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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5장. 남의 것을 탐하려면 자신의 소중한 것을 걸어야 한다(3)
“끄으으!”
피투성이가 된 누군가 별채의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청석으로 깐 바닥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장학경 등이 눈을 끔뻑거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눈이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다.
“사, 사형?”
문수경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을 나뒹구는 이는 바로 그녀의 사형인 좌상천이었다.
좌상천의 앞에는 담호가 서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랐다. 먼저 공격한 것은 좌상천이었는데, 바닥을 나뒹구는 것도 좌상천이었다.
“우웨엑!”
좌상천의 입에서 피와 위액이 섞여 나왔다.
단 일격에 현현문의 장문제자인 좌상천이 항거불능이 된 것이다. 그나마 정종의 내공이 전신을 보호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일격에 내부가 모조리 박살이 났을 것이다.
담호가 좌상천의 앞에 섰다. 그러자 좌상천이 힘겹게 담호를 올려다봤다. 그런 그의 눈동자는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서 온통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끄으!”
세상이 온통 붉게 변했다. 그 한가운데 담호가 있었다.
눈에 초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담호의 모습이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였다. 그 모습이 인간 같지가 않았다.
“사, 살려 줘!”
“…….”
“자,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다고. 제발 살려 줘.”
좌상천은 두려웠다. 그야말로 미칠 것처럼 두려웠다.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도 담호를 계속해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무슨 말이라도 해 줬으면 좋으련만, 담호는 말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내가 잘못했다고…… 크흐흑!”
갑자기 좌상천이 울기 시작했다.
그는 절대로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존심 또한 매우 세서 누군가에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런 그가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고 있었다.
담호가 좌상천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좌상천의 다리가 허공에서 덜렁거렸다. 가슴 밑으로 어떤 느낌도 없었다. 마치 목만 남기고 몸 전체가 사라진 것 같았다.
“으으! 어떻게 한 거야? 내 몸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으아아!”
좌상천이 죽어라 비명을 내질렀다.
몸 전체가 마비되었다. 그것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는 좌상천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담호가 그런 좌상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남의 것을 탐내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각오도 없었나?”
“크흐흑!”
좌상천은 이미 담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아니, 그의 사고는 마비되어 그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때 제정신을 차린 모중현과 장학경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놈! 사람을 어떻게…….”
“감히 홍암산장에서 사람을 상하게 하다니.”
그들은 당장이라도 무공을 펼칠 기세였다.
스륵!
그 순간 담호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무감각한 눈동자를 마주 보는 순간 그들의 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떨렸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담호와 같은 눈빛을 가진 자를 본 적이 없었다. 뱀을 만난 개구리처럼 전신이 마비되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꽉 쥔 두 주먹이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순간 담호의 입술을 비집고 메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너희들은 누구지?”
“우리는 좌 소협의 친구다.”
“친구?”
담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그래 봤자 거의 느끼지도 못할 만큼 미세한 변화였지만, 막상 담호와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에겐 마치 커다란 동종이 곁에서 울리는 듯한 충격을 주었다.
“목숨을 걸 수 있나?”
“무, 무슨?”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나?”
“나는…….”
두 사람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분위기에 휩쓸려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는 두 사람일지라도 지금 잘못 대답하면 어떻게 될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친구라고 하지만, 그래 봤자 이곳에서 만난 사이였다. 그런 그들에게 의리가 있을 리 없었다.
담호의 기세에 짓눌린 두 사람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반대로 담호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쯤 하지.”
담호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는 바로 공동파의 속가제자인 윤상한이었다.
윤상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솔직히 담호가 어떻게 좌상천을 쓰러트렸는지 보지 못했다. 그 말은 곧 담호의 움직임이 그의 안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다는 뜻이었다.
‘이런 자가 있었다니.’
비록 속가제자라고 하지만 본산인 공동파에서도 수련을 했던 윤상한이었다. 그의 성취는 본산의 일대제자들에 비해서도 그리 뒤지지 않았다.
덕분에 공동파 장로들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본 공동파의 그 어떤 무인도 담호와 같이 숨 막히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위축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구대문파 중 하나인 공동파의 제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비록 속가제자일지언정 그 자부심만큼은 본산제자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 어떤 경우에도 물러서지 말 것이며, 그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담호의 위세에 짓눌려 물러서는 것은 곧 공동파를 욕보이게 하는 짓이었다.
윤상한의 시선이 문수경의 품에 안겨 있는 좌상천을 향했다.
좌상천은 입을 벌린 채 게거품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전신이 마비되었다는 충격에 이성마저 잃고 만 것이다.
그가 온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영원히 저 꼴로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비록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되었고, 친분 또한 무척이나 빈약했다. 그래도 친구라고 부른 사이였다.
이대로 물러선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윤상한이 담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나는 공동파의 윤상한이다.”
“그래서?”
“자네가 그 지경으로 만든 좌상천의 친구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이대로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단 뜻이지. 공동파의 제자가 겨우 상대의 위세에 짓눌려 물러선다면 강호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겠나?”
윤상한은 이미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의 의지가 공기를 타고 전해지고 있었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학경이나 모중현에 비하면 윤상한은 확실히 남자다웠다.
윤상한이 담호를 향해 주먹을 겨눴다. 보통 사람의 주먹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주먹이었다.
공동파의 절학인 통천권(通天拳)을 극에 이르도록 수련하면 주먹이 이렇게 된다.
