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114화 5장. 오랜만의 해후지만 마음이 예전 같지는 않더라(2)
주르륵!
금마사자의 몸이 십여 장이나 뒤로 주르륵 밀려갔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황금면구 전체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가 있었다.
면구 속 금마사자의 안색이 싹 변했다.
위기의 순간 그는 담호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담호의 주먹에 담긴 경력은 실로 무서워서 그의 얼굴을 가린 황금면구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 줬다.
그 때문에 머리가 울리고 이명이 고막을 괴롭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쉬쉭!
그사이 담호의 이 격, 삼 격이 연이어 날아왔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예고도 없었다.
적이라고 인지한 그 순간부터 담호는 금마사자를 말살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파성추가 펼쳐졌다.
쾅!
금마사자의 몸이 속절없이 뒤로 밀려났다.
강기를 펼칠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강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내공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와 같은 고수에게는 숨 한번 들이킬 시간이면 족했지만, 담호는 숨을 들이킬 여유조차 주지 않고 몰아쳤다.
기이잉!
담호의 다리가 허공에서 기이한 곡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탄마각(彈魔脚)이었다.
쾅!
금마사자가 두 팔을 교차해 담호의 공격을 막았다.
“큭!”
한쪽 무릎이 꺾이고 허리가 굽혀졌다.
담호의 몸이 제자리에서 빙글 돌더니 다시 한 번 다리가 채찍처럼 뻗어 나왔다.
백이십 년 전 각법 하나로 일세를 풍미했던 철혈패마(鐵血覇魔) 우경패의 독문절학 혈천각(血天脚)이었다.
쾅!
금마사자의 머리가 뒤로 튕겨 나갔다.
산산이 부서진 황금면구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나마 간신히 고개를 돌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머리가 박살 날 뻔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을 가렸다.
그런 금마사자에게 다시 한 번 담호의 발이 내리꽂힌다.
탄마각이었다.
담호는 탄마각과 혈천각을 번갈아 사용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담호의 파상공세에 금마사자는 반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금마사자 님.”
보다 못한 일염라가 금마사자를 돕기 위해 나섰다.
쾅!
그가 날린 일권이 담호의 등에 격중 됐다.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은 담호가 피를 토했다. 내장이 울리는 충격에도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슈우우!
일염라를 향해 담호의 반격이 이어졌다.
채찍처럼 뻗어 나가는 주먹, 단양타의 일격이 일염라의 어깨에 작렬했다.
콰직!
“큭!”
일염라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공기가 일렁거렸다.
담호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츄화학!
순간 뜨거운 기운이 그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금마사자의 강기가 스쳐 지나간 것이다.
“휴우!”
금마사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일염라가 찰나의 시간을 벌어 주었기에 강기를 날릴 여유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그의 얼굴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간담이 서늘했다.
심장이 아직도 거세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만큼 담호의 공격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담호의 들끓는 살기가 느껴졌다.
깊은 눈동자 속에 어려 있는 가공할 살기는 분명 자신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자신을 죽여야 할 자로 인식을 한 것이다.
자신을 건드린 자는 결코 가만두지 않는 복수심과 무자비한 폭력으로 무장한 순수한 괴물.
눈앞에 그런 자가 있었다.
부르르!
전신에 소름이 다 끼쳤다.
‘천하에 이런 자가 있다니.’
그 순간 담호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어떤 협상이나 대화도 그에겐 필요하지 않았다.
먼저 건드린 것은 저쪽이다. 그러니까 그만큼 돌려주는 것뿐이다.
금마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또 이곳에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따위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단 하나의 생각.
‘죽인다.’
담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가공할 살기가 일대를 장악했다.
금마사자가 연이어 강기를 날렸다. 하지만 담호는 간발의 차이로 강기를 피해 냈다.
그러면서도 금마사자를 향해 달려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이 강기였다.
누구라도 강기를 직면하게 되면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무당파의 청허 진인도 그래서 무리하면서까지 검강을 뽑아내지 않았던가?
강기는 오직 강기만이 상대할 수 있다.
강호의 오랜 통념이었고, 불변할 것으로 알려진 진리였다. 그래서 강기를 상대하는 자는 두려움에 떨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담호에게 그런 강호의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담호는 자신을 믿었다.
자신의 무공을, 극도로 단련한 육체를.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갔다.
슈우우!
다시 한 번 금마사자가 발출한 강기가 날아왔다.
채찍처럼 길면서 가느다란 형태의 강기는 담호의 가슴을 노리고 있었다.
피할 곳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그리고 담호는 피할 생각이 없었다.
암혼심공을 통해 쌓아 온 내공이 주먹에 집약됐다. 순간 그의 주먹에 은빛 기운이 어렸다.
