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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20화 (1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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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7장. 인연의 끈은 예측할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2)

가벼운 경장 차림의 여인이 객잔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면사로 얼굴을 가려 진면목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경장 위로 드러난 굴곡진 몸매는 사람들의 혼을 빼 놓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고혹적인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여인의 분위기에 홀려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여인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매우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 구석에 빈자리가 남아 있었다. 여인은 사뿐히 걸어 빈자리에 앉았다. 남자들이 그런 여인을 보며 수군거렸다.

“저 몸매 좀 봐. 요물이 따로 없군.”

“그러게 말일세. 저런 여자와 한번 자 봤으면 여한이 없겠군.”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눈빛엔 욕망이 가득했다.

담호도 여인을 바라봤다.

주변 남자들의 반응이 이해가 갈 정도로 여인의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담호의 눈빛은 보통의 남자들과 달랐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욕망에 눈이 먼 남자들은 미처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허리엔 검이 한 자루 걸려 있었다.

흔히 여인들이 장식용으로 쓰는 패검(佩劍) 따위가 아니었다. 딱 보기에도 무게와 균형이 잘 배분된 검이었다. 거기에 손잡이에 묻은 반질반질한 손때까지.

여인은 검객이었다. 그녀의 안정된 걸음걸이와 면사를 뚫고 나오는 강렬한 안광이 그의 추측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주인 아낙이 여인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남는 방 있나요? 될 수 있으면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면사 여인의 목소리는 눈에 띄는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뒤쪽에 독채가 하나 있기는 한데 좀 허름해서…….”

“괜찮아요. 독채로 줘요.”

“에휴! 허름한데…….”

주인 아낙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반응으로 봐서 독채의 상태가 꽤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면사 여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괜찮아요. 조용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다면야…….”

그제야 주인 아낙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은 나중에 안내해 주고 먼저 식사를 주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탕면 있으면 하나 줘요.”

“알겠습니다.”

주인 아낙이 주방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혼자가 된 면사 여인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그녀를 훔쳐보던 남자들이 헛기침과 함께 딴 곳을 바라봤다.

살짝 고개를 젓던 여인의 눈에 담호와 방진보가 들어왔다.

순간 그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담호와 눈이 똑바로 마주쳤기 때문이다.

한없이 깊이 침잠된 검은 눈동자. 그의 눈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는 또 오랜만이었기에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통산에 이런 고수가 있었던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담호가 고개를 숙여 식사를 시작했다. 여인은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담호에게서 신경을 껐다.

그녀가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구궁산이 보였다. 하얀 운무가 구궁산의 허리를 휘감은 모습이 무척이나 운치 있게 보였다.

여인이 그렇게 구름에 휩싸인 구궁산을 바라볼 때였다. 객잔 창가 쪽에 있던 사내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향한 곳은 바로 면사 여인이 앉아 있는 탁자였다.

개중 제법 훤칠한 외모의 젊은 남자가 면사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소저, 혼자 적적한 것 같은데 우리와 합석하는 것이 어떻겠소?”

여인이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남자가 주위에 있는 남자들을 잠시 둘러본 후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남자의 이름은 조경염, 통산에서는 꽤 유명한 한량이었다. 집안에 돈이 많은 데다가 본인의 외모 또한 반반하여 수많은 여자들을 후리고 다녔다.

여인을 바라보는 조경염의 눈엔 욕망이 가득했다.

‘내가 처음 보는 우물이다. 이년을 벗겨 놓으면 정말 대단할 거야.’

단순히 그녀의 몸매 때문이 아니었다. 수많은 여인을 섭렵하면서 얻은 감각이 그녀가 빼어난 명기일 거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조경염은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돌아온 여인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 달리 싸늘했다.

“꺼져요!”

“뭐?”

조경염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여인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역겨우니까 꺼지라구.”

“하! 이것 봐라. 그거 지금 나한테 한 소리야?”

“지금 이 자리에 당신밖에 없으니까 당신에게 한 소리겠지?”

