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101화 1장.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1)
남궁수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그 손 놔.”
“그리고?”
남궁수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런 남궁수의 몸에서는 막강한 기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비전심공인 무애심공(無涯心功)이 발동한 것이다.
“끄끅!”
그에 방진보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그는 눈동자를 까뒤집고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강호의 절정고수도 감당하기 힘든 기세를 무공을 모르는 방진보가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방진보는 심맥에 타격을 입고 말 것이다.
남궁수의 화가 폭발했다.
“손모가지를 부러트리겠다고? 어디 해 봐. 감히…….”
“남궁 소협, 진정…….”
보다 못한 해소월이 남궁수를 만류하려 했다.
쉬악!
그 순간 일진광풍이 몰아쳤다.
담호가 충보를 펼친 것이다.
일대의 공기가 벼락같은 그의 움직임에 해일처럼 밀려갔다.
“헛!”
방진보를 잡고 있던 남궁수는 일진광풍과 함께 막대한 압력이 덮쳐 옴을 느끼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방진보의 멱살을 잡은 채였다.
설마 담호가 다짜고짜 공격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남궁수는 급한 대로 방진보를 방패로 삼으려고 했다.
쾅!
“컥!”
그 순간 굉음이 터져 나오고 남궁수의 답답한 신음성이 울려 퍼졌다.
뒤로 날아가는 남궁수의 허리가 새우처럼 잔뜩 굽어 있었다. 담호의 주먹이 방진보의 옆구리를 교묘하게 스쳐 지나가 남궁수의 허리에 작렬한 것이다.
남궁수는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설마 담호가 방진보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공격을 할 줄은 몰랐다.
남궁수가 방패로 삼았던 방진보는 어느새 담호의 뒤쪽에 서 있었다. 담호가 방진보를 공깃돌처럼 가볍게 받아 옮겨 놓은 것이다.
방진보를 구하기 위해 힘을 조절하지 않았다면 일격에 남궁수는 절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수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
남궁수의 안색이 처참하게 변했다.
방패막이로 썼던 방진보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엄청난 타격을 입고 말았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자존심에 입은 상처가 더 아팠다.
남궁수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스릉!
“네놈, 죽인다.”
분노가 이성을 잠식했다.
담호를 놔두라는 남궁창의 신신당부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궁수의 손에 들린 검이 시린 빛을 사방으로 발산했다.
남궁세가의 직계 혈족에게만 지급되는 용운검(龍雲劍)이었다. 남궁세가 내의 장인이 만든 용운검은 튼튼하기로 유명했다.
남궁수가 용운검으로 담호를 겨눴다.
후웅!
용운검이 검명을 토해 냈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남궁세가 내의 수많은 무공들 중에서도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하는 절정의 검공이었다.
남궁수는 창궁무애검법을 거의 극성으로 익혔다. 남궁세가 최고의 무공인 제왕검형(帝王劍形)을 제외하면 창궁무애검법을 능가할 수 있는 무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궁수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 순간 담호가 남궁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츄와악!
담호의 몸이 일직선으로 뻗었다.
충보, 그 일직선의 보법이 다시 한 번 펼쳐진 것이다.
이미 담호의 보법을 한번 경험했기에 남궁수는 남궁세가의 비전 보법인 십방현위보(十方眩位步)를 펼쳐 피하려 했다.
십방현위보는 한 번의 호흡으로 열 곳의 방위를 동시에 밟아 상대를 현혹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사사삭!
십방현위보를 펼치자 남궁수의 신형이 순식간에 십여 개로 늘어났다.
그중 진짜는 단 하나, 나머지는 모두 환영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 열 개의 환영을 구별할 수 있겠느냐?’
콰앙!
그 순간 폭음이 터져 나오며 남궁수의 몸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남궁수의 얼굴엔 불신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어, 어떻게?’
담호는 정확히 남궁수의 진체를 찾아 일격을 먹였다.
만일 용운검으로 전면을 막지 않았으면 이번 일격으로 중상을 입을 뻔했다.
우웅!
용운검이 울고 있었다.
방금 전의 검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울음이었다. 마치 검이 고통에 우는 것 같았다.
“제기랄!”
남궁수가 이를 악물며 용운검을 휘둘렀다.
쉬아악!
창궁단섬(蒼穹斷閃).
창궁무애검법의 구명절초였다.
남궁수의 전면에 엄밀한 검막(劍膜)이 형성됐다. 물 한 방울 샐 틈 없이 촘촘한 검막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담호의 눈이 번뜩였다.
순간 남궁수는 전신이 오싹해져 옴을 느꼈다.
마치 벼락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하는 듯한 짜릿한 느낌과 함께 위기감이 뇌리를 엄습했다.
쉬아악!
‘온다.’
먼저 막대한 압력이 밀려왔다. 뒤이어 담호의 주먹이 날아왔다.
남궁수가 용운검에 공력을 집중했다.
‘네놈의 손모가지를 잘라 주마.’
아무리 육신을 단련하더라도 쇠붙이로 된 검 날의 날카로움을 이길 수는 없다.
남궁수는 자신이 익힌 검법과 용운검의 날카로움을 믿었다.
콰직!
그러나 다음 순간 남궁수의 얼굴은 불신으로 물들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남궁수의 기대를 배반한 적이 없던 용운검이 담호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날카로운 검 날은 담호의 손에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하고 애처로이 떨리고 있었다.
은망수(銀網手).
기의 그물로 손을 감싸 적의 날붙이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법이 펼쳐진 것이다.
남궁수의 눈이 부릅떠졌다. 담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남궁수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고 진저리를 쳤다.
