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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62화 (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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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4장. 남의 집 잔치가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다(3)

다음 날에도 홍암산장의 잔치는 계속되었다. 사실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 악단과 곡예단이 초청되었다.

악공들이 연주로 흥을 돋우고, 곡예단의 예인들이 각종 곡예를 선보였다.

“우와아!”

“최고다.”

사람들의 흥은 최고조에 달했고,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홍암산장에 들어오는 사람은 더욱 많아졌다. 덕분에 죽어나는 것은 주방의 숙수들과 하인들이었다.

숙수들은 새벽부터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고, 하인들은 그들이 만든 음식을 나르느라 뼈가 빠질 지경이었다.

“난리도 아니군. 이래서야 제대로 얻어먹을 수나 있을런지.”

초연운이 전쟁 통을 방불케 하는 홍암산장 내부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손엔 양고기 꼬치가 들려 있었다.

초연운은 양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가 찾는 사람이 있었다.

‘담호.’

검은 가죽 장포를 입은 채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사내는 바로 담호였다. 수많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있었지만, 오직 그만 홀로 서 있었다.

친구가 되자는 그의 말에 담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할 만도 하건만 초연운은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군.’

초연운은 담호의 눈에 담긴 불신의 빛을 보았다.

그의 눈은 누구도 믿지 않았고, 어떤 이에게도 곁을 허락하지 않는 완고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을 둘러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감히 벽을 넘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연운 역시 보통의 사람은 아니었다.

초연운이 보기에 담호의 문제는 다리를 저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담호는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고, 그로 인해 세상 그 자체에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담호가 마음에 들었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담호는 최소한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 주고 있었다.

‘뭐,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인연은 억지로 만든다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뜻이 닿아야만 이어질 수 있는 것.

초연운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곳으로 날 인도한 것은 단순히 저 친구를 만나게 하려 한 것인가? 그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하늘의 뜻은 실로 오묘하고도 심오해 인간의 능력으로는 헤아릴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 조금 더 남아서 담호와 교분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할 일이 있었고,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인연의 끈이 남아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터.’

담호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초연운은 조용히 홍암산장을 빠져나갔다.

담호는 잔치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바로 지척에서 곡예단이 묘기를 부리고 있었고, 악공들이 흥을 돋우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을 끌긴 부족했다.

담호의 시선은 산장 내를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검을 허리에 찬 무인,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비단 옷을 입은 채 강철로 된 섭선을 부치는 무인, 넉넉한 살집이 잡힌 배를 두드리며 음식을 탐하는 권객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하! 이번에 우리 무관에서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였는데, 그 재능이 제법이랍니다.”

“정 관주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 그런데 제자까지 그렇게 뛰어난 재능이 있다니 청풍무관의 앞날이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러는 유 관주님은 이번에 무관을 확장하셨다구요?”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등골이 휘고 있지요. 뭐, 이신풍 대협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오늘은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조금 있으면 나오실 텐데 금방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신풍 대협도 유 관주님을 분명 도와주실 겁니다.”

“그럴까요?”

“당연하지요. 하하하!”

“어서 이신풍 대협을 뵙고 싶군요.”

큰 목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신풍을 만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격이 되었다면 지난밤 진즉에 만났을 테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과 같았다. 허세가 가득했다.

흡사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 같다고나 할까? 산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짐승들은 결코 허세를 부리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숨기고, 또 숨기고, 끝까지 자신을 숨긴 후 일격에 먹잇감의 숨통을 끊어 놓는다.

목숨을 걸고 싸워 보지 않은 자들이나 저렇게 허세를 부릴 뿐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곳에 진정한 강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두 명의 무인이 장내로 들어왔다.

분명 두 명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틀로 찍은 것처럼 똑 같았다.

검처럼 날카롭게 뻗은 눈썹 아래 자리한 매서운 눈동자, 유난히 창백한 피부에 날카로운 턱 선을 가진 삼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들. 강호에서 보기 힘든 쌍둥이였다.

그들의 등장에 주위의 무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흑백쌍귀다.”

“와! 저들까지 오다니.”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흑백쌍귀(黑白雙鬼).

그들은 본래 산서성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정사중간의 무인들이었다. 성격이 난폭한 데다가 제멋대로여서 어디로 튈 줄 몰랐다. 무공 또한 강해서 누구도 쉽게 그들을 건들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쌍둥이답게 정신적인 교감이 강했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뜻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덕에 별다른 합격술을 익히지 않고서도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흑백쌍귀가 차가운 눈으로 장내를 훑어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와 시선이 마주칠까 무서워 분분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흑백쌍귀가 오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흥! 이신풍의 환갑이라기에 제대로 된 무인들을 볼 수 있나 기대했는데, 역시 별 볼 일 없군.”

“흐흐! 뭘 더 기대했느냐? 우리에 이신풍의 체면만 세워 주면 되는데.”

흑백쌍귀의 등장에 총관 구중명이 득달같이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의 내방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랜만이군, 구 총관.”

“예! 그렇지 않아도 이제나저제나 두 분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음!”

“조금만 기다리시면 장주님께서 나오실 겁니다.”

“이 장주는 잘 있지?”

“두 분의 걱정 덕분에 정정하십니다.”

“그것 다행이군.”

흑백쌍귀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구중명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자리는 잔치가 벌어지는 연무장 위에 임시로 만들어진 단상 위였다. 단상 위에는 십여 개의 의자가 더 놓여 있었다.

