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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69화 (6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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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7장. 홀로 걷기에 강하다(1)

구무룡은 현 강호 최고의 기재를 의미했다. 수천, 수만의 젊은 무인들 중에서 최고라는 것은 단순히 무공만 강해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강력한 무력만큼이나 냉철한 두뇌와 상황 판단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승천하는 아홉 용의 자리에 오를 수가 없었다.

천뢰무객이라는 강맹한 별호로 불리고 있었지만, 남학은 단순히 무공만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고, 누구보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할 줄 알았다.

천여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방관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절대 끼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신풍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는 볼살을 푸들푸들 떨면서 노기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담호에게 직접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의 이신풍은 예전의 이신풍이 아니었다. 예전의 이신풍은 정말 강한 무공과 투지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이신풍에게는 예전의 웅지 따윈 기대할 수 없었다.

만일 자신이 이신풍 입장이었다면 뒷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담호에게 덤벼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반드시 죽였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우습게 보고 집요하게 덤벼드는 곳이 강호다. 그런 강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를 건들면 반드시 죽인다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남학은 그런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다고 확신했다.

남학이 담호를 노려봤다. 그의 눈이 투지로 빛나고 있었다.

“친구의 이름은? 자네의 말대로 충고를 하려면 이름 정도는 알아야겠군.”

누가 봐도 담호를 일부러 깔아뭉개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담호가 아무리 나대 봐야 구대문파의 하나인 공동파에 비할 수는 없다는 자신감이 그 안에 깔려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런 남학의 자부심을 느꼈다. 누구도 반론하지 않았다. 남학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담호에게 향했다. 그들은 모두 담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들려온 담호의 대답은 그들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너에게 충고나 듣자고 알려 줄 이름이 아니야.”

“뭐?”

“그리고 나는 네 친구도 아니고.”

순간 남학의 눈에서 불길이 이는 듯했다. 강렬해진 눈빛은 담호의 전신을 금방이라도 난도질할 듯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거 남학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존재감이 없을 줄은 오늘 처음 알았군.”

남학의 음성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남학이 담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의 기세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만뢰심공(滿雷心功).

공동파 내에서도 일인 비전으로 전해지는 심공으로 당대의 전승자가 바로 남학이었다.

만뢰심공을 대성하면 만뢰(滿雷)의 힘을 얻게 되는데, 그 파괴력은 가히 천하의 으뜸이라 할 만했다.

남학은 만뢰심공을 칠 성의 경지까지 익혔다. 팔 성부터는 노력이 아닌 깨달음의 영역이었기에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칠 성의 경지라도, 그 위력은 여타 무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남학은 자신감을 가졌다.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이긴다면 자네를 공동파로 데려가 합당한 벌을 받게 만들 테니까.”

“내가 이긴다면?”

“공동파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최소한 감숙성에 있는 무인들만큼은 이 일로 자네에게 어떤 후환도 끼치지 않을 거라네. 그렇지 않습니까?”

남학의 마지막 말은 이신풍에게 한 것이었다. 남학의 강렬한 눈빛을 받자 이신풍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이네. 우리 홍암산장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비록 찰나에 불과했지만 이신풍은 남학의 눈에서 번쩍이는 수많은 뇌전을 보았다.

‘이, 이것이 공동파의 저력.’

그래도 많이 따라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공동파의 저력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두터웠다.

공동파의 대제자인 남학이 저 정도일진대 장로나 문주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의 무력을 갖췄을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신풍이 담호를 바라봤다. 남학의 기세라면 담호도 조금은 위축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 순간 담호가 입을 열었다.

“후회할 텐데.”

“건방진!”

결국 참지 못한 남학이 먼저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쉬악!

남학의 주먹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려 퍼졌다. 공동파의 절학인 추운권(追雲拳)이었다.

구름을 쫓는다는 이름처럼 위력 또한 대단해서 남학이 자주 사용하는 권공이었다.

그 순간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그의 몸이 일직선을 그리며 남학을 향해 날아왔다.

그 어떤 변화나 눈속임도 없이 오직 앞으로만 전진하는 보법, 충보였다.

동시에 펼쳐지는 파성추.

콰앙!

담호와 남학의 주먹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으음!”

남학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혹독한 단련으로 인해 강철보다 단단해진 그의 주먹이었다. 그런 주먹이 담호의 주먹과 격돌하자 부서질 것처럼 아파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잠시 남학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반면 담호의 표정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세상에 나와서 파성추가 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어렸다.

그동안은 너무 쉬웠다.

어떤 무인도 그의 일 초를 제대로 받아넘기지 못했고, 그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벌벌 떨었다.

담호는 목숨을 걸고 무공을 익혔다. 당연히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었다. 머릿속에서 수천, 수만 번 그려 왔던 그런 치열한 싸움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만난 상대들은 누구도 담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런데 눈앞에 제법 강해 보이는 무인이 있었다.

그의 신분이나 배경 따위는 담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동파?

그것이 뭐가 어떻단 말인가?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순간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본신의 무력. 반드시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집념과 살의뿐이었다.

“크큭!”

담호의 입술을 비집고 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모든 감정이 타 버리고 재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에게도 즐거움이란 감정이 남아 있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도 웃고 있는 담호의 모습은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섬뜩한 느낌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미친놈!”

남학이 중얼거리면서 추운권의 다음 초식들을 풀어 나갔다.

혈풍추운(血風追雲), 추운단두(追雲斷頭)의 초식이 연이어 펼쳐졌다. 두 초식 모두 추운권에서도 상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퍼버버벙!

