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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80화 (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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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2장. 의도치 않은 만남은 문제를 부르기도 한다(2)

도학경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무어라? 지금 뭐라고 했소?”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금사오룡이었다.

최고로 좋은 해삼과 고기를 이용해서 최고의 솜씨로 만들어낸 예술 작품을 한낱 뚱보가 만든 음식과 비교를 하다니.

그에겐 씻을 수 없는 치욕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가 만든 금사오룡이 맛이 없단 말이오?”

“전 이미 최고의 금사오룡을 맛본 것 같네요. 물론 그것은 식선께서 만드신 요리는 아니에요.”

은소청이 손수건으로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닦아 냈다.

도학경이 만든 금사오룡은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은소청에겐 어딘지 모르게 부족했다.

평소라면 에둘러 말하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학경의 오만함에 질린 은소청은 자신도 모르게 톡 쏘아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도학경의 심기를 거슬리고 말았다.

“내가 만든 것이 맛이 없다니. 네놈도 그렇느냐?”

“네?”

방진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어르신이 만든 음식은 정말 맛있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 모양, 그 꼴이냐?”

“제가 어쨌다고?”

“왜 그렇게 떨떠름한 표정을 짓느냔 말이다.”

도학경의 목소리가 오층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에 다른 식탁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일제히 방진보 등을 바라보았다.

방진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설마 천하제일숙수라는 도학경에게 이런 눈빛을 받을 줄은 몰랐다. 방진보가 담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담호의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이 열렸다.

“입맛만 버렸군.”

“…….”

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더할 수 없이 냉각됐다.

“혀, 형?”

방진보는 아예 눈물을 흘릴 듯 했다.

도학경의 날카로운 눈빛이 담호를 향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맛없다고 했어.”

“감히 이 도학경을 우롱하려는 것이냐?”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도학경이 지금 느끼는 분노는 엄청났다.

담호가 고개를 들어 도학경을 바라봤다. 순간 도학경이 움찔했다.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은 담호의 눈빛은 일반인에 불과한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긴장을 한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꾸욱!

종리수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담호의 눈빛을 본 순간 전신의 근육이 경직되면서 목덜미가 빳빳해져 왔다. 손발이 저릿한 것이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힌 종리수가 그럴 진데 도학경이 담호의 눈빛을 마주 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도학경이 얼른 고개를 돌려 담호의 눈빛을 피했다.

담호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음식에 장난질을 했군.”

“무, 무슨?”

도학경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당장이라도 담호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담호의 눈빛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천하제일루의 수석 숙수로 일하면서 수많은 고관대작들과 무인들을 만나 본 도학경이었다. 하지만 맹세코 그들 중 누구도 담호만큼 그에게 두려움을 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학경은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술만 벙긋거릴 뿐 도저히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무슨 소란인가?”

낯선 음성이 오 층에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음성이 들려온 곳을 향했다.

사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장년인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청수한 얼굴에 멋스럽게 기른 수염과 하얀색 장포가 무척이나 잘 어울려보였다.

그를 본 순간 은소청의 안색이 바뀌었다.

“외숙!”

“소청이구나.

계단을 올라오는 장년인은 바로 의선문의 문주인 심우원이었다. 그의 등 뒤로 의선문의 무인들 십여 명이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눈빛이 강렬한 것이 느껴지는 기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심우원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게…….”

“이들이 저의 요리를 모욕했습니다.”

은소청이 어찌 대답할지 난감해할 때 도학경이 앞으로 나섰다.

의선문은 천하제일루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적어도 이곳 원강에서만큼은 그들이 절대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도학경의 기가 살 수밖에 없었다.

도학경의 시선이 담호와 방진보를 향했다.

“정말인가?”

“그게 아니에요, 외숙.”

“너는 가만있거라.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심우원이 은소청을 무시했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조카였지만,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해야 했다.

천하제일루에서 한 해에 벌어들이는 돈은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 중 상당수가 의선문으로 흘러들어온다.

도학경이 천하제일 숙수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의선문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도학경의 명예를 지켜야 했다.

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면 천하제일루의 명예가 떨어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길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의선문에 돌아올 것이다.

도학경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을 곁에 둔 개가 그러하듯 그 역시 든든한 후원자인 심우원이 있기에 그토록 당당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은소청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일이 이렇게 커질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심우원의 시선이 방진보를 향했다.

의가(醫家)인 동시에 무가(武家)이기도 한 의선문이었다. 당연히 문주인 심우원 역시 의원이면서도 무인이기도 했다. 그것도 매우 고강한 무공을 익힌.

그런 심우원의 눈빛을 어린 방진보가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방진보가 급히 심우원의 눈을 피했다.

“나는 정말이냐고 물었다. 정말 그의 요리를 모욕했느냐?”

“그건…….”

“맛이 없었어.”

방진보 대신 담호가 나섰다.

