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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72화 (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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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8장. 장강의 물결처럼 만나고, 헤어진다(1)

쿵!

묵직한 소성과 함께 운마도강선이 선착장에 정박했다. 운마도강선이 정박한 곳은 형주(荊州)의 선착장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관계로 장강의 물이 불어났고, 곳곳에 급류와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운마도강선의 선장은 이대로 운행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비가 그칠 때까지 형주에서 쉬어 가기로 결정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이곳에서 정박하겠습니다. 최소한 이틀은 이곳에서 머물러야 할 것 같으니 모두 뭍에 올라가서 쉬십시오. 자칫해서 배가 떠내려가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선장의 말에 승객들이 급히 뭍으로 올라갔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비가 언제 그칠지 알 수 없었다. 표사들과 상인들은 배에 실려 있던 짐까지 내렸다.

자칫 정박해 있던 배가 급류에 떠내려가기라도 하면 짐을 모조리 잃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호와 방진보도 각자 말을 끌고 배에서 내렸다.

“일단 객잔부터 찾아봐야겠네요.”

“음!”

방진보의 말에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착장은 배에서 내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람들은 객잔을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밀려든 사람들로 인해 선착장 근처에 있는 객잔은 발붙일 틈이 없을 정도였다. 몇 곳이나 들렸지만 모두 빈방이 없었다.

“어떡하지?”

방을 잡지 못한 방진보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담호가 방진보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기로 가자.”

담호가 가리킨 곳은 선착장 인근의 폐창고였다.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그래도 지붕은 멀쩡해서 비바람을 피할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방진보는 담호의 의도를 알아차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노숙이라면 질릴 만큼 해 본 방진보였다. 이곳에서 또다시 노숙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폐창고로 들어갔다. 폐창고 안에는 부러진 목재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깨끗한 편이었다.

방진보가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하루 이틀 정도는 충분히 머물 수 있겠네요.”

“음!”

“제가 식사 준비를 할게요.”

방진보는 우선 부러진 나무들을 주워 모아 불을 피웠다.

담호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쓸 만한 목재들을 주워 모아 뚝딱 평상을 만들었다. 이 정도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모닥불을 피운 방진보는 봇짐을 풀러 주구를 늘어놓았다. 처음 폐창고로 들어올 때만 해도 투덜거렸는데, 이제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감돌았다.

그의 봇짐에 들어 있는 물건들 중 상당수는 바로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들이었다. 이곳에 오는 동안 틈틈이 모아 놓은 것들이었다.

방진보가 어떤 요리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 옷이 다 젖었네.”

“죄송합니다, 아가씨. 이곳에서 잠시만 쉬시지요.”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폐창고로 들어왔다.

“어? 진보네.”

“소청?”

방진보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소녀는 바로 은소청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종리수가 있었다.

방진보다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여긴 어떻게?”

“빈 방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네. 너도?”

“응!”

방진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소청이 방진보의 앞에 늘어서 있는 주구를 보며 눈을 빛냈다.

“여기서 음식을 하려고?”

“응!”

“잘됐다. 나도 먹으면 안 돼?”

은소청의 발언에 종리수가 기겁했다.

“아가씨, 방을 구하러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뭐가 어때? 방을 구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가씨, 그래도…….”

“빈방을 잡으면 그때 가도 늦지 않아.”

은소청은 아예 방진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런 은소청의 모습에 종리수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은소청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방진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본 순간 방진보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지, 진짜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려고?”

“응! 배고파. 안 돼?”

“그건 아니고…….”

“히히! 맛있게 해 줘.”

“응!”

방진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잡았다.

휴대할 수 있는 조그만 도마에 각종 식재료들을 올려놓고 자르기 시작했다.

투두두둥!

도마 위로 주도가 춤을 주었다.

“와아!”

방진보의 경쾌한 손놀림에 은소청이 감탄사를 토해 냈다.

직사각형의 주도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무림 고수가 검을 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방진보는 곁에 은소청이 있다는 사실도 잊고 요리에 열중했다. 그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듯한 그 표정을 은소청이 신기하단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본 은소청이었다. 그녀가 만나 본 그 어떤 사람도 방진보처럼 생기 있게 웃진 못했다.

“흐응!”

은소청이 턱에 손을 괸 채 방진보를 바라보았다.

치이익!

뜨겁게 달궈진 과자에 기름을 두르고, 다듬은 재료들을 순서대로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건해삼을 넣고 한 번 더 세게 볶았다.

금사오룡(金絲烏龍)이라는 요리였다.

“와아!”

순식간에 완성된 음식의 모습에 은소청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것은 종리수도 마찬가지였다.

방진보의 요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커다란 솥을 불에 올리고 잘 말린 곡물 가루와 금사오룡을 만들고 남은 재료들을 몽땅 쏟아부었다.

방진보는 봇짐을 뒤져 양고기 육포와 각종 향신료를 꺼냈다. 육포를 잘게 찢어서 솥에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뒤이어 각종 향신료로 맛을 내기 시작했다.

