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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6장. 혈성(血星)이 빛을 발하니 모두가 숨을 죽인다(2)
바닥을 나뒹굴어 벽에 처박힌 이는 바로 장학경이었다.
장학경의 눈과 귀, 입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끄으으!”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그의 입술이 들썩였다. 하지만 말 대신 부스러진 내장 쪼가리가 섞인 피가 흘러 내렸다.
단 일격이었다.
선을 그리며 뻗어 나가는 담호의 주먹 한 방에 장학경이 항거불능이 되었다.
마치 충차가 성벽을 부순 것처럼 장학경의 몸 또한 그렇게 부서졌다.
“…….”
순간 장내에 질식할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었다. 설마 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무모한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조경의는 물론이고, 홍암산장의 주인인 이신풍까지도.
“미, 미친놈!”
모중현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 말이었다.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했다.
조의경이 손가락을 들어 담호를 가리켰다.
“너, 너?”
“왜?”
“지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감히 홍암산장에서 살인을 저지르다니.”
“그래서?”
“이 후환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내가 왜 후환을 생각해야 하지?”
“아예 생각이란 것이 없는 거냐? 네놈은!”
“나는 말이야. 후환 따윈 생각 안 해. 죽일 상황이 되면 오직 죽이는 것만 생각해.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죽일지. 또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게 죽일지.”
담호의 섬뜩한 목소리가 객사를 둘러싼 사람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담호의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담호의 시선이 모중현을 향했다.
“나는 거짓말을 한 너의 이빨을 모조리 부수고, 혀를 뽑을 거야.”
“허튼소리 하지 마라.”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
담호가 모중현을 향해 걸어갔다.
방금 전과 달리 약간씩 그의 다리가 절고 있었다.
오른발을 찍고, 왼발을 끌어당겼다.
모두가 그 광경을 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담호를 비웃지 않았다. 방금 전에 그가 보여 주었던 광경이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으으! 오지 마.”
다리를 끌며 다가오는 담호의 모습에 모중현이 진저리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운양무관의 수석 교두로 위세 등등하던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몸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담호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조경의를 따라온 운양무관의 무인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마, 막아! 놈을 막으란 말이야.”
운양무관의 무인들이 조경의의 눈치를 봤다.
조경의의 표정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설마 담호가 이렇게 무모한 자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담호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으며, 더 무자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담호는 모중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 결정을 해야 했다.
“막아!”
조경의의 명이 떨어지자 운양무관의 무인들이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조경의도 움직였다.
스릉!
어느새 그의 손에는 청월검이 들려 있었다.
이신풍이 젊은 시절 사용했던 보검.
자르지 못할 것이 없고, 베지 못할 생명이 없다는 보검이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청월검을 쥐자 용기가 백배했다.
잠시 담호의 기세에 짓눌리긴 했지만 조경의는 손에 쥔 청월검과 십 수 년을 고련한 자신의 무공을 믿었다.
‘겁먹을 것 없어. 놈도 인간이야.’
쉬악!
청월검이 담호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진실을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 따윈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 담호를 죽여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운양무관의 무인들이 담호를 공격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운양무관을 있게 만든 무공들이 그들의 손에서 펼쳐졌다.
쉬아악!
검풍이 일어 담호를 덮쳐 갔다.
평소 연무할 때도 보여 주지 못했던 완벽한 초식들이었다. 만일 수련 중이었다면 잘했다고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을 만큼.
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담호였다.
콰쾅!
담호의 눈이 무서운 광망을 토해 내는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담호를 공격했던 무인들이 어육이 되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담호의 손이 청월검을 향해 뻗어 왔다.
“미친놈!”
조경의가 쾌재를 부르며 청월검에 공력을 주입했다. 이대로 담호의 손목을 잘라 버릴 속셈이었다.
덜컥!
하지만 청월검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담호의 손에 막힌 것이다.
베지 못할 물체가 없다는 청월검이었다. 그런 청월검이 담호의 손에 잡혀 있었다.
오지암파경을 운용하여 담호의 손에는 직접적인 타격이 없었지만, 조경의가 그런 사실을 알리 만무했다.
조경의는 입으로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어, 어떻게?”
담호는 대답하지 않고 반대편 손을 휘둘러 청월검의 검신을 후려쳤다.
파성추였다.
파캉!
쇳소리와 함께 청월검이 두 동강 났다. 부러진 검신이 무섭게 회전하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조경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어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담호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엔 어느새 부러진 청월검의 검편이 잡혀 있었다.
푸욱!
담호는 부러진 검편을 그대로 조경의의 이마에 꽂았다. 조경의의 몸이 통나무처럼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사, 사형!”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모중현이 소리를 쳤다.
그 순간 담호는 무너져 내리는 조경의의 몸을 타 넘어 그를 향해 쇄도해 오고 있었다.
