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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2화 (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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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7장. 넘어진 곳에서 일어서다(4)

담호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감각은 지독한 통증이었다. 마치 몸 전체가 해체되는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제일 먼저 손을 움직여 보았다.

움직였다.

발도 움직였다.

그제야 담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통증은 있을지언정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었다.

담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온통 암흑뿐, 한치 앞도 구별할 수 없었다.

“토사에 파묻힌 건가?”

그렇다고 보기엔 신체에 거의 압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담호는 그대로 누운 채 어둠이 눈에 익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이 어둠에 적응했는지 차츰 주위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긴?”

담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누워있는 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공동 한쪽의 벽이 무너져 있고, 그 사이로 엄청난 양의 토사와 바위들이 밀려와 있었다. 계곡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지하 공동이 붕괴된 듯했다.

담호 역시 토사에 떠밀려 이곳 공동으로 흘러 들어온 듯했다.

“흐흐!”

담호의 입술을 비집고 처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인기척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거대한 지하 공간에 오로지 그 혼자만이 존재했다. 생매장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아찔한 고독감과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심지가 굳은 담호라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호의 어깨가 잔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계곡 안쪽에서 시작된 폭발은 입구까지 이어졌고, 계곡 전체가 함몰됐다. 그 안에서 누군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간악한 놈들! 설마 이렇게 동귀어진을 택할 줄이야.”

청허 진인이 치를 떨었다.

그가 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무당파의 제자들 중 몇 명이 보이지 않았다. 미처 계곡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토사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상황은 종남파와 화산파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의 얼굴엔 침통한 빛이 가득했다.

염중화가 이빨을 뿌득 갈았다.

“실로 무서운 놈들이로구나. 발각되자 자폭을 택하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렇게라도 놈들의 부활을 막을 수 있어서.”

곁에 있던 금한수의 말에 염중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구나. 이로써 마교의 잔당은 완전히 전멸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염중화의 시선이 슬쩍 화산파의 진영을 향했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 현소 진인이 있었다.

“호야!”

현소 진인의 음성이 떨려 나오고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너진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산파 대부분의 제자들이 빠져나왔지만 어디에도 담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경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사숙. 저희가 구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

무경이 변명하는 동안 운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먼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다리에 힘이 풀린 현소 진인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상을 모두 잃은 듯한 표정으로 계곡을 바라보는 현소 진인을 누구도 위로할 수는 없었다.

원호와 이대제자들은 담호에게 감사해하고 있었다.

담호 덕분에 목숨을 구한 이들이었다. 만일 다른 이들과 똑같은 시기에 빠져나왔다면 부족한 경공 실력 때문에 계곡에 파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사숙.”

무경이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수치스러운 빛이 가득했다.

담호를 구할 생각조차 못 한 주제에 이렇게 변명을 해야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그래서 그냥 현소 진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호는 죽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 없어. 그 아이는 결코 이렇게 쉽게 죽을 아이가 아니야.”

현소 진인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사숙.”

“괜찮다. 나는 괜……찮아.”

운경이 부축하려 했지만 현소 진인이 거부했다.

현소 진인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무너진 계곡을 바라보았다.

“호야.”

***

담호가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기도 했고, 며칠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담호는 힘없이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듯한 그의 눈에 초점이 들어온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담호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공동 한쪽에서 희미하지만 빛이 느껴졌다.

담호는 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천정에 박혀 있는 조그만 돌이 보였다. 돌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야명주(夜明珠)?”

천금을 주고도 사기 힘든 것이 야명주였다. 그런데 야명주의 모양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건가? 어떻게?”

이 거대한 지하 공간에 인간의 손길이 닿은 곳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담호는 문득 한 단어를 떠올렸다.

“천금마옥.”

음유경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담호는 이곳이 천금마옥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마교의 마인들이 숨어 살던 곳.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살아갈 환경이 된다는 뜻이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담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크윽!”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왔지만 애써 고통을 참았다.

한 걸음 옮기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담호는 고통을 참으며 움직였다.

일단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다. 그래야 판단을 내리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지하 공동은 무척이나 넓었다. 담호는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머문 흔적을 발견했다. 무척 급하게 이곳을 떠났는지 각종 물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했던가?”

거대한 공동을 중심으로 통로 몇 개가 뚫려 있었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공동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도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단단한 바닥 곳곳에 발자국이 나 있었다. 담호는 그것이 무공을 익힌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연무장인가?”

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무공을 익힌 무인, 무공이 남긴 흔적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담호는 다음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욱!”

무리해서 움직이자 절로 거친 숨이 토해져 나왔다. 하지만 담호는 쉬지 않았다. 아니, 쉴 수가 없었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폐쇄된 지하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물과 식량이었다.

담호는 지하 공동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조그만 석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목함들이 보였다. 목함을 열자 검은색 단환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단환에서는 곡물냄새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벽곡단.”

마교의 무인들이 비상시를 대비해 놓은 벽곡단이 분명했다. 그 양이 꽤 많아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듯싶었다.

“됐어.”

끝이 보이지 않던 암흑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췄다.

목함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담호가 이를 악물었다.

현소 진인의 음성이 환청처럼 들리는 듯싶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굳은 심지 하나뿐…….”

그러면 하늘이 알아서 길을 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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