“살다 살다 이 조경염이 이렇게 개무시를 당할 때가 있다니. 정말 어이가 없구나. 형제들, 이걸 어찌하면 좋겠소?”

조경염이 곁에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자들이 얼씨구나 하며 앞으로 나섰다.

“계집이 못하는 말이 없구나. 자고로 계집이란 사내의 말을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것을.”

“조형도 많이 죽었구만. 말 한마디 제대로 걸지 못하고 계집한테 거절을 당하고.”

남자들은 통산의 암흑가에 몸을 담고 있는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조경염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갖은 악행을 자행했다.

그들에게 걸린 여자치고 멀쩡한 이가 하나 없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철저하게 유린했다.

면사 여인이 객잔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그들의 음심은 동한 상태였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여인을 품에 안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어디 한번 얼굴 좀 보자. 얼마나 반반한지.”

조경염이 손을 뻗어 여인의 면사를 벗기려는 순간이었다.

핏!

갑자기 그의 손등 위에서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엇?”

조경염이 영문을 몰라 눈만 끔뻑거렸다. 그러다가 극심한 고통에 현실을 깨달았다.

“으어억!”

조경염이 팔을 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계집이!”

“조져!”

다른 남자들이 깜짝 놀라 달려들려던 순간이었다.

피핏!

갑자기 그들의 어깨와 목덜미가 갈라지더니 피가 치솟아 올랐다.

“크헉!”

“우와악!”

남자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제야 남자들은 여인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았다.

마치 검으로 그은 것처럼 상처가 날카롭게 벌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여인이 어떻게 자신들을 공격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인은 자신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수였다. 겨우 그들 따위가 음심을 품고 어떻게 해 볼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여인이 입술을 열었다.

“그래도 내 얼굴을 보고 싶나요?”

조경염과 남자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지혈을 하려고 상처를 꽉 누르고 있었지만, 피가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해서 피가 흐른다면 목숨마저 위험했다.

조경염과 남자들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의원을 찾아 지혈하면 살 수 있을 거예요.”

“의, 의원?”

여인의 말에 조경염과 남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인은 그런 남자들을 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너무나 차가웠지만 면사에 가려져 사람들은 진면목을 볼 수 없었다.

그제야 객잔 안의 사람들은 여인이 무서운 고수인 것을 알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면사 여인은 무림인과 잘못 엮였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조경염과 남자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었다. 그녀는 그들이 감히 음심을 품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방진보도 면사 여인의 무위에 무척이나 놀란 상태였다.

“형, 저 누나 정말 대단하네요.”

방진보는 면사 여인이 어떻게 남자들의 몸에 상처를 냈는지 보지 못했다.

담호의 무심하기만 하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의원을 찾으면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의원이 심맥을 고칠 만한 수준에 이른 신의라면.

다른 사람들은 여인이 어떻게 조경염과 남자들의 몸에 상처를 냈는지 보지 못했지만 담호는 달랐다.

여인이 사용한 무기는 탁자 위에 있던 쇠젓가락이었다. 너무 빨리 휘둘렀기에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뿐이다.

그 순간 담호는 똑똑히 보았다. 순간적으로 쇠젓가락 위로 형성되던 날카로운 검기를.

여인이 만들어 낸 검기는 단순히 피륙의 상처만 낸 것이 아니었다. 조경염과 남자들의 심맥까지 절단했다.

단 내공의 운용이 절묘했기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을 뿐이다.

문제는 남자들이 의원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그나마 간신히 붙어 있던 심맥이 끊어질 거란 점이다.

면사 여인에게 수작을 건 시점부터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던 것이다.

문득 이곳에 오기 전 보았던 대원표국 표사들의 시신이 떠올랐다.

‘그것도 그녀의 솜씨였군.’

면사 여인은 검의 고수였다. 그것도 매우 뛰어난.

식사를 끝낸 면사 여인은 주인 아낙이 안내해 준 독채로 들어왔다. 독채는 주인 아낙의 말처럼 무척이나 허름했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정돈되어 있어 당분간 머무는 데 문제는 없을 듯싶었다.