펄럭이는 검은 장포,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그 사이로 번뜩이는 검은 눈동자.
사신(死神)이 존재한다면 꼭 그런 모습일 것이다.
“오, 오지 마!”
모중현이 담호를 향해 무공을 펼쳤다.
철포련(鐵砲鍊).
마치 쇠로 된 포탄을 날리 듯 일격에 모든 공력을 집약시킨 그만의 구명절초였다.
쾅!
담호의 파성추와 철포련이 부딪쳤다.
콰드득!
“으아악!”
순간 담호의 주먹과 부딪친 모중현의 오른팔이 송두리째 박살이 났다.
고통으로 모중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순간 담호의 주먹이 그의 입에 박혔다. 이빨이 송두리째 부서져 나갔다.
모중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담호의 거친 손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와 그의 혀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뽑아냈다.
뿌드득!
모중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혀가 뿌리째 뽑힌 입안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모중현은 새우처럼 웅크린 채 몸을 벌벌 떨었다. 담호가 그런 모중현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담호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모중현이 손을 뻗어 담호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헛되이 허공만 허우적거리다가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끄으으!”
모중현이 마지막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것이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한 행동이었다.
담호가 손에 들고 있던 모중현의 혀를 바닥에 던졌다.
“헉!”
곳곳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담호의 말이 생각났다.
이빨을 모조리 부수고, 혀를 뽑는다고 했다. 그리고 담호의 말처럼 모용현은 이빨을 모조리 잃고, 혀를 뽑혀 죽었다.
담호의 말처럼 된 것이다.
일련의 사건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서 어떻게 반응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홍암산장의 장주인 이신풍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어떻게 입장을 정하기도 전에 사건은 일어났고, 그의 눈앞에서 청월검을 하사받은 조경의가 죽었다.
당연히 담호를 응징하고 위신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이신풍은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마치 커다란 짐승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새까만 그 눈동자에는 살의가 가득했고, 그 하얀 이빨은 숨통을 물어뜯을 것처럼 날카로웠다.
담호의 새까만 눈동자가 이신풍을 향했다.
“음!”
이신풍이 인상을 찌푸렸다.
숨이 턱 막혀 왔기 때문이다.
그 역시 한평생을 강호에서 굴러먹은 노강호였지만, 담호처럼 살벌한 눈빛은 처음 봤다.
톡 건드리면 그 무서운 이를 앞세워 달려들 것 같았다.
담호가 이신풍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신풍으로서는 어떤 반응이라도 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이신풍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감히 홍암산장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간덩이가 부을 대로 부었구나.”
그의 음성엔 묵직한 힘이 담겨 있었다.
홍암산장의 주인으로서 위엄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이신풍의 위압감에 기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보통의 무인이 아니었다.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이신풍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신풍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떤 이유에서건 홍암산장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일. 순순히 제압당한다면 공정한 조사를 약속하겠다.”
“공정한 조사라…….”
“나 이신풍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다. 자네가 누구건, 어디서 왔건 절대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이신풍의 발언은 언뜻 들으면 매우 타당해 보였다.
감숙성에서 이신풍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대단했고, 그런 그가 보증을 한다면 누구도 쉽게 반발하지 못할 터였기 때문이다.
이신풍은 담호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의 무공이 강해 보이지만, 강호는 무공이 전부인 단순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신풍에겐 홍암산장의 수백 무인들이 있었고, 환갑잔치에 참가한 천여 명이 넘는 무인들이 있었다.
담호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담호가 자신의 말을 따를 거라고 생각했다.
“개소리!”
하지만 들려온 담호의 대답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뭐라?”
“못 들었나? 개소리라고 했어.”
“감히!”
이신풍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대협이라고 불리는 이신풍이었지만, 지금 담호의 발언은 참기가 힘들었다.
“네놈이 알량한 무력을 믿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네놈의 무공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순순히 제압당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홍암산장의 무인들이 이신풍의 뒤에 섰다.
그들의 수는 겨우 서른 명에 불과했지만 살벌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장주 직속인 혈화단(血花團)의 무인들이었다.
홍암산장에 해를 끼친 자를 지옥 끝까지 쫓아가 응징하는 임무를 맡은 자들이었다.
그만큼 무공도 강했고, 이신풍에 대한 충성심 또한 대단했다. 그들은 이신풍이 명령을 내리면 당장이라도 담호를 향해 달려 나갈 듯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혈화단의 무인들이 뒤를 받치자 이신풍의 얼굴에 진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뒷짐을 쥔 채 담호를 바라보았다.
“선택은 자네의 몫이네.”
“…….”
“단 후회할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건 진심일세.”
“오늘이 생일이지?”
“뭐?”
“태어난 날 관에 들어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 주지.”
순간 지독한 정적이 장내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