 요리하는 시간에 무공을 더 익히라는 현소 진인의 배려였다.

이제 다시 수련에 들어가면 사부를 위해 요리를 할 시간은 더욱 없을 것이다. 산을 내려가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사부를 위해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그렇게 담호는 정성껏 음식을 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경건해 보였기에 연소하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음식이 다 될 때쯤 청허 진인이 돌아왔다. 연소하보다 일찍 일어난 청허 진인은 화산의 정기를 받겠다며 산책을 갔었다.

“음식 냄새가 좋구먼.”

담호가 청허 진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방 안에서 현소 진인이 나왔다.

“아이고! 머리야.”

“사부님.”

“벌써 일어난 것이냐? 아니, 내가 제일 늦은 것인가?”

현소 진인은 아직도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런 현소 진인의 모습에 청허 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속은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아니, 안 괜찮은 것 같습니다.”

현소 진인이 고개를 저으며 평상에 주저앉았다. 현소 진인의 솔직한 모습에 청허 진인뿐 아니라 연소하도 미소를 지었다.

담호가 평상 위로 음식을 차린 상을 가져갔다.

“드시고 나면 속이 풀리실 겁니다.”

“끄응! 고맙다, 호야. 모두 식사하시지요.”

“식객은 그저 고마울 뿐이지요.”

청허 진인이 먼저 평상에 앉았고, 연소하도 그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늘 둘이 앉아 식사를 하던 평상에 두 명이 더 늘었다.

겨우 두 명이 늘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흥겨웠다.

담호가 수저를 들다 멈추고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담호가 바라보는 곳을 향했다.

불어온 바람에 매화 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매화 잎은 담호가 앉아 있는 평상 위에도 내렸다.

“천하제일의 절경이로구나. 내 생애 최고의 밥상이로다.”

청허 진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식사를 끝낸 후 설거지를 하는 것 역시 담호의 몫이었다. 담호는 싫다는 소리 하나 하지 않고 설거지를 했다.

연소하는 그런 담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일만련이라고? 일만 번을 단련했다는 건가?’

사부인 청허 진인의 말이었다. 그가 제자에게 헛소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연소하의 시선을 느꼈는지 담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니에요.”

연소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담호가 다시 설거지에 열중했다. 그 모습이 연소하에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진 사형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순간 연소하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닮은 구석도 없고, 기질도 전혀 다른데. 착각이겠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화산파에서 명경이라는 기재가 나타나 현검 진인의 심득을 잇고 있듯 무당파에도 천고의 기재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진무영. 무당파 백 년 내 최고의 기재라고 불릴 만큼 모든 것에서 발군의 실력과 감각, 재능을 자랑했다.

오죽했으면 무당파 장로들이 모두 달라붙어 그에게 자신의 무공을 전수하고 있을까?

가르치는 것을 모조리 습득하고, 오히려 그 이상으로 발전시키는 진무영의 가공할 재능에 무당파는 전율을 하고 있었다.

진무영의 등장으로 향후 백 년 정도는 강호에서 무당파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게 무당파 장로들의 중론이었다.

진무영은 담호와 모든 것이 달랐다.

그는 담호처럼 무뚝뚝하지도 않았고, 입가에 항상 미소를 달고 살았다. 누구에게나 예를 지키고, 항상 선을 넘지 않고 본분을 지켰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진무영을 좋아하고 따랐다. 연소하도 진무영을 존경하고 따르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진무영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분명 진무영은 눈앞에 있는 담호와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담호를 보고 있자면 묘하게 그가 떠오르니 이상한 일이었다.

문득 설거지를 하는 담호의 손에 눈길이 갔다.

투박하면서 상처투성이인 그 손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크면서 거친 손등과 정처럼 박인 굳은살.

‘왜 이제까지 이런 극명한 흔적을 보지 못했지?’

일반적으로 타문파의 무인을 만나면 자세히 관찰하기 마련이다. 근육의 형태와 주먹의 모양, 그리고 체형 등으로 그가 익힌 무공의 종류와 성취를 유추해 내기 위함이었다.

연소하도 그런 습관이 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담호를 보았을 때는 관찰을 등한시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던 연소하는 잠시 후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다리를 저는 것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야. 그 때문에 불쌍하게만 생각해서 화산파의 무인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렸어.’

