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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07화 (10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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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3장. 잔치엔 방해꾼이 들기 마련이다(1)

사람들은 팽가를 흔히 호랑이의 가문이라고 불렀다.

이상할 정도로 남아가 많이 태어나고, 팽가의 울타리에서 자란 남아들은 유독 호전적이었다.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린 호랑이들은 가문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라났고, 그렇게 팽가는 수백 년 동안 번성을 거듭했다.

대표적인 절기라 할 수 있는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는 팽가의 공격적인 성향이 가장 잘 녹아 있었다.

팽무형은 팽가의 대장로였다. 그는 오호단문도의 달인이었고, 팽가에서도 열화와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일단 한번 흥분하면 절대 뒤를 생각하는 법이 없이 앞으로만 돌진하기에 팽가에서도 그를 말릴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는 팽가의 가주인 팽천월조차도 말이다.

팽무형은 팽가의 대표 자격으로 동정호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팽가의 젊은 무인들 삼십여 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팽가의 핵심 전력 중 하나인 오호단(五虎團) 소속의 무인들이었다.

팽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던질 수 있는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오호단이었다. 팽가를 향한 그들의 충성심은 그야말로 맹목적이었다.

팽무형의 곁에는 오호단의 부단주인 팽관영이 함께 말을 달리고 있었다. 팽관영은 삼십 대 초반의 남자였다. 팽가의 핏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강맹한 인상과 다부진 체격이 유독 돋보였다.

한참을 말을 달리던 팽관영이 입을 열었다.

“이제 동정호가 멀지 않았습니다. 말을 천천히 달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대장로님.”

“지친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아니긴. 나도 지쳤는데. 그래, 사람뿐 아니라 말도 지친 것 같으니 속도를 조금 늦추자꾸나.”

팽무형이 먼저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질주하던 말이 속도를 줄였다.

“후우!”

그제야 팽무형의 뒤를 따르던 오호단의 무인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팽무형이 쉬지 않고 말을 달리는 바람에 그들도 하루 종일 말을 타야 했다. 말을 타는 데 익숙한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엉덩이가 얼얼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유롭게 말을 몰던 팽무형이 문득 입을 열었다.

“만영이는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구나.”

“혼자 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잘 도착해서 쉬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팽관영의 대답에 팽무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의 흐름을 말해 주듯 팽무형의 얼굴에는 하얀 수염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의 불같은 눈빛은 젊은 시절보다 더 강렬했다.

그가 팽관영을 보며 말했다.

“이번 동정호에서의 회합은 무척 중요하다. 뭐든지 초창기에 자리를 잘 잡아야지 밀려나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아마 동정호에 도착하면 기 싸움이 대단할 것이다. 절대 밀려서는 안 된다.”

“저흰 팽가의 오호단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킁! 나이를 먹다 보니 자꾸 걱정만 느는구나.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팽무형이 코끝을 찡그렸다. 그에 팽관영이 은밀히 미소를 지었다.

타인에겐 호랑이만큼이나 무서운 팽무형이었지만, 팽관영처럼 잘 아는 사람들에겐 은근히 귀엽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음!”

그때 갑자기 팽무형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이 가는 관도 반대편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팽무형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흔치 않은 황금빛 장포를 걸친 남자의 전신에서 막강한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황금색 장포를 입은 남자는 마찬가지로 황금 면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어지간히도 금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터였다.

하지만 팽가의 무인들 중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들도 황금 면구를 쓴 남자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낀 까닭이다.

팽무형이 황금 면구를 쓰고 있는 남자를 향해 천천히 말을 몰았다.

“이곳은 모두가 이용하는 관도일세. 그렇게 막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길을 지나다니지 못하잖은가?”

“어차피 지나갈 사람도 없는데 무슨 상관인가?”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황금 면구 때문인지 남자의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그래서 무척이나 음산하게 느껴졌다.

팽무형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나갈 사람이 없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군.”

“말했지 않은가? 자네들은 어차피 지나가지 못해.”

“우리가 팽가의 무인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런 망발을 하는 건가?”

“팽가니까 그러는 거야.”

“흐음! 팽가니까 그런다? 처음부터 우리가 목표였군.”

팽무형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강호에 우연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길을 막았으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팽가에 은원이 있던가?”

“아니.”

“그런데 왜?”

“팽가만큼 적합한 대상이 없으니까.”

“무슨?”

“제물로 적당하다는 뜻이지.”

팽무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것은 오호단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들어 주지 못하겠구나. 감히 팽가의 무인들을 상대로 망발이라니? 무릎을 꿇어라.”

오호단원 중 한 명이 갑자기 황금 면구를 쓴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낭아도가 들려 있었다.

쉬악!

“멈춰랏!”

뒤늦게 팽무형이 소리를 질렀지만 무인의 낭아도는 이미 황금 면구를 쓴 남자의 가슴 어림까지 도달한 뒤였다.

그 순간 황금 면구를 쓴 남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쾅!

“커억!”

뒤이어 오호단 무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에 들고 있던 낭아도는 저 멀리 날아가고, 그의 고개는 모로 꺾여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유, 유영아!”

다른 오호단원들이 바닥에 처박힌 오호단원을 살폈다. 이내 그들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유영이 죽……었습니다.”

공격을 했던 오호단원의 가슴은 움푹 함몰되어 있었다. 부러진 가슴뼈가 살가죽을 뚫고 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는 단 일격에 팽유영을 격살한 것이다.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팽무형의 눈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그가 황금 면구를 쓴 남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감히 팽가의 무인을 죽이다니. 팽가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은 있는 거겠지?”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네놈의 이름은 무엇이더냐?”

“팽가에 알려 줄 이름 따위는 없어. 정히 부르고 싶다면 금마사자(禁魔使者)라고 부르도록.”

