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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2화 (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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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6장. 바람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어온다(2)

방진보는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서 목마장을 바라봤다. 수많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은련상단을 따라 서역을 오갔지만, 이렇게 많은 말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풍경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드넓은 목마장에서 말들이 노니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 남아 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코끝이 찡했다. 방진보는 손으로 코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앓았다가 일어난 것치고는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그에 방진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이 뭐 좋은 거라도 먹였나?”

담호에게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방진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부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말을 몰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거름을 만들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힘든 일을 하면서도 해맑게 웃고 있었다.

방진보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 역시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다행히도 방진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재주가 있었다.

방진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디 보자.”

방진보가 주위를 둘러봤다. 인부들의 숙소 근처에 있는 커다란 화덕 몇 개가 보였다.

방진보가 화덕을 향해 다가갔다. 마침 화덕 근처의 우물가에서는 아낙 세 명이 각종 식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아낙들은 금마장의 장주 일가와 인부들까지 합쳐서 서른 명이 넘는 대식구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한창 수다를 떨며 식재료를 다듬던 아낙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방진보를 바라봤다.

“아프다니 그렇게 움직여도 돼?”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더니 몸이 근질거려서요. 제가 도와줄 것은 없나요?”

“왜, 음식이라도 만들려고?”

가장 나이 많은 아낙의 농담에 다른 아낙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방진보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예!”

“정말? 음식은 할 줄 알아?”

“아버지가 숙수셨어요. 덕분에 저도 조금 요리를 할 줄 알고.”

“이런! 숙수님이 여기 계셨네.”

“숙수까지는 아니고요.”

“어찌 되었든 도와준다면 우리야 좋지.”

아낙들이 반색을 했다.

매일같이 하는 일이었지만 서른 명이나 되는 대인원의 입을 만족시킬 요리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할 판인데 방진보가 나서서 도와주겠다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뭐부터 도와 드릴까요?”

“혹시 돼지고기 좀 다듬을 줄 알아?”

“오늘 주요리가 돼지인가 보죠?”

“응! 마침 한 마리 잡아 놨는데 시간이 없어서 다듬지 못하고 있네. 할 수 있겠어?”

“맡겨 주세요.”

방진보가 해맑게 웃으며 방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짐을 뒤져 주도와 과자 등을 꺼냈다.

“헤헤!”

오랜만에 잡아 보는 주도의 느낌이 방진보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방진보는 단숨에 우물가로 달려갔다. 우물가에는 아낙들이 가져다 둔 커다란 돼지가 놓여 있었다.

“할 수 있겠어?”

아낙들 중 한 명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방진보를 바라봤다. 방진보는 대답도 하지 않고 돼지를 바라봤다.

방진보의 입가를 따라 미소가 번졌다.

“좋아! 오늘은 돼지 한 마리다.”

“돼지 한 마리? 그게 뭐야?”

아낙이 물었지만 방진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신경은 온통 돼지에 쏠려 있었다.

방진보는 커다란 주도를 돼지의 늑골에 박았다.

서걱!

주도가 두툼한 살을 단숨에 파고들었다. 방진보는 그대로 주도를 내리그었다. 그러자 늑골을 따라 돼지의 살이 갈라졌다.

방진보는 주도를 빼지 않고 방향을 바꿨다. 주도 끝에 갈비뼈가 닿았다.

스슥!

주도가 갈비뼈를 따라 곡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방진보가 손목을 튕겼다. 그러자 몸에 붙어 있던 갈비뼈가 ‘퉁’ 소리와 함께 튕겨져 나왔다.

“에그머니나!”

묘기와도 같은 방진보의 손놀림에 아낙들이 감탄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놀람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퉁! 퉁!

연이어 갈비뼈가 발골 되고, 돼지가 부위별로 해체되었다.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방진보의 칼질을 아낙들은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헤헤!”

해체된 고기가 한쪽에 쌓여갔다. 커다란 돼지 한 마리가 순식간에 잘게 해체되었다.

방진보가 주도를 거둬들이며 아낙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요리도 제가 해도 되나요?”

“으응!”

“좋았어.”

아낙이 얼떨결에 대답을 하자 방진보가 쾌재를 부르며 화덕에 과자를 올렸다.

화덕에 불을 붙인 후 해체한 고깃덩이들을 다시 먹기 좋게 잘랐다.

타다다닥!

주도가 도마를 경쾌하게 두들겼다.

순식간에 잘게 잘린 고깃덩이가 한쪽에 수북이 쌓였다.

“흥흥!”

방진보는 콧노래를 부르며 과자에 기름을 부었다. 뒤이어 아낙들이 손질한 채소가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고기가 투입됐다.

치이익!

순식간에 증기가 일어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겁해서 피할 텐데 방진보는 오히려 가까이 다가서서 술을 들이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불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잡내는 잡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요리는 방진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회가육이었다.

그 후로도 방진보는 돼지의 각종 부위를 이용한 요리를 만들어 냈다. 돼지의 모든 부위를 이용하는 요리, 그래서 이름도 돼지 한 마리였다.

