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110화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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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4장. 불청객이 잔치에 재를 뿌리다(1)

평소 악양검문에는 많은 이들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오늘 악양검문에는 평소보다 몇 갑절은 더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진을 치고 있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에서 파견된 무인들이었다.

원래는 천하제일루에서 회합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급한 대로 악양검문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바빠진 것은 악양검문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졸지에 심부름꾼 신세가 되어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호남 오대문파 중 하나라는 악양검문이지만 오늘 온 손님들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무인들이 발산하는 강렬한 기운에 압도당해 주눅이 든 상태였다.

더군다나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악양검문에 온 무인들의 신경은 바싹 곤두선 상태였고, 몸에서는 사나운 기세가 발산되고 있었다.

감히 말을 거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악양검문 무인들은 주인이 되어 손님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쳇! 구대문파면 다야?’

‘오대세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속으로는 욕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악양검문에서 가장 큰 대전에 서른 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남궁창과 남궁수, 오군의와 해소월, 현무 진인과 명경처럼 각 문파에서 파견한 수장들이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한쪽엔 백전문을 대표해서 온 초연운이 앉아 있었다. 남몰래 하품을 하던 초연운의 눈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지겨워.’

자신보다 선배들이 입을 열지 않으니 초연운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초연운은 이 시간이 한시라도 빨리 지나가길 바라면서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악양검문의 문주 사마경원과 은가보의 보주 은일명, 그리고 의선문의 문주 심우원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은일명의 곁에는 은소청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 참석하긴 너무 어렸지만, 그녀에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 은일명이 일부러 데려온 것이다.

초연운과 은소청의 시선이 마주쳤다.

‘쯧!’

초연운이 혀를 찼다.

은일명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은소청은 너무 어렸다. 이런 자리가 갖는 무거움을 견디기엔 아직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조금만 참거라. 이따가 기회를 봐서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자.

초연운이 은소청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은소청이 표시나지 않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초연운의 시선이 이번엔 사마경원을 향했다.

사마경원은 악양검문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대전을 내준 것도 모자라 말석에 앉아 있어야 했다.

비록 불만스럽긴 했지만 사마경원은 불만을 토로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은일명과 심우원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무림맹이 호남성에 들어서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커다란 흐름이었다.

‘무림맹이 만들어지기 전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만들어진 후에 자리를 잡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지금 무림맹에 자신의 지분을 확실히 확보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점점 벌어질 것이고, 결국에는 좁힐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치욕을 감수하고 말석에 자리를 잡았다.

워낙 급박하게 소집한 회의다 보니 아직 참석하지 못한 문파도 있었다. 구대문파 중에서는 곤륜파와 무당파, 그리고 소림사가 아직 도착하지 못했고, 오대세가 중에서는 진주언가와 하북팽가가 도착하지 못했다.

곤륜과 소림, 진주언가는 먼 거리 때문에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것이고, 하북팽가는 오는 길에 전멸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당파의 고수들은 오는 길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지만 누구 한 명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만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들 중 상당수는 무림맹을 설립하는 데 회의적이었다.

마교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는 대단했지만, 아직까지는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림맹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등이 주축이 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전 무림의 힘이 응집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무림맹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과 인원이 투자되어야 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등이 제아무리 많은 부를 축적했다고 할지라도 그런 자금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단 마교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무림맹을 만드는 것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위로하면서.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하북팽가의 고수들이 전멸을 했고, 무당파도 큰 피해를 입었다. 마교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음!”

장내의 침묵이 답답한지 누군가 나직한 침음성을 흘렸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사람들이 연이어 입을 열었다.

“휴! 마교라니. 이 무슨 날벼락인지.”

“아직은 확실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무당파의 청허 진인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대화를 주고받은 이는 종남파의 장로 진도경과 점창파의 장로 유진상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파를 대표해 협상의 책임자로 이곳에 온 것이다.

그들의 대화를 시작으로 장내가 시골 장터처럼 시끌벅적하게 변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군의가 남궁창을 바라봤다.

남궁창은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해서 아직 정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최대한 침묵을 지키면서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그때였다.

“무당파에서 청허 진인이 도착하셨습니다.”

밖에서 악양검문 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장내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뒤이어 방문이 열리고 팔괘 문양이 그려진 도사복을 입은 늙은 도사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머리에 쓴 도관 아래 빛나는 형형한 눈빛과 대춧빛으로 붉게 물든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바로 무당파의 청허 진인이었다.

그의 등장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몸을 일으켰다.

“청허 진인, 오랜만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청허 진인.”

청허 진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극진할 수밖에 없었다.

소림사와 함께 무림의 양대 태두인 무당파의 장로이자 호북제일검이라고까지 불리는 청허 진인이었다.

그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노도 청허가 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리 무사하니 다행입니다.”

남궁창의 차분한 대답에 청허 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남궁 장로님.”

“어서 앉으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도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청허 진인이 대답과 함께 빈자리에 앉았다.

이제야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고 제대로 된 의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성질이 급한 점창파의 장로 유진상이 물었다.

