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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2장. 중원에 들어왔으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3)
눈을 뜨니 바로 옆에 미인이 앉아 있었다. 방진보의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그런 방진보의 모습이 귀여운 듯 문수경이 교소를 터트렸다.
“호호호!”
방진보는 괜히 멋쩍어서 애꿎은 머리만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문수경이 말을 걸었다.
“소형제는 요리를 잘하나 봐?”
“그게…… 좋아해서…….”
“대단하네. 어떻게 한 번 맛본 것만으로 그렇게 들어간 재료를 알아맞히지?”
문수경의 칭찬에 방진보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순수한 방진보의 모습에 문수경이 더욱 호감을 느꼈다.
“그럼 요리도 잘해?”
“그냥 조금요.”
“언제 한번 소형제가 해 주는 음식도 먹어 보고 싶네.”
“예!”
방진보는 의례적인 칭찬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담호를 바라보자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곁에서 눈에 번쩍 띌 만한 미인이 말을 거는데도 묵묵히 식사를 하는 모습이 담호답다고 생각됐다.
아마 바로 옆에서 벼락이 떨어지더라도 절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것이다. 담호는 그런 사람이니까.
방진보의 귓가에 다시 문수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소형제도 홍암산장에 가는 거야?”
“아니요.”
“그럼?”
“동정호로 가요.”
“동정호는 왜?”
“그냥 만나 볼 분이 있어서…….”
“그래? 동정호는 나도 못 가 본 곳인데.”
문수경의 눈에 처음으로 부럽다는 빛이 떠올랐다.
평생을 이곳 감숙성에서만 지낸 문수경이었다. 감숙성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역에 대한 동경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동정호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 때문에 문수경 역시 평소에 꼭 가 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그때였다.
“사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지.”
좌상천의 목소리가 그녀의 상념을 일깨웠다.
좌상천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문수경이 한낱 뚱보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기분이 나쁜 것이다.
방진보가 좌상천의 눈치를 보며 문수경에게 말했다.
“그럼 누나도 식사 맛있게 하세요.”
“응! 식사하는데 말 걸어서 미안해. 맛있게 먹어.”
“예!”
방진보는 다시 식사를 하는 데 열중했다. 그는 문수경과 대화를 나누었단 사실도 잊고 음식의 맛을 음미했다.
그사이 문수경과 좌상천이 앉은 탁자에도 오리 구이와 죽엽청이 나왔다. 문수경은 더 이상 방진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방진보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지만 담호도 음식을 충분히 음미하고 있었다.
마침내 긴 식사 시간이 끝났다.
“우와! 맛있다.”
방진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형은 어땠어요?”
“맛있었다.”
“진짜 맛있죠? 어떻게 이런 맛을 내는지.”
“그래도 네가 만드는 음식이 더 맛있었다.”
“형?”
방진보의 눈동자에 감격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설마 이 시점에서 담호가 이렇게 말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형. 말이라도 그렇게 해 줘서.”
“나는 빈말은 하지 않아.”
“알아요.”
방진보가 활짝 웃었다.
“형, 내일 시장에 들러도 될까요? 한번 둘러보고 괜찮은 식재료가 있으면 사려구요. 그래도 돼요?”
“그래!”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진보가 미소를 지은 채 담호의 뒤를 따랐다.
‘헤헤! 난주에는 또 어떤 재료가 있을까?’
벌써부터 궁금하고 흥분되었다.
방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방진보는 가만있지 않았다. 아비가 남긴 요리서를 보며 밤새도록 공부한 것이다. 결국 방진보는 그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다음 날 아침 담호와 방진보는 객잔을 나와 시장으로 향했다. 담호를 따르는 방진보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와!”
대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수많은 상점들이 보였다. 갓 도축한 고기부터 꾸덕꾸덕하게 말린 육포와 근처 호수에서 잡은 생선들까지 수많은 식재료들이 널려 있었다.
방진보에겐 천국으로 보이는 광경이었다. 방진보는 담호가 곁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상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진보가 좌판에 놓인 검은 육포 조각을 주인에게 내밀었다.
“이건 무슨 육폰가요?”
“양고기로 만든 육포다.”
“양고기로도 포를 만들어요?”
“그럼! 우리 가게만의 비법으로 누린내를 잡아 오히려 소로 만든 육포보다 맛있단다.”
“정말요?”
“조금 맛볼래?”
“와아!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상점의 주인이 웃으며 육포를 조금 떼어 줬다. 방진보는 육포를 오물오물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정말 맛있어요.”
“그렇지?”
“네! 제가 맛본 육포 중 제일이에요.”
“허허!”
방진보가 엄지를 척 치켜 올리자 상점의 주인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방진보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거 두 덩이만 주세요.”
“알았다.”
주인이 웃으며 양고기로 만든 육포를 한지에 싸 둘둘 말았다. 방진보는 셈을 치르고 육포가 든 한지를 옆구리에 끼웠다.
“다음에 또 들르거라.”
“예!”
씩씩한 대답과 함께 방진보는 다음 상점으로 향했다.
상점의 좌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체들이 스무 개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에 바싹 쪼그라들어 있어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이건 뭐예요?”
“건해삼(乾海蔘)이란다.”