허공중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남학은 권기를 자유자재로 발출해 담호를 압박하려 했다. 하지만 담호는 머리를 좌우로 한번 흔드는 것만으로 남학의 권기를 모조리 피해 버렸다.

팟!

다시 한 번 펼쳐지는 충보.

성벽을 부수기 위해 돌진하는 충차처럼 그의 몸이 무서운 속도와 파괴력으로 남학에게 쏘아졌다.

“흥!”

남학이 코웃음을 쳤다.

단 한 번의 격돌로 충보의 허실을 파악한 그였다.

‘오직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보법, 파괴력은 막대하지만 피하면 그뿐.’

공동파의 이합보(離合步)는 이럴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단 한 번의 발놀림으로 십변(十變)의 변화를 가져오고, 상대는 잠시 허실을 찾지 못해 주춤하기 마련이었다.

그 순간부터 남학의 반격이 시작된다.

남학이 이합보를 펼쳐 담호의 충보를 피했다. 아니, 피했다고 생각했다.

팟!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직선으로 달려오던 담호의 신형이 갑자기 직각으로 팩 꺾인 것이다. 그 어떤 예비동작도 없이.

남학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천하의 그 어떤 무인도 저렇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다가 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몸이 망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렇게 급격하게 방향을 바꿨다가는 다리와 허리가 가중되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모두의 상식을 비웃듯 멀쩡한 모습으로 남학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와 검은 장포를 펄럭이며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담호의 모습은 이제까지 남학이 보아온 그 어떤 무인들과도 달랐다.

단순히 강하다, 약하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렵다.’

남학은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랬다. 담호에겐 타인을 두렵게 만드는 그 어떤 힘이 있었다.

“치잇!”

남학이 이를 악물며 담호에게 연이어 열두 번의 주먹질을 했다.

쉬쉬쉭!

강력한 내공이 실린 권격이었다. 한 번이라도 격중 하면 뼈와 살이 부러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풍신권(旋風神拳)이라 불리는 공동파의 절학이자, 남학이 즐겨 사용하는 성명절기였다.

열두 번의 주먹질이면 영혼까지 분쇄할 수 있었다.

담호는 이미 남학의 지척까지 쇄도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열두 번의 주먹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담호 역시 피할 생각이 없었다.

담호가 몸을 살짝 움츠렸다. 어깨가 둥글게 말리고 허리도 살짝 굽었다. 전체적으로 둥글게 변한 모습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담호는 다시 충보를 펼쳤다. 마치 자살해서 안달 나지 못한 사람 같았다.

남학의 열두 번의 주먹질에 실린 권기라면 담호에게 큰 타격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자신이 얼마나 큰 오판을 한 것인지 깨달아야 했다.

티티팅!

담호의 몸에 격중한 권가가 사선으로 빗겨 나가거나 튕겨 나갔다. 남학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다시 벌어진 것이다.

금구자(金龟子).

풍뎅이를 보고 만들어 낸 담호만의 독문 방호기공이었다. 남학의 공격은 모조리 사선으로 튕겨 나갔다.

“헉!”

남학은 이번에 정말 숨이 넘어갈 만큼 놀랐다. 그만큼 담호가 펼친 수법은 파격, 그 자체였다.

쉬악!

담호의 손이 뻗쳐 나왔다.

채찍처럼 뻗어져 나온 주먹질에 남학이 급히 양손을 교차로 막았다.

콰직!

“크헉!”

순간 남학은 복부에 큰 충격을 입고 허리를 새우처럼 구부렸다.

그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각도를 계산해 가슴을 막았는데, 복부를 얻어맞고 말았다. 이 역시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단양타(斷樣打).

담호가 만들어 낸 초식이었다.

채찍 같은 주먹질은 예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각도로 휘어져 들어온다.

마치 저 멀리 서역에서 전래된 유가권처럼 뼈마디가 순간적으로 빠져 자유롭게 움직이기에 적이 단양타의 궤적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럴 수가!”

남학이 밀리는 광경을 본 군웅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이신풍까지야 그렇다 치지만 설마 공동파의 장문제자이자 구무룡 중의 일원인 남학이 저렇듯 일방적으로 밀릴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학이 피를 토하며 훌훌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낭패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지만 남학 역시 절정에 달한 무인. 이대로 당하고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챠앗!”

순간 남학의 전신으로 엄청난 기파와 함께 뇌전이 흘러나왔다. 만뢰심공을 풀어낸 것이다.

빠지직!

허공중에 뇌전의 힘이 풀렸다.

비록 칠 성에 불과해 만뢰를 이루진 못했지만, 그래도 수십여 줄기의 뇌전이 그의 몸을 에워쌌다.

일단 뇌전에 직격당했다가는 몸이 숯구이가 된다.

혼신의 힘을 다해 펼쳤기에 그 위력 또한 대단했다. 하지만 담호는 망설이지 않고 뇌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미친!”

그 광경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경호성을 흘렸다. 담호가 제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저렇듯 뇌전이 작렬하는 곳에 몸을 날리는 것은 자살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담호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파스스!

담호의 몸이 부딪친 뇌전의 기운이 맥을 못 추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방패(防牌).

금구자와 마찬가지로 풍뎅이의 날갯짓에서 영감을 얻은 초진동 방호 기공이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펼쳐진 것이다.

방패에 부딪친 뇌전이 마치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뇌전에 가려져 있던 남학의 얼굴이 드러났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벌어진 입, 크게 치떠진 눈.

담호의 오른 손바닥이 그의 가슴에 흡착됐다.

오지암파경(五指巖破勁).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남학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그런 그의 가슴은 마치 벽력탄이라도 맞은 듯이 처참하게 헤집어져 있었다.

털썩!

남학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장내에 질식할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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