연소하는 상대의 겉모습만 보고 방심을 한 스스로를 탓했다. 경험이 모자라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야 사부가 왜 자신을 데리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사부님께선 모자란 제자의 경험을 이렇게 채워 주시려는 것이구나.’

연소하는 새삼 청허 진인의 배려를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좋은 분을 사부로 모셨는지 깨닫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화산행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천경 소협.”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담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심히 자신을 바라보는 담호의 시선에도 연소하는 미소를 지었다.

“참 좋네요. 화산은…….”

담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호 일행이 취운궁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뜬 후였다. 취운궁 앞 공터에는 이미 화산파의 제자들이 도열해 있었다.

“사숙,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무경이 현소 진인에게 다가왔다. 그의 등 뒤로 운경과 서른 명의 제자들이 도열해 있었다.

“저들도 함께 가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장문인의 생각이겠지?”

“그렇습니다.”

현소 진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운경과 함께 있는 제자들은 화산파에서도 나름 촉망받는 기재들이었다.

‘장문인께서 정말 독심을 품었구나.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행로에 본문의 촉망받는 기재들을 동행시키다니.’

저들은 가히 화산파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이번 행로에 포함시켰다는 것에서 현천 진인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을 알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것. 그리고 무당파의 우산 아래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최대한 경험을 많이 쌓게 해 주겠다는 생각이겠지?’

현소 진인이 고개를 저어 잡념을 날렸다. 진실이야 어떻게 됐든 자신이 포함된 행렬이었다.

화산파의 제자들을 보호할 책임이 그에게도 있었다.

현소 진인이 손짓을 했다.

“이리 오너라, 호야.”

멀찍이 서 있던 담호가 다가왔다. 그러자 운경이 입을 열었다.

“천경도 합류하는 겁니까?”

“그렇다.”

“너무 위험합니다, 사숙. 천경을 위해서라도 화산파에 두고 가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운경의 직설적인 말에 현소 진인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다.”

“저희는 사숙 한 분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면 천경을 신경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운경의 말투는 지극히 차가우면서도 무미건조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그의 말투에 무경이 땀을 뻘뻘 흘릴 정도였다.

“인석아, 사숙 앞에서 그게 무슨 말이냐?”

“저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형.”

“사숙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리 말하는 거겠지. 그만해라.”

“알겠습니다.”

무경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자 운경이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결코 수긍하는 빛이 아니었다.

무경이 담호를 바라봤다.

“다 둘째가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너무 가슴에 담아 두지 말거라.”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담호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무경은 여전히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현소 진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숙.”

“휴우!”

현소 진인이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무경의 표정이 더욱 머쓱해졌다.

무경이 애꿎은 제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준비는 끝났겠지?”

“예!”

제자들의 목소리가 화산에 울려 퍼졌다.

그들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준비가 다 된 것 같으니 이만 내려가지.”

청허 진인이 앞으로 나왔다. 그에 무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출발한다.”

“예!”

무경을 선두로 화산파의 제자들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현소 진인이 그들을 따르려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취운궁을 바라봤다. 취운궁의 이 층 창문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장문인.’

내려다보는 현천 진인의 눈빛은 무척이나 깊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현소 진인은 현천 진인에게 포권을 취한 후 화산을 내려갔다.

현천 진인은 제자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움직일 줄 몰랐다.

매일같이 오르내리던 화산이었다. 별다른 감흥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담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자신이 내려온 길을 돌아봤다.

백척협, 천척당으로 대변되는 험로가 보였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수많은 돌계단엔 그의 피와 땀이 서려 있었다.

담호는 그 모든 광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때 무경이 다가와 웃었다.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냐? 다시 못 올 사람처럼.”

“…….”

“농담이다, 농담. 원, 녀석도.”

무경이 담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그의 시선이 화산으로 향했다.

“끝내주지 않느냐? 매화가 피는 화산은……. 이런 화산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우리는 반드시 무사히 화산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때도 또다시 매화가 만개한 화산이 우리를 맞이할 거야.”

담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경은 담호도 자신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담호의 눈빛이 차가워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매화가 있는 화산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매화가 아무리 만개하더라도 사부가 없는 화산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곳이 못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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