“금마사자라……. 네놈의 사지를 잘라 내고, 심장을 끄집어내겠다.”

팽무형이 허리에 걸려 있던 도를 꺼내 들었다.

일반적인 도보다 두어 배는 큼직한 도였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근력만큼은 팽가의 여타 무인들을 압도하는 팽무형을 위해 특별히 맞춤 제작한 도였다.

현철로 만든 도는 일반적인 도보다 서너 배는 무거웠다. 그만큼 파괴력도 엄청났다.

“챠핫!”

팽무형이 현철도를 휘두르며 금마사자에게 덤벼들었다,

쉬아악!

현철도에서 도기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팽무형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것이다.

금마사자의 면구에 가려진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스륵!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줄로 당기는 것처럼 금마사자의 몸이 마치 유령처럼 소리도 없이 옆으로 이동했다.

쾅!

팽무형의 공격은 애꿎은 바닥에 커다란 구덩이만 남겼다.

“큿!”

헛되이 공격을 소비한 팽무형이 고개를 돌려 금마사자의 흔적을 쫓았다.

그 순간 금마사자는 오호단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촤앙!

금마사자가 입은 장포가 칼날처럼 일어났다. 내기를 주입해 철판보다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쉬가악!

칼날 같은 소매가 마치 폭풍처럼 오호단원을 휘감았다.

도를 들어 방어한 이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오호단원들은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팽관영이 소리쳤다.

“모두 괜찮은 거냐?”

“부, 부단주님.”

“크윽!”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무슨?”

팽관영이 급히 뒤를 돌아보자 십여 명의 오호단원들이 목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손으로 부여잡고 있는 그들의 목이 온통 선혈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 사이로 선혈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들은 어떻게든 피를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내 그들의 손에서 힘이 빠지고 몸이 털썩 쓰러졌다.

순식간에 십여 명이나 되는 오호단원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팽관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순간 금마사자가 방향을 바꿔 그를 향해 다가왔다. 예의 유령 같은 신법을 펼쳐서.

쉬가악!

칼날처럼 일어선 소매가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피할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그의 뒤에 형제 같은 오호단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팽관영은 급한 대로 도를 들어 자신의 전면을 막았다.

그 순간 금마사자의 소매가 그의 도를 직격했다.

쩌어엉!

“크윽!”

몸이 들썩이는 엄청난 충격에 팽관영이 답답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마치 거대한 바위에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이 찌르르 울렸다.

반격은 생각도 못 했다. 호구가 찢어져서 하마터면 도를 놓칠 뻔했으니까.

그 순간 금마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큿! 제법이군.”

조소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팽관영은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쉬가악!

금마사자가 팽관영을 지나쳐 다른 오호단원들을 공격해 갔다.

“놈!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팽무형이 급히 금마사자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가 전력으로 신법을 펼쳤음에도 금마사자와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팽무형을 뒤에 두고도 금마사자는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으아악!”

“크윽!”

그가 지나간 자리에 오호단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들의 목과 가슴이 날카로운 무기에 베인 것처럼 쩍 벌어졌다.

“놈!”

팽무형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그를 떨쳐 버릴 수 있음에도 금마사자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팽무형의 추격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뒤에 달고 팽가의 무인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금마사자가 그를 농락하고 있음이다.

“죽이겠다. 놈!”

팽무형이 도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도에 어려 있던 도기가 금마사자를 향해 날아갔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도가 금마사자의 등을 금방이라도 꿰뚫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금마사자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콰앙!

“크악!”

팽무형이 날린 검기는 애꿎은 팽가의 무인들을 덮쳤다. 세 명의 제자가 팽무형의 검기에 목숨을 잃었다.

“으아아! 죽이겠다.”

졸지에 자신의 손으로 팽가의 식구들을 죽이게 된 팽무형이 노성을 터트렸다.

머릿속의 이성은 이미 날아가고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팽가의 비전 절학 중 하나인 철혈적성도(鐵血赤星刀)를 펼쳤다.

츄화학!

붉은 검기가 마치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팽무형은 이번에도 금마사자가 피할 줄 알고 다음 펼칠 초식까지 준비해 뒀다.

하지만 금마사자는 팽무형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무서운 속도로 회전했다.

쉬아악!

회전하는 금마사자의 몸에서 날카로운 무언가 발출됐다.

채찍처럼 길면서 얇은 형태의 빛 무리였다.

빛 무리는 팽무형과 오호단원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팽무형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가, 강기(罡氣)?”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마치 누군가 자를 대고 선을 그은 것처럼 붉은 선이 똑바로 그어져 있었다.

강기가 그의 육신을 훑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주르륵!

물이 가득 담긴 대야에 떨어진 먹물처럼 팽무형의 가슴에 그어진 붉은 선이 번져 갔다.

팽무형뿐만이 아니었다. 오호단원 전체의 가슴에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대……장로님.”

팽관영이 소리쳤다.

그 순간 팽무형과 오호단원의 몸이 두 동강이 나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몸에서 쏟아져 나온 내장과 선혈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 한가운데 금마사자가 홀로 서 있었다.

수많은 이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금마사자의 황금빛 장포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너희가 본교의 부활을 위한 첫 번째 제물이다. 영광으로 알거라.”

금마사자가 서늘한 음성만을 남긴 채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후 두 동강이 난 시신들 사이에서 누군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피투성이가 된 채 일어선 이는 바로 팽관영이었다. 그의 가슴에도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하지만 상처는 깊지 않았다.

강기의 위력이 줄었는지 그 혼자만 구사일생한 것이다.

“크윽! 대장로님. 애들아.”

졸지에 식구들을 잃은 팽관영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해.”

그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팽관영은 몰랐다.

팽가 말고도 습격을 당한 문파들이 더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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