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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1장. 누구나 홀로 서야 할 때가 있다(2)
담호가 물었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느냐?”
방진보가 대답했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헤헤!”
담호는 방진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른들도 그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기 급급한데 오직 방진보만이 그의 주위를 맴돌면서 끝없이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진보는 담호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어떤 때는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담호가 자신을 헤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형은 어떻게 그곳에 있었던 거예요?”
“어디로 가는 건가요?”
“형은 몇 살이에요?”
방진보는 끊임없이 담호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조수광과 오기오 등의 표정이 핼쑥하게 변했다. 행여나 담호가 귀찮다고 해코지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해서였다.
하지만 담호는 이상하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루 종일 마차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고, 방진보는 그런 담호의 곁에서 계속해서 떠들었다.
방진보는 질문이 떨어지자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어린 시절 어미를 잃은 일, 아비와 함께 중원 전역을 떠돈 일, 그리고 서역에 갖다온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외로웠던 소년 방진보는 떠들고, 침묵이 익숙한 담호는 듣기만 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독하게 이질적으로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울려 보였기 때문이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조수광은 일행들에게 잠시 쉴 것을 명령했다. 덕분에 은련상단 사람들은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쉬고 있을 때 담호가 조수광에게 다가왔다. 그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조수광이 긴장했다.
“무슨 일입니까?”
“이걸 처분할 수 있겠나?”
담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수광에게 내밀었다. 담호의 손에 들린 물체를 확인하는 순간 조수광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치 고양이의 눈처럼 생긴 어린 아이 주먹만 한 돌이 광채를 흩뿌리고 있었다.
“이건 묘, 묘안석(猫眼石)?”
야명주에도 등급이 있다. 고양이 눈을 닮은 묘안석은 야명주 중에서도 최상의 가치를 지닌 귀물 중의 귀물이었다.
조수광조차 그런 물건이 있다고 들어만 봤을 뿐,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 잠깐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담호는 그에게 묘안석을 건넸다.
묘안석을 만지는 조수광의 손길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진품이다.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귀물.’
이걸 중원에 가져가면 수만금을 싸들고 찾아올 거부들이 널렸다. 묘안석은 돈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갖길 원하는 귀한 물건이었다.
조수광의 눈에 탐욕의 빛이 떠올랐다.
묘안석을 가질 수만 있다면 살인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대로 담호를 죽이고 묘안석을 꿀꺽한다면 앉은 자리에서 수만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저 멀리 사라졌다.
비록 봉두난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언뜻 빛나는 담호의 눈빛은 너무나 무서웠다.
상대는 무공을 익힌 오기오조차 두려워하는 인물. 무력으로 빼앗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괜히 섣불리 건드려서 은원을 맺고 싶지 않았다.
“휴!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이 묘안석의 가치는 족히 금화로 삼만 냥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삼만 냥?”
“그렇습니다. 그것도 가장 최소한으로 잡은 것입니다. 주인만 제대로 만난다면 십만 냥도 가능할 겁니다.”
담호의 눈이 빛났다.
묘안석은 지하 공동의 천정에 박혀 있던 야명주 중 하나였다. 그래도 밖에 나오면 돈이 필요할 것 같기에 가장 질 좋은 것으로 두 개를 챙겨 나왔다.
조수광에게 내놓은 것은 그중 하나였다.
“처분할 수 있겠나?”
“이걸 처분하려면 중원에 들어가야 합니다.”
“중원?”
“그렇습니다! 작은 현에서는 어림도 없으니 최소한 각 성의 성도에서나 처분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직접 사는 것은?”
“욕심은 나지만 내가 가진 것은 금 일만 냥이 전붑니다. 그 걸로는 대협이 가진 묘안석의 가치엔 턱도 없지요. 내 아무리 이익에 눈이 먼 장사꾼이라지만 그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럼 일만 냥에 당신에게 팔지.”
“저, 정말이십니까?”
조수광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나왔다.
‘재앙(災殃)이 아니라, 재신(財神)이었나?’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조수광과 은련상단 덕분에 편히 이동하고 있었다. 빚을 진 게 사실이었고, 무엇보다 스스로 묘안석을 파는 것도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면 속이 편했다.
“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조수광은 담호의 마음이 변할까 급히 자신이 타고 온 마차로 달려갔다. 그곳에 그의 전 재산이 담겨 있는 주머니가 있었다.
“중원에서 가장 신뢰 있는 대륙전장의 전표입니다. 천 냥짜리 전표 여섯 장에 백 냥짜리 전표가 삼십 장입니다. 나머지 천 냥은 은전이니 확인해 보십시오.”
담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머니를 품에 넣었다. 안에 든 액수는 확인하지도 않았다.
일만 금을 거래하면서도 확인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 조수광이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상대의 금전 감각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후려쳐도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든 적당한 것이 좋다. 이 이상 욕심을 부려 상대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가는 어떤 후환이 따라올지 몰랐다.
조수광은 담호가 이제라도 마음이 변해 돌려 달라고 말할까 봐 묘안석을 급히 자신의 품에 집어넣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은 어디지?”
“왜 그러십니까?”
“내가 동행하면 여러 사람이 불편할 테니까. 다음 마을에서 헤어지지.”
조수광이 반색을 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토로번(吐魯番)이 있습니다. 서역으로 가는 상인들은 무조건 들를 만큼 발달된 곳입니다. 마침 우리도 가는 길이니 그곳까지 같이 가시면 될 겁니다.”
“그러지.”
“서두르면 오늘 저녁에 도착할 터이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방진보가 그런 담호를 제일 먼저 맞이했다.
“형, 이거요.”
“뭐냐?”
“육포예요. 제가 직접 말린 거. 헤헤!”