통천권은 일개 속가제자가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공동파의 본산제자들 중에서도 일대제자들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만큼 위력 또한 대단했다.
담호의 눈에 처음으로 감정의 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분명 흥미라는 감정이었다.
혈랑대라는 마적들과 싸워 봤고, 서천산장의 무인들과 격돌했다. 그들 중 누구도 담호의 기대를 충족시킨 자는 없었다.
누가 뭐래도 현 강호의 패자는 구대문파였다.
화산파나 종남파, 무당파의 무공은 견식 했지만, 공동파의 무공은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담호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것은 미소였다. 입매가 살짝 뒤틀어 진 것도 미소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의 미소는 너무 살벌했고, 차가워서 주위의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윤상한은 그런 담호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흥! 언제까지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마.”
그가 담호를 향해 짓쳐 갔다. 공동파의 절학인 비연보(飛燕步)를 펼친 것이다.
제비가 수면 위를 스치며 날듯 윤상한 역시 몸을 내리깐 채 밑에서부터 담호를 향해 달려왔다.
후웅!
꽉 쥔 주먹에 전 공력이 응축됐다.
‘쓰러트린다.’
상대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살벌한 기세, 그 살벌한 눈빛에 담긴 살의를 어찌 못 읽을까?
자신에게 벅찬 상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공동파의 제자니까.’
콰아아!
그는 두 번의 기회가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한 수에 전력을 다했다.
진천호우(震天豪雨)란 이름의 초식.
하늘을 떨게 해 비를 내린다는 뜻처럼 강렬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담호의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주먹이 담호의 얼굴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간격은 겨우 한 자.
이 정도의 거리라면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그것이 윤상한의 상식이었다. 심지어는 장학경과 모중현도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가 주목하는 그 순간 담호가 움직였다.
그의 다섯 손가락이 활짝 펴지며 모중현의 주먹을 맞이했다.
턱!
윤상한의 주먹이 담호의 손바닥에 막혔다.
흡자결(吸字決)로 충격을 흡수했다.
오지암파경(五指暗破輕).
지하 공동에서 만들어 낸 그만의 무공이었다.
“크윽!”
가뜩이나 공력을 가득 실은 주먹이 막히자 반작용으로 윤상한의 내부가 울렸다. 온몸의 모든 피가 다 머리로 쏠리는 듯한 느낌에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그 순간 윤상한은 보았다.
담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당혹스러움과 공포가 범벅된 이질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담호의 눈을 통해 비쳐지고 있었다.
‘저게 나라고?’
그 순간 담호의 손바닥을 통해서 막대한 경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폭(爆).
그의 몸 안에서 작은 폭발이 연신 일어났다.
윤상한은 거대한 폭풍이 자신의 몸속을 덮친다고 생각했다.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윤상한이 뒤로 날아가 전각의 거대한 기둥에 부딪쳤다. 그런 그의 팔뚝은 나선형으로 뒤틀린 채 뼛조각이 튀어나와 있었다.
“끄으으!”
윤상한이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았다.
담호가 그런 윤상한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당신은 남자답군. 저들과 달리.”
담호의 말에 장학경과 모중현의 얼굴이 핼쑥하게 질렸다. 담호가 지칭하는 ‘저들’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좌상천에 이어 윤상한까지 담호의 단 일 수를 견디지 못했다. 상대는 그들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였다.
‘어디서 이런 자가…….’
‘우리의 상대가 아니야.’
꿀꺽!
그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이라도 담호가 살심을 먹으면 그들은 죽은 목숨이었다. 세상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았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극심한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들은 담호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할까 두려워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아무리 그들의 배경이 좋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목숨까지 지켜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담호는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윤상한이 담호를 올려다봤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지만, 투지마저 꺾인 것은 아니었다.
그가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내……가 진 거지, 공동파가 당신에게 진 것은 아니야.”
“알고 있어.”
“반드시 다시 도전하겠다.”
“언제든지.”
담호가 몸을 돌렸다.
좌상천을 안고 있는 문수경이 보였다. 담호를 바라보는 문수경의 눈빛은 혼돈 그 자체였다.
졸지에 현현문의 대제자가 반신불수가 되었으니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담호에게 덤비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이를 악문 채 담호를 노려봤다.
“꼭 그래야 했나요? 손속에 사정을 봐줄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사람을 철저히 망가트려야만 속이 시원하나요?”
“그래도 죽지는 않았어.”
“죽느니만 못하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사형은 평생 자신의 두 발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보고 책임지란 말인가?”
“그건…….”
문수경이 말을 잇지 못했다.
강호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의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그녀의 사형은 타인의 것을 탐했고, 그 결과 반신불수가 되었다.
죄에 비해 벌이 과한 바가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상황.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그녀의 가슴은 이 같은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결과를 납득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아.”
“당신…….”
“그때는 나 역시 최선을 다할 테니까.”
담호의 말을 듣는 순간 문수경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담호가 결코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담호의 말에 담긴 의미였다.
‘이게 최선이 아니란 말이야?’
현현문의 대제자와 공동파의 제자가 단 일 수에 박살 났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란다.
그가 전력을 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려우면서도 궁금했다. 문수경은 그런 자신의 생각을 자각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느새 담호란 인간의 존재감에 휩쓸려 버린 자신을 보고 만 것이다.
“아!”
그녀의 탄식이 바람에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