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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52화 (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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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1장. 신강(新疆)에 혈성(血星)이 내려오다(2)

담호의 진각은 은하성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우웅!

고막을 울리는 강렬한 충격파에 은하성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잠시 사물이 겹쳐 보이고, 몸이 균형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극강한 내공의 소유자였다. 엄청난 내공을 이용해 귀로 파고드는 음파를 차단하고, 원래의 상태를 회복했다.

쉬악!

그사이 그가 휘두른 도는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어디냐?”

은하성의 시선이 담호의 종적을 좇았다.

담호는 어느새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은하성이 휘두른 도격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 정도만 물러난 것이다.

“놈!”

은하성이 노성을 터트리며 적성에 공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아지랑이와 함께 적성의 도신이 석 자나 더 늘어났다.

도기(刀氣)였다.

비록 깨달음을 얻지 못해 도강(刀罡)을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엄청난 공력이 주입된 도기의 위력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은하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단 한 번이라도 담호의 몸을 벨 수 있다면, 그걸로 끝이라고.

더군다나 담호는 절름발이였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한 무공을 익혔는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보법이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 위력은 반으로 줄어든다.

상체가 삼 할이라면 나머지 칠 할은 하체가 차지한다. 괜히 상삼하칠(上三下七)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은하성은 비전의 보법인 풍천보(風天步)를 펼쳐 담호를 쫓았다.

순간적으로 그의 신형이 십여 개로 늘어나는 듯했다. 그만큼 풍천보의 변화는 화려했다.

“챠앗! 죽어라!”

그의 독문 무공인 광천무화도(狂天無和刀) 중에서도 가장 파괴력이 뛰어난 귀안혈세(鬼眼血世)의 초식이 펼쳐졌다.

츠츠츠!

일곱 번의 도격이 연이어 담호를 향해 날아갔다.

은하성은 혈마의 유진을 익히진 못했지만, 도격에 실린 내공만으로도 담호를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

‘놈을 죽이고 혈마의 유진을 익힌다. 그런 후 중원으로 들어간다. 흐흐!’

그는 꿈을 꿨다.

혈마의 무공을 익히고, 천하를 질타할 자신의 모습을.

은하성의 목소리가 혈마총 안에 울려 퍼졌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거라.”

그때였다.

이제껏 피하기만 하던 담호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활짝 펼쳐진 다섯 손가락이 나선을 그리며 도격을 향해 뻗어 나갔다.

콰콰쾅!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일곱 번의 도격이 담호의 손바닥에 막힌 것이다.

“이럴 수가!”

은하성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크게 떠졌다. 적성의 날카로움과 단단함은 능히 천하제일을 다툴 수 있을 정도였다.

인간의 피륙 따위야 내공을 주입하지 않아도 종이 베듯 절단할 수 있었다. 그런 적성이 담호의 손에 막혔다.

자세히 보면 담호의 손바닥과 적성 사이엔 미세한 공간이 있었다. 담호가 발산한 경력이 적성에게서 담호의 손을 보호한 것이다. 하지만 은하성은 그런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은망수(銀網手).

미세한 기의 실타래가 복잡하게 엉키고 엮여 기의 그물망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의 그물은 담호의 손을 보호했다.

죽엽수와 복호권, 육합권에서 심득을 얻어 만든 그만의 무공이었다.

죽엽수의 쾌속함이, 복호권의 무거움이, 육합권에서의 다변함이 이 한 수에 절묘하게 녹아 있었다.

적성과 맞닿아 있는 담호의 손이 그 순간 강렬한 기파를 발산했다.

후웅!

적성이 비명과도 같은 도명을 토해 냈다.

강렬한 진동에 은하성은 하마터면 적성을 쥔 손을 놓을 뻔했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보통 사람은 인지조차 할 수 없는 극히 짧은 순간. 하지만 은하성과 같은 고수에겐 영원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긴 시간이기도 했다.

은하성은 본능적으로 일대를 둘러싼 공기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뇌리를 엄습하는 위기감.

‘온다.’

불길한 공기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쉬아앙!

은하성이 뒤로 물러나며 적성을 휘둘렀다.

귀천명멸(鬼天明滅).

그의 독문 무공인 광천무화도의 방어식. 한 번에 도를 열여덟 번 휘둘러 도막을 형성해 자신을 보호하는 수법.

아직 혈마의 유진을 익히지 못한 은하성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수비식이었다.

엄밀한 방어 후 반격. 그것이 은하성의 생각이었다.

지독한 긴장감에 은하성이 눈을 깜박였다.

눈을 감았다 뜬 그 순간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갑자기 담호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펼친 귀천명멸의 초식을 뚫고 담호가 지척까지 접근한 것이다.

‘어떻게?’

그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한 호흡에 열여덟 번의 칼질이 이어지는 귀천명멸을 그 어떤 충돌도 없이 뚫고 자신의 지척까지 파고들 수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력한 바람이 그를 덮쳐 왔다. 얼굴 전체가 수천 개의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가공할 압력이 느껴졌다.

‘폭풍?’

은하성은 마치 조각배를 타고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 있는 아찔한 고립감을 느꼈다.

산처럼 일렁이며 덮쳐 오는 거대한 파도, 세상을 모조리 날려 버릴 듯 불어오는 거친 바람. 그 모든 것을 담호가 몰고 오고 있었다.

덥석!

담호의 두 손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때까지도 은하성은 작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눈만 끔뻑거렸다.

쑤욱!