“좋아!”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은 바로 양고기 죽이었다. 비록 생고기가 아니라 농후한 맛은 덜했지만, 그래도 풍미는 제법 살아 있었다.

“헤헤! 오래 기다렸죠? 다 완성되었어요.”

방진보는 나무로 만든 그릇에 양고기 죽을 한 그릇 퍼 주었다.

“맛있겠다.”

은소청이 죽 그릇을 받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방진보가 종리수에게도 죽을 담은 그릇을 건넸다.

“형도 드세요.”

“나는…….”

종리수가 난감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어머! 너무 맛있어.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가…….”

은소청의 감탄사가 폐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진심 어린 표정에 종리수가 죽 그릇을 받아 들었다.

방진보는 웃으면서 담호에게도 죽을 건넸다.

종리수가 조심스럽게 죽을 떠먹었다. 순간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은소청의 감탄사가 거짓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그가 먹어 본 그 어떤 죽보다 맛있었다.

“이것도 먹어 봐요. 정말 맛있어요.”

은소청은 어느새 금사오룡을 부지런히 먹고 있었다. 금사오룡을 입에 한가득 넣고 오물오물 씹는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종리수도 은소청을 따라 금사오룡을 맛봤다.

“하!”

혀끝에 음식이 닿는 순간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은소청을 호위하면서 그래도 많은 음식을 맛본 종리수였지만, 방진보의 음식만큼 담백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은 맛보지 못했다.

“이 정도면 우리 세가의 장 숙수 아저씨보다 훨씬 맛있겠는데.”

“…….”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종리수도 내심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정말 맛있구나. 어린 소년의 솜씨가 이렇게 뛰어나다니.’

그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방진보를 바라봤다.

방진보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종리수의 시선이 평상 위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하는 담호를 향했다. 은소청과 자신이 이곳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담호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도 과묵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담호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았다.

종리수는 은밀한 시선으로 담호를 살폈다.

‘무공을 익힌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종리수로서는 일말의 가능성까지 모두 계산해야 했다.

담호가 적의를 가지지 않은 것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담호에 대해 탐색을 하려고 했지만, 마치 안개가 드리워진 것처럼 모든 것이 모호하기 그지없었다.

잔뜩 경계를 하는 종리수와 달리 은소청은 너무나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마침내 그릇을 모두 비운 은소청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 맛있었어. 넌 정말 대단하구나.”

“헤헤!”

“내가 먹어 본 그 어떤 음식보다 네가 해 준 음식이 맛있어.”

은소청의 극찬에 방진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자신의 요리 하나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 방진보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삶의 활력을 얻었다.

방진보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형은 어땠어요?”

“맛있구나.”

“헤헤!”

“잘 먹었다.”

담호가 빈 그릇을 방진보에게 넘겨주었다.

“쉬고 계세요. 금세 설거지할 테니까요.”

방진보는 다른 이들의 그릇까지 모두 솥에 모아서 밖으로 나갔다.

창고 추녀 끝으로 떨어지는 빗물로 설거지를 하려는 것이다.

은소청은 미소 띤 얼굴로 설거지를 하는 방진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리 좋을까? 난 저렇게 요리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저도 그렇습니다.”

종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소청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아저씨, 혹시 계속 여기 계실 거예요?”

“…….”

“저 밥 먹으러 여기 놀러 와도 돼요?”

“진보만 괜찮다면.”

“그럼 진보의 허락만 받으면 되는 거죠?”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소청이 활짝 웃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미모가 출중한 은소청이었다. 그녀의 웃음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담호는 몇 년 만 더 지나면 그녀가 강호를 뒤흔들 미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은소청이 갑자기 설거지를 하는 방진보에게 달려갔다.

“아가씨!”

등 뒤에서 종리수가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은소청이 방진보에게 무어라 말을 건넸다. 그러자 쑥스러운 표정으로 방진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종리수의 수하들이 폐창고로 들어왔다. 빈방을 찾으러 갔던 사람들이었다.

“겨우 마지막 방을 얻었습니다. 대주.”

“수고했다.”

종리수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담호를 바라봤다.

그가 담호에게 포권을 취했다.

“좋은 음식 고맙소. 덕분에 호강을 했소. 다음에 또 뵙겠소이다.”

담호는 대답하지 않았고, 종리수 또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바로 몸을 돌렸다.

종리수와 수하들이 은소청에게 다가갔다.

“방을 구했습니다. 이제 가시지요, 아가씨.”

“응!”

은소청이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녀는 방진보에게 손을 흔들었다.

“또 올게.”

“응!”

“그때도 맛있는 음식 해 줘야 해.”

“응!”

방진보가 힘차게 대답했다.

은소청과 종리수 등이 빗속으로 뛰어나갔다.

방진보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음 날 방진보는 은소청이 오기를 기대하며 음식을 했다. 하지만 은소청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비가 그치고 배에 올라탄 후에 그녀와 같은 객잔에 머물렀다는 상인들에게 우연히 들었다.

방진보와 헤어진 다음 날 그녀들 일행이 급히 떠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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