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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9화 (3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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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5장. 멀리 가기 위해 휴식을 취한다(2)

“으음!”

방진보가 신음과 함께 몸을 뒤척였다. 어느새 방진보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담호는 그런 방진보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경천생과 수하들을 몰살시키고 돌아온 직후부터 방진보는 앓기 시작했다.

고열에 정신을 잃기 일쑤였고, 어떤 때는 헛것을 보기도 했다. 하도 구역질을 하다 보니 이젠 노란 위액밖에 나오지 않았다.

눈은 총기를 잃었고,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이명에 발작을 일으켰다. 한번 정신을 잃으면 사나흘씩 깨어나지 못했다.

방진보는 그렇게 조금씩 약해져 가고 있었다. 이렇게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다 보면 결국 원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죽고 말 것이다.

담호는 방진보에게 그들을 죽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진보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담호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혈향 때문이었다.

사람을 죽인 자의 몸에는 혈향과 함께 사기가 배어든다. 담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담호야 워낙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지고 있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방진보는 달랐다. 방진보는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고, 정신력이 남들보다 강하지도 않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소년이었다. 그렇게 평범한 방진보였기에 담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혈향과 사기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담호는 방진보를 바라보다 밖으로 나왔다.

그와 방진보가 머물고 있는 곳은 합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제법 큰 목마장(牧馬場)이었다.

일반적인 목마장이 아니라 말을 키우는 곳으로, 이곳 사람들은 봄여름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가 가을이 되면 추위를 피해 말들과 함께 남쪽으로 이동했다.

목마장에는 최소한의 사람만이 남아 관리를 했다. 목마장의 주인은 담호와 방진보에게 손님들을 접대하는 객사를 내줬다.

객사는 목마장의 외곽에 위치해서 무척이나 한적했다.

푸르르!

담호가 밖으로 나오자 흑귀가 다가왔다.

흑귀는 고삐를 묶어 놓지 않아도 담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담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좋은 말이네. 내 평생을 목마장에서 일했지만 저렇게 좋은 놈은 처음 보네.”

감탄사를 내뱉는 노인은 목마장의 주인인 금관천이었다. 금관천은 평생을 이곳을 일궈온 토박이였는데, 지금은 아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홀로 이곳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제 봄이 되었으니 말과 함께 떠난 자식들이 돌아올 터였다. 그는 자식들과 말 떼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금관천은 나이가 무색하게 순수한 눈으로 담호와 흑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담호가 흑귀의 어깨를 두들기며 금관천을 바라봤다.

“거처를 내줘서 고맙소.”

“아이가 아프지 않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금관천이 미소를 지었다.

한 점의 사심도 없는 푸근한 미소였다.

“그나저나 아이가 그렇게 아파서 어떡하나?”

“이 근처에 의원은 없소?”

“보다시피 끝없는 평원인데 의원이 있을 리 없지.”

관린인의 대답에 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공이 일정 이상의 경지에 달한 자는 내공을 타인의 몸에 주입해 원기를 북돋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담호는 그럴 수 없었다.

암혼심공으로 쌓은 내공은 너무나 거칠고 파괴적이었다. 방진보의 몸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심맥은 갈가리 찢겨지고 말 것이다.

그때 금관천이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

“혹시 홍린괴어(紅鱗怪魚)라고 아는가?”

담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금관천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일 거네. 이곳 사람들도 거의 알지 못하니까. 나 역시 오래전에 한 번 보았을 뿐이니 말 다했지.”

“…….”

“이곳에서 북쪽으로 오백여 리 올라가면 붉은 강이 나온다네. 토질이 붉어서 맑아야 할 물조차도 온통 붉게 보이지. 그곳 깊숙한 곳에 홍린괴어라는 물고기가 사는데, 이놈이 사람의 원기를 북돋우는 데 최고라네. 그놈을 잡아 푹 고아 먹이면 금방 털고 일어날 거네.”

“북쪽으로 오백여 리?”

“그렇다네.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걸세. 문제는 홍린괴어라는 녀석이 은밀하면서도 포악해 잡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란 거지. 다 자란 놈은 크기가 거의 반 장에 달한다고 하니 괴물이나 다름없지. 그 때문에 그쪽에 사는 사람들은 홍린괴어를 영물 취급하면서도 아예 강에 발길조차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네.”

그 후로도 금관천은 담호에게 홍린괴어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저 아이를 부탁하겠소.”

“걱정하지 마시게. 짐승도 내 집을 찾아오면 내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야. 아이는 내가 잘 돌보겠네. 부디 홍린괴어를 잡아 오길 빌겠네.”