그를 바라보는 담호의 눈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 무감각함이 남궁수의 두려움을 배가시켰다.
남궁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토록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던 감정의 실체를.
그것은 바로 공포였다.
담호의 무언가가 남궁수의 마음속 기저에 담긴 공포라는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으아아!”
남궁수가 고함과 함께 용운검을 휘둘러 담호의 손을 떨쳐 내려고 했다.
파삭!
그 순간 담호의 손에 잡힌 검신이 과자처럼 부서져 나갔다.
쾅!
이어 담호의 주먹이 채찍처럼 뻗어 나와 남궁수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단양타(斷樣打)였다.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남궁수가 비틀거렸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담호의 일격에 안구의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 버린 것이다.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남궁수의 모습에 모두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남궁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귀가 웅웅 울리고, 사물이 몇 개씩 겹쳐 보였다.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내려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덥석!
담호가 남궁수의 손목을 잡았다.
그 차가운 느낌에 남궁수가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담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아, 안 돼!”
우두둑!
순간 남궁수의 손목이 섬뜩한 파골음과 함께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으아악!”
남궁수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극통에 남궁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담호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저, 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초연운이 입을 떡 벌렸다.
담호가 남궁수를 이긴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남궁수는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담호의 수준은 그가 감히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남궁수가 남궁세가의 직계 혈족이라는 것이다.
남궁세가는 사천의 당문만큼이나 은원이 확실한 가문이었다. 은혜도 잊지 않지만, 원한은 더욱 잊지 않고 열배로 돌려준다는 것이 그들의 가훈 중 하나였다.
남궁세가의 영향력은 무당파나 화산파만큼이나 크고 넓었다. 때문에 누구도 그들과 섣불리 원한을 맺으려 하지 않았다.
담호는 그런 남궁세가의 직계 혈족 손목을 부러트렸다. 그것도 검을 익힌 오른손을.
완쾌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이제까지 애써 익힌 검법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미치겠군.”
친구가 벌인 이 말도 안 되는 행동에 초연운은 그만 이마를 짚고 말았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가 어떻게 손을 쓸 방법조차 없었다. 그리고 설마 담호가 저렇듯 과감하게 남궁수의 손목을 부러트릴 줄은 정말 몰랐다.
“무슨 일이냐?”
남궁수의 처절한 비명을 들은 남궁창과 오군의가 별채에서 급히 뛰어나왔다.
손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남궁수의 모습을 본 남궁창이 급히 달려왔다.
“수야!”
“크윽! 수, 숙부.”
남궁창은 품에 안긴 남궁수의 손목이 완전히 부러진 것을 보았다.
“어떻게 된 거냐?”
“저, 저자가…….”
남궁수가 핏발이 선 눈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남궁창의 노기 어린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감히! 남궁세가의 혈족을 공격하다니.”
남궁수는 남궁세가에서도 촉망받는 기재였다. 장차 무림맹에서도 중임을 맡을 요인이었고.
그런 기재의 손목이 부러졌다. 족히 몇 달은 요양해야 할 중상이었다. 남궁수의 상처가 완치할 때면 무림맹을 창립하는 대부분의 작업이 끝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남궁수의 자리가 남아 있을지는 남궁창도 자신할 수 없었다.
남궁수 개인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이었지만, 무림맹의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남궁세가에게도 엄청난 손해였다.
뒤늦게 나온 오군의가 해소월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냐?”
“그게…….”
해소월이 선뜻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도 상황을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놈!”
남궁창이 남궁수를 뒤로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전신에서는 엄청난 기세가 발산되고 있었다.
비록 책사의 길을 걷고 있다지만, 그 역시 남궁세가의 절정 무공을 익힌 고수. 그의 존재감은 일대를 뒤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도 담호에겐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었다.
그 모습이 남궁창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그가 소리쳤다.
“금검대(金劍隊).”
그러자 별채 밖에서 서른 명의 무인들이 달려왔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무인들은 바로 남궁창을 호위하기 위해 동행한 남궁세가의 고수들이었다.
“이유 따윈 필요 없다. 놈은 본가의 혈족에게 상처를 입혔다. 포위하라.”
“존명!”
금검대의 고수들이 담호를 에워쌌다.
순간 담호의 고개가 모로 돌아가 남궁창을 향했다. 삐딱하게 기울어진 담호의 머리가 남궁창의 신경을 건드렸다.
“감히 남궁세가의 혈족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담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순간 포위하고 있던 금검대와 남궁창의 안색이 싹 변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엄청난 살기가 그들을 덮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담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륵! 쿵! 스륵! 쿵!
담호가 발을 끌면서 다가왔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엇박자의 걸음걸이가 남궁수의 신경을 묘하게 자극했다.
남궁창은 단 한 번도 이렇게 절룩이면서 걷는 무인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리를 전다는 것이 무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약점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다리를 전다는 것은 다리의 근육이 망가졌다는 뜻.
망가진 다리는 척추의 뒤틀림을 가져오고, 목 근육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척추와 목 근육은 몸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중심선.
훌륭한 무인들일수록 몸의 중심선이 제대로 서 있다. 하지만 지금 담호의 중심선은 그렇지 못했다.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는 것이 균형이 맞지 않았다.
남궁창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저렇게 중심선이 무너진 자가 수를 쓰러트렸다고?’
남궁창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금검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검대는 담호의 기괴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그때 담호의 입술이 열렸다.
“무림맹을 설립하는 훌륭한 원동력이 되어 줄 거라고?”
“뭐?”
“당신이 그랬잖아.”
“그, 그걸 어떻게?”
남궁수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그건 분명 전음으로 나눈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