그 순간 나무가 뿌리째 뽑히듯 그의 두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면서 몸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용권풍(龍捲風)에 휩쓸린 것처럼 은하성의 몸이 담호에게 붙잡혀 허공으로 일장이나 떠올랐다.

“크윽!”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은하성이 담호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담호의 손아귀 힘은 너무나 억세서 도저히 풀 수가 없었다.

은하성은 생각을 바꿔 적성으로 담호의 목을 공격하려 했다.

휘익!

그 순간 은하성의 몸이 팩 돌아갔다.

머리는 아래로, 다리는 하늘로.

하늘과 땅이 뒤바뀌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쐐애액! 콰직!

은하성의 몸이 그대로 대지에 처박혔다. 머리부터 거꾸로.

방금 전까지 두 눈을 번뜩이던 얼굴이 호박처럼 터져 나가며 내용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비명도 없었다.

신강성을 넘어 중원의 패권까지 노리던 거물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무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허탈한 마음까지 들게 하는 광경이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전신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 순식간에 이뤄져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한여름 밤에 꾸는 악몽처럼 비현실적인.

은하성의 손에 들려 있던 적성이 저 멀리 바닥에 떨어져 애처로운 도명을 흘리고 있었다.

담호가 은하성의 시체에서 손을 떼고 일어났다.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담호의 모습에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서천산장의 지배자가 손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수법으로.

심수명이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혈린도를 꽉 움켜잡은 손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광경에 그의 몸이 제멋대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지천격(地天擊).

담호가 펼친 초식의 이름이었다.

지천격은 지하 공동에서 바위를 부수고 나르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수법이었다.

지하 공동을 탈출하기 위해선 지하 암반을 부숴야 했다. 단지 부수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부스러진 바위 조각들을 날라서 통로를 확보해야 했다.

처음엔 일일이 바위를 지고 날랐지만, 나중에는 요령이 생기면서 바위를 집어 던졌다. 그렇게 수백, 수천 번을 하다 보니 바위를 바닥에 내리꽂아 파괴하는 방법을 절로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자신이 바닥에 내리꽂는 것이 바위가 아닌 사람이라면?

그런 가정하에 만들어진 수법이 지천격이었다.

인간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대지를 무기로 삼는 흉악한 공격법.

생각보다 위력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담호는 심수명을 바라봤다. 그러자 심수명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심수명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이끌고 온 무인들과 심옥이 모조리 몸을 떨었다.

‘사, 사신(死神)이다.’

‘어디서 이런 자가…….’

그들 역시 수많은 격전을 치른 무인들이었다. 낭인들 특유의 거친 성정 때문에 누구에게도 쉽게 위축되지 않는 그들의 눈에 공포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이런 무인이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설마 서천산장의 지배자인 은하성이 변변한 공격한번 해 보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죽다니.

세상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 분명했다.

질식할 듯한 정적이 지하 공간 안을 지배했다. 하지만 영원한 침묵은 없는 법, 모두를 대표해 심수명이 입을 열었다.

“대협은 뉘시오? 어떻게 은하성을 그렇게…….”

심수명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려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심수명은 너무나 긴장해서 그런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담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은하성?”

“당신이 죽인 서천산장의 장주 말이오.”

“별거 아니었어.”

“별거 아니라고? 그게 무슨…….”

심수명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담호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은하성은 분명 대단히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발산하는 예기만으로도 사람의 살갗을 베어 버릴 것 같은 명도와 혈마가 남긴 엄청난 내력은 분명 대단했다.

하지만 무인 은하성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무공은 강할지 모르지만, 순간적인 반응이나 응용력, 그리고 상황 판단력과 행동력은 기대 이하였다.

무인이라면 당연히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어야 했고, 감각이 활짝 열려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배자 생활을 해 온 은하성에겐 그런 야성의 감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검이 무기라면, 내공은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있게 뒷받침해 주는 힘이었다.

검은 맞지 않으면 그만이었고, 강대한 내공은 부딪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싸움이란 힘이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에서 승부의 호흡을 파악하고, 승기를 자신에게 끌어들일 줄 아는 자가 진정으로 강한 자였다.

그렇게 본다면 은하성은 훌륭한 무기와 강대한 힘을 소유하기만 했지,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멍청이에 불과했다. 적어도 담호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담호의 시선이 문득 심옥을 향했다. 아직도 담호에게 맞은 뺨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하지만 심옥은 감히 담호에게 따져 물을 수 없었다. 담호의 가공할 존재감에 짓눌려 숨조차 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심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눈에 비친 담호의 모습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었다.

“당신은…… 피바람을 몰고 왔군요.”

“…….”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내가 왜 피해야 하지?”

“그건…….”

심옥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담호의 시선이 향한 곳엔 심옥의 아비인 심수명이 있었다.

“당신도 내가 그래야 했다고 생각하나?”

“나는…….”

심수명이 이를 악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담호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수많은 싸움을 하고, 수라장을 전전해 왔다고 자부하는 심수명이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 앞에서는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눈앞에 있는 남자가 그가 이제껏 봐 왔던 어떤 무인들과도 다르다는 것이다.

무공이나 성격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눈앞의 남자는 아예 인간 자체가 달랐다. 보통 사람의 신경으로는 재단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였다.

“휴!”

심수명은 결국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의미가 담긴 한숨이었다.

담호가 심수명을 지나치며 말했다.

“뒤처리를 맡기지.”

“알……겠소.”

기껏 혈린살막의 전력을 이끌고 왔는데 뒤처리나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심수명은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멀어져가는 담호의 뒷모습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신강(新疆)에 혈성(血星)이 내려왔구나.”

불안하게 떨려 나오는 심수명의 목소리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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