“음!”

담호가 그대로 흑귀에 올라탔다. 일말의 망설임도, 그 어떤 주저함도 없었다.

금관천이 그런 담호를 보며 감탄했다.

‘이 남자는 결심하면 바로 실천하는 부류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중에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소수의 사람들 중에서 원하는 바를 현실로 이룰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진 자는 극소수였다.

금관천은 담호가 그 극소수에 속하는 부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흑귀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김이 흑귀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꼭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담호는 흑귀와 한 몸이 되었다.

오백여 리라면 꽤나 먼 거리였다. 하지만 담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흑귀가 있기 때문이다.

흑귀의 주력이라면 내일 정오가 되기 전에 홍린괴어가 있다는 붉은 강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방진보가 버티냐 하는 것이었다.

‘견뎌라.’

꼬박 하루 밤낮을 달려서 관리인이 말한 붉은 강에 도착했다.

푸르르!

흑귀가 지친 듯이 거친 콧김을 뿜었다. 담호는 그런 흑귀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수고했다. 쉬고 있거라.”

이제부터는 자신의 몫이었다.

담호는 흑귀를 자유롭게 풀어준 후 붉은 강가로 다가갔다.

금관천이 말한 것처럼 강과 주변의 토질은 피처럼 붉었다. 그 때문에 맑아야 할 강물이 온통 붉어 보였다.

담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손을 강물에 집어넣었다.

시리도록 차가웠다. 바람에 봄기운이 실려 있는 것과는 반대로 아직도 강물은 겨울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담호가 몸을 일으켜 강을 둘러봤다.

붉은 강은 무척이나 넓으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홍린괴어라는 물고기가 충분히 살 만한 풍경이었다.

문제는 이곳 어디에 홍린괴어가 사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단 홍린괴어의 서식처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담호의 눈이 매섭게 수면을 훑었다.

뚝뚝!

담호의 손에 들린 물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선혈을 흘리고 있는 물체는 바로 근처에서 사냥한 기러기였다.

담호는 손에 들고 있던 기러기 한 마리를 강에 던지고 기다렸다. 이제까지 강을 쭉 훑고 올라왔지만 홍린괴어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물속 깊이 숨어 있는 홍린괴어를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담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근처에서 오리와 기러기를 사냥해 강에 던지고 변화를 살폈다.

그것은 매우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담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이 벌써 스무 번째였다.

한참 기다려도 수면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에 담호가 다시 자리를 옮기려 할 때였다.

부글! 부글!

갑자기 수면에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담호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푸확!

순간 엄청난 양의 물보라를 튀기며 물속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 올랐다. 거의 이 장여에 가까운 괴물고기였다.

마치 가물치를 크게 확대한 것 같은 괴물고기의 표면에는 붉은색 비늘이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담호는 놈이 홍린괴어라는 것을 직감했다. 놈의 커다란 망막에 담호의 모습이 맺혀 있었다.

홍린괴어는 기러기를 입에 문 채 유유히 물속으로 사라졌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 데다가 강 한가운데서 출몰했기에 담호가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담호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 근처가 놈의 서식처라는 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문제는 놈을 어떻게 잡느냐다.

자신이 놈을 확인한 것처럼, 놈 역시 자신을 보았다.

놈이 과연 자신을 어떻게 판단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 분명했다.

담호는 강가를 돌아다니며 나무를 주워 모았다.

쓸모없어 보이는 잡목들을 얼기설기 엮어 뗏목을 만들었고, 어른 팔뚝 굵기만 한 나무를 다듬어 목창을 만들었다.

대충 준비를 끝낸 후 담호는 뗏목을 타고 강 한가운데로 나갔다. 조그만 뗏목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다렸다.

한 시진, 두 시진. 저녁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수면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보통 이런 강과 강 주위에는 많은 생물들이 살기 마련이었다.

풀벌레부터 물고기, 물을 찾는 들짐승들까지.

하지만 이곳엔 그 어떤 생명의 조짐도 느껴지지 않았다. 벌레는 울지 않았고, 들짐승들도 이곳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흔한 물고기의 반응도 느껴지지 않아 적막만이 가득했다.

홍린괴어가 주위에 접근하는 모든 것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홍린괴어의 영역, 그래서 다른 생명들이 얼씬거리지도 않는 것이 분명했다.

관리인에게 듣기로는 이곳엔 홍린괴어가 꽤 산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것은 오직 좀 전의 거대 홍린괴어뿐이다.

