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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61화 (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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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4장. 남의 집 잔치가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다(2)

주방의 공기는 화덕에서 일어난 열기로 숨이 막힐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전가복은 어떻게 되었나? 아직 멀었어.”

“지금 만들고 있는 중이야. 거기 건전복 좀 줘.”

“저녁이 멀지 않았어. 서둘러야 해.”

“제길! 죽겠군. 후아!”

화덕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숙수들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뜨거운 불길 앞에서 그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요리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숙련된 숙수답게 그들이 음식을 만들어 내는 속도는 번개 같았다.

문제는 지금 홍암산장에 몰려든 손님들의 수가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상회한다는 것이다.

수석 숙수 송환이 숙수들을 격려했다.

“오늘 들어온 인물들까지 합치면 천오백 인분의 음식을 만들어야 해. 모두 서둘러.”

“예!”

숙수들이 힘찬 대답과 함께 과자와 국자를 움직였다.

그들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몇 사람분의 음식이 뚝딱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야 할 음식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저 뚱보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러게! 저 녀석이 저렇게 능숙하게 요리를 할 줄 누가 알았겠나?”

숙수들의 시선이 한쪽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는 방진보를 바라보았다.

살이 익을 듯 뜨거운 불길 앞에서도 방진보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치이익!

뜨겁게 달아오른 과자에 쇠고기가 투입되었다. 고기가 익을 때쯤 미리 손질한 채소가 들어갔다.

방진보는 능수능란하게 과자를 움직이며 불길에 온 촉각을 곤두세웠다.

―요리는 불의 예술이란다. 훌륭한 숙수는 곧 불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아비는 늘 그렇게 말했다.

불을 이해하고 능숙하게 다를 수 있어야만 진정한 요리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방진보는 화덕에서 일어나는 불을 이해하고 느끼려 노력했다.

불길이 강하게 일어나면 과자를 떼고, 반대로 줄어들면 가까이 대었다. 과자 안의 열기는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고기와 채소가 적당하게 익었다.

방진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각종 향신료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음식은 금전우육(金錢牛肉), 아비 방우광이 즐겨 해 주던 요리였다.

순식간에 금전우육을 만들어 낸 방진보의 솜씨에 보조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와! 정말 대단하네. 불을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다루다니.”

“그러게 말이야. 나는 언제 저렇게 해 보나?”

처음엔 질시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보조들의 눈에 선망의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소진서는 달랐다.

‘나에게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저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

타타탁!

그는 방진보에 대한 경쟁심을 불태우면서도 칼질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소진서의 칼질은 무척이나 빠르고 섬세했다. 칼질 하나만큼은 이곳 주방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바였다.

소진서가 이를 가는 사이에도 숙수들은 부지런히 요리를 만들어 냈고, 마침내 천오백 인분의 음식이 만들어졌다.

“후!”

“끝났다.”

마지막 음식이 나오자 숙수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화덕의 불길에 모든 것을 불태운 것처럼 그들의 얼굴 역시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방진보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뚱뚱한 그의 전신에서는 쉴 새 없이 땀이 흐르고 있었다.

살이 족히 한 근은 빠진 것 같았다. 그 덕에 뺨이 조금은 가냘파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방진보는 그런 사실을 느낄 수도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괜찮으냐?”

송환의 물음에 방진보가 겨우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네!”

“고생했다. 덕분에 제 시간에 음식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아니에요.”

“수석 숙수님 말씀이 맞다. 네 덕분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고맙다.”

차석 숙수인 우복겸도 칭찬 행렬에 동참했다. 그가 방진보의 어깨에 턱 하니 팔을 올린 채 땀으로 떡진 머리를 헝클었다.

“녀석, 수고 많았다. 오늘은 네가 더 할일이 없으니 들어가서 쉬거라.”

“하지만 아직 뒷일이 남아 있는데요. 주방 정리도 해야 하고…….”

“그런 것은 보조 숙수와 하인들에게 맡겨 두면 된다.”

방진보가 보조 숙수들을 바라봤다. 그들 역시 전쟁 같은 일과 때문에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을 두고 편히 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송환과 우복겸의 생각은 방진보와 달랐다.