“우와!”

“숙수 지망생이 아니라 그냥 숙수네, 숙수야.”

복잡한 요리를 순식간에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방진보의 솜씨에 아낙들은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돼지 고개를 이용한 볶음 요리들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방진보는 이번엔 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발골 한 뼈를 넣고 육수를 우린 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들을 한꺼번에 집어넣었다. 술로 잡내를 잡고, 각종 향신료가 투입되었다.

커다란 솥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향긋한 냄새가 사방으로 풍겨 나갔다.

“오늘은 무슨 요린데 이렇게 냄새가 좋아?”

“우와! 냄새가 끝내주는데.”

냄새를 맡은 인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에 아낙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낙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십 수 년 이상 요리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인부들이 방진보를 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저 꼬마가 이 요리를 다 한 거야?”

“에이, 설마!”

“저 국자와 주도를 보라고.”

“진짜야?”

소란이 일자 방진보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겐가?”

그때 인부들 사이로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바로 금마장의 주인인 금관천이었다. 그의 등장에 인부들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장주님 나오셨습니까?”

“무슨 일인가?”

“글쎄! 저 아이가 이 모든 요리를 했다지 않습니까?”

“진보가?”

금관천이 방진보를 바라봤다.

“정말이냐?”

“예!”

“몸도 성치 않을 텐데 이 요리를 정말 네가 다 한 것이냐? 요리는 또 언제 배웠고?”

금관천이 연이어 질문을 쏟아 냈다. 그에 방진보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낙들이 나서서 금관천을 타박했다.

“애가 힘들어하잖아요, 장주님.”

“병석에서 갓 일어난 아이한테 너무 많은 질문은 좋지 않아요.”

아낙들이 이렇게 나오자 금관천이 약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질문은 나중에 하자. 오늘은 나도 여기에서 같이 식사를 하지.”

“장주 할아버지가 드실 만한 요리가 아닌데…….”

“허! 무슨 말이냐? 냄새가 이리 좋은데.”

“그래도…….”

“잔말 말고 내 자리도 마련하거라.”

“네!”

방진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하자 아낙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주님께서도 같이 식사를 하신다니 얼른 준비하자고.”

화덕 근처에 평상이 깔렸고, 그 위에 상이 차려졌다. 그사이 방진보는 담호를 부르러 갔다.

담호는 금마장 외곽의 커다란 나무 아래 홀로 앉아 있었다.

“형!”

“무슨 일이냐?”

“식사하세요. 제가 만들었어요.”

“그래?”

담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헤! 형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방진보가 담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담호는 그의 손에 끌려 음식이 차려진 곳에 왔다.

담호가 나타나자 인부들이 숨을 죽였다. 담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인부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금관천이 담호를 살갑게 맞아 줬다.

“허허! 어서 오시구려. 냄새가 아주 좋소. 같이 맛봅시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금관천 앞에 앉았다.

그제야 금관천이 소리쳤다.

“자, 모두 맛있게 식사하시게.”

“맛있게 드십시오.”

인부들이 힘찬 대답과 함께 식사하기 시작했다.

“우와! 이거 정말 끝내주는데.”

“도대체 어떻게 요리한 거지?”

“이 고기 연한 거 봐. 우와!”

인부들의 떠들썩한 음성이 평상 위에 울려 퍼졌다.

음식을 맛본 금관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토했다.

“허! 정말 맛있구나. 이 정도면 중원의 어지간한 숙수들에게도 뒤지지 않겠어.”

“정말요?”

방진보가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정말이다. 내가 평생 먹어 본 음식들 중에 네가 만든 것이 가장 맛나구나.”

“우와아!”

방진보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때였다.

“소혜도 오빠가 만든 음식 먹을래.”

조그만 목소리가 평상 밑에서 들렸다.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고 금소혜가 나온 것이다.

“그래! 소혜야. 너도 같이 먹자. 허허!”

금관천이 금소혜를 안아 올렸다. 금관천이 음식을 주자 금소혜가 오물거리며 음식을 먹었다.

“맛있어!”

금소혜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 맛있어?”

“맛있어! 맨날 오빠가 만든 것만 먹고 싶어.”

아직 어린 금소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였다.

“소혜가 뭘 아는구나.”

“많이 먹어라, 소혜야.”

인부들이 금소혜에게 한마디씩 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 모습을 보는 방진보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어렸다.

‘그래! 이거야. 음식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이야.’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방진보는 벌게진 눈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모두가 떠들고 있었지만, 담호는 말없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방진보는 알고 있었다. 담호가 진심으로 자신이 만든 음식을 즐기고 있음을.

‘고마워요, 형.’

담호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아직도 아비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기회를 만들어 준 담호가 고마웠다.

문득 방진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이 정도의 요리를 했으면 피곤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몸이 상쾌했다. 무엇보다 미각신경이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살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미세한 맛까지 느낄 수 있었다.

‘형이 뭐 좋은 거라도 먹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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