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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87화 (8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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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4장. 혈성이 움직이니 피바람이 불어온다(3)

담호가 고개를 들었다.

좌문효와 형산파의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이 흉흉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에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담호의 시선이 발치에 뒹굴고 있는 시신을 향했다. 살아생전 안교익이라고 불렸던 자였다.

놈은 흑호단의 일원이었다.

안교익은 흑호단이 해산한 이후 천하를 떠돌다가 이곳에 정착했다. 안교익은 도적치고 제법 똑똑했다.

그의 수중엔 제법 많은 돈이 있었다. 그리고 안교익은 돈을 쓸 줄 알았다.

먼저 장원을 세우고, 주위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베풀어 인심을 얻었다. 그 후 지역의 유력자들과 교분을 나누기 시작했고, 조금씩 그 영향력을 넓혀갔다.

사업수단을 발휘해 제법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다시 유력문파들에게 투자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형산파였다.

안교익은 대인인 척했지만 실제로는 의심이 매우 많았다. 교분을 나누는 척하면서 그들의 약점을 조사했고, 그런 약점들을 비밀 장부에 적어놓았다.

주위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 혼인조차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이 넓은 안가장에 수하는 있어도 그의 혈육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의심이 많은 주제에 안교익은 노철보다 인내심이 약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토해 냈다.

문제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담호가 좌문효에게 물었다.

“뭐지?”

“뭐라니? 이놈! 안가장에서 이런 참극을 저지른 주제에 뭐라고?”

좌문효의 노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가 담호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나뒹구는 시신이 안교익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의 눈은 온통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계획에 가장 큰 후원자를 잃었다. 안교익이 죽은 이상 태황전을 개축하는 계획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태황전을 세우는 것이 늦어지면, 그만큼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일도 늦어진다. 아니, 좌문효가 세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형산파의 영역에서 살인을 저지르다니.”

담호가 좌문효를 빤히 바라봤다. 그 모습이 좌문효를 열 받게 하면서도 이상하게 꺼림칙하게 만들었다.

담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뭘 말이냐?”

“강호의 은원엔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 아니란 걸.”

“감히 형산파의 장문인인 이 좌문효에게 협박을 하는 것이냐?”

“협박이 아냐. 충고를 하는 거지.”

“놈! 광오하기 그지없구나. 네가 뭘 믿고 그렇게 오만하게 구는지 지켜보마.”

“후회할 텐데.”

담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반대로 좌문효의 목소리는 커졌다.

“이제껏 나에게 그런 망발을 한 자는 없었다. 설령 구대문파의 장문인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장문인.”

옆에 있던 채규가 좌문효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좌문효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채규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보통의 무인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비록 돈으로 샀다고 하지만 안가장의 무인들 수준도 제법 높았다. 그런 이들 수십 명이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몰살을 당했다.

일반적인 무인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강호에 이런 무인이 있었던가?’

채규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와 같은 특징이 있는 자를 떠올리지 못했다.

좌문효가 외쳤다.

“뭐하느냐? 어서 저놈을 제압하지 않고. 반드시 살려서 내 앞에 무릎을 꿇려라. 내가 직접 처벌할 테니까.”

“예!”

형산파의 무인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들은 채규가 어떻게 말릴 사이도 없이 담호를 향해 덤벼들었다.

형산파 무인 백 명이면 어지간한 중소문파 하나를 지워 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형산파가 아직도 호남 오대문파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챠앗!”

선두에 선 형산파의 제자가 기합과 함께 담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런 그의 얼굴엔 공명심이 가득했다.

그때까지도 담호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 형산파의 제자가 쾌재를 불렀다.

‘네놈은 내 거다.’

쾅!

그 순간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이 전해지고 형산파 제자의 사고가 뚝 끊겼다. 담호의 파성추가 작렬한 것이다.

핏덩이로 변한 제자가 포탄처럼 뒤로 날아가 뒤따라오던 다른 사람들을 덮쳤다.

“크억!”

“제기랄!”

십여 명이 한데 뒤엉켜 바닥을 나뒹굴었다.

담호가 좌문효가 있는 곳을 향했다.

오른발을 찍고, 왼발을 끄는 일련의 동작이 반복됐다. 보통 때라면 절름발이가 허세를 부린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좌문효는 그럴 수 없었다. 담호가 다가올수록 심상치 않은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좌문효가 다시 소리쳤다.

“뭐하느냐? 어서 놈을 제압하지 않고.”

잠시 멈칫했던 형산파의 무인들이 다시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놈이다. 겁먹을 필요 없어.”

“와아아!”

형산파 제자들의 함성이 안가장에 울려 퍼졌다.

마치 기러기 때처럼 날아오는 그들을 보며 담호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지옥을 보고 싶다면…….”

팟!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보여 주지.”

그의 몸이 선두에서 달려오던 형산파 무인의 몸을 들이박았다.

콰직!

섬뜩한 파골음과 함께 형산파 무인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그런 무인의 칠공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가해진 엄청난 압력과 충격에 전신의 핏줄이 모조리 터져 나간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담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누군가 죽어 나갔다. 그 누구도 담호의 일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팔로 막으면 수수깡처럼 부서져 나가고, 발로 막으려 하면 관절이 박살 났다.

“크악!”

“악!”

처절한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담호는 마치 양 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 같았다. 양 떼가 아무리 많아도 호랑이를 물을 수 없는 것처럼 형산파 무인들은 담호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흉포한 바람이 안가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형산파 무인들의 시신만이 나뒹굴었다.