심우원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모두가 그를 천하제일숙수라고 하네. 그런데 그의 음식이 맛이 없단 말인가? 억지를 부리는군.”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담호의 말에 심우원의 등 뒤에 있던 무인들이 발끈해 나섰다.

“감히 이분이 누군 줄 알고 망발을 하는 것이냐?”

“예의를 지켜라.”

금방이라도 담호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심우원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심우원이 담호를 바라봤다.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뭐? 맛없다는 거?”

“그렇다. 이곳에 온 손님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제까지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것은 아니지.”

“나로서는 자네들이 괜히 시비를 거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군. 오늘은 내 질녀의 체면을 보아 곤히 보내 줄 테니 이만 나가 보게.”

심우원으로서는 최대한의 예의를 차린 셈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담호와 방진보를 혼내주고 싶었지만 곁에서 은소청이 지켜보고 있었다.

사적으로는 질녀인 은소청이었지만, 은가보의 금지옥엽이기도 했다. 은가보가 마음을 먹고 돈줄을 잠그면 호남 전체의 경제가 마비된다.

제아무리 의선문이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고 하지만 돈줄이 마르면 끝이었다.

은소청의 아비 은일명은 능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은소청을 자신보다 끔찍이 아꼈다. 만일 은소청이 원한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돈줄을 잠글 것이다.

“정중히 말할 때 나가도록. 천하제일루에 자네들 같은 손님은 필요 없으니까.”

“외숙!”

당황한 은소청이 외쳤지만 심우원은 단호했다.

“당장!”

그의 말에 부하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그 모습을 보며 도학경이 미소를 지었다.

‘감히 내 요리를 모욕하더니 꼴좋다.’

누구도 자신이 만든 요리를 폄하할 수는 없었다. 그저 만든 대로 맛보고 감탄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일어나라.”

심우원의 부하중 하나가 담호의 어깨에 손을 댔다.

순간 담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 손 놔. 죽고 싶지 않으면.”

“웃기는군. 정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구나.”

담호의 어깨에 손을 댄 이가 공력을 끌어올렸다.

“형!”

방진보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는 다음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콰앙!

천하제일루가 흔들렸다.

압축되어 있던 공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면서 탁자와 집기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덩달아 식사를 하던 손님들까지도 나동그라졌다.

스르륵!

벽에 시뻘건 물체가 붙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물체였다.

“우욱!”

물체를 본 순간 바닥에 나뒹군 손님들이 욕지기를 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짓이겨지긴 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인간이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그가 한 일이라고는 담호의 어깨를 잡은 것밖에 없었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육처럼 짓이겨져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심우원의 어깨에 잔 경련이 일어났다.

그는 이유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담호의 어깨가 움직인다 싶은 순간 뇌음이 울리고, 수하가 날아갔다. 그리고 저렇게 끔찍한 몰골이 되었다.

스르륵!

벽에 붙어 있던 수하의 시신이 미끄러져 내렸다. 이목구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고, 가슴뼈는 움푹 함몰된 채 갈비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차마 마주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우욱!”

이제까지 기세등등하던 도학경이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매일같이 돼지나 소의 사체를 만지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인간의 시체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담호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모두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만히 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일단 담호가 움직이자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압박감이 사위를 짓눌렀다.

“크윽!”

심우원의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짐승의 눈동자. 그 속에 담긴 찐득한 살의.

평생 의선문이라는 틀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심우원이었다. 그런 그가 단 한 번도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런 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왜 이 눈을 못 봤지?’

문득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자신이 도학경의 말만 믿고 너무 성급하게 대응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너무 많은 이들의 시선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그게 무슨 상관이야?”

“뭐?”

“내가 누군 게 그렇게 중요하나?”

담호가 심우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리를 조금씩 절룩이면서.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웃지 못했다.

‘웃으면 죽는다.’

그 순간 오 층에 있던 모두의 뇌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것은 심우원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가 대단한 무공을 익힌 고수라고 자부했지만, 담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오금이 저려 왔다.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세 좋게 소리를 치던 무인들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었다.

담호가 마침내 심우원 앞에 섰다.

그의 입술이 열렸다.

“그래서 뭐라고?”

심우원은 담호의 숨결에서 짐승의 비린내를 맡았다. 산 것을 잡아먹고 살아남은 짐승만이 갖고 있는 고약한 죽음의 냄새를.

심우원의 턱 근육이 씰룩였다. 그는 무슨 말이라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호남 오대문파 중 하나라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제대로 된 싸움 한번 해 본 적 없는 문파가 바로 의선문이었다. 게다가 태반이 무공보다는 의술에 힘을 쓰는 의원들.

결정해야 했다.

담호와 싸울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체면을 구기고 물러날 것인지. 그 어느 것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의 이마에서 진땀이 흘러내릴 때였다.

“형!”

방진보의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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