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113화 5장. 오랜만의 해후지만 마음이 예전 같지는 않더라(1)
오군의를 도와 습격자들과 싸우던 해소월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느낌에 몸을 흠칫 떨었다.
그토록 뜨겁게 달아올랐던 장내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한 남자가 발을 끌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오른발로 바닥을 찍고, 왼발을 살짝 끌며 걸어오고 있었다.
쿵! 스르륵! 쿵! 스르륵!
남자가 내는 엇박자의 발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이상할 정도로 자극했다.
그는 바로 담호였다.
담호가 나타난 그 순간 눈에 띄게 경직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오늘의 회합을 주도한 남궁창이었다.
“크윽!”
남궁창의 안면 근육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반응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본래의 표정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몸이 그의 정신에 새겨진 공포에 제멋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수족냉증에 걸린 것처럼 손발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식은땀이 온몸을 흠뻑 적시고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런 남궁창의 반응에 신경을 쓰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단 한 명, 담호에게 집중된 탓이었다.
담호에겐 힘이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불가사의한 힘이.
일단 그가 나타나면 그 누구도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불길하면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무인들은 물론이고 금마사자와 습격해 온 무인들조차 잠시 싸움을 멈추고 담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담호는 걸었다.
황금면구에 가려진 금마사자의 미간엔 깊은 골이 패여 있었다.
두근! 두근!
그의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
세상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이제까지 수도 없이 많은 수라장을 전전해 온 무인이었다. 당연히 그간 쌓은 경험이 여타 무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도 담호처럼 사람의 가슴을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저 걸음 때문이야.’
엇박자의 걸음걸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걸음은 심장의 박동과 궤를 같이 한다. 본래부터 그렇게 태어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담호의 발걸음은 엇박자였다. 그 소리가 사람들의 심장 고동을 방해했다. 그래서 그토록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치는 것이다.
금마사자가 이제까지 격전을 벌이던 청허 진인을 내버려 두고 담호를 노려봤다.
본능적으로 청허 진인보다 담호가 더 위험하다고 느낀 것이다.
청허 진인은 분명 강자였다. 하지만 상대를 긴장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기백과 살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사가 갖는 천성적인 한계 같은 것이었다.
반면 담호에게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 같다고나 할까?
“네놈은 누구냐?”
금마사자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정작 담호는 금마사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십이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곱고 예뻤다. 화산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를 대해 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 바로 한소유였다.
그녀의 앞에 삼염라가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삼염라의 검은 한소유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힘을 주면 그녀의 머리는 몸에서 잘려 나갈 것이다.
담호가 한소유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뭐, 뭐냐?”
그의 기세에 움찔한 삼염라가 사납게 소리쳤다.
담호의 시선이 삼염라를 향했다.
“꺼져!”
“감히!”
복면 속에 숨겨진 삼염라의 눈썹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금마사자를 따른 이래 그에게 이토록 광오한 말을 한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우선 이 계집을 죽이고 다음에 네놈을 육시를 낼…….”
그 순간 삼염라가 눈을 크게 치떴다.
팟!
담호가 예고도 없이 공간을 단축해 왔기 때문이다.
거칠게 흩날리는 검은 흑발 사이로 번뜩이는 짐승의 눈동자가 확대됐다.
충차 같은 전진.
쐐애액!
뒤이어 파성추가 삼염라를 향해 날아왔다.
“큿!”
삼염라는 한소유의 목에 댔던 검을 거둬 담호를 향해 휘둘렀다.
쉬악!
은빛 검기가 쭈욱 늘어나 담호의 손을 노렸다.
삼염라는 이번 한 수로 담호의 손목을 잘라 낼 생각이었다.
아무리 단련하더라도 피륙으로 이뤄진 인간의 주먹이 쇠붙이를 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상식이었다.
쩌엉!
하지만 담호의 주먹과 부딪친 검이 청명한 쇳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삼염라의 검을 박살 낸 담호의 주먹엔 흔한 생채기 하나 없었다. 삼염라의 상식이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크윽!”
삼염라가 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그의 혼신의 공력이 담긴 검마저 부순 담호의 주먹이었다. 그의 주먹을 맞았다가는 단순히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일단 피하고 난 후 반격한다. 그것이 삼염라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삼염라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을 했는지 뼈가 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뒤로 물러나는 것보다 앞으로 달려드는 것이 더 빠른 것이 당연한 이치.
삼염라가 제정신을 차렷을 때는 담호는 이미 그의 가슴팍까지 파고든 후였다.
덥썩!
담호는 파성추를 거둔 대신 삼염라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큭!”
목을 조여 오는 담호의 억센 손길에 삼염라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삼염라는 급히 구명조식을 펼쳐 담호의 손길을 떨쳐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몸이 허공으로 불쑥 뽑혀져 올라갔다.