“정말 마교의 습격을 받은 겁니까? 청허 진인.”

하지만 누구도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궁금하긴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청허 진인은 잠시 장내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눈에 어려 있는 은은한 공포의 빛을 보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무림의 명숙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마교라는 단어 하나에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휴!’

청허 진인이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싸워 보지도 않고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은 듯한 모습을 보니 심경이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내색할 수는 없기에 애써 표정을 수습하고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 오는 관도에서 정체불명의 적들에게 습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마교도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사람들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저희를 습격한 자들은 분명 강했습니다. 본문의 일대제자 두 명과 이대제자 다섯 명이 중상을 입었으니 말 다했지요. 하지만 그들의 무공이 정말 마교의 무공인지는 아직까지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청허 진인은 복면인들에게 습격당할 당시를 떠올렸다.

무당파 무인들을 습격한 복면인들의 수는 모두 세 명.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치가 떨릴 정도로 강했다.

우두머리 복면인이 청허 진인을 붙잡고 있는 사이 다른 복면인들이 무당파의 제자들을 공격했다.

다행히 무당파의 제자들이 합심해서 그들의 공세를 막아 냈지만, 적잖은 피해를 입고 말았다.

청허 진인 역시 우두머리 무인과의 싸움에서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를 물리칠 수 있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복면인들은 도주를 했고, 청허 진인은 무당파의 무인들을 겨우 수습해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허 진인의 시선이 화산파의 현무 진인을 향했다.

“혹시 귀파의 현소 진인께서도 이곳에 오셨습니까?”

“예?”

“학도사인 그분의 식견이라면 분명 마교의 무공을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오셨습니까?”

“현소…… 사형은 오지 않으셨습니다. 최근 몇 년간 본파 내에서도 그분의 모습을 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런!”

청허 진인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역시 제자를 잃은 일 때문인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했다.

모두가 그를 외면했다.

자신도 그를 외면했다.

제자인 연소하를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현소 진인의 눈물을 본 이후엔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쩌면 현소 진인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소 진인은 결국 오지 않았다.

화산파 내에서도 현소 진인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하니 그가 얼마나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휴!”

청허 진인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쉴 때였다. 가슴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는 하북팽가의 유일한 생존자인 팽관영이었다.

팽관영이 절규했다.

“그들은 마교의 잔당이 분명합니다.”

“팽 소협.”

“하북팽가의 고수들을 썩은 짚단처럼 도륙할 수 있는 무인이 마교 말고 또 어디에 있답니까?”

팽관영의 절규는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졸지에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분노는 실로 엄청났다.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장내에 모인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찬찬히 바라봤다.

“마교가 왜 팽가를 습격했겠습니까? 무림맹이 결성되는 것을 막으려는 겁니다.”

“팽 소협, 일단 진정하게.”

“남궁 대협. 무림맹의 결성을 미루면 안 됩니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알고 있으니 잠시만 진정하게, 팽 소협.”

남궁창이 팽관영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팽관영의 목소리는 높아져만 갔다.

“팽가로 끝날 것 같습니까? 놈들은 무림 전체를 노릴 겁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말입니다. 무림맹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놈들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대전 안에서 들려오는 팽관영의 목소리에 한소유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팽관영의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는 그녀의 가슴마저 흔들었다.

그녀는 무림맹이 만들어지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하북팽가의 전력이 전멸했다. 팽관영은 흉수가 마교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아마 대전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심정적으로는 팽관영의 말에 동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무림맹이 만들어지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남아 있었다.

각 문파의 지분, 출연금의 규모, 그 외에도 수많은 절차와 의견 수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때 원율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사고, 안에 들어가지 않구요?”

“됐어. 결론이 뻔한데 굳이 들어가서 확인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그냥 여기에 있는 게 편해.”

“알겠습니다.”

한소유가 이렇게까지 잘라 말하자 원율은 더 이상 권할 수 없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대전 밖의 연무장이었다.

연무장에는 그들뿐 아니라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무인들 중 상당수가 포진하고 있었다.

친분이 있는 몇몇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가 어색한지라 눈만 멀뚱거리며 소 닭 보듯 하고 있었다.

‘그래도 무림맹이 만들어지면 이들이 제일 먼저 합류하게 되겠지.’

한소유가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을 때였다.

콰앙!

“아악!”

“스, 습격이다.”

갑자기 악양검문 정문에서 굉음과 함께 사람들의 비명성이 울려 퍼졌다.

“무슨?”

한소유의 안색이 싹 변했다.

쾅!

그 순간 굉음과 함께 대전을 둘러싼 벽이 무너져 내렸다.

쉬악!

뒤이어 강력한 경기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뭐야?”

한소유가 본능적으로 양팔을 교차해 얼굴과 가슴을 가렸다.

콰앙!

“윽!”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한소유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런 그녀의 팔은 순식간에 퉁퉁 부어올랐다.

“제법이구나.”

그 순간 나직한 음성과 함께 누군가 담장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 면구를 쓴 남자, 바로 금마사자였다.

금마사자의 등 뒤로 세 명의 복면인이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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