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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6장. 혼자 걷는 자, 독행류(獨行流)(1)
두 가지 소문이 천하를 강타했다.
첫 번째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회합에 난입한 마교에 관한 것이었다.
마교의 등장은 강호에 큰 반향을 가져왔다.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수십 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그들의 공포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마교가 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회합에 난입해 보여 준 그들의 무위는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점창파의 장로 유진상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금마사자라는 자가 보여 준 무위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강기를 마음대로 다루는 절대고수였다.
회합에 참여한 그 어떤 고수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심지어는 무당파의 청허 진인마저도 말이다.
마교의 등장에 사람들은 절망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상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그들은 이번에도 중원을 피로 물들일 것이다.
마교의 침공이 현실로 다가오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런 와중에 두 번째 소문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권마 담호에 관한 것이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회합에 난입해 살육을 자행했던 마교의 무리들이 담호 단 한 명에 의해 패퇴를 당했다는 소문이 불같이 퍼져 나갔다.
권마, 혹은 신강혈성이라 불리는 자.
그에 관한 소문 중 평범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신강에서는 서천산장을 멸문시켰고, 강호에서는 형산파의 장문인을 죽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악양검문에 난입한 마교도를 막아섰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보에 사람들은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가 마교도가 아니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만일 마교도였다면 크나큰 재앙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권마가 사실은 화산파의 제자였다는 소문이 야금야금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진실을 궁금해했지만 화산파의 도사들은 물론이고 구대문파의 제자들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악양검문 내에서 있었던 일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입장에서 보면 굴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특히 종남파가 당한 굴욕은 치욕적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종남파가 담호에게 이빨을 갈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했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홀로 걷는 자.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의 무공이 독행류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담호는 그렇게 전설의 일각이 되었다.
마교의 등장 이후 무림맹의 창설이 급물살을 탔다.
이제 사람들은 무림맹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무림맹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무림맹에 참여하겠다는 문파들이 줄을 잇고 나타났다.
당장 무림맹의 설립이 진행됐다.
먼저 악양검문에서 부지를 자발적으로 기부했다.
동정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그야말로 최적의 위치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은가보에서 초기 건립 비용을 기부했다.
의선문에서도 지원 인력을 파견했고, 중원 전역에서 자발적으로 무림맹에 참여하겠다는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그리고 수많은 문파들이 정예들을 대거 파견했다.
그렇게 무림맹의 창설이 착착 진행이 되어 가고 있을 때 담호는 악양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수많은 이들이 담호의 행방을 추적했다. 하지만 그의 행방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악착같이 그의 흔적을 추적했다.
권마 담호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현 강호 최고의 폭풍의 핵이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강호의 전황이 크게 변할 수 있었다.
구대문파나 오대세가뿐 아니라 강호 전체가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악양에 무림맹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좋지 않군.”
수하의 대답에 오십 대 초반의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남자의 왼뺨에는 칼로 그은 것 같은 긴 흉터가 그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무척이나 섬뜩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남자의 허리에는 큰 낭아도가 걸려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해온 듯 낭아도의 손잡이는 손때로 반질거렸다.
보통 오십이 넘으면 제아무리 사나운 사람이라도 눈빛이 조금은 유순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달랐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남자의 눈엔 결코 꺼지지 않은 강렬한 야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의 인상이 더욱 강렬해 보였다.
남자의 이름은 조윤산이라고 했다.
녹림십팔채 중 하나인 흑수채(黑水寨)의 채주가 바로 그의 진정한 정체였다.
녹림에서 그의 별호는 광혈랑군(狂血狼君)이었다.
처음 그가 녹림에 투신했을 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매년 수많은 이들이 녹림에 투신했고, 또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녹림은 그만큼 거친 곳이었고, 약육강식의 대지였다.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했고, 강한 자도 방심을 하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조윤산은 그런 녹림의 밑바닥, 조그만 산채인 흑수채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두각을 나타냈다.
그가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바로 녹림도의 본분이라 할 수 있는 약탈이었다. 상단과 표국을 습격해 수많은 재물을 빼앗았다.
그는 곧 채주의 눈에 들었고, 얼마 후 최측근이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흑수채의 채주가 되었다.
조윤산이 채주가 된 이후 흑수채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무섭게 세를 불리고 불려 결국 녹림을 대표하는 십팔채 안에 들었다. 그것이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보통의 녹림도였다면 이쯤에서 만족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윤산의 야망은 무척이나 컸다.
그는 겨우 열여덟 명의 채주 중 하나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녹림을 대표하는 총채주가 되길 원했다.
어제도 오늘도 그의 최종 목표는 녹림의 총채주였다.
조윤산이 창가로 걸어갔다.
흑수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통나무로 울타리를 쌓아 둘렀고, 이십여 채의 산채가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모여도 될 만큼 커다란 공터도 있었고,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도 있었다.
