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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3화 (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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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6장. 바람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어온다(3)

“제발!”

금중광과 인부들이 애타는 표정으로 울타리 안을 바라보았다. 울타리 안에는 흑귀가 오연히 서 있었다. 흑귀의 주위로 잘빠진 체형의 흰말이 맴돌고 있었다.

이곳 금마장에서 키우는 말들 중 가장 혈통이 좋은 암말이었다. 마침 발정기가 와서 교미를 시켜야 했다.

암말이 꼬리를 흔들면서 주위를 맴도는 데도 흑귀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에 금중광은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암말을 수도 없이 흑귀의 마사에 넣었다. 하지만 흑귀는 단 한 번도 암말들과 교미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투입된 암말들이 흑귀의 기준선을 넘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금중광은 최고로 좋은 암말을 투입했다.

“이번엔 제발…….”

금중광은 흑귀의 혈통을 얻고 싶었다. 흑귀의 혈통을 가진 말을 키울 수만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뿐더러 금마장의 명성 또한 커질 것이다.

흔히들 남선북마(南船北馬)라고 말한다. 남쪽은 수로가 발달했기에 배를 많이 이용하지만, 그렇지 못한 북쪽은 주로 말을 이용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었다.

말을 키우는 목마장은 대부분 대륙의 북쪽에 몰려 있었고, 많은 목마장들이 경쟁적으로 말을 키우고 있었다.

목마장이 경쟁력을 갖는 것은 혈통이 좋은 말을 키울 때였다. 불행히도 금마장은 아직까지 다른 목마장에 비해 월등히 좋은 혈통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교미가 중요했다. 흑귀의 혈통을 가진 말을 한 마리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를 이용해 다시 또 많은 새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세대 정도만 지나면 금마장 또한 다른 유수의 목마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발! 제발!”

금주광은 손이 닳도록 빌었다.

그런 그의 염원이 통했는지 마침내 흑귀가 암말 등에 올라탔다. 그에 금주광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그는 담호에게 큰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담호는 목마장 한가운데 있는 평범한 바위에 앉은 채 우물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우물가에서는 방진보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놀라운 음식 솜씨를 맛본 목마장 사람들은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지난 며칠 동안 방진보는 솜씨를 발휘해서 각종 요리를 만들어 냈다. 방진보가 만든 요리들은 이곳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었고, 척박한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결국 금관천은 방진보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마음껏 요리해도 좋다는 허락과 함께 식재료 창고를 개방했다.

방진보는 이번 기회에 아비가 남겨 준 요리서에 기록된 요리들을 만들었다.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가 널려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방진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억지로 짓는 웃음이 아니라 진짜로 음식을 만드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아낙들은 그런 방진보를 도우면서 어깨 너머로 음식 만드는 것을 익히고 있었다.

방진보를 졸졸 따라다니는 열성 지지자는 또 있었다.

“오빠!”

금마장의 금지옥엽인 금소혜였다.

방진보의 음식에 반한 금소혜는 방진보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방진보도 그런 금소혜를 무척이나 귀여워했다.

그림 같은 풍경에 어울리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호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도 담호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인부들은 담호의 곁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담호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때였다.

“대협!”

금중광이 헐레벌떡 담호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왔다.

희색이 가득한 얼굴을 보고 담호는 그가 원하는 것을 얻었음을 직감했다.

“됐습니다. 드디어 흑귀가 암말을…….”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금중광은 설레는 표정으로 흑귀가 교미에 성공했음을 알렸다. 그런 그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이게 모두 대협 덕분입니다. 이 보답은 톡톡히 하겠습니다.”

“됐소.”

“한혈마의 혈통을 이은 녀석이라면 화산파나 공동파 같은 곳에서 크게 탐을 낼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세를 확장하느라 혈안이 돼 있으니까요.”

“화산파?”

“이 년에 한 번씩 말을 팔러 중원에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감숙성과 섬서성이 그나마 가깝다보니 한 번씩 들르지요.”

“…….”

“최근 수년간 가장 크게 번창한 문파가 바로 화산파입니다. 저희로서는 당연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지요.”

금중광은 담호가 묻지도 않았는데 화산파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현천 진인 장문인이 된 이래 아마도 지금이 최고의 전성기일 겁니다. 명경이라는 걸출한 젊은 무인이 등장해 구무룡의 반열에 올랐고, 성세도 예전에 비할 수 없이 크게 확장되었으니까요.”

명경은 근래 화산이 내놓은 최고의 젊은 무인이었다.

그는 구무룡(九武龍) 중의 한 명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구무룡?”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중원인들은 이 시대를 축복받은 시대라고 했다.

하늘이 내린 기재가 한두 명도 아닌 무려 아홉 명이나 이 시대에 출현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성취가 이미 강호 최고수의 반열에 오른 자들. 그런 무인들이 아홉 명이나 출현한 강호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마교와의 전쟁 이후 피폐해졌던 강호는 다시금 옛 모습을 찾았고,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더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수많은 무관들이 문을 열었고, 고수라고 자부할 만한 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무룡은 그들 중에서 단연 발군의 존재감과 무력을 자랑하는 신흥 고수들이었다.

