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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03화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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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1장.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3)

담호의 눈은 까맸다. 그리고 조용했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그의 눈동자에 살기가 깃들기 시작한 순간 광포한 태풍으로 변한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헛!”

오군의는 담호의 눈에 어린 살기가 태풍이 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탓!

담호가 충보를 펼쳤다.

목표는 남궁창.

그가 아직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반드시 숨통을 끊어 놓겠다.

그런 의지가 담호의 기백과 함께 발산되고 있었다.

“미친!”

오군의가 그런 담호의 기세에 경악하며 검을 휘둘렀다.

이유 여하야 어떻든 간에 이곳에서 남궁창이 담호의 손에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와의 친분 관계를 떠나 남궁창은 무림맹을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오군의는 해남파의 비전검공인 해룡참살검(海龍斬殺劍)을 펼쳤다.

쩌엉!

담호의 주먹과 오군의의 검이 격돌했다.

“크윽!”

오군의의 입술을 비집고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겨우 주먹과 격돌했을 뿐인데 마치 거대한 바위에 직격당한 것처럼 몸 전체가 울렸다.

무엇보다 오군의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그의 검과 부딪친 담호의 주먹이 멀쩡하다는 것이다.

‘어찌 인간의 피륙이…….’

하지만 한가하게 그 이유를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담호의 이 격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군의는 급히 해룡참살검 중 삼 초식인 적하단혼(赤霞斷魂)의 초식을 펼쳤다.

후웅!

순간 붉은 노을과 비슷한 색깔의 검기가 일어나 담호를 휩쓸어 갔다.

오군의는 이 한 수로 담호를 상하게 할 수는 없어도 물러서게 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담호의 반응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담호는 오군의의 검을 피하는 대신 오히려 간격 안으로 몸을 날렸다. 이대로라면 오군의의 검이 담호의 어깨에 직격할 것이다.

“헛!”

초연운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눈에도 담호가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팅!

담호의 어깨에 닿은 오군의의 검이 사선으로 빗겨 나갔다. 금구자가 펼쳐진 것이다.

자신의 검이 튕겨져 나가는 모습에 오군의가 눈을 치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검기를 피워 올린 검이었다. 그 절삭력이나 예리함은 천하에 이름 높은 명검보다도 월등했다.

담호는 그런 검기를 맨몸으로 튕겨 낸 것이다. 금구자라는 무공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오군의로서는 경악하는 것이 당연했다.

오군의의 검을 튕겨 버린 담호가 그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담호와 오군의의 시선이 마주쳤다. 간격은 불과 한 자,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오군의는 담호의 숨결에서 비린내를 느꼈다.

오직 살아 있는 것을 잡아먹고 살아가는 짐승들이 내뱉는 죽음의 숨결을.

턱!

담호의 두 손이 오군의의 멱살을 잡았다.

오군의는 몸을 비틀어 담호의 두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담호의 억센 두 팔은 마치 강철 집게처럼 오군의의 목을 조여 왔다.

“컥!”

자신도 모르게 오군의가 입을 턱 벌렸다.

그 순간 오군의의 몸이 허공으로 불쑥 뽑혀 올라갔다. 담호가 지천격을 펼친 것이다.

몸과 다리의 위치가 바뀌었고, 오군의가 급속도로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이제껏 많은 무인들이 지천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오군의는 그들과 차원이 다른 무인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검을 역수로 바꿔 담호의 옆구리를 찔러 갔다.

슈욱!

오군의는 이 정도면 담호가 자신의 멱살을 놓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담호는 그가 알고 있는 보통의 무인이 아니었다. 그의 상식을 벗어난 존재였다.

담호는 옆구리를 살쩍 비틀었다. 그러자 오군의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지독한 극통이 뇌리를 울렸다. 하지만 담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오군의를 내리꽂았다.

콰앙!

“크윽!”

대지에 거꾸로 처박힌 오군의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지천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간발의 차이로 고개 대신 어깨로 대지와 충돌한 것이다. 담호의 옆구리에 상처를 내지 않았다면 결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단지 어깨가 부서진 것처럼 고통스러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담호와 같은 무인을 처음 봤다.

단지 무공이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공이 강한 자는 세상에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담호란 인간처럼 치가 떨릴 만큼 집요하면서도 맹목적인 인간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담호는 일단 목적을 정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자잘한 계산 따윈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위해 움직일 뿐이다.

자신의 적이라 규정된 자를 죽이는 것.

남궁창은 담호에게 적으로 규정됐다.

그가 남궁세가라는 거대한 배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담호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남궁창을 죽이면 인생이 얼마나 고달파질 것인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순수한 살의로 똘똘 뭉친 자.

‘미친!’

담호는 쓰러진 오군의를 뛰어넘어 남궁창에게 달려갔다. 오군의는 급히 몸을 일으키며 담호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쉬악!

절름발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무서운 속도로 담호는 질주를 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십여 명의 금검대가 그런 담호를 막아섰다.

포악한 기세를 발산하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담호를 바라보는 금검대 무인들의 얼굴에 암담한 빛이 떠올랐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담호와 같은 무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상시라면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을 남궁세가라는 이름이 지금처럼 허무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담호의 검은 눈동자가 무서웠다.

포악하기 그지없는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면 심장이라도 덜컥 내려앉을 것 같았다.

제발 그 눈이 자신을 향하지 않기만을 바랐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소원임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금검대의 무인 중 가장 나이 많은 자가 소리쳤다.

“장로님을 보호해야 한다. 목숨으로 놈을 막아.”

