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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92화 (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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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6장. 세상은 넓지만,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2)

초연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도 부모는 있었고, 존경할 만한 분들이었다. 실제로 초연운은 부모를 무척이나 존경했다.

황보영천의 욕설은 비단 그뿐만 아니라 부모까지도 개로 격하시켰다. 강호 제일의 낭만객이라고 자부하는 초연운로서도 참기 힘든 욕이었다.

초연운이 어슬렁거리며 황보영천을 향해 다가갔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팽만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제기랄!”

황보영천이 나가도 너무 나갔다.

자존심으로 사는 것이 강호인이었다. 하물며 부모를 개라고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존심이 있는 강호인이라면 참을 리 없었다.

황보영천은 지금도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팽만영이 나섰다.

“미안하오.”

“당신에게 용무 없소.”

“그는 내 동료요. 당연히 나의 일이기도 하오.”

팽만영의 말에 초연운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팽만영에게서 느껴지는 기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초연운이었다. 강호제일의 낭만객을 자처하지만, 그렇다고 모욕을 당하고도 그냥 물러날 만큼 무르지도 않았다.

“그럼 당신 말고 동료에게 사과시키겠소?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부모를 개라고 욕하는 것은 진짜 아닌 것 같은데.”

“미안하오.”

“말했잖소. 당신이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초연운의 시선이 황보영천을 향했다.

그의 눈빛은 매우 강렬했다. 그에 팽만영이 침음성을 흘렸다. 눈빛만으로도 상대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황보영천이 발끈했다.

“뭐야?”

“사과해! 나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이 황보영천에게 사과를 하란 말이야?”

“네가 황보영천이라도 상관없고, 그 할아비라도 상관없어.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만하면 개소리도 수준급이구나.”

“하! 개새끼에 이어 개소리? 사람을 아주 개로 만드는구나.”

초연운이 황보영천을 노려봤다.

순간 초연운의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터져 나왔다. 그에 황보영천이 처음으로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노성을 내뱉었다.

“나는 황보세가의 황보영천이다. 네놈은 누군데 감히 나에게 이런 망발을 하는 것이냐?”

“내가 누군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황보세가의 사람이라는 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아.”

“그럼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네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모욕했단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이 자식이 말장난을 하나?”

황보영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콧김을 뿜어내는 그의 모습이 꼭 성난 황소 같았다.

팽만영이 황보영천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영천, 사과하게.”

“뭘?”

“자네가 선을 넘었어. 저자가 아닌 누구라도 그런 모욕은 참지 못했을 거야.”

“큿! 자네까지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가?”

“사과하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야. 나는 자네가 사과했으면 좋겠네.”

팽만영의 눈이 번뜩였다. 그러자 사나운 빛이 흘러나왔다. 그에 황보영천이 움찔했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황보영천이었지만, 팽만영은 영 거북한 상대였다.

비단 같은 오대세가의 일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팽만영은 강했다. 황보영천이 꺼림칙한 기분을 느낄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팽만영에게 등을 떠밀려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황보영천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절대 사과할 수 없어.”

“영천.”

“이건 내 자존심이 걸린 일이라구.”

황보영천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초연운이 중얼거렸다.

“그따위 개떡 같은 자존심이 그렇게 중요한가? 사내답지 못한 녀석이군. 황보세가가 덩치만 큰 개를 세상에 내놨군.”

그의 목소리는 매우 작은 듯했지만, 모든 사람의 귀에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렸다.

황보영천이 팽만영을 밀치고 초연운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감히 황보세가를 모욕하다니.”

“황보세가를 모욕한 게 아니야. 너를 모욕한 거지. 이 덩치만 커다란 개자식아.”

“놈!”

화가 머리끝까지 난 황보영천이 앞뒤 가리지 않고 초연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쉬아악!

주먹보다 강력한 권풍이 초연운을 향해 밀려왔다.

황보세가의 절기 중 하나인 벽력신권(霹靂神拳)의 일초식인 벽력혈천(霹靂血天)의 초식이었다.

“앗! 위험해.”

“저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지만, 정작 상대인 초연운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상체가 가볍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황보영천의 주먹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대로 황보영천이 발산한 경력이 발출되게 놔두며 배가 큰 피해를 입을 터였다.

그 순간 초연운의 손이 뱀처럼 황보영천의 팔뚝을 휘감았다.

“흥!”

황보영천이 코웃음을 치며 초연운의 손을 떨쳐 내려고 했다. 하지만 황보영천이 경력을 발산하려는 순간 초연운의 손가락이 그의 팔꿈치 소해혈을 잡았다.

“크윽!”

황보영천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소해혈에서 시작된 통증이 팔 전체로 번져가며 힘이 빠졌기 때문이다.

“어디서 사술을…….”

“팔황신권(八荒神拳)을 사술이라고 말하는 멍청이는 너밖에 없을 거야.”

“뭐?”

타타타타!

순간 초연운의 주먹이 빠른 속도로 황보영천의 전신을 두들겨 댔다.

단순히 주먹에 힘을 실어 육체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

초연운의 주먹이 두드리는 곳은 황보영천의 요혈.

“크윽!”

황보영천의 몸이 마치 폭풍에 휩쓸린 갈대처럼 정신없이 흔들렸다.

“영천!”

뒤늦게 팽만영이 소리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쾅!