“숙수와 보조는 엄연히 다르다. 너 역시 숙수의 길을 걷는다면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수석 숙수님의 말씀이 옳다. 칼질만 잘 한다고 숙수가 아니다. 불을 느껴야만 진정한 숙수라고 할 수 있다. 저들은 아직 불을 느끼려면 멀었다. 더 수련을 해야 해. 그때까지는 잡일도 저들의 몫이다. 그 역시 수련의 일환이니까.”

“예!”

결국 방진보는 그들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잡일을 하는 것도 수련의 일환이었다. 자신 역시 아비 방우광에게 똑같이 배웠으니까.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서 가서 쉬거라. 그래야 내일 또 음식을 만들지. 진짜 전쟁은 내일부터다.”

“그런데 내일도 이 인원으로 요리를 하는 건가요?”

“그래야지.”

“그렇다면 좀 힘들지 않겠어요?”

“방도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지. 하는 데까지 해 보는 수밖에.”

“그런데 저 이전에 있었던 숙수님들은 왜 그만둔 거예요? 일이 힘들어서?”

“그걸 어찌 알겠느냐? 갑자기 사라져서 나타나질 않는데.”

“예?”

방진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송환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복겸의 말대로다. 일이 힘든지 갑자기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더구나. 그럴 녀석들이 아닌데.”

“망할 녀석들! 그만둘 거면 잔치가 끝난 후 그만둘 것이지.”

우복겸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가르친 숙수들이었다. 힘들다고 그만둘 만큼 무른 자들이 아니었는데 이 사달이 일어났으니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잡담은 이만하고 어서 돌아가서 쉬거라.”

“예!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방진보는 송환에게 등을 떠밀리듯 주방을 나왔다.

“숙수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어서 주방을 깨끗이 정리해.”

등 뒤로 우복겸의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짝이는 별들이 보였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하루가 이렇게 금방 지나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들어가려니 무언가 아쉬웠다.

“형이 드실 만한 간식이라도 만들어야겠다.”

방진보는 자신에게 질 좋은 건해삼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가 다시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이미 정리하고 떠났는지 주방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방진보가 주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그의 얼굴에 살짝 놀랍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등불이 꺼진 주방 한구석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다.

치이익!

화덕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뜨겁게 달궈진 과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아!”

화덕의 주인은 보조 숙수 중 한 명인 소진서였다.

그는 방진보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젠장! 불을 이해하라니? 불을 어떻게 이해하란 말이야?”

과자 안에서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냄새도, 모양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똑같은 재료를 넣고, 똑같은 방식으로 조리를 했는데도 다른 숙수들이 만든 음식보다 격이 떨어진 음식이 나왔다.

“제기랄!”

결국 소진서가 손에 들고 있던 과자와 국자를 바닥에 내던졌다. 요란하게 바닥을 구른 과자가 방진보의 발치에서 멈췄다.

소진서와 방진보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넌?”

“형!”

“이 시간에 웬일이야? 뚱보 자식. 너 때문에 내가…….”

소진서가 씩씩거리며 방진보를 향해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방진보가 움찔했다. 하지만 피하진 않았다.

“너만 안 왔어도 내가 조리할 수 있었는데.”

방진보를 노려보는 소진서의 눈가엔 어느새 물기가 촉촉하게 고여 있었다.

“형, 미안해요. 나 때문에…….”

“무려 칠 년이다. 이곳에서 수행한 세월이. 그런데 왜 나는 안 되고, 너는 되는 거지? 내가 뭐가 모자라서.”

소진서가 울분을 터트렸다.

울음기 섞인 그의 외침에 방진보는 눈을 감았다.

자신은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반대로 소진서는 이곳이 삶의 터전이었다. 이곳에서 숙수가 되어 난주에 자신의 이름을 건 반점을 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에게 방진보는 너무 큰 걸림돌이었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방진보가 바닥에 나뒹구는 과자를 주웠다.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었지만, 방진보는 애써 참았다.

손에 두툼한 굳은살이 박여 있어 그래도 참을 만했다. 숙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수행한 흔적이었다.

소진서의 손에도 마찬가지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만큼 그도 열심히 해 왔다는 뜻일 것이다.

