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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6장. 세상 밖의 세상으로……(3)
새벽부터 윤가장은 시끌벅적했다. 무당파, 화산파, 종남파의 정예들이 출발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백 명이 훨씬 넘는 대인원이 이동하는 일이었다.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행히 윤가장의 장주는 일행들을 위해 꼼꼼히 준비를 해 주었고, 덕분에 세 문파의 기재들은 무리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간밤에 술자리를 한 덕분인지 무경과 금한수의 관계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실제로는 은밀히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무당파의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아직은 어색한 듯 화산파와 종남파 무인들에게 살짝 거리를 두고 있었다.
청허 진인이나 현소 진인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 처음엔 문파 간의 관계 때문에 어색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다.
실제로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들 사이에 조금씩 웃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같은 시대의 강호를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 말은 곧 강호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문파 간의 관계가 어떻든 개인적인 친분을 나눠서 나쁠 것은 없었다.
무경과 금한수, 연소하가 먼저 교분을 나누자, 그들을 따라온 이들도 통성명을 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담호에게 현소 진인이 다가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
“사부님.”
“왜 저들과 같이 어울리지 않고…….”
현소 진인이 말끝을 흐렸다.
담호가 저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저들이 담호를 끼워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후!”
현소 진인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화산파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담호다. 안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데 외부의 사람들이 귀하게 대접을 해 줄 리 만무했다.
저들 역시 눈이 있고, 귀가 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 파악할 능력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담호는 쓸모없는 존재였다. 사부인 현소 진인의 수발을 드는 것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내 욕심이 과했던 모양이구나. 괜히 너를 끌고 와서 이런 수모를 겪게 하다니.”
“아닙니다.”
“그래, 그……곳엔 다녀왔느냐?”
“예!”
현소 진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냐?”
“괜찮습니다.”
“호야.”
“정말입니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휴우!”
현소 진인이 나직이 한숨을 토해 냈다.
그의 제자는 정말 강했다. 만일 자신이 담호와 같은 일을 겪었더라면 지금까지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 형제,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도 그의 제자는 여전히 굳건했다. 그 독심과 집념이 어떤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담호는 자신의 제자였다.
현소 진인이 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괜찮다면 됐다. 이제 출발할 때가 되었으니 말에 타자.”
“예!”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윤가장에서 인원수에 맞춰 말을 내왔다.
청허 진인이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럼 출발합시다. 지금부터 옥문관까지 전력을 다해 달릴 것이오.”
무인들이 일제히 말에 올라탔다.
개중에는 말을 처음 타는 이들도 있었지만, 무공을 익힌 무인들답게 금방 적응했다.
담호와 현소 진인도 말에 올라탔다.
청허 진인을 필두로 일행들이 윤가장을 나섰다.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그들이 말을 내달렸다.
두두두!
백여 마리가 넘는 말들이 대지를 달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무당파의 행사는 실로 치밀했다.
강을 만나면 건널 배를 준비해 놓았고, 말이 지칠 때쯤이면 다른 말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천하에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듯했다.
감숙성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감숙성은 공동파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협조를 구한 것인지 모르지만 공동파가 감숙성을 편히 통과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두었다.
덕분에 그들은 말을 달리기만 하면 됐다.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를 순식간에 지나 북상했다.
그들의 일차 목적지인 옥문관(玉門關)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풍경은 황량하게 변했다.
보이는 것은 적갈색 대지와 아득히 보이는 높다란 산들뿐이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젊은 무인들은 절로 어깨를 움츠렸다.
그들이 멈춘 곳은 옥문관 근처에 있는 객잔이었다.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돌과 나무로 지은 객잔이 아니라 흙으로 만든 객잔이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객잔이라기보다는 조그만 성 같은 느낌이 풍기고 있었다.
흙으로 지은 객잔의 이름은 풍진객잔(風塵客棧)이었다.
서역으로 가는 상인들은 모두 풍진객잔에서 마지막으로 묵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풍진객잔을 나서면 최소한 여섯 달에서 일 년은 중원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리고 운이 나쁜 사람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다.
옥문관은 중원과 새외를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중원의 많은 상인들이 이곳을 통해 서역으로 넘어갔고, 또 들어왔다.
옥문관을 넘으면 세상이 달라지고, 공기가 바뀐다.
흔히들 하는 말이다. 그리고 담호는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풍진객잔에 도착하자 젊은 무인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들 역시 담호처럼 공기가 변한 것을 느낀 것이다.
아직 옥문관을 넘지는 않았지만 넘은 것이나 진배가 없었다. 적어도 그들이 느끼는 삭막한 공기는 그랬다.
청허 진인이 현소 진인과 염중화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근처에서 서신을 보낸 임 표두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는 아직 무사합니까?”
“서신을 보낸 직후 연락이 끊기긴 했지만, 분명 무사할 겁니다. 그가 우리를 마교와 격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데려가 줄 겁니다.”
“으음!”
“일단 제자들에게 휴식을 주시지요. 저는 임 표두와 접촉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소 진인과 염중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들에게 객잔에서 쉴 것을 명령했다.
그렇지 않아도 먼 길을 오느라 지쳐 있던 제자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일제히 객잔으로 뛰어 들어갔다. 담호도 그 뒤를 따랐다.
풍진객잔에 들어서자 무경이 다가왔다.
“고생 많았다. 몸은 괜찮으냐?”
“괜찮습니다.”
무경의 시선이 은연중 담호의 왼쪽 다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때 운경이 무경을 불렀다.
“사형! 이리 오셔야겠습니다.”
“알겠다. 금방 가마.”
무경이 담호를 바라봤다.
