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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00화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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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8장. 여러 사람이 모이면 각자 목소리를 높이게 마련이다(4)

별채 마당에 남은 자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애초에 친분이 있던 사이가 아니었다. 대화할 주제도, 의지도 있을 리 만무했다.

담호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아 버리자 장내의 정적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남궁수는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담호가 의도한 상황 같았기 때문이다.

해소월은 담호를 빤히 바라봤다. 어쩐지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분명 해소월의 시선을 느꼈을 텐데도 담호는 눈을 뜨지 않았다.

“흐흐! 이것 참.”

초연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난감하게 된 사람은 바로 은소청과 방진보였다. 또래보다 꽤 성숙한 두 사람이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만한 배짱이나 주변머리가 아직은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어색한 침묵을 지킬 때 입을 연 이는 바로 담호였다.

“진보야.”

“예! 형.”

방진보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에겐 담호의 목소리가 무엇보다 반가웠다.

“식사는?”

“아, 조금만 준비하면 되요.”

“배고프구나.”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방진보가 얼른 화덕으로 달려갔다. 은소청이 그 뒤를 따랐다.

임시로 만든 도마 위에는 조리하다 만 생선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화덕 위에 올려놓은 과자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요리를 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과하게 달궈진 상태, 이대로 재료를 집어넣었다가는 금세 타고 말 것이다.

“이럴 때는…….”

방진보가 과자에 기름을 부었다.

치이익!

과자의 표면에 닿은 기름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그중 일부는 방진보의 맨살에도 튀었다. 하지만 방진보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요리에 열중했다.

방진보는 모든 것을 잊었다.

현재의 불편한 상황도,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많은 이들의 시선도.

화덕 앞에 서면 오직 활활 타오르는 불만 보인다.

‘불에 집중을 해야 해.’

제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 할지라도 불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없다.

불을 이해하고, 느껴야 한다.

방진보는 온몸으로 화덕 위로 피어오르는 불을 느끼고 있었다. 이마와 전신에서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일그러지기는커녕 입가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진보는 정말 요리가 즐거운 모양이구나.’

은소청인 그런 방진보를 빤히 바라봤다.

불을 느끼고, 주도와 국자로 대화를 하는 방진보의 세계가 느껴졌다. 그 모습이 눈이 부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은소청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미처 몰랐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방진보는 미래를 확실히 정하고, 그곳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슥슥!

방진보는 포를 뜬 생선 살 위에 칼질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얇은 포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갈 것 같았지만, 의외로 생선 살은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종이 한 장의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 정교한 칼질이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기름 속으로 얇게 포를 뜬 생선이 들어갔다.

치이익!

기름 기포가 올라오는가 싶더니 생선포가 칼집을 낸 반대편으로 오그라들었다. 그리고 기름 연못 위에 꽃이 피었다.

“와아!”

방진보가 조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은소청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잠깐만 술이…….”

허리를 더듬던 초연운이 술병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방진보가 만드는 요리는 그야말로 최상의 술안주라는 것을.

“흐흐!”

초연운이 악당처럼 웃었다.

평상시라면 초연운을 타박했을 은소청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해소월도 다르지 않았다.

비록 탄성을 내뱉진 않았지만, 그들은 방진보라는 소년이 보여 주는 요리의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특히 해소월의 놀라움은 더했다.

‘놀라운 정신력. 저 아이가 검을 익혔다면 훌륭한 검객이 되었을 것이다.’

생선포에 칼집을 내는 솜씨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더군다나 엉망인 주위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 강한 집중력까지.

비록 체형은 뚱뚱한 편이지만, 지금이라도 무공을 익힌다면 적잖은 성취를 얻을 것이 분명했다.

반면 남궁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담호가 정적을 만들고, 방진보가 깬 상황.

모두의 시선이 그들을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반대로 자신은 철저하게 외면을 받는 상황.

태어나면서부터 모두에게 주목만 받아 온 남궁수에게 이런 낯선 분위기가 마뜩치 않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별채 안에서 남궁창 등의 협상이 끝날 때까지는 참고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에도 방진보의 요리는 계속됐다.

타다다닥!

주도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준비한 채소는 금방 채가 되었다.

방진보는 채를 썬 채소도 모두 기름에 집어넣었다. 뜨거운 기름은 채소를 순식간에 익혔다.

방진보는 젓가락으로 채를 건져 내기 시작했다. 색깔별로 접시에 모아 담자 그럴듯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접시의 중앙은 생선포가 장식했다.

“휘유!”

오색의 정원에 눈꽃이 피어난 듯한 모습에 초연운이 휘파람을 불었다.

마지막은 아비의 비법으로 만든 양념이었다. 걸쭉한 양념을 뿌리자 생선포의 풍미가 한층 더 짙어졌다.

“헤헤! 다 되었어요. 방진보 특미 요리. 오색설화어(五色雪花魚).

“이런 건 처음 봐. 네가 생각해 낸 요리야?”

“아버지의 요리서에 적혀 있던 거야. 만든 것은 처음이지만.”