무당이 혼신의 힘을 다해 키워 낸 무쌍검(無雙劍) 진무영과 소림의 무승 일권붕산(一拳崩山) 소천이 그 대표적인 무인들이었다.

명경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화산고검(華山孤劍)이라 불리며 강호에 그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금중광은 그 후로도 구무룡에 대해 더 떠들었지만 담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화산파 내의 상황은?”

“상황이라면?”

“장문인이나 장로들의 동향.”

“글쎄요. 화산파의 제자가 아닌 이상 그것을 어찌 알겠소이까? 하지만 별문제 없이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담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별 존재감이 없는 사부라 할지라도 화산파의 장로니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금중광의 눈이 빛났다.

평생을 말과 함께한 금중광이었다. 말을 팔기 위해 수많은 이들을 만났고, 엄청난 역경을 헤쳐 나왔다. 당연히 눈치가 비상하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화산파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하구나.’

많은 말을 했지만 담호가 반응을 보인 것은 화산파라는 단어뿐이었다. 하지만 금중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화산파는 구대문파에 속하는 거대 문파였다. 중원을 지배하고 있는 아홉 개의 큰 문파인 만큼 화산파는 도처에 인연을 만들어 두었다. 그 수많은 인연 중 하나가 담호에게 이어졌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담호가 바위에서 일어났다.

그는 금중광을 남겨 둔 채 걸음을 옮겼다.

금중광은 멀어지는 담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만년거암처럼 단단한 등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다리를 살짝 절기에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허! 저렇게 강인해 보이는 남자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던가?”

***

“헉헉!”

심옥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단내가 흘러나왔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가슴은 크게 기복을 일으키고 있었다.

심옥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뒤를 돌아봤다.

칠흑 같은 어둠 저 멀리 불빛 몇 개가 일렁이고 있었다. 불빛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그녀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개가 짖는 소리,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섞여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쪽이다.”

“개들을 풀어.”

컹컹!

심옥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내상과 적잖은 외상을 입은 심옥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 겨우 이곳까지 도망쳐 올수 있었지만, 흑노에겐 그런 행운이 주어지지 않았다.

흑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은하성을 막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올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가씨 도망치십시오.’

절규하듯 외치던 흑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심옥도 무공에 자신이 있었지만, 은하성은 감히 그녀가 상대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흑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은하성의 발목을 붙잡지 않았다면 혈마총을 빠져나오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흑노가 어찌 되었는지는 심옥도 알지 못했다.

“미안해, 흑노!”

심옥이 눈시울을 훔쳤다.

평상시엔 두려울 것이 하나 없었던 심옥이었지만, 졸지에 혼자가 된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제야 심옥은 자신이 얼마나 흑노를 의지하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일단 적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혈린살막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저들은 영악하게도 그녀의 도주로를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들의 경계망을 뚫고 혈린살막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옥은 결심했다.

“일단은 그들의 추적을 뿌리쳐야 해.”

서쪽으로 가는 방향이 원천 차단된 이상 그녀에게 남은 것은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뿐이었다.

“흑노, 조금만 기다려. 금방 돌아올 테니까.”

심옥이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경공을 펼쳐 동쪽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어둠 너머로 사라져 갔다.

심옥이 사라지고 나고 한참 후 일단의 무리들이 그녀가 있던 자리에 나타났다.

“이곳입니다.”

그들은 바로 심옥을 추적해 온 서천산장의 무인들이었다.

그 선두에 은하성의 심복인 조혈산이 서 있었다.

“지독한 계집이군. 그 상처를 입고도 여기까지 도주하다니.”

조혈산이 혀를 찼다.

제아무리 그녀가 혈린살막의 소막주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무위였다.

“그 계집이 혈린살막에 돌아가면 일이 복잡해진다. 어떻게든 그 전에 그녀를 제거해야 한다.”

은하성이 현재 얻은 것은 혈마의 도뿐이다. 진정한 유진은 아직 얻지 못했다. 은하성이 도법까지 얻어 무공을 완성시킨다면 혈린살막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은하성의 꿈은 겨우 척박한 신강의 패자 정도가 아니었다. 중원으로 들어가 개파를 하는 것. 혈마의 절학을 익힌다면 구대문파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조혈산이 수하에게 물었다.

“이쪽으로 가면 뭐가 나오지?”

“가욕관까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 중간에 목마장이 하나 있긴 합니다.”

“목마장?”

조혈산의 얼굴에 다급한 빛이 떠올랐다.

심옥이 목마장에서 말을 구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자칫 그녀가 가욕관을 넘어 중원에라도 들어간다면 추적할 방도가 없었다.

“자칫하면 그 계집이 모든 판을 뒤집겠군.”

이미 상당한 거리가 벌어진 상태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녀가 목마장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조혈산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마침 이 근처에 쓸 만한 원군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전서구를 날려서 모조리 목마장으로 집합하라고 전해. 그 계집이 가욕관을 넘기라도 하면 모든 판이 깨지니까.”

“아, 알겠습니다. 전서구를 날리겠습니다.”

수하가 허둥지둥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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