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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3장. 잔치엔 방해꾼이 들기 마련이다(3)
하북팽가의 전력이 전멸한 것은 유일한 생존자인 팽관영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겨우 목숨을 구한 팽관영은 밤새 말을 달려 악양에 도착했다. 그는 남궁창에게 금마사자의 존재와 팽가의 전력이 전멸한 것을 알리고 그대로 혼절했다.
하북팽가뿐만이 아니었다.
동정호로 오던 무당파의 무인들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했다. 다행히 무당파의 전력은 매우 탄탄해서 습격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무당파가 입은 피해 또한 상당해서 도착이 늦어지고 있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에서는 이 사실을 숨기려 애를 썼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모조리 속일 수는 없었다.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퍼져 나갔고, 결국 호남성 전체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흔한 회합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이 모르는 곳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같은 거대 세력들이 회합을 가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동정호에 들어온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움직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렇게 급격히 악화되자 누구보다 곤혹스러운 이는 바로 남궁창이었다.
담호에게 금검대를 잃은 것이 컸다. 수족이 되어 줄 이들을 모조리 잃었으니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남궁세가에 지원 병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곳과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성까지는 수천 리가 넘었다.
제아무리 빨리 후속 병력이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열흘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남궁창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큭!”
남궁창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평소에 자신의 속마음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남궁창이었지만, 지금은 초조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남궁창의 앞에는 오군의가 앉아 있었다.
오군의의 표정 역시 무척이나 심각했다.
“하북팽가의 전력이 전멸을 당하다니. 그럼 역시…….”
“마교겠지.”
“으음!”
남궁창의 대답에 오군의가 침음성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마교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십이 년 전이었다. 당시 무당파와 화산파, 종남파의 고수들이 새외로 향했고, 그곳에서 마교의 잔당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 끝에 격퇴했다.
그것이 세상에 알려진 내용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몇몇 현명한 사람들은 보이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런 인물들 중 하나가 남궁창이었고, 다른 한 명이 무당파의 청허 진인이었다.
무당파의 청허 진인은 직접 무인들을 이끌고 천금마옥에서 마교의 잔당과 싸운 인물이었다. 때문에 당시의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마교의 잔당들이 너무 쉽게 폭사를 택한 것에 의심을 가지고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천금마옥에서 죽은 마교도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청허 진인은 마교가 이곳에서 키운 병력 대부분을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섣불리 발설할 수 없었다.
결국 청허 진인은 은밀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았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남궁세가의 남궁창이었다.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남궁창은 청허 진인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마교의 흔적을 쫓았다.
무려 십 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그들은 마교의 잔당이 중원으로 들어왔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마교의 잔당이 정말 중원 내에 암약한다면 기존의 문파들로는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무림맹을 창설하려고 한 것이다.
그들은 수년 동안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수뇌부들을 만나 설득을 했다. 그들의 집요한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거둬 동정호에서 본격적인 회합이 이뤄졌다.
그것이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들이 이곳 동정호에서 회합을 갖게 된 이유였다.
청허 진인이야 마교를 막겠다는 순수한 이유에서 무림맹의 창설을 주도했지만, 남궁창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그는 무림맹의 창립을 주도해 남궁세가가 더 많은 이득을 얻길 원했다. 그리고 남궁세가에서 무림맹의 맹주가 나오길 바랐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들어지는 무림맹이었다. 남궁세가에서 맹주가 나온다면 당연히 위상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림맹의 창설을 주도한 남궁창에게도 큰 명예가 뒤따를 것이 분명했다.
“분명 중원에 마교가 암약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팽가와 무당파를 습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 이건 확실히 예상 밖의 일이야.”
남궁창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로써 한 가지는 증명됐다.
마교가 실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무림맹의 창설을 무척이나 거북스러워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군의가 남궁창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렇게 된 이상 무림맹의 창설을 더욱 빨리 서둘러야 하네.”
“그래야겠지.”
“한시라도 빨리 동정호에 들어온 문파들을 소집해야 하네. 한가하게 천하제일루에서 회합을 가질 여유가 없음이야.”
“알고 있네.”
대답을 하는 남궁창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금검대만 멀쩡했다면 다른 문파들과의 회합에서 밀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남궁세가엔 남궁창과 남궁수 둘뿐이었다. 다른 문파들의 위세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의 창설을 주도해 최대한 입지를 굳히려던 남궁창에겐 치명적인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권마만 아니었어도…….’
남궁창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담호를 떠올리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크윽!’
결국 그는 담호의 이름을 억지로 지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동정호에 들어온 모든 문파들을 소집하세. 비상회의를 개최하겠네.”
“잘 생각했네. 내 제자들에게 모든 문파들을 모으라고 명하겠네.”
“으음!”
고개를 주억거리는 남궁창의 눈엔 힘이 없었다.
서풍객잔에 사람이 다녀갔다. 그가 만난 사람은 초연운이었다.
초연운의 표정이 굳었다.
“골치 아프게 됐군.”
“뭐가요?”
방진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초연운이 인상을 썼다.
“넌 몰라도 돼.”
“알고 싶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왜 물어봐?”
“왠지 형이 관심 가져 주길 바라는 것 같아서요.”
“크윽!”
초연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젠 제법 친해진 두 사람이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말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청을 만나러 간다.”
“소청은 왜요?”