“예!”

습관적으로 대답은 했지만, 문득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쾅!

의문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 앞에 있던 무인 한 명이 피 떡이 되어 튕겨져 나갔다.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동료의 피가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지.

쾅!

하지만 다시 한 번 뇌음이 울리고 또 다른 동료가 피 떡이 되는 순간 아름다운 광경은 공포가 되어 엄습했다.

“으아악!”

“사, 살려 줘!”

곳곳에서 비명과 절규가 터져 나왔다.

남궁세가에서도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라는 금검대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럴 수가!”

남궁창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지옥에서 올라온 짐승이 날뛰고 있었다. 짐승에게 죽어 나가는 것은 자랑스러운 남궁세가의 무인들.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지옥 같은 광경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허억! 허억!”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막혀 왔다.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쿠왕!

순간 이제까지와 비할 수 없는 굉음이 들려왔고 다시 네 명의 금검대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져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제 담호와 그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궁창은 춥다고 느꼈다.

마치 설원 한복판에 알몸으로 서 있는 듯한 기분에 진저리가 쳐졌다.

담호가 달려들고 있었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두 눈.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장포 자락.

그 모든 것이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끝인가?’

허탈했다.

가슴속에 품은 원대한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이대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조카가 적으로 만든 담호가 이렇게 무서운 존재인 줄 알았다면 절대 건들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담호의 모습이 급속도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낯익은 인영 두 명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멈추게, 친구.”

“멈춰요.”

쩌어엉!

남궁창 대신 그들이 담호의 일격을 막아 냈다.

“크윽!”

“음!”

답답한 신음성을 흘리는 이들은 바로 초연운과 해소월이었다. 그들이 남궁창을 대신해 일격을 막아 낸 것이다.

그들의 발이 디딘 대지가 깊은 고랑을 남기며 패여 있었다.

초연운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고, 해소월 역시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담호의 일격을 막아 낸 여파로 어깨가 뻐근하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각자 비전의 수법으로 충격을 흘려보냈는데도 이 정도였다. 담호의 주먹에 직격을 당했으면 어떠했을지 상상만 해도 모골이 다 송연해져 왔다.

두 사람의 개입에 담호의 눈이 더욱 사납게 빛났다.

“막을 건가?”

“워, 워! 진정하게, 친구.”

초연운이 급히 손을 들어 담호를 만류했다. 하지만 담호의 포악한 눈빛은 쉽게 사그라질 줄 몰랐다. 그에 초연운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제아무리 자신이라 할지라도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듯한 사나운 눈빛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뒤늦게 달려온 오군의가 두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담호를 막기 위해 강호의 이름 높은 고수 세 명이 뭉친 것이다. 그만큼 담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해소월이 압박감을 이겨내며 입을 열었다.

“담 소협……. 분노는 알겠지만 이쯤에서 그만하는 게 어떨까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남궁 대협은 큰일을 해야 할 사람입니다.”

“나완 상관없는 일이야.”

담호의 음성은 더할 수 없이 차가웠다. 북해의 한파도 이보다 더 차갑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해소월은 잠시 진저리를 쳤다.

담호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막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담호라는 인간 자체가 발산하는 기세가 그녀를 압도하고 있었다.

‘도대체?’

자신보다 겨우 대여섯 살 정도 많아 보일 뿐이다. 하지만 담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도저히 비슷한 또래라고 볼 수 없었다.

이 정도라면 해남파의 장문인인 능천월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해소월은 뒷말을 삼켰다.

차마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웠기 때문이다.

담호에겐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남궁창이 담호에게 죽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야 했다.

초연운이 앞으로 나섰다.

“친구.”

“…….”

초연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담호의 귓전을 울렸다.

담호는 말없이 초연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초연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남궁 대협은 반드시 세상에 필요한 분이라네. 아직은 죽어서는 안 되네.”

“…….”

“그래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이번 한 번만 물러나 주게. 친구로서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일세.”

“형!”

이번엔 방진보까지 나섰다.

방진보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 일이 커지길 바라진 않았다.

“형, 제발요.”

오군의에 해소월, 거기에 초연운에 방진보까지 나서서 담호를 막아섰다.

자신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들. 그들의 눈빛에 담긴 복잡한 감정들이 담호의 발목을 붙잡았다.

담호가 그들을 지나쳐 남궁창을 향했다.

그에 초연운이 손을 뻗으려다가 멈칫했다. 방진보가 그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니 방진보가 조용히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였다.

담호가 남궁창 앞에 쪼그려 앉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지근거리에서 마주쳤다.

“난 말이야 당신이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무슨?”

“덤비고, 또 덤벼. 악착같이 덤벼. 모조리 죽여 줄 테니까.”

“으으!”

“그렇게 죽이다 보면 언젠가는 남궁세가의 모든 생명을 죽일 수 있을 테지.”

남궁창은 머릿속이 온통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담호의 말엔 힘이 있었다. 듣고 있다 보면 반드시 그의 말처럼 될 것 같은.

사시나무처럼 손발이 떨렸다.

남궁창은 감히 담호의 두 눈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담호의 눈을 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군의가 고개를 저었다.

‘저건 정신적인 살인이다.’

꼭 숨통만 끊어야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의지를 망가트리고, 정신을 붕괴시킴으로써 인격을 말살하는 것도 살인이었다.

남궁창의 입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다리에 힘이 풀린 남궁창이 그만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담호는 그런 남궁창을 두고 일어섰다.

남궁창의 바지춤이 축축해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남궁창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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