담호와 함께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삼염라의 상하체가 그대로 뒤집혀졌다.
대지를 무기로 활용하는 무공 지천격이 펼쳐진 것이다.
삼염라의 눈에 대지가 급속도로 확대됐다.
“아, 안 돼!”
쾅!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삼염라의 머리가 대지에 처박혔다.
머리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박살이 난 골편과 뇌수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거꾸로 처박힌 삼염라의 몸체가 허우적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헛!”
“으음!”
머리를 잃은 삼염라의 끔직한 모습에 많은 이들이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때문에 다른 염라들은 물론이고 금마사자까지 어떤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삼염라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청석으로 된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너, 너?”
이제까지 명경을 상대했던 일염라가 말을 더듬었다.
삼염라와 그는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이후 그들은 수십 년 동안 단 하루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별일 없는 한 계속 같이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염라의 소망은 담호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꺼지라고 했잖아.”
담호가 싸늘히 말했다.
한소유는 자신의 바로 앞에 서 있는 담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마치 광인처럼 거칠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그 아래 자리 잡은 깊은 검은 눈동자.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
분명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저기…….”
한소유가 말을 걸려고 하는데 담호가 그녀를 무심히 지나쳐갔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은소청이 있는 곳이었다.
“아……저씨.”
담호를 본 은소청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괜찮으냐?”
“예!”
“다친 곳은?”
담호의 물음에 은소청이 힘껏 도리질을 했다.
애써 의연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진보가 걱정을 많이 한다. 가자.”
“하지만…….”
그래도 두려워 망설이는 은소청에게 담호가 말했다.
“괜찮다.”
순간 은소청은 가슴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안도감이었다.
여전히 그녀의 주위는 지옥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담호가 있음으로 해서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네!”
은소청이 눈물을 훔치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크큭! 이것 참 우습게 됐구먼.”
금마사자의 황금 면구 사이로 쇳소리가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오늘을 위해 그들은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했다.
이곳에 모이는 자들의 신원을 샅샅이 조사하고, 그들의 성향과 무력을 면밀히 분석해 전력을 투입했다.
애써 키운 전력들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그 모든 것이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담호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담호는 그들의 예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인물이었다.
고개를 돌려 청허 진인을 바라보니 그도 예상치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담호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
담호의 등장은 금마사자와 혈련귀들뿐만 아니라 무림맹을 만들기 위해 모인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무인들까지 혼란에 빠트렸다.
모두가 의혹 어린 시선으로 담호를 바라볼 때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혈련귀들이었다.
―놈을 죽여라.
금마사자의 전음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사삭!
수십 자루의 철련겸이 담호 한 사람을 노리고 날아왔다. 수십 줄기의 쇠사슬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교차하고, 날이 시퍼렇게 선 낫이 담호의 육체를 금방이라도 난도질할 듯 파고들었다.
“앗! 위험…….”
한소유와 해소월이 동시에 경호성을 터트렸다.
위잉!
그 순간 그들은 기괴한 소음을 들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이 날갯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소리를.
동시에 담호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분명 같은 자리에 존재하지만 이상하게 흐릿하게 보였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티티팅!
그토록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던 철련겸이 담호의 육체에 닿자마자 모두 미세한 쇳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나간 것이다.
힘을 잃은 채 방향이 바뀐 수십 개의 철련겸.
순간 담호의 손이 번개처럼 뻗어 나와 허공을 훑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수십 개의 철련겸 사슬이 잡혀 있었다.
“헛!”
철련겸을 날렸던 혈련귀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헛숨이 터져 나왔다.
담호가 쇠사슬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혈련귀 수십 명이 한꺼번에 딸려 왔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그들의 육체 위로 담호의 폭포수 같은 주먹세례가 쏟아졌다.
담호가 삼격포영권(三擊砲砲影拳)을 연거푸 일곱 번을 펼친 것이다.
퍼버버버벅!
폭죽이 터지듯 혈련귀들이 터져 나갔다.
머리에 맞은 자는 머리가 터져 나가고, 몸통에 맞은 자는 몸통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그야말로 꿈에 볼까 두려운 끔찍한 위력이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혈련귀가 육편이 되어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
장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피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담호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와 칠흑 같은 장포를 타고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 눈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끔찍할 만큼 무서웠다.
사람들은 말을 잃었고,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그 순간 담호의 시선이 금마사자를 향했다.
금마사자가 움찔한 그 순간 담호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아악!
담호의 몸에 붙어 흘러내리던 피가 바람에 흩날리고 거센 풍압에 금마사자의 금빛 장포가 펄럭였다.
예고도 없이 담호가 코앞으로 들이닥쳤다.
황금면구 안에 자리한 금마사자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