그 사실이 말해 주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놈이 동족까지 모조리 잡아먹은 것인가?’

담호가 보았던 녀석은 관리인이 괴물이라고 표현했던 놈보다 네 배는 더 커 보였다. 그 정도 크기라면 진정한 괴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담호는 알고 있었다. 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놈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겁도 없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인간을 어떻게 처분할지.

담호는 실로 오랜만에 그의 영역에 들어온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당연히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담호의 몸에서 느껴지는 그 어떤 꺼림칙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담호는 이 상태로는 쉽게 놈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놈을 끌어내려면 더 강한 유혹이 필요했다.

담호는 품에서 조그만 단도를 꺼내 팔을 그었다.

그그극!

시퍼렇게 날이 선 비수는 쇳소리만 낼뿐 담호의 팔에 흔한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담호는 하는 수 없이 내공을 주입해 팔뚝을 그었다.

그제야 자상이 생겨나며 피가 흘러내렸다. 담호는 지혈하지 않고 팔을 그대로 물에 담갔다.

강물에 피가 섞여 퍼져 나갔다. 그 양은 매우 적었지만 홍린괴어를 유인하기에는 충분했다.

투웅!

수면 위로 동심원의 파장이 일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느끼지도 못할 만큼 미세한 변화였다.

담호가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푸화학!

그 순간 갑자기 물보라가 튀면서 홍린괴어가 치솟아 올랐다. 놈의 거대한 입이 담호를 향해 ‘쩌억’ 벌어졌다.

홍린괴어가 혈향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담호를 공격한 것이다.

이 장이나 되는 거대한 크기에 걸맞은 엄청난 무게감이 실린 공격이었다. 그 어떤 생명체라도 압도될 수밖에 없는 위압감이 담호를 덮쳐 왔다.

그때 담호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쾅!

홍린괴어의 입을 피한 담호의 무릎이 놈의 머리를 찍었다. 홍린괴어의 머리가 튕겨져 나갔다.

예상치 못한 강렬한 충격에 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놈은 본능적으로 담호가 자신이 소화할 만한 먹이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홍린괴어는 이대로 물속으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담호가 그렇게 놔두질 않았다.

콰득!

어느새 따라붙은 담호의 주먹이 홍린괴어의 단단한 비늘을 부수고 부드러운 맨살에 처박혔다.

홍린괴어가 크게 퍼덕였다. 놈의 눈이 고통과 공포로 물들어 갔다. 놈은 어떻게든 담호를 떨치고 물속으로 도주하려 했다.

츄화학!

놈이 물속으로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놈의 살까지 파고든 담호의 주먹은 빠질 줄 몰랐다.

담호는 홍린괴어의 옆구리에 매달린 채 끝을 알 수 없는 강물 깊은 곳까지 딸려 들어갔다.

급속한 물의 흐름과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담호는 홍린괴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물이라면 지하 공동 안의 괴어를 사냥하면서 질리도록 경험한 담호였다. 그는 물의 성질을 꽤나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런 종류의 고기를 사냥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담호가 목창을 든 손을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암혼신공을 통해 쌓은 내공이 목창에 주입됐다. 순간 담호가 목창을 힘껏 내리꽂았다.

콰드득!

목창이 손잡이 부분만 남기고 전부 홍린괴어의 몸통으로 파고들었다.

홍린괴어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콰앙!

순간 담호의 주먹이 홍린괴어의 머리에 작렬했다.

마치 벽력탄이 터진 것처럼 수면 위로 엄청난 양의 물보라가 치솟아 오르며 강 전체가 더욱 붉게 물들어 갔다.

잠시 후 수면 위로 담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담호는 한 손에 홍린괴어의 아가미를 잡은 채 물 밖으로 나왔다.

거대한 홍린괴어의 머리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털썩!

담호는 거대한 홍린괴어를 가볍게 뭍으로 던졌다. 홍린괴어는 비늘 하나 움직이지 않고 축 늘어졌다.

이젠 홍린괴어를 가지고 가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홍린괴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관리인은 홍린괴어를 푹 고아 먹이면 된다고 했는데, 이 정도 크기의 홍린괴어가 들어갈 만한 솥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담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홍린괴어의 배를 갈랐다.

툭!

내장과 함께 조그만 돌멩이만 한 물체가 흘러나왔다.

‘놈의 내단.’

이 정도 크기의 영물이라면 반드시 몸 안에 내단을 키울 거라고 생각했다. 내단의 크기로 봐서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방진보의 병을 낫게 할 정도의 효능은 갖고 있을 것이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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