흑백쌍귀는 단상 위에 앉아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그들은 충분히 그래도 되는 존재였다.

담호는 흑백쌍귀에게서 금세 시선을 돌렸다. 그런 담호의 얼굴엔 아무런 감흥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때 담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과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잘생긴 청년.

바로 문수경과 좌상천이었다.

좌상천이 담호에게 아는 척을 했다.

“여기서 또 보는군.”

담호가 말없이 좌상천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좌상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네놈은 예의도 없느냐? 사람이 인사를 했으면 아는 척이라고 해야지.”

“그게 인사였나?”

“뭐?”

“나는 어디서 개가 짖는 줄 알았지.”

“너, 이 녀석!”

좌상천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담호에게 손찌검이라도 할 태세였다.

그때 문수경이 좌상천의 어깨를 잡았다.

“사형! 제발 예의를 지키세요.”

“크윽!”

좌상천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전날 이신풍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지만, 결국 그들의 순서까지 오지 않았다.

이신풍은 공동파의 남학을 끝으로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고, 좌상천의 가슴에는 씻을 수 없는 굴욕감을 안겼다.

좌상천은 가슴에 쌓인 화를 담호에게 풀려고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문수경이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사형, 이만 가요.”

“하지만…….”

“이래서는 현현문은 물론이고 사형에게도 좋지 않아요. 만일 말썽을 피우겠다면 저는 여기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 말하겠어요.”

“제길!”

문수경이 강경하게 나오자 좌상천은 더 이상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담호를 노려보았다.

‘네놈은 반드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게 될 것이다.’

좌상천이 바람 소리 나게 몸을 돌렸다.

문수경이 한숨을 내쉬며 담호에게 포권을 취했다.

“사형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본래 저런 분이 아닌데 심기가 불편하신 일이 있어 자꾸만 결례를 범하네요.”

좌상천과 달리 예의범절이 몸에 배인 문수경이었다.

“참, 진보도 들어왔나요?”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문수경이 미소를 지었다.

“진보에게도 안부 전해 주세요. 그럼…….”

문수경이 자리를 떴다.

담호는 멀어지는 문수경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귓전에 근처에 있던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그 소문 들었는가?”

“무슨 소문 말인가?”

사람들이 상인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허! 아직도 못 들었단 말인가?”

“거참, 무슨 소문인데 그렇게 뜸을 들이는가?”

“신강에 혈사(血事)가 일어났다네.”

“혈사?”

사람들의 얼굴에 의뭉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신강은 그 역시 자주 왕래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변고가 일어났다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천산장은 들어 보았지?”

“새외를 오가는 상인이 서천산장을 모를 리 있는가?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건가? 사람 애태우지 말고 어서 속 시원히 이야기해 보게.”

“그렇다면 내 이야기해 줌세. 그 서천산장이 혈겁을 당했다고 하네.”

“무슨 소린가? 서천산장이라면 신강에서도 손에 꼽히는 세력인데 그곳이 혈겁을 당했다니.”

“사실일세. 내 동생이 혈린살막에 있는 것은 자네도 알지? 그 녀석이 해 준 말일세.”

“허어!”

수다스러운 친우의 말에 상인의 눈이 빛났다. 본능적으로 친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서천산장이 혈겁을 당했다니. 그럼 큰 피해를 입었겠군.”

“단순히 피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네. 거의 멸문을 당한 수준이라고 하더군. 장주인 은하성 이하 대부분의 정예들이 아예 씨 몰살을 당했다네.”

“말도 안 되는…….”

상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천산장이 어떤 곳이던가? 중원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역을 오가는 상인들이라면 서천산장의 전력이 중원 유수의 문파들에 결코 뒤처지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문파가 서천산장과 전쟁을 치른 것인가? 혈린살막인가?”

“혈린살막도 전쟁을 준비했지만, 칼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했다는군.”

“혈린살막이 아니라면 대체 어느 문파가?”

“놀라지 말게.”

사내의 목소리가 나직해졌다. 하지만 그의 주위에 몰려 있는 사람들의 집중도는 더욱 높아졌다.

“단 한 사람일세.”

“무슨?”

“단 한 명이 서천산장을 피로 물들였다네.”

“말도 안 되는…….”

“진짤세. 내 동생이 말하길 목불인견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는군. 시신이 산을 이루고, 그들이 흘린 피가 내를 이뤘다네. 그 남자가 걸은 길엔 오직 죽음만이 가득했다네. 오죽했으면 살아남은 서천산장의 무인이 그를 가리켜 사신이라고 했을까?”

“사신?”

“그래! 그 때문에 서천산장 인근은 난리도 아니라더군.”

“설마?”

사람들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사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신강혈성(新疆血星), 신강에 내려온 피의 별.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네.”

꿀꺽!

너무나 섬뜩한 별호에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순간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아는가? 이곳에 신강혈성이 들어와 있을지.”

“…….”

모든 사람이 얼어붙었다.

순간 상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농담일세. 분명 그는 머리가 세 개에 팔은 여섯 개 달린 괴물 같은 자일 걸세. 그런 자가 이런 곳에 있을 턱이 없잖은가?”

“에이! 이 친구야, 깜짝 놀라지 않았나?”

“사람 간 떨어지게 만들고 있어.”

사람들의 안도 섞인 탄성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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