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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55화 (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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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2장. 중원에 들어왔으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2)

난주(蘭州)는 서역으로 가는 상행의 시발점이기도 하고, 감숙성의 성도이기도 했다. 문물의 중심지에 교통의 요지다 보니 난주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은 중원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옛 영화의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중원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서역의 귀한 물건들을 이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시장은 찾아오는 사람들로 항상 활기가 넘쳤고, 흥정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여기 서역에서 들여온 귀한 향료가 있습니다.”

“대식국에서 들여온 월도(月刀)를 팝니다. 이제 몇 자루 남지 않았어요. 어서 오세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장으로 두 사람이 말을 탄 채 들어오고 있었다.

“우와!”

입을 떡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뚱뚱한 소년은 방진보였다. 그의 곁에 있는 남자는 바로 담호였다.

그들이 드디어 중원에 들어온 것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자 중원에 온 것이 실감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방진보의 눈가엔 살짝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반대로 담호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감정의 기복이 없는 석상 같은 얼굴이었다.

담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숙소부터 잡자.”

“네!”

방진보가 힘차게 대답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였다.

대로를 따라 수많은 객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객잔들마다 사람들로 넘쳐 났다.

두어 군데를 들렀지만 모두 방이 없다는 소리만 들었다.

“방 잡는 게 하늘의 별 따기네요.”

이번에도 퇴짜를 맞고 나온 방진보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방진보는 이내 씩씩하게 다음 객잔으로 걸어 들어갔다.

담호는 밖에서 방진보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물건을 바라보듯 흘깃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칠흑처럼 검은 말을 탄 검은 복장의 사내. 거기에 머리마저 깊은 검은색이었다. 당연히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담호를 바라보듯 담호 역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담호의 깊은 눈에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맺혔다.

수많은 이들이 지나가지만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각기 다른 얼굴만큼이나 체형, 걷는 모습도 달랐다.

어떤 이들은 씩씩하게 걷고, 어떤 이들은 조심스럽게 걸었다. 힘이 담긴 걸음도 있었고, 경박하게 뛰는 이들도 있었다.

담호는 그들 중 묵직하고 안정된 걸음걸이를 가진 이들을 주목했다. 기감을 끌어 올리자 그들의 호흡이 느껴졌다.

길면서도 안정적인 호흡, 그리고 역동적인 힘.

‘무인.’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강한 기운이었다.

이 거리에서 무공을 익힌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의 수만 마흔 명이 넘었다.

담호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들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주위에 위협이 없는지 파악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은 곳에 들어서자 그런 보호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담호에게 위협이 될 만한 수준의 무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거리를 오가는 이들 중 무인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구대문파니, 오대세가니, 그 외에도 수많은 문파와 무관 들이 존재하지만 전체 중원인에 비하면 그 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곳엔 지나치게 무인들이 많이 보이고 있었다.

의문이 들었지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담호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몸 안에 휘도는 활화산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담호는 단 한 번도 기운을 갈무리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고, 세상에 나온 이후로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들떠 살짝 이성을 잃었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담호의 마음과 달리 분출할 곳을 찾아 몸을 헤집고 다니던 기운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 가고 있었다.

미친 말이 조금씩 제정신을 찾아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예전 같으면 미친 듯이 외부로 발산되었을 기운이 내부로 갈무리되었다. 타인을 압도했을 강렬한 존재감 또한 자취를 감췄다.

반대편에서 무인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담호에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무심히 지나갔다. 제법 높은 수준의 무공을 익힌 것으로 보이는데도 말이다.

그때 객잔 안에 들어갔던 방진보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형, 여기엔 방이 있대요. 헤헤!”

방진보는 붉게 상기된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그의 얼굴 어디에서도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담호는 방진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객잔 뒤쪽에 딸려 있는 마구간으로 갔다.

마구간에는 이미 점소이가 나와 있었다. 담호와 방진보는 점소이에게 말을 넘겨주었다.

“콩과 여물을 충분히 주거라.”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상명객잔은 손님들이 타고 온 말을 아주 잘 관리하니까요.”