담호는 잠시 방진보를 바라보다가 육포를 받아 들었다.
“고맙다.”
“출출할 때마다 드시면 괜찮을 거예요.”
방진보는 쑥스러운지 육포를 건넨 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곁에 있던 방우광이 방진보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방우광이 담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의 호의를 받아 주셔서.”
“…….”
“내가 보살핀다고 애를 썼는데 아무래도 많이 외로웠나 봅니다. 그래서 대협에게 그렇게…….”
방우광이 말끝을 흐렸다.
그에게는 은련상단의 상인들이 식구 같았다. 물론 그들도 방우광 부자에게 잘해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인 외로움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인들은 제각기 일 때문에 바빴고, 보표들도 어린 방진우의 말 상대가 돼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우광이 살가워서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방진보는 혼자서 외로움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외로움이 쌓이다 보니 담호처럼 무서운 이에게도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담호는 어느새 마차에 등을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방우광은 그런 담호의 모습이 더 이상 무섭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독해서 쓸쓸해 보였다.
“휴!”
방우광이 한숨을 토해 냈다.
잠시의 휴식 후 은련상단은 다시 움직였다.
조수광은 일행을 채근했고, 그 결과 저녁이 되기 전에 토로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토로번은 천산산맥의 동쪽 끝 박격달봉의 남쪽 분지에 형성된 녹주(绿洲) 도시였다. 천산산맥에서 흘러든 물이 고인 녹지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여행객들에게 소중한 수원(水原)이 되었다.
녹주를 중심으로 황토색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인근의 황토로 만든 흙집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토로번은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황량하게 느껴졌다.
토로번에 들어서자 조수광이 일행을 대표해 말했다.
“이곳이 토로번입니다. 녹주 주위에 있는 건물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머물 수 있을 겁니다.”
“말도 살 수 있나?”
“가축 시장이 외곽에서 열리니 거기 가시면 사실 수 있습니다. 은련상단 소개로 왔다고 하면 잘 대해 줄 겁니다.”
“고맙군.”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조수광이 급히 포권을 취한 후 담호에게서 멀어졌다.
이 이상 담호와 함께 있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그의 마음이 변할까 해서였다.
그는 일행을 데리고 녹주 안쪽에 있는 제법 큰 객잔으로 갔다. 이곳을 지날 때면 늘 들르는 곳이었다.
방진보가 담호에게 다가왔다.
“형, 벌써 헤어지는 거예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이었다.
담호는 방진보가 정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냉정하게 말했다.
“어차피 함께 갈 수 없는 사이. 조금이라도 일찍 헤어지는 것이 낫다.”
“형?”
“아버지에게 요리 잘 배우거라.”
그 말을 끝으로 담호는 뒤돌아섰다. 방진보는 멀어지는 담호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방진보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그렇게 섭섭하냐?”
“아버지?”
“그의 말대로 그는 우리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가면 그도 불편하고, 우리도 불편하지.”
“하지만…….”
“그는 무림인이다. 무림인과 엮여서 좋을 거 하나 없다. 그들이 얼마나 흉악한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네 어미도 그들에게…….”
“알았어요, 아버지.”
방진보가 방우광의 말을 끊었다.
방우광도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허공을 바라봤다. 방진보가 그런 방우광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가요. 모두 기다리잖아요.”
“그러자꾸나.”
방진보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담호는 벌써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형!’
토로번은 중원과 서역 사이에 위치한 중간 기착지, 그 사이를 오가는 상인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기에 객잔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담호는 구석진 곳에 위치한 조그만 객잔에 들어갔다. 그러자 점소이가 이내 움찔했다.
담호의 행색이 너무나 추레했기 때문이다.
봉두난발에 얼굴은 알아볼 수도 없었고, 어깨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거지 아닌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 순간 담호가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냈다. 점소이의 눈이 반짝였다.
점소이가 재빨리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방을 다오.”
“며칠이나 머무실 건가요?”
“이틀.”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도 당연히 하시겠네요?”
“음!”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점소이가 방으로 안내했다.
흙벽돌로 만든 방에 나무로 만든 침상만 덜렁 있었다. 거칠고 투박했지만, 그래도 온기가 느껴졌다.
점소이가 웃었다.
“그리고 여기를 열면…….”
점소이가 방 한쪽에 딸려 있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우물이 보였다.
“수욕은 저기서 하시면 됩니다.”
“음!”
“그럼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불러 주세요.”
“가위와 칼을 가져다 다오.”
“알겠습니다.”
담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은자가 점소이에게 날아갔다.
“그 정도면 되겠느냐?”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점소이가 활짝 웃으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담호가 준 은자 한 냥이면 한 달 이상 머물 여비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담호는 이틀만 머물고 간다니 엄청 남는 장사였다.
담호는 세상과 거의 담을 쌓고 살아온지라 금전 감각이 없었다. 지금 자기의 품에 있는 돈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또 어떤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담호는 옷을 벗고 우물로 다가갔다.
촤아아!
물을 온몸에 끼얹었다.
몸에 묻은 먼지와 함께 피로도 씻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물에 젖은 상태 그대로 담호는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젖은 그의 몸을 완전히 말릴 때까지 담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담호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침상 위에는 점소이가 가져다 놓은 가위와 칼이 있었다.
서걱! 서걱!
담호는 가위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발치에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였다.
머리카락이 얼추 잘려 나가자 수염에 가린 얼굴이 드러났다.
담호는 이번에 칼을 들었다. 턱 곡선을 따라 칼날이 움직였다.
스으윽! 스으윽!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짐승의 눈, 날선 콧날 아래 자리한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각진 턱.
십이 년 만에 그의 얼굴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