이곳은 천혜의 요새였다. 그리고 조윤산이 십여 년 이상을 심혈을 기울여 키운 곳이었다. 이곳에는 천여 명 이상의 녹림도가 상시 머물고 있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녹림십팔채 내에서도 능히 상위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조윤산이 중얼거렸다.
“총채주를 무너트리려면 강력한 패가 있어야 해.”
흑수채도 강하지만 총채주인 황경문이 이끄는 패왕채(覇王寨)는 더 강했다.
녹림 최고의 고수들이 패왕채에 포진해 있는 이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무너트릴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 계집을 잡아야 해. 그 계집을 인질로 잡을 수만 있다면 분명 그 늙은이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계집의 곁에는 등룡대 최고의 고수라는 묵일광이 있습니다.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그 계집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머리를 써야지.”
수하의 말에 조윤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광혈랑군이라는 별호처럼 광기가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 계집이 악양에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악양에서는 한창 무림맹이 만들어지고 있고?”
“맞습니다.”
“흠!”
조윤산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이내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악양 근처에 부채주 있지?”
“예! 화산파 도사들의 동향을 파악하느라 나가 있습니다.”
“부채주에게 내 서신을 전하고 악양으로 가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수하가 한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조윤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때 그 계집을 죽였어야 했는데.’
***
담호는 흑귀를 탄 채 소로를 지나고 있었다. 그의 곁에 방진보와 초연운이 나란히 말을 타고 있었다.
그들이 걷는 길은 일반적인 관도가 아니었다. 주로 사냥꾼들이나 약초꾼들이 이용하는 소로로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은밀한 곳이었다.
안내자는 바로 초연운이었다.
초연운은 천하 곳곳을 유랑한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이런 은밀한 길들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이곳도 그가 예전에 이용했던 길이었다.
이곳을 이용하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이 호북성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초연운이 슬쩍 담호를 바라봤다.
그의 친구는 이제 너무 유명 인사가 되었다. 객잔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그와 교분을 나누려는 사람도 있었고,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담호에게 접근도 하기 전에 눈빛에 오줌을 지려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었지만 번거로운 것도 사실이었기에 담호는 잠시 악양을 떠나 있기로 했다.
현재 악양은 그야말로 폭풍의 중심지였다.
무림맹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문파에서 무인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 때문에 무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림맹의 건물이 만들어지는 속도 또한 경이적일 정도로 빨랐다. 인근에 있는 솜씨 좋은 목수들이 모조리 동원되고, 수천 명의 인부들이 고용되었다.
하루 자고 나면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전각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 속도라면 불과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무림맹이 완성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상단을 소유한 진주언가와 은가보에서 자금을 지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대가로 무림맹에서 어떤 대가를 받을지는 오직 그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각만 완성된다고 무림맹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그리고 수많은 문파들이 무림맹의 지분을 놓고 줄다리를 할 것이다.
지금 악양은 거대한 회담장이었고, 뜨거운 용광로였다.
파견하는 무인들의 수, 지원하는 자금, 그리고 강호의 명성에 따라 무림맹에서 위치가 달라지기에 모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담호는 그런 악양의 번잡함이 싫었다. 그 때문에 하오문의 기예화에게도 자신이 이동할 것을 알리고 악양을 떠났다.
하오문의 지부는 중원 전역에 퍼져 있었고, 그곳을 이용하면 기예화에게 의뢰한 내용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야.”
그때 초연운의 목소리가 담호의 상념을 깨웠다.
고개를 들자 제법 큰 야산이 보였다.
“저 산을 넘으면 호북성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이대로 소로만 이용하라고. 그러면 길을 잃지 않고 통성(通城)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음!”
“그런데 정말 떠날 건가?”
초연운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불행히도 그는 백전문의 소문주였다.
사부인 장일산을 대신해 무림맹의 회합에 참여해야 했다.
담호가 초연운을 바라봤다.
“잘 있어.”
“에휴! 무정한 친구 같으니라구.”
초연운이 한숨을 내쉬며 방진보를 바라봤다.
“너도 갈 거냐?”
“당연하죠.”
“에휴! 살 빠지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구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방진보의 모습에 초연운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방진보가 해 주는 음식에 길이 들여진 초연운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음식은 맛이 없어서 먹지 못할 정도였다.
“소청은?”
“…….”
초연운의 질문에 방진보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방진보가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은소청이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다. 결국 방진보는 조만간 돌아올 거라는 약속을 해야 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형.”
방진보가 초연운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나도 즐거웠다. 조만간 다시 보자꾸나.”
“예! 형도 몸조심하세요.”
“그래!”
초연운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다시 안 볼 사람들도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강호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언젠가는 보게 될 사람들이었다.
초연운이 손을 흔들었다.
“잘 가게, 친구.”
“잘 있게, 친구.”
“그래! 응?”
무심코 대답하던 초연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제까지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담호가 친구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담호는 이미 뒤돌아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초연운은 담호의 얼굴이 빨갛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하하!”
초연운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