점소이가 해맑게 웃었다.

담호는 점소이에게 동전 하나를 던져 주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 일 층은 식당이었다. 스무 개의 탁자가 빈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리고 탁자를 차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기를 차고 있는 무인들이었다.

방진보가 이유를 설명했다.

“이 근처에 홍암산장(紅巖山莊)이라는 큰 장원이 있는데, 그곳의 주인이 굉장히 유명한 무인인가 봐요. 며칠 후가 그분의 생신이라서 많은 이들이 축하하러 왔다네요.”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빈자리가 났다. 이제까지 식사를 하던 이들이 자리를 뜬 것이다.

“우리 식사 먼저 해요.”

방진보가 잽싸게 빈자리로 달려가 앉았다. 방진보가 앉은 자리는 창가에 자리하고 있어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담호가 방진보의 맞은편에 앉자 말을 맡겼던 점소이가 달려왔다. 그러자 방진보가 급히 말했다.

“형, 여긴 어떤 음식을 잘해요?”

“글쎄! 다른 음식도 모두 잘하는데, 그래도 제일 잘하는 것은 양잡쇄탕(羊雜碎湯)이야.”

“그게 뭔데요?”

“양의 내장들을 한데 섞어 탕을 끓이는 거야. 내장의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요리지.”

“우와! 맛있겠다. 형, 우리 이거 먹어요.”

방진보가 담호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방진보가 환호했다.

“형, 우리 양잡쇄탕 주세요.”

“알았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기다려 줘.”

“알겠어요.”

방진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눈이 웃으니 더욱 작게 보였다. 그래도 방진보는 좋았다.

중원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천하제일루가 있는 동정호까지는 수천 리나 남아 있었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맛있는 집은 모조리 들러 음식을 맛볼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방진보는 입가에 침이 흘렀다. 담호는 그런 방진보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린 방진보는 꿈을 꾸고 있었다. 요리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그를 위해 고생을 하면서 천하제일루가 있는 동정호로 가고 있다.

반대로 방진보보다 어른인 자신은 아무런 꿈이 없었다. 살기 위해서 강해졌지만, 그 어떤 꿈도 꾸지 않았다.

담호는 처음으로 방진보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힘은 자신이 강할지 모르지만, 방진보에게 보이는 생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맛일까요? 아, 궁금해서 못 참겠다.”

방진보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지 연신 두 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정신이 반쯤 날아가는 방진보였다.

담호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길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담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매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호의 가슴을 묘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그렇게 담호가 말없이 바깥 풍경을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객잔의 문이 벌컥 열리며 일 남 일 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푸른색 경장을 입은 이십 대 초반의 남자와 하얀색 경장을 입은 비슷한 나이의 여인이었다.

남자는 꽤 준수한 용모에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 허리에는 푸른빛이 은은히 맴도는 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그의 곁에 있는 여인의 외모 역시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무척이나 부담스러울 만도 하건만 이런 경험이 많은지 여인의 표정은 꽤 담담해 보였다.

남자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입을 열었다.

“감숙성의 무인들은 모조리 난주에 모인 것 같군.”

“어쩔 수 없잖아요. 감숙성에서 홍암산장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홍암산장의 주인인 이신풍 대협에게 눈도장만 찍을 수 있다면 적어도 감숙성 북부에선 출셋길이 열렸다고 봐도 무방해요.”

“흠! 그 정도인가?”

“감숙성 남쪽은 공동파의 영역이라서 어쩔 수 없다지만 북부는 홍암산장이 확실히 장악하고 있으니까요.”

홍암산장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벌써 오십 년 전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긴 시간이겠지만, 강호의 문파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현재 강호의 정상에 있는 구대문파의 역사가 보통 수백 년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홍암산장의 성장세는 확실히 대단했다.

불과 오십 년 만에 구대문파 중 하나인 공동파에 맞먹을 정도의 성세를 이룬 것은 전적으로 현 장주인 이신풍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사형도 괜히 이신풍 대협에게 밉보이지 말고 알아서 처신하세요.”

“내가 뭘?”

“그걸 몰라서 묻나요?”