“미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좌문효와 채규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콰앙!

벽력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서너 명의 무인들이 피 떡이 되어 날아갔다. 그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방죽이 무너지듯 형산파 제자들이 무너져 내리고 담호가 짓쳐 오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그 사이로 번뜩이는 한없이 검은 눈. 그리고 펄럭이는 검은 가죽 장포.

그 어떤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그제야 좌문효도 담호가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쉽게 건드릴 만큼 녹록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의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

벌써 그가 데려온 제자들 절반이 담호의 주먹 아래 혈구가 되었다. 핏덩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절대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목이 꺾어진 채 혀를 내민 남자는 그의 직전 제자인 묘공이었다. 재치가 뛰어나 좌문효가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던 제자였다.

가슴이 움푹 함몰된 채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소년은 뛰어난 오성을 지녀 모든 이의 사랑을 받던 주운평이었다.

그 외에도 그가 데리고 있던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좌문효가 담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멈춰라! 이 악마 같은 놈!”

어느새 그의 손에는 형산파의 보검인 청평검(淸平劍)이 들려 있었다.

좌문효는 형산파의 비전 절학인 현천수류검(玄天水流劍)을 펼쳤다.

쉬아악!

청평검에 검기가 맺혔다.

흐릿하던 검기는 뚜렷한 형상을 갖추더니 이내 수십 개로 분열해 담호에게 날아들었다.

현천수류검의 절초인 섬전비검(閃電飛劍)이었다.

비록 성격이 급하지만 형산파 제일의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좌문효였다. 그의 검에 실린 검기는 커다란 바위를 단숨에 두 동강 낼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섬전비검이 담호의 목을 노렸다.

형산파의 무인 한 명을 짓밟은 담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좌문효의 검을 바라봤다.

형산파의 장문인이라고 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문파의 장문인이라면 느껴지는 압박감도 대단해야 했다. 적어도 담호의 생각에는 그랬다.

검초는 날카로웠고, 그에 담긴 힘도 대단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 안엔 상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도, 힘으로 짓눌러야겠다는 기백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스로 검로를 찾은 무인의 검은 저럴 수가 없다. 저건 죽은 검초였다.

담호가 비처럼 쏟아지는 검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대지를 박차는 순간 그의 몸은 벌써 한 줄기 선을 그리고 있었다.

공기를 가르는 검은 선의 끝에 좌문효가 있었다.

쾅!

파성추가 작렬했다.

하지만 좌문효도 무시 못 할 고수. 간발의 차이로 검신을 들어 전면을 막았다.

담호의 주먹이 작렬한 청평검의 검신이 활처럼 휘었다. 동시에 좌문효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크윽!”

좌문효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몸을 관통하는 충격에 내장 전체가 울리는 것 같았다. 청평검의 검신에 균열이 간 것이 보였다.

“용서하지 않겠다.”

좌문효가 몸을 뒤집으며 현천수류검의 절초를 연이어 쏟아 냈다.

쉬쉬쉭!

이젠 좌문효도 필사적이었다. 그만큼 그의 검에 어린 살기도 짙어졌다.

“장문인!”

채규가 그런 좌문효를 보며 소리를 쳤다.

그는 싸움에 뛰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좌문효의 기세가 너무나 살벌해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비친 좌문효의 표정은 너무나 절박했다. 채규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좌문호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죽어랏!”

좌문효의 외침이 크게 울려 퍼졌다.

그의 검에 어렸던 검기가 부챗살처럼 펴지며 담호를 덮쳐 왔다.

그 순간 담호의 왼쪽 다리가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뒤를 이어 그의 허리가 회전을 하며 오른쪽 다리가 팽이처럼 돌아 나왔다.

탄마각(彈魔脚).

마교가 지하공동에 버린 절기가 담호의 몸을 통해 펼쳐지고 있었다.

이름은 같았지만 마교의 탄마각과는 달랐다.

담호가 다시 만들어낸 그만의 탄마각이었다.

콰드드득!

마치 밀려오는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성처럼 좌문효의 검기가 탄마각에 휩쓸려 사라져 갔다.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좌문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담호의 손바닥이 만개한 매화처럼 활짝 펼쳐졌다. 좌문효는 청평검으로 담호의 손을 베어 버리려 했다.

그 순간 담호의 손바닥이 살짝 오므라지며 청평검과 맞닿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쩌엉!

청평검이 마치 유리처럼 터져 나갔다. 오지암파경(五指巖破勁)이 펼쳐진 것이다.

“크윽!”

좌문효가 피를 토했다. 청평검이 부서지는 충격으로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담호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무방비 상태인 좌문효의 가슴을 향해 담호가 연이어 세 번의 주먹질을 했다.

삼격포영권(三擊砲砲影拳).

이 역시 마교가 남기고 간 무공이었다. 마찬가지로 담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냈다.

“멈춰랏!”

채규가 뒤늦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콰콰쾅!

담호의 주먹이 연이어 좌문효의 가슴에 작렬했다. 그것도 똑같은 자리에.

첫 번째 주먹질에 가슴뼈가 모조리 부서졌고, 두 번째 주먹질에 내장이 전부 짓이겨졌다. 그리고 마지막 주먹질은 좌문효의 심장을 터트렸다.

좌문효가 칠공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허윽!”

바닥에 처박힌 좌문효가 흐릿한 눈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미 죽음의 신이 내려앉았다.

대라신선이 와도 죽음의 신에게서 그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담호의 차가운 눈빛이 좌문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했잖아.”

“무, 무슨?”

“강호의 은원에 함부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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