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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08화 (10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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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3장. 잔치엔 방해꾼이 들기 마련이다(2)

산월장(算月壯)은 악양의 외곽에 위치한 조그만 장원이었다. 이곳은 악양검문의 문주인 사마경원이 가진 별장 중 하나였다.

“좋구나.”

한소유가 산월장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악양의 패자인 사마경원의 별장답게 산월장은 깨끗하면서도 잘 가꿔져 있었다. 덕분에 화산파의 무인들은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푹 쉬니 이곳까지 오는 동안 쌓인 여독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사형들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무경과 운경이 같이 못 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한소유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무경은 화산파의 다음 세대를 책임질 장문 제자였고, 운경은 그런 무경을 도와 화산파를 부흥시킬 기재였다. 그들이 자리를 비우면 화산파의 운영에 심각한 타격이 온다.

이미 그들은 화산파의 중심이었다.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비워서도 안 되는 중심인물들이었다.

한소유는 그런 대단한 사람들을 대신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사저.”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가 그녀의 상념을 일깨웠다.

한소유가 고개를 돌리니 명경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시는 겁니까? 몇 번을 불렀는데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이것저것. 그런데 무슨 일이야? 사제.”

“그냥요.”

명경이 해맑게 웃었다.

그런 명경을 보며 한소유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뒤늦게 일대제자가 된 명경은 궁금한 것이 무척 많았다. 산월장에 들어오고 나서도 틈만 되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래도 하루는 참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더니 기어이 호기심이 도진 모양이었다.

“나가고 싶은 거야?”

“사저는 악양 시내를 구경하고 싶지 않아요?”

“글쎄…….”

“그러지 말고 함께 나가요. 사저.”

“휴!”

명경의 순진무구한 말에 한소유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명경에게 최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배려를 해 주라는 현검 진인의 당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 나가자.”

“고마워요, 사저.”

명경이 활짝 웃었다. 그에 한소유의 기분도 절로 좋아졌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산월장을 나섰다. 그들이 향한 곳은 바로 악양의 번화가였다.

명경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긴 정말 사람이 많군요.”

“전 무림의 이목이 집중된 곳이니까 많을 수밖에.”

“무림맹 때문에요?”

“쉿!”

“아! 아직은 기밀이죠? 죄송해요.”

“조만간 알려지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조심해야 해.”

“알았어요.”

명경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은 고강하지만 아직은 순진한 구석이 더 많은 명경이었다. 그래서 더욱 많은 보살핌이 필요했다.

명경의 모습에서 한소유는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는 화산파 내에서도 잊혀진 한 소년의 모습을.

‘천경.’

그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화산으로 돌아가면 현소 사숙께 한번 찾아가 봐야겠구나.’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현소 진인의 거처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소유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핑계에 불과함을.

사실은 보기가 두려워서다.

현소 진인이 얼마나 제자 천경을 아끼고 사랑했는지 한소유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느꼈을 거대한 상실감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까지 외면해 왔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이는 비단 한소유만이 아니었다.

화산파의 제자라면, 그것도 일대제자 이상이라면 누구나 그녀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사저, 우리 저곳으로 가요.”

또다시 명경의 목소리가 그녀의 상념을 깨웠다.

명경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동정호 변에 있는 제법 큰 반점이었다. 그곳은 꽤 많은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손님들의 목소리는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왠지 모를 생동감이 느껴졌다.

명경은 천성적으로 그런 곳을 좋아했다.

“그래! 가자.”

한소유가 명경의 뜻을 따랐다.

“어서 오십쇼.”

반점 안에 들어가자 점소이가 그들을 맞았다.

“남는 자리 있느냐?”

“안쪽에 남는 곳이 있습니다만 보다시피 조금 시끄럽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괜찮다.”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명경의 대답에 점소이가 활짝 웃으며 앞장섰다.

점소이가 안내한 곳은 반점 안의 구석진 자리였다. 그의 말처럼 그곳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명경은 오히려 기껍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한소유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탕면하고 오리 구이 하나 내오거라.”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점소이가 대답과 함께 주방으로 달려갔다.

주문을 마친 명경은 사뭇 신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려봤다. 탁자마다 수많은 이들이 모여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까운 탁자에 모여 앉은 상인들의 대화가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정말 끝내주지 않는가?”

“뭐가 말인가?”

“권마 말일세.”

“아! 권마.”

“도무지 거칠 것이 없잖은가?”

“그런 흉인이 끝내주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비쩍 마른 상인이 먼저 말을 꺼낸 뚱뚱한 상인을 타박했다. 하지만 뚱뚱한 상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왜? 자네 생각은 다른가 보지?”