방진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 초연운이 키득 웃었다.
“오늘 회합에 소청도 온다고 하더라.”
순간 방진보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그에 초연운은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소청이 왜 회합에 참가하는데요?”
“안 알려 주지.”
“큿!”
“괜히 인상 쓰지 말고 먹을 거나 좀 만들어 봐. 배고프니까.”
“쳇! 내가 무슨 전담 숙수예요? 맨날 만들어 달래.”
“너 사람 차별하는 것 아냐? 호가 배고프다면 즉각 만들어 바치면서 나한테는 왜 그래?”
“담호 형하고 연운 형이 같아요?”
“그럼 달라?”
“달라요.”
방진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잠시 방진보를 노려보던 초연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상처받았어.”
“그래도 소용없어요.”
“넌 왜 자꾸 차별 대우를 하냐? 그냥 해 주면 안 돼?”
이번엔 초연운이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방진보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알았어요.”
“흐흐!”
언제 불쌍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초연운이 활짝 웃었다.
방진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화덕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에효!”
그의 한숨 소리가 초연운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착한 녀석 같으니라구.”
초연운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엔 언제 웃었냐는 듯이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초연운의 시야에 담호가 들어왔다.
담호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초연운이 담호의 곁으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친구.”
“…….”
담호가 눈을 뜨고 초연운을 바라봤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검은 눈동자. 보통 사람은 담호의 눈빛만 봐도 오금이 저릴 터였지만 초연운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히 말했다.
“잠시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초연운의 뜬금없는 말에 담호가 그를 빤히 바라봤다.
어지간히 말이 없는 친구였다.
“하북팽가가 마교의 습격을 받아 거의 전멸을 했다는군. 무당파도 꽤 큰 피해를 입었고.”
“마교?”
처음으로 담호가 입을 열었다.
마교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그만큼 엄청났다.
“그래! 하북팽가의 유일한 생존자가 그렇게 증언했네.”
담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북팽가라면 오대세가의 하나. 그들의 전력이 약할 리 없었다. 그런데도 전멸을 했다면 그만큼 상대의 전력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 이곳에 들어온 문파들에 비상이 걸렸다네. 남궁 대협이 동정호에 들어온 문파들의 주요 인사들을 비상 소집했네.”
“…….”
“그래서 말인데 나도 가 봐야 할 것 같아.”
“왜지?”
“왜라니? 친구는 내가 누군지 계속해서 잊는 것 같은데 난 초연운이야. 그리고 백전문의 소문주이지. 이곳에 사부가 없으니 내가 대신해야지.”
“백전문이 그들의 회합에 참여할 자격이 되나?”
“큿! 백전문을 그렇게 무시하는 이는 자네밖에 없을 거야. 강호동도들이 괜히 백전전승기를 백전문에 바친 게 아니라니까.”
백전전승기는 마교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증표. 백전전승기를 소유한 문파는 당연히 마교와의 전쟁에서 선봉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나도 회합에 참석해야지.”
초연운의 설명에 담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백전전승기가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지 담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초연운이 백전전승기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화산파와 같은 문파들은 무사히 도착했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지.”
“화……산파가 악양에 들어왔나?”
“왜? 화산파에 관심 있나?”
“…….”
“엊그제 들어왔다고 하더군.”
담호의 눈매가 좁아졌다.
화산파에 대한 그리움은 없다고 해도 화산파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산월장이라는 곳에 머문다고 하더군.”
“산월장?”
“악양검문 소유의 장원이야. 악양 외곽에 있으니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초연운은 담호가 묻지 않은 것도 말해 줬다.
어릴 때부터 중원 전역을 돌아다닌 초연운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눈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담호가 어떤 식으로든 화산파와 연관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강호에 두각을 나타내는 무인들 대부분은 무공의 연원이나 소속이 분명한 편이다.
간혹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고 하지만 그것도 낡은 세대의 이야기였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자리를 잡은 이래 강호의 패권은 언제나 그들의 것이었다.
수백 년 동안 체계적으로 정리된 수많은 무공 비급들과 뛰어난 가문의 스승들. 무공을 익히기 위한 최적의 환경과 지원.
일반적인 문파들이 풀이 가득 자라 앞을 구분하기 힘든 오솔길을 걷는다면 명문의 제자들은 길이 잘 닦여진 관도를 달리는 것과 같았다.
출발점에서 차이가 나니 당연히 도착 지점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좋은 비급을 얻어도 혼자서 익히는 무공은 큰 성취를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강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들의 연원은 대부분 분명했다.
초연운 본인도 장일산이라는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결코 지금의 성취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담호의 무공 연원은 찾기 힘들었다.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강대한 무공과 극도로 단련된 육체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지금의 성취를 얻게 만든 무공의 기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담호의 반응으로 봐서는 화산파와 꽤 깊은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화산파와 연관이 있을까? 그렇다고 보기엔 화산파의 무공과 너무 다른데.’
초연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도 담호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담호의 비밀 하나를 슬쩍 엿본 것 같아서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이제 슬슬 회합에 가야 할 시간이군.’
초연운이 엉덩이를 떼려는 순간이었다.
“밥 먹어요.”
방진보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래도 밥은 먹고 가야지.”
초연운이 다시 주저앉았다.
‘망할 녀석!’
저 멀리 방진보가 밥상을 들고 오고 있었다.
초연운의 입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