“너도 알겠지만, 이제부터는 새외다. 이제부터는 이 사형이 돌봐 줄 수 없을지도 모르니 너의 안위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알겠느냐?”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경은 그런 담호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어깨를 툭툭 두들긴 후 운경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쯧! 동네 개도 아니고, 머리만 만져 주면 다 꼬리를 흔드는 줄로 아는 모양입니다.”
낯선 목소리가 담호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어 누군가 담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유난히도 창백한 안색을 가진 남자였다. 눈꼬리는 살짝 치켜 올라가 있었고, 입술은 뱀처럼 얇았다. 이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담호가 빤히 바라보자 남자가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소생은 종남파의 엽문천이라고 합니다.”
엽문천의 소개에도 담호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엽문천은 담호가 예의 주시하는 몇 명 중 한 명이었다.
엽문천은 여러모로 눈에 띄지 않는 부류였다. 외모에 문제가 있거나 성격이 내향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감추고 타인을 관찰하는 자.
담호가 엽문천에게서 받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담호의 눈에 띄었다.
담호가 말도 없이 빤히 바라보자 엽문천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천경 소협이라 들었는데……. 아닙니까?”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천경 소협. 단지 교분을 나누기 위해서 온 것뿐이니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교분이라…….”
담호가 경계를 풀었다고 생각했는지 엽문천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교분. 천경 소협은 현소 진인의 제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대제자가 분명할진대 화산파의 제자들은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주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하! 제 착각인가요?”
“착각입니다.”
“…….”
칼같이 자르는 담호의 말에 엽문천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얼굴을 풀며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무슨 생각입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몰라서 묻습니까?”
“…….”
엽문천의 미간에 골이 패였다.
절름발이에다 화산파 내에서도 소외를 당하는 담호였다. 때문에 쉽게 생각하고 찔러 봤는데, 생각보다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었다.
단순히 날 선 반응이라면 그러려니 넘어가겠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소름끼치게 날카로웠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보고 있는 것처럼.
‘이 녀석!’
순간적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단순히 눈빛만 날카로웠다면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담호의 눈 속엔 상대를 압박하는 강한 기백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화산파의 일대제자란 건가?’
엽문천은 담호에 대한 판단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일부러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냥 대화나 하자고 온 것뿐입니다.”
“…….”
“보아하니 천경 소협은 대화하기 싫은 것 같네요.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뵙지요. 그럼…….”
엽문천이 담호에게 포권을 한 후 뒤돌아섰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웃음이 가득했던 그의 얼굴에는 냉기만이 가득했다.
‘건방진!’
엽문천이 이빨을 뿌득 갈며 사라졌다.
담호는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뒤돌아섰다. 사부 현소 진인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부님.”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래?”
“…….”
“네가 문제가 없다면 없는 거겠지.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꾸나.”
“예!”
담호는 현소 진인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제자들이 네다섯 명당 방 하나를 배정받은데 비해 그는 현소 진인과 머물게 되었다. 현소 진인이 화산파의 장로이기 때문에 배려를 받은 것이다.
그들이 배정받은 방은 넓지는 않았지만 제법 깔끔했다. 하룻밤 머물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현소 진인이 물었다.
“그래, 오면서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느냐?”
“죄송합니다.”
“역시 그렇구나.”
현소 진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현소 진인은 의도적으로 담호를 방치했다. 담호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길 바라서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굳이 담호를 데리고 온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한 명 담호에게 선뜻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다. 화산파 장로인 현소 진인의 제자임에도 말이다.
현 시점에서 담호의 성취와 가능성을 알고 있는 오직 현소 진인뿐이었다. 화산파의 그 누구도 담호에게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화산파의 제자들이 담호에게 한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담호를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대사형인 무경만이 간혹 신경을 쓸 뿐 다른 이들은 아예 말조차 걸지 않았다.
마치 화산파 전체가 담호를 따돌리는 듯했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담호를 따돌리니 종남파나 무당파의 무인들조차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는 결코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될 만큼 하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아무리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결코 이런 대접을 받아선 안 됐다.
현소 진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휴!”
그래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현소 진인은 한숨만 내쉬었다.
“세상의 인심이란 참으로 무섭구나. 단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다니.”
“다 제자가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네가 모자란 것이 무에 있느냐? 나에겐 네가 최고의 제자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절름발이면 어떻고, 살기가 짙으면 어떤가?
현소 진인은 살면서 담호만큼 강한 집념과 정신력의 소유자를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세상이 그런 담호의 진가를 몰라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담호는 그런 세간의 평가나 눈길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상 밖의 세상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현소 진인은 그런 담호의 눈빛에서 자유롭고 싶어 하는 열망을 보았다.
불주견(不走犬)이 아닌 창공을 비상하는 매가 되고픈.
이젠 자신이 결심해야 할 때였다. 그리고 현소 진인은 결심을 굳혔다.
“호야.”
“…….”
“미안하구나. 이 사부가 무능해서 화산에 네가 설 자리 하나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조차 네가 대접조차 받지 못하는구나.”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괜찮지 않다. 화산은 하늘을 찌를 만큼 높지만, 너를 포용할 만큼 넓지는 못하구나. 이 사부는 좋으나 싫으나 화산에 뼈를 묻어야 하는 사람이지. 하지만 너는 다르다. 화산이 너를 거부하는데, 네가 굳이 화산에 목을 매야 할 이유가 없다.”
“사부님, 무슨?”
“이 일이 끝나면 세상으로 나가거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유롭게 살란 말이다.”
“화산은…….”
“신경 쓸 필요 없다. 화산은 화산이고, 너는 너다. 언젠가 화산의 모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크게 자랐을 때, 일진광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찾아오려무나. 그때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꾸나.”
“사부님!”
현소 진인은 웃었다. 하지만 담호의 어깨에는 잔경련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