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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02화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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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1장.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2)

담호의 망막 안에 남궁창의 모습이 맺혀 있었다. 그 속에 비친 남궁창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음을 도청했단 말인가?’

그 어떤 고수라도 전음을 도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이 남궁창의 상식이었다.

그의 의문을 풀어 주기라도 하듯이 담호가 입을 열었다.

“난 말이야 아주 오랫동안 지하 공간에서 지냈어. 그곳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아주 끔찍한 세계지. 그런데 웃기는 게 뭔지 알아?”

“…….”

“그곳에선 조그만 소리도 아주 크게 들린다는 거야. 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벽에 부딪쳐 수십, 수백 배로 증폭된다는 거야.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담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나직했고 발음도 뭉개져 나왔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다른 사람들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상상해 봐. 당신이 숨 쉬고 살아가는 그 모든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그런 소리가 들려온다고. 어떨 것 같아?”

“…….”

남궁창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왠지 입을 열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담호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마 사흘도 못 가 미치게 될 거야. 나 역시 그랬어.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알아? 진흙으로 귀를 막았어. 그래도 소리는 파고들더라고.”

담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음성에서 알 수 없는 처절함을 느꼈다.

마치 귀 옆에서 쇠를 긁는 것처럼 진저리가 처졌다. 하지만 누구 한 명 담호의 목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거대한 족쇄에 차인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일 년을 그렇게 미쳐 보낸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사람의 몸이 참 신기한 게 어느 순간부터 적응하기 시작한 거야. 내가 원하지 않는 소리는 듣지 않게 되었고, 원하는 소리는 아무리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크게 듣게 되었지.”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몰라서 묻는 거야?”

담호가 남궁창을 빤히 바라봤다. 그에 남궁창의 등줄기를 타고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걸 들었단 말이냐?’

설마 전음을 훔쳐 들을 수 있는 무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말은 곧 그의 의도를 꿰뚫고 있다는 뜻.

남궁창의 눈에 서늘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담호가 전음을 가로챌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의외였다. 하지만 이 정도에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그의 정신 수양이 얕지는 않았다.

“겨우 그 정도 변명으로 남궁세가를 건드린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용서?”

“남궁세가는 원한을 맺은 그 어떤 자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이제 와 자비를 구한다고 해도 소용없다.”

“당신의 눈엔 내가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할 사람으로 보이나 보지?”

담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조금만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비웃음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남궁창은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망발은 거기까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네놈의 오른팔을 잘라라. 그러면 조금은 용서해 줄지도 모르지.”

담호를 에워싼 금검대 서른 명의 무인들이 날카로운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담호는 그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담호가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주먹에 박인 굳은살이 얼마나 두터운지 마치 정처럼 보였다.

“자를 수 있으면 잘라 봐. 대신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난 당신의 목을 자를 테니까. 반드시!”

담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일대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크윽!”

금검대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담호에게서 흘러나오는 그 살벌한 분위기와 일렁이는 흉포한 공기에 압도당한 것이다.

담호의 말엔 언령(言靈)이 담겨 있는 듯했다.

마치 그가 말한 대로 반드시 이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섬뜩한 느낌에 남궁창은 진저리를 쳤다.

남궁창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금검대는 뭐하느냐? 어서 놈을 제압하지 않고.”

그의 외침에 금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을 제압하라.”

금검대주 남궁중문이 외침과 함께 제일 먼저 움직였다.

쉬릭!

그의 손에서 남궁세가의 검공인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가 펼쳐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금검대에만 전수되는 천풍뇌전검(天風雷電劍)이 사방에서 펼쳐졌다. 마치 수십 줄기의 뇌전이 내리꽂히듯 벼락같은 검기가 담호를 향해 몰아쳤다.

“저?”

그 광경을 본 초연운이 경호성을 내뱉었다.

금검대라면 남궁세가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그들이 펼치는 합격술은 초연운이라 할지라도 쉽게 감당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시작은 분명 남궁수가 했지만, 남궁세가가 그런 것을 따질 집단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구가 이대로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싸우는 모습을 마냥 지켜볼 수도 없었다.

남궁세가와 적이 된다는 것은 곧 오대세가 전체와 적이 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들과 적이 되면 담호가 이 세상에 서 있을 땅 따윈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대책도 없이 남궁세가와 충돌한 담호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애써 사귄 친구를 버릴 만큼 의리가 없지는 않았다.

문득 초연운의 시선이 오군의를 향했다.

해소월의 사숙이자 해남파의 장로인 오군의. 그는 싸움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라면?’

그렇게 초연운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콰앙!

“컥!”

굉음과 함께 누군가 뒤로 튕겨 나갔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자는 바로 금검대의 무인이었다.

평소 그의 자부심이 되어 주었던 용운검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왼쪽 팔과 가슴은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짓이겨져 있었다. 파성추가 작렬한 것이다.

쾅 쾅!

뒤이어 연신 뇌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금검대의 무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빌어먹을!”

금검대주 남궁중문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찌잉!

손에 들린 용운검이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겨우 담호의 일격을 막았지만, 그 대가로 팔 전체가 저려 와 용운검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남궁중문은 결국 검을 다른 손으로 바꿔 잡았다.

그사이 다시 서너 명의 금검대가 담호의 손에 박살이 나서 쓰러지고 있었다.