마지막 일격이 황보영천의 관자놀이에 적중됐다.

“커헉!”

황보영천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황보영천의 동공에 초점이 풀려 있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초연운이 황보영천을 보며 중얼거렸다.

“꼭 말로 하면 못 알아듣는 족속들이 있어요.”

“팔황신권…… 당신은 취운룡 초연운이군.”

그 순간 팽만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황신권이란 이름을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바로 백전문주 장일산이 직접 창안한 무공이기 때문이다.

참마신도라는 별호를 얻을 만큼 장일산은 도법의 극의를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정작 창안한 무공은 바로 팔황신권이라는 이름의 박투술이었다.

팔황신권에는 장일산이 마교와의 싸움을 통해 얻은 심득이 모조리 녹아 있었다. 특히 상대의 뇌기를 이용해 상대의 신경을 제압하거나, 혈도를 태우는 수법은 팔황신권만의 특징이기도 했다.

장일산은 자신이 창안한 무공을 유일한 제자인 초연운에게 익히게 했다. 장일산을 제외하면 초연운이 팔황신권을 익힌 유일한 인물이었다.

“맞소! 내가 초연운이오.”

“당신의 뜻이 백전문 전체의 뜻이오?”

“아니!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일이오. 부모 욕하는 걸 듣고도 참는다면 그거야말로 개새끼가 아니겠소?”

“당신 위험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군.”

팽만영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초연운의 말은 원론적으로는 옳았다. 문제는 그들의 신분이었다. 한쪽은 백전문의 소문주이고, 다른 한쪽은 황보세가의 직계 혈족이었다.

백전문의 소문주가 황보세가의 혈족을 박살 냈다. 단순히 개인 간의 은원이 아니라, 문파 간의 분쟁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황보세가도 대단한 곳이지만, 백전문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황보세가만큼의 역사가 없기에 축척된 힘은 적었지만, 대신 그들에게는 백전전승기가 있었다.

백전전승기는 곧 강호 동도들이 백전문에 보내는 경외와 신뢰의 상징. 그런 백전전승기가 위협을 받는다면 수많은 문파들이 백전문에 몰려들 것이다.

백전문과 황보세가의 싸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초연운이 이 모든 것을 개인적인 일로 치부했다는 것이다.

문파 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간의 감정에 의한 충돌.

“그렇다면 나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움직여도 상관없겠군.”

팽만영의 말에 초연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팽만영이 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황보영천을 바라봤다.

“이유야 어쨌건 간에 친구가 쓰러졌으니 가만있을 수는 없지.”

“친구의 복수인가?”

“표면적으로는.”

“진짜 이유는?”

“백전문의 절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 거라서.”

“큿!”

초연운이 웃었다.

팽만영도 그를 보며 웃었다.

그들은 강호를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상대를 이기고 싶다는 호승심이 그들의 가슴 기저에서 들끓고 있었다.

이른바 무인의 본능이 가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언수화가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이럴 때 보면 남자들은 애나 다름없었다.

황보영천 때문에 시작된 싸움이었지만, 이미 그는 다른 사람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나저나 백전문의 취운룡이라니.”

언수화의 얼굴에 호기심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술에 취해 구름 속을 헤매는 용.

비록 강호 최고의 기재들이라는 구무룡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 역시 강호 정상의 기재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초연운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초연운이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더듬었다. 그러다가 인상을 팍 구겼다.

“젠장!”

술이 없었다.

초연운은 그제야 자신이 술병을 바닥에 내려놓았음을 깨달았다.

그때였다.

쉬익!

갑자기 술병이 날아왔다. 담호가 던진 것이다.

초연운은 술병을 가볍게 낚아채며 웃었다.

“하하! 역시 친구밖에 없군.”

그는 단숨에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술이 입가로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초연운은 단숨에 술 한 병을 비워냈다.

“친구?”

팽만영과 언수화의 시선이 갑판 한쪽에 서 있는 담호를 향했다. 그제야 담호의 존재를 인지한 것이다.

‘친구가 있었나?’

초연운의 친구라면 그 역시 보통의 존재는 아닐 터.

두 사람이 담호를 자세히 보려고 했다.

그 순간 초연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을 끌 필요가 있나?”

초연운이 갑자기 강을 향해 빈 술병을 던지고, 뒤따라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은 십여 장이나 날아가다가 강을 향해 추락했는데, 때마침 술병이 날아왔다.

탁!

초연운은 술병을 박차고 다시 몸을 날렸다. 다시 오 장여를 날아간 초연운은 건너편 강가에 안착을 했다.

“도발하는 건가?”

팽만영이 코끝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갑판 한쪽에 쌓인 나무판자가 보였다.

턱!

팽만영이 판자를 걷어차고, 몸을 날렸다.

그 역시 초연운처럼 강 중간까지 날아가다 판자를 밟고 다시 추력을 얻어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언수화가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하지만 그녀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그녀 역시 두 사람처럼 판자를 날리고 강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이 물 찬 제비 같았다.

“와아!”

“끝내준다.”

갑판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담호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강가에 내려선 세 사람이 잠시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그러다가 초연운과 팽만영이 비무를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강호의 낭만이란 것인가?’

담호가 사는 세계에 그런 한가한 감정이 머물만한 구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담호는 이내 그들에게서 신경을 껐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누가 이기든 그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갑판 한구석에는 기절한 황보영천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누구 한 명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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