방진보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진보는 정말 대단해.”

“헤헤!”

“얼씨구! 놀고들 있네. 쪼그만 것들이 남의 염장이나 지르고. 어른들 놀이는 십 년이 지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 제발 참아 달라구.”

초연운의 이죽거림에 방진보와 은소청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은소청이 초연운에게 눈을 흘겼다.

“못됐어, 정말!”

“잔말 말고 진보의 요리 좀 먹자고. 입에 침이 고여 견딜 수 없으니까.”

초연운이 술병을 꺼내며 탁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가 담호를 향해 소리쳤다.

“친구, 어서 오라구. 진보가 애써 만든 음식이 식으면 맛없으니까.”

그제야 담호가 탁자를 향해 걸어왔다. 방진보와 은소청도 잽싸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인 해소월과 남궁수는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방진보가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차린 것은 없지만 같이 들어요. 이리 오세요.”

해소월과 남궁수가 잠시 멀뚱히 서로를 바라봤다. 잠시 후 해소월이 탁자 쪽으로 걸음을 옮긴 반면 남궁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근본도 모르는 담호와 같은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해소월까지 자리에 앉자 식사가 시작됐다.

“우와! 이거 끝내주는데.”

초연운이 제일 먼저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는 못 참겠다는 듯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어쩜!”

은소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젓가락 맛본 해소월도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방진보의 실력을 인정했다.

해소월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담호는 눈을 반쯤 내리 깐 채 묵묵히 음식을 맛보고 있었다. 방진보는 그런 담호를 보며 웃고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긴 것도 다르고, 느껴지는 기질도 영 딴 판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닮은 느낌이 들었다.

해소월이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두 분은 어떤 관계인가요?”

“…….”

담호가 말없이 바라보자 해소월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우리는…….”

방진보가 잠시 말끝을 흐릴 때 담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보는 내 동생이다.”

“그런가요?”

“그래!”

“잘 어울려 보여요. 친 형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해소월의 말이 의외였을까? 담호가 젓가락질을 멈추고 해소월을 바라봤다.

해소월도 담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살짝 미소까지 지었다. 그런 해소월의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의도하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 해소월의 모습에 방진보가 살짝 넋을 잃고 바라봤다. 아마 은소청이 옆구리를 살짝 꼬집지 않았다면 더 오랫동안 바라봤을 것이다.

“쯧쯧!”

초연운이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런 그의 눈썹은 못마땅한 듯 찌푸려져 있었다.

잠시 옆구리를 어루만지던 방진보가 홀로 서 있는 남궁수를 봤다. 남궁수의 모습이 왠지 외롭게 느껴졌다.

“잠깐만…….”

방진보가 갑자기 접시에 음식들을 덜어 담았다.

“진보야.”

은소청이 그런 방진보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방진보는 대답 대신 음식이 든 접시를 들고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남궁수를 향해 다가갔다.

“저…….”

“뭐냐?”

남궁수가 인상을 썼다. 방진보가 용기를 내어 접시를 내밀었다.

“이, 이것 좀 드셔 보세요.”

“…….”

“그래도 드실 만하실 거예요.”

“하!”

방진보의 조심스러운 말에 남궁수가 느닷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얼굴엔 짜증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정말 어이가 없군. 지금 날 동정해서 이런 쓰레기 같은 음식을 가져온 것이냐?”

“왜…… 그러세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따위 음식을 가져올 수 있단 말이냐?”

“네?”

“어이가 없구나. 내가 겨우 이따위 음식을 갖다 주면 얼씨구나 하고 먹을 것 같으냐? 네놈같이 근본을 모르는 천한 숙수 따위가 해 주는 싸구려 음식을 입에 넣을 것 같아?”

“그, 그게…….”

방진보가 말을 더듬었다.

자신은 그저 호의로 음식을 권했을 뿐이다. 그것이 이렇게 남궁수의 화를 북돋게 할 줄은 몰랐다.

남궁수의 눈엔 평상시엔 거의 보이지 않던 감정의 편린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해소월과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남궁수였다. 하지만 해소월은 일말의 미련도 없이 담호가 있는 쪽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담호와 더불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미소까지 지으며.

그 모습이 남궁수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방진보의 호의가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남궁수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발로 짓밟았다.

방진보는 입만 벌린 채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자신이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 타인의 발에 짓이겨지고, 더럽혀졌다.

눈물이 왈칵 치솟아 올랐다.

방진보는 화도 내지 못하고 남궁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남궁수의 화를 더욱 돋우었다.

남궁수는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속 깊은 곳에 이런 열등감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남궁수가 갑자기 방진보의 멱살을 잡았다.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냐? 이 뚱보 자식아.”

“저, 저는…….”

방진보가 말을 더듬었다.

갑자기 남궁수가 손을 치켜 올렸다. 금방이라도 방진보를 때릴 기세였다.

방진보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들려오는 섬뜩한 목소리가 있었다.

“그 손 놔.”

남궁수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탁자 한쪽에 앉아 있는 담호가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그 손 놔. 손모가지 부러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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