“흥!”

여인의 타박에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남자는 자존심이 매우 강했다. 남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꽤나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사문에서도 골칫거리로 낙인찍혔다.

그런데도 사문이 남자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의 뛰어난 무재(武才) 때문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좌상천, 감숙성 북부의 금창(金昌)에 근거지를 둔 현현문(炫晛門)의 직전 제자였다.

현현문은 오랫동안 감숙성에서 자리를 잡아 온 유서 깊은 문파였다. 비록 홍암산장이나 공동파의 위세에 밀려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들의 저력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적어도 감숙성에서만큼은.

여인의 이름은 문수경, 현현문주인 문세강의 외동딸로 감숙성에서는 기녀로 이름이 높았다.

두 사람의 등장에 객잔 안이 술렁였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숙성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무인들이었다. 당연히 두 사람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객잔 내부를 둘러보던 좌상천의 미간에 골이 패였다.

“이곳에도 자리가 없나?”

그의 음성엔 짜증이 잔뜩 어려 있었다. 앞서 들른 객잔에서도 자리를 찾지 못해 나왔는데, 이곳에도 자리가 없으니 화가 나는 것이다.

문수경이 한숨을 내쉬며 좌상천을 진정시키려 할 때였다.

한쪽 구석에서 식사를 하던 일행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좌상천의 인상이 풀렸다.

점소이가 재빨리 달려왔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치워 드리겠습니다.”

“남는 방은 있느냐?”

“예! 아직 두 개가 남아 있습니다.”

“두 개 모두 빌리겠다.”

“알겠습니다요.”

점소이가 허리를 굽실거리며 급히 빈 탁자를 치웠다. 점소이가 치우는 자리는 바로 담호와 방진보의 옆자리였다.

자리를 모두 치우자 좌상천과 문수경이 앉았다.

좌상천이 음식을 주문했다.

“오리 구이 하나 내오고, 죽엽청도 한 병 가져오거라. 질 좋은 놈으로.”

“예!”

점소이가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갔다.

좌상천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 이게 무슨 짓인지? 언제부터 우리 현현문이 홍암산장의 눈치를 봤다고.”

“사형! 제발 말조심하세요.”

“내가 뭐? 사실이잖아.”

“휴!”

결국 문수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사형은 뛰어난 재능과 빼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감각이 부족했다.

홍암산장이 대낮에 환히 떠오른 태양이라면 현현문은 밤하늘 일부를 비추는 달에 불과했다. 명성이나 세력 면에서 비교할 수가 없었다.

현현문주인 문세강도 그 사실을 알기에 자신과 좌상천을 보내 이신풍의 생일을 축하하게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좌상천이 사고를 치지 않게 단속하는 것은 문수경의 몫이었다.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말을 툭툭 내뱉는 좌상천 때문에 그녀는 벌써부터 지치는 것을 느꼈다.

문수경은 의자에 기대 식당 내부를 둘러봤다. 식당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인이었고, 그들은 두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오직 한곳에 있는 사람들만은 달랐다.

바로 옆 탁자에 앉아 있는 검은 장포를 입은 남자와 뚱뚱한 소년, 담호와 방진보였다.

방진보는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담호는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질적이지만 묘하게 잘 어울려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저들도 홍암산장에 가는 것인가?’

그때 담호와 방진보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커다란 그릇에 담겨 나온 양잡쇄탕에 방진보가 함박 미소를 지었다.

“우와!”

냄새부터가 장난이 아니었다.

방진보는 담호의 그릇에 양잡쇄탕을 한 그릇 퍼 준 후 자신의 그릇에도 가득 담았다.

“잘 먹겠습니다.”

담호가 수저를 먼저 들자 방진보도 양잡쇄탕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오향분으로 잡내를 잡은 건가? 정향과 황기도 들어간 것 같고. 이 단맛은 어떻게 낸 거지? 아! 화초를 가미했구나.”

방진보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방진보의 모습에 문수경이 ‘풋’하고 미소를 터트렸다. 방진보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웃음에 방진보가 눈을 뜨고 문수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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