방진보가 소진서의 손에 과자를 쥐어주었다.

“형, 나는 곧 떠날 사람이에요. 형도 열심히 수행하면 곧 숙수가 되실 수 있을 거예요.”

“네가 떠나면 뭐해? 그놈의 불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절대 숙수가 되지 못할 거야.”

“불을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뭐?”

“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먼저 불을 느끼라고. 이해하는 것은 그 후의 일이라고.”

“어떻게 불을 느끼지? 그게 말이 돼?”

“이리 와 봐요, 형.”

방진보가 소진서의 손을 잡아끌었다.

화덕 앞에 서자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진서가 움찔하면서 피하려했지만, 방진보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무리 뜨겁다고 해도 불을 피해서는 안 돼요. 불을 사랑해야 해요. 내가 사랑하는 만큼 불도 나를 사랑하니까요.”

“…….”

“마음을 열고 불을 느껴요. 불이 전해 주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해 봐요. 쉽게 되진 않아요. 하지만 형이 귀를 열면 불도 속삭여 줄 거예요.”

“무슨?”

“일단 해 보세요.”

소진서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화를 내려 했다. 하지만 방진보의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소진서는 못 이기는 척 방진보의 말을 따랐다.

강렬한 열기에 얼굴이 익을 것만 같았다. 이마와 얼굴에서 땀이 쉴 새 없이 흘렀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소진서의 볼이 절로 씰룩였다.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려할 때 방진보의 두툼한 손바닥이 그의 등을 막았다.

“참아야 해요.”

“하지만…….”

“요리는 불의 예술이에요. 불이 호흡하는 대로 느끼고 뜻을 따라야 해요.”

“으음!”

소진서는 자신도 모르게 방진보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는 어느새 눈을 감고 불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방진보가 그런 소진서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예전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요리를 할 때면 방우광은 유독 방진보에게 혹독하게 대했다. 그때는 아비를 많이 원망했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 역시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이제 방진보가 할 일은 없었다. 소진서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했다. 방진보는 소진서를 내버려 두고 비어 있는 화덕으로 갔다.

방진보는 화덕의 불을 피우고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주재료는 난주의 시장에서 구한 건해삼이었다. 건해삼을 물에 넣고 불린 다음에 납작 편을 썰었다.

각종 야채를 먹기 좋게 썰고, 버섯을 끓는 물에 삶았다.

어느 정도 재료가 준비되자 과자에 기름을 두르고, 대파와 마늘, 생강 등을 넣고 볶아 향을 냈다. 어느 정도 간이 맞자 육수를 붓고 다시 끓였다.

방진보는 다른 과자에 버섯과 물에 불린 해삼 등을 볶았다.

일련의 과정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렇게 해서 만든 음식은 바로 전가복을 응용한 요리였다.

주재료라 할 수 있는 전복도 빠졌고, 급하게 만든 거라 내용물도 빈약했지만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자신의 요리를 기다리고 있을 담호와 초연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서 가져가야지.”

“넌 정말 즐거워 보이는구나.”

“어, 형?”

어느새 소진서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소진서의 얼굴은 강렬한 열기에 벌겋게 익은 상태였다.

약간은 지친 듯 보였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맑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도 불을 느껴야 한다는 방진보의 말이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소진서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요리를 하는 방진보의 미소였다.

요리를 하는 내내 방진보는 즐거워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요리를 배우는 내내 단 한 번도 저렇게 웃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요리를 잘해 수석 숙수인 송환의 눈에 들기 급급했지만, 요리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생각 따윈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방진보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요리를 맛보고 행복해할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마음이 그대로 소진서에게도 전해졌다.

‘완패군!’

소진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렇게 즐거운 얼굴로 요리를 하는 녀석이라니. 그런 녀석을 이길 자신은 도저히 없었다.

“어쨌거나 고맙다. 이 은혜는 나중에 갚으마.”

소진서는 방진보의 대답도 듣지 않고 뒤돌아섰다. 왠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방진보는 멀어지는 소진서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전가복이 담긴 접시를 들고 객사로 달려갔다.

“저 왔어요. 헤헤!”

방 안엔 담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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