“서천산장을 멸문시키고, 홍암산장에 큰 피해를 끼친 자네. 게다가 이번엔 형산파의 문주까지 죽였네. 그는 강호에 해를 끼칠 거마(巨魔)가 분명하네. 도대체 구대문파는 그런 마인을 어서 빨리 제거하지 않고 뭐하나 몰라.”

“흥! 능력은 있고?”

“능력이라니? 구대문파가 능력이 없으면 어떤 문파가 능력이 있단 말인가?”

“최근에 구대문파의 행보라고 해 봐야 별게 있나? 마교와의 대전이 끝난 후 몸만 사리고 있고. 그런 그들이 과연 권마를 전력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흥! 그래 봤자 권마는 일개인에 불과해. 그런 자가 현 강호의 정점에 서 있는 구대문파를 감당할 수는 없네.”

“잊었나 보군. 구대문파 중 하나인 공동파의 장문 제자인 남학이 그에게 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이대로 몇 년만 지난다면 그는 분명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을 능가할 만한 성취를 이룰 게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내기할까?”

“좋네! 내기하세.”

상인들의 목소리가 명경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권마라…….”

“요즘 그 이름이 꽤 많이 들리네.”

한소유의 얼굴에도 흥미로운 빛이 떠올랐다.

악양에 들어오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별호가 바로 권마였다.

산월장을 관리하는 하인들과 무인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이들이 권마의 무위를 가지고 떠들고 있었다.

악양과 동정호 변으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무인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권마라는 남자가 더 화젯거리였다.

사람들이 둘 이상만 모이면 권마에 대해 떠들었고, 온 거리가 그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그가 공동파의 남학을 이겼다는 것이다.

남학은 구무룡.

명경과 같은 구무룡의 일원으로 평가받는 자였다. 그런 자를 이김으로써 권마는 불같은 명성을 얻었다.

구무룡에 속한 명경으로서는 심경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사부 현검 진인은 구무룡을 모두 쓰러트림으로써 화산파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알리라고 했다.

“그 역시 쓰러트려야 할 자.”

명경이 호승심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한소유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순진무구한 얼굴 뒤에 숨겨진 불같은 호승심과 호전적인 성향.

원래의 명경의 성격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성품이었다.

바로 현검 진인에 의해서.

자신의 사제지만 어떤 때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사숙은 도대체…….’

현검 진인의 집념이 만들어 낸 결과물.

한소유는 명경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어쨌거나 명경은 그녀의 사제였고, 화산파의 미래였으니까.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탕면은 정갈했고, 오리 구이는 담백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도 와 봐야겠구나.’

한소유는 그렇게 생각하며 젓가락을 놀렸다. 명경도 가벼운 미소와 함께 음식을 맛봤다.

“맛있네요.”

“응!”

“천경 사형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응?”

명경이 뜬금없는 물음에 한소유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눈만 끔뻑이는 한소유에게 명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우연히 들었어요. 천경 사형이라는 분이 있었다고. 제가 일대제자가 되기 전에 있었던 분이라고 하던데 사저하고 유독 친했다면서요?”

“휴!”

명경의 순진한 물음에 한소유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명경의 입에서 천경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그동안 천경이라는 도호는 화산파 내에서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은 천경이라는 도호를 언급하는 것을 꺼렸고, 아예 없었던 사람 취급을 했다.

“누구한테 들은 거야?”

“말했잖아요. 그냥 우연히 듣게 되었다고. 그런데 물어보면 다들 사저와 같은 반응이더라구요.”

“무슨 반응?”

“듣지 말았어야 할 것을 들은 듯한 표정. 바로 그 표정이에요.”

한소유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고, 이는 꽉 물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반응이었다.

명경은 그런 한소유의 얼굴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여유롭던 한소유의 얼굴에 이런 균열이 일어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명경은 그런 생소한 경험을 즐기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소유가 겨우 입을 열었다.

“천경은…… 화산파의 아픈 손가락이야. 아니, 잘려 나간 손가락이라고 봐야겠지.”

“자세히 듣고 싶군요.”

“나중에.”

“예?”

“아직은 말하고 싶지 않아. 아직은……. 그냥 그 정도만 알고 있어.”

“그런가요?”

“미안해!”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명경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딱히 중요한 일도 아니니까.’

명경이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킬 때였다.

“사고, 사숙.”

갑자기 반점의 문을 열고 화산파의 이대제자 원율이 달려왔다.

“여기 계셨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악양 온 객잔을 다 뒤지고 다녔습니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그를 보며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큰일?”

“이곳으로 오던 하북팽가의 고수들이 습격을 당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어서 들어오시라는 현무 태사조의 명이십니다.”

두 사람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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