“건해삼이면 말린 해삼이란 말인가요?”
“그렇다. 아주 귀한 녀석이지.”
상인의 대답에 방진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해삼이라면 바다에서만 나는 귀물이었다. 이런 내륙 깊숙한 곳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그런 물건이었다.
해삼을 응달에서 잘 말리면 건해삼이 된다. 잘 말린 건해삼은 생물 못지않은 풍미를 가지게 되고, 오랜 시간 보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내륙에서 건해삼을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와!”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비 방우광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건해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꿈속에서만 상상하던 보물이 눈앞에 나타나자 방진보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방진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이 비싸지요?”
“당연하지.”
“얼마나…….”
“건해삼 하나에 은자 다섯 냥.”
“헉!”
방진보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은자 다섯 냥이면 평범한 가정의 몇 달 치 생활비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어린 방진보라지만 그런 사실은 알고 있었다.
방진보는 감히 건해삼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쓸쓸히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바로 코앞에 담호가 있었다.
담호가 말없이 방진보에 전표 한 장을 내밀었다. 은 백 냥짜리 전표였다.
“형?”
“사.”
“하지만 너무 비싸요.”
“나는 돈을 줬다. 어떻게 쓰든 네 마음이다.”
담호는 방진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뒤돌아섰다. 상점 밖으로 나가는 담호의 뒷모습을 보며 방진보가 주먹을 꽉 쥐었다.
“형!”
“살 거야? 안 살 거야?”
등 뒤에서 상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진보가 팩 뒤돌아섰다.
“살 거예요. 전부 다.”
그의 힘찬 목소리가 상점 안에 울려 퍼졌다.
상점 밖으로 나온 방진보의 얼굴엔 행복한 빛이 가득했다. 설마 이렇게 내륙 깊숙한 곳에서 건해삼과 같은 귀물을 구할 줄은 몰랐다.
건해삼을 잘만 이용한다면 이전에는 감히 시도조차 못 해 봤던 요리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방진보는 행복해졌다. 그런 감정의 변화는 고스란히 얼굴에 나타났다.
방진보는 생각을 알기 참 쉬웠다. 담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방진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배고파요, 형.”
아닌 게 아니라 아침을 먹고 나오지 않아 배가 고팠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방진보가 활짝 웃으며 손을 잡아끌었다. 이제 방진보는 담호의 몸짓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담호는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몸짓, 눈빛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까 오면서 우육면을 하는 노점을 봤어요. 냄새가 끝내주는 게 아주 맛있을 것 같아요. 헤헤!”
방진보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는 듯이 두 손을 비볐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음식에 관해서만큼은 영민해지는 방진보였다. 이 거리에 들어온 그 순간 수많은 노점을 훑어보고, 그중에서 가장 맛있을 것 같은 음식이 무언지 본능적으로 찾아냈다.
방진보는 기대가 잔뜩 어린 얼굴로 아까 점찍어 둔 노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노점에 도착한 순간 방진보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육수는 펄펄 끓고 있는데 노점의 주인인 노파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장사 안 하세요?”
“장사? 해야 하는데…….”
“왜 그러세요?”
“아까부터 어깨가 너무 아파서 말이야.”
노파가 어깨를 주물렀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래도 아까까지는 참을 만했는데, 지금은 아파도 너무 아팠다. 이 상태로는 면을 밀 수가 없었다.
“새벽부터 육수도 끓여 놨는데…….”
노파가 한숨을 내쉬었다.
날이 더웠다. 오늘 끓인 육수를 다 사용하지 않으면 금세 쉬어 버릴 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파로서는 큰 손해였다.
면을 밀고, 각종 재료를 준비해야 장사를 할 수 있는데, 지금 노파의 어깨 상태로는 무리였다.
모든 사정을 들은 방진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안색이 어두운 노파를 보고 있자니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담호와 노파를 번갈아 바라보던 방진보가 이내 결심했는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할머니.”
“응?”
“재료 손질하고 면을 미는 것 제가 할게요.”
“네가?”
“예!”
“에이! 어떻게?”
“이래 봬도 제가 요리를 조금 할 줄 알거든요. 할머니가 가르쳐 주시면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노파가 주저했다.
방진보가 담호를 바라봤다.
“형, 할머니를 도와 드리고 싶어요. 그래도 돼요?”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방진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노파도 결국은 허락했다.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형국이었다.
방진보가 소매를 걷고 나섰다.
“뭣부터 할까요?”
“우선 면부터 밀어야지.”
“반죽은요?”
“좌판 아래 들춰 보면 커다란 들통이 있을 거야. 그 안에 준비해 놓은 반죽이 있어.”
“우와! 되게 쫄깃하네요. 밀가루만 가지고서는 이렇게 쫄깃하지 않을 텐데요.”
“응! 옥수수 가루를 조금 섞었어.”
“그래서 색깔이 이렇구나. 처음 알았어요. 이런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절로 알게 된 거지.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야.”
방진보는 노파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마치 친조손처럼.
담호는 그런 방진보와 노파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곳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방진보가 노파의 지도에 따라 면을 밀기 시작했다.
생동감이 넘치는 표정과 반짝이는 눈동자, 마치 방진보의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