은망수(銀網手)가 발동된 것이다.
담호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터엉!
주먹에 부딪친 강기가 튕겨 나가고, 담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코와 입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강기를 튕겨 내긴 했지만 그만큼 큰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 담호의 모습은 흉신악살 같았다.
금마사자의 눈에 질렸다는 빛이 떠올랐다.
수많은 무인들을 상대해 봤지만 담호와 같은 유형의 무인은 처음이었다.
“큿!”
금마사자가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를 혈련귀들이 채웠다.
“비켜!”
당연히 혈련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악착같이 담호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사이 금마사자와 염라들이 뒤로 몸을 뺐다.
금마사자가 급히 외쳤다.
“물러난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금마사자가 슬쩍 청허 진인 등을 바라봤다.
그들은 넋을 잃고 담호화 혈련귀의 사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만큼 보여 줬으니 그들의 머릿속에 의심 따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저 정도의 무위라니? 혹시 사신제와 연관이 있는 건가?’
이제는 잊힌 옛 전설을 떠올리며 금마사자는 몸을 살짝 떨었다. 만일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금마사자와 염라들이 몸을 날렸다.
담호를 상대하는 혈련귀들을 제외한 이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악양검문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들을 막아야 할 청허 진인과 정파의 무인들은 담호와 혈련귀들의 싸움에 정신이 팔려 막지 못했다.
콰쾅!
그 순간 연이어 굉음이 터져 나왔다.
담호를 둘러싸고 있던 혈련귀들이 연이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살점이 튀고, 부서진 뼛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부서진 내장 조각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광경에 몇몇 사람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다.
“우웨엑!”
“이, 인간이 아니야.”
목불인견의 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정파 무인들을 도살하던 공포의 혈련귀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담호, 단 한 사람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적의 시신을 짓밟고, 그들의 피로 목욕한 담호의 모습은 사신(死神), 그 자체였다.
담호는 금마사자 등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봤다.
수많은 혈련귀들을 죽였지만, 그의 살기는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었다.
중인들은 그런 담호의 모습에 압도당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질식할 것 같은 정적이 장원 내에 내려앉았다.
담호를 바라보던 명경이 문득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꽉 쥐었는지 주먹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리고 있었다.
현검 진인의 제자가 된 이래 누구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한 명경이었지만, 눈앞에 있는 괴인에게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에게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단순히 적들의 피로 목욕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에게서 원래부터 나는 것인지 모르지만 피비린내가 후각을 자극했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준이 아니야.’
명경의 어깨에 가느다란 경련이 일었고,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담호의 위용에 할 말을 잃었다.
그때였다.
“아……저씨.”
은소청이 정적을 깼다.
그제야 담호가 살기를 누그러트렸다.
담호가 은소청에게 걸어갔다.
한쪽 발을 찍고, 다른 발을 끌면서.
그제야 사람들은 그가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별호.
“신강혈성.”
“권……마, 그는 권마가 분명하다.”
호남성에 들어온 이후 가장 많이들은 별호.
그들은 소문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원래 소문은 과장되고, 확대되기 마련이었다.
담호가 제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후기지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소문이 담호의 무서움을 반에 반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직접 본 담호의 무서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의 무서움은 직접 목도한 사람만이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담호의 존재감에 압도되어 숨도 크게 쉬지 못할 때 청허 진인이 앞으로 나섰다.
“저…….”
그때 그보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이 있었다.
“천……경.”
한소유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천경 맞지?”
한소유가 앞으로 나섰다.
“소유야!”
현무 진인은 그런 한소유를 말리려 했다.
그는 도대체 한소유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천경이라니? 그는 오래 전에 죽지 않았던가?’
화산파 내에서도 말이 많았던 이름이었다.
현소 진인이 거둔 절름발이 제자.
화산파의 수뇌부들은 그런 절름발이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배척했다.
화산파의 일대제자임에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천대받았던 이가 바로 천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그것도 십이 년 전에.
그래서 상심한 현소 진인이 은거를 택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천경이 살아 있다고?’
눈앞에 있는 저 살 떨리게 무서운 괴인이 천경이라니. 현무 진인은 한소유가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아닐 거야. 소유가 잘못 본 것일 게야.’
그것은 화산파의 이대제자인 원율도 마찬가지였다.
“천경 사숙이라니? 말도 안 돼.”
그 역시 천경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직접 심부름 때문에 만났고, 대화도 나누었다. 그래서 얼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아는 천경은 저렇게 패도적이지도, 무시무시한 기세를 발산하지도 않았다.
“아닐 거야. 아닐…….”
그 순간 담호의 입이 열렸다.
“오……랜만이야, 사저.”
탁하고 거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는 순간 화산파의 제자들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
죽은 자가 살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