“휴!”

여인이 한숨을 내쉬며 면사를 벗었다. 그러자 그녀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매우 오랫동안 해를 못 본 것처럼 유난히 하얀 피부에 붓으로 그려 놓은 듯 섬세한 눈썹과 흑요석을 박아 놓은 것 같은 검은 눈동자. 코는 오뚝하고, 조그만 입술은 붉디붉었다.

여인은 흔히 말하는 절세미인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심혼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여인은 항상 면사를 쓰고 다녔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물건은 찾지 못했는데 날파리만 자꾸 꼬이는구나. 얼마나 더 이래야 할지.”

잠시 창문 밖을 바라보던 여인이 이내 몸을 날렸다.

구궁산 정상에는 구궁문이 있었다.

현 구궁문의 문주는 철양 진인이었다.

그는 삼십 대 초반에 구궁문의 문주가 되어 이십 년 동안이나 잘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무공과 도력이 모두 높아서 많은 이들이 존경한다고 했다.

밤이 늦은 시각이었지만 철양 진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어서였다.

“휴!”

결국 철양 진인은 잠을 자는 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원래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면 구궁산 정상에는 환상적인 별들의 바다가 펼쳐진다. 하지만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별들이 모조리 모습을 숨겼다.

“왜 이리 어둡누? 좋지 않구나.”

철양 진인은 천기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고수였다. 오랫동안 쌓아 온 도력이 그만큼 두터웠다.

하지만 오늘 그가 본 천기는 무척이나 어지러웠다. 요 몇 년간 이렇게 천기가 어지러운 하늘은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마교가 발호했다더니, 그 때문인가?”

천하가 마교 때문에 뒤숭숭한 시국이었다. 그 때문에 구궁문에서도 무림맹에 병력을 파견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생길 것인지.”

수십 년 전에 마교가 발호했을 때 철양 진인은 혈기가 왕성한 젊은 무인이었다. 그때 사형제들과 함께 마교와의 싸움에 참가했다.

운이 좋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덕에 마지막 결사대에 뽑힐 수 있었다.

그는 결사대와 함께 누구보다 치열한 전투를 겪었다. 그래서 마교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도 천하의 힘을 모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철양 진인은 그렇게 애써 스스로를 위안할 때였다.

스륵!

미세한 소성이 들려왔다. 누군가의 옷자락이 풀에 스치는 소리였다.

철양 진인이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경장을 입은 여인이 보였다. 신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여인은 바로 풍천객잔에 묵었던 면사 여인이었다.

철양 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수많은 도사들이 수행하고 있는 구궁문이었다. 개중에는 여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눈앞에 있는 여인처럼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이는 없었다.

“소저는 누구신가?”

“구궁문의 문주 철양 진인 맞나요?”

“그렇소만……. 그러는 소저는 뉘신가?”

“내 이름은 음유경이에요.”

“그렇군! 음 소저. 그런데 이 밤중에 구궁문은 어인 일이신가? 낮에 와도 충분히 반가이 맞아 줄 텐데.”

철양 진인의 목소리엔 경계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여인이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구궁문에서도 중지에 속하는 곳이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세 개의 문을 지나야 했고, 문들에는 구궁문의 문도들이 삼엄한 경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음유경은 구궁문의 제자들의 눈을 속이고 이곳에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라는 뜻이었다.

음유경이 철양 진인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무엇 좀 물어보려 왔어요.”

“허허! 무섭구만. 무엇이 그리 궁금해 이 시간에 산을 오른 것인지.”

“안다면 꼭 말해 주셨으면 해요.”

“말해 보시오. 아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알려 줄 테니까.”

철양 진인이 암암리에 공력을 끌어올렸다.

“성물(聖物).”

“무슨?”

“본교에서 당신들이 훔쳐 간 성물을 찾고 있어요.”

철양 진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 설마 마교?”

“알려 주시겠어요? 훔쳐 간 성물을 어디다 감췄는지.”

음유경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담담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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