쾅!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자는 금검대의 막내 남궁세경이었다. 그는 마치 야수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몸통이 절반 가까이 찢겨져 있었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지만, 죽은 것만 못하게 되었다. 살아난다 해도 두 번 다시 사람 구실은 할 수 없으리라.

담호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잔인한 놈 같으니.”

그 순간 담호의 눈빛이 남궁중문을 향했다.

오싹!

그 순간 남궁중문은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 급히 몸을 뒤로 젖혔다.

츄화학!

그런 남궁중문의 얼굴을 담호의 팔꿈치가 훑고 지나갔다. 팔꿈치에 걸린 살점이 뜯겨져 나가고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크아악!”

남궁중문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얼굴의 절반이 뜯겨져 나가 시뻘건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남궁중문은 생전 처음 느끼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후웅!

그 순간 담호의 발길질과 함께 강렬한 기파가 그를 덮쳐 왔다.

탄마각(彈魔脚)이었다.

콰직!

담호의 발이 남궁중문의 가슴에 구멍을 뚫었다.

“컥!”

남궁중문이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났다.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이 뚫려 뒤쪽의 공간이 보였다.

담호는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남궁중문의 몸을 뛰어넘었다.

일직선으로 질주하는 담호.

그의 시야에 경악으로 물든 남궁창의 얼굴이 들어왔다.

남궁세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금검대였다. 결코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조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남궁창이 느끼는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런 괴물이 어디서…….’

남궁창의 몸이 덜덜 떨려 왔다.

그 역시 남궁세가의 무공을 절정의 경지까지 익혔다. 하지만 상대는 금검대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킨 괴물 같은 존재였다.

덜덜!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펄럭이는 검은 장포,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그 사이로 번뜩이는 감정 없는 검은 눈동자.

마치 거대한 충차가 돌진해 오는 듯한 느낌에 남궁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명 다리를 절었는데…….’

그런 의문이 문득 들었다.

그사이 담호가 그의 가슴팍까지 파고들었다.

쉬아악!

거대한 성벽을 부수는 일격, 파성추가 날아왔다.

남궁창은 기겁을 하며 몸을 피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보다 담호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주먹을 쥔 손이 허공에서 활짝 펴지는가 싶더니 남궁창의 오른팔을 잡았다. 그리고 비틀었다.

콰드득!

“크아악!”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극통에 남궁창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담호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담호의 손이 수도로 변해 남궁창의 목을 내리쳤다.

그대로 자르려는 것이다.

그 순간 남궁창은 담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의 목을 자르겠다는…….

담호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다.

남궁창은 감히 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쩌엉!

남궁창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군의.”

마치 거대한 고래처럼 엄청난 존재감으로 그의 앞을 막아선 이는 바로 백경검객 오군의였다.

오군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지잉!

담호의 일격을 막아 낸 것만으로도 검을 쥔 손아귀가 저려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쯤 하게.”

“그들이 먼저 걸어온 싸움이야.”

언제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였냐는 듯이 담호는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마치 아무리 달려도 절대로 지치지 않는 짐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강호에 이런 자가 있었나?’

아무리 많이 봐 줘야 겨우 서른 언저리 정도. 그 나이에 이 정도의 성취를 이뤘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담호의 표정은 여전히 냉막했다. 하지만 마주 보고 있는 오군의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내면에 어려 있는 가공할 살기를.

‘권마라고 하더니…….’

호남성에 들어온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소문이 바로 권마에 관한 것이었다.

죽음을 내리는 절름발이 무인.

처음엔 코웃음을 쳤다.

육신의 균형이 무너진 자는 결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그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있는 자는 진짜였다.

오히려 소문이 그의 진짜 모습을 절반도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지금 담호가 발산하는 기세와 살기는 그가 난생 처음 경험하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용암을 분출하는 화산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일단 폭발하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제정신을 차린 남궁창이 소리쳤다.

“그를 죽이게. 군의.”

남궁창의 목소리엔 독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겨 있는 감정은 분명 공포였다.

남궁창은 담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악을 쓰고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몸부림인지 오군의는 잘 알고 있었다.

오군의가 담호를 바라봤다.

“물러가겠는가? 이대로 물러난다면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겠네.”

“누구 마음대로 물러나게 한단 말인가? 그는 남궁세가의 적일세.”

등 뒤에서 남궁창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러자 오군의가 뒤를 돌아봤다.

“창, 나는 그를 확실히 제압할 자신이 없네.”

“군의.”

“이건 그를 위해서 하는 제안이 아니네. 자네를 위해서 하는 제안일세.”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그에게서 자네를 온전히 보호할 자신이 없네.”

“그럴…… 수가.”

남궁창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가 알고 있는 오군의는 적을 눈앞에 두고 절대 약세를 보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오군의가 적을 눈앞에 두고 약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 정도란 말인가?’

남궁창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오군의가 감당할 수 없으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담호를 어찌할 수 없었다.

“창, 이 자리에서 은원은 덮어 두게. 자네에겐 더 큰일이 있지 않나?”

“크윽!”

남궁창이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이를 꽉 물었다. 하지만 오군의는 그의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담호를 바라봤다.

“이만 물러나겠는가?”

오군의는 담호가 자신의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그와 남궁세가도 크게 양보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담호의 대답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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