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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21화 (12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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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 7장. 인연의 끈은 예측할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3)

담호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흑귀가 있는 마구간을 찾는 것이었다.

푸르르!

흑귀가 반갑다고 투레질을 했다. 담호가 그런 흑귀의 목덜미를 가볍게 두들겼다.

흑귀가 기분 좋은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목덜미에 닿은 손을 타고 흑귀의 기분 좋은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

담호도 눈을 감았다.

흑귀와 함께한 지도 세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사이 둘의 교감은 점점 강해져 가고 있었다.

담호는 한참이나 흑귀와 함께 있다가 객잔 일 층 식당으로 돌아왔다. 식당에서는 방진보가 식당의 주인인 숙수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젯밤 방진보는 풍천객잔의 주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숙수의 이름은 종문연, 주인 아낙의 남편이자 풍천객잔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었다.

종문연은 오랜 세월 숙수로 일한 사람답게 요리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이 방대했다.

그는 방진보를 처음 봄에도 무시하지 않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또 직접 가르쳐 주었다. 요리하는 즐거움에 방진보는 밤을 꼴딱 새웠다.

그런데도 방진보는 피곤한 기색이 하나 보이지 않고 웃고 있었다. 그만큼 요리하는 즐거움에 푹 빠진 것이다.

“형!”

방진보가 담호를 보고 반색을 했다.

“그래!”

“식사하셔야죠?”

“음!”

“헤헤! 종 숙수님이 마파두부를 만드셨어요. 맛이 아주 끝내줘요.”

“그렇구나.”

“자리에 앉아 계세요. 바로 내올 테니까.”

“음!”

담호가 창가 자리로 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은 꽤 한산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는 겨우 대여섯 명 정도. 그들은 모두 말없이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덕분에 담호는 오붓하게 차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쪽을 봉쇄해.”

“반드시 마녀를 잡아야 한다.”

밖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일단의 무리들이 객잔 안으로 들이닥쳤다.

도관에 도복을 입은 무리는 바로 도사들이었다. 그들은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객잔 안을 둘러봤다.

갑작스러운 도사들의 등장에 종문연이 앞으로 나섰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답게 종문연은 도사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아니, 구궁문의 도사님들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본문을 습격한 마녀를 찾고 있다.”

도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도사가 앞으로 나섰다.

늙은 도사의 도호는 철관. 철양 진인의 사제이자 구궁문 구대장로의 수장이었다.

“무슨? 마녀라니요?”

“어젯밤 본문의 문주님께서 마녀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으셨다.”

“무슨?”

종문연이 눈을 크게 치떴다.

구궁문의 문주라면 철양 진인을 말함이었다. 철양 진인은 통산 일대에서 존경을 받는 도사 중의 도사였다.

“문주님을 습격한 마녀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예? 그럴 수가…….”

종문연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젯밤 이곳에 머문 여자라면 단 한 명뿐이었다.

“어딘가? 마녀가 머물고 있는 방이?”

“뒤, 뒤쪽의 독채입니다.”

종문연의 대답에 철관 진인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마녀를 잡을 때까지 이 안에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옛!”

일부 도사들이 대답과 함께 객잔의 정문을 막아섰다.

그들의 몸에서는 살벌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구궁문 본원에서 문주가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구궁문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드시 장문인을 습격한 마녀를 잡아 죄를 물어야 했다. 그래야만 실추된 명예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철관 진인이 도사들과 함께 독채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독채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젯밤에 아예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마……녀!”

철관 진인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통산 외부로 통하는 관도를 모조리 봉쇄해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예!”

몇몇 도사들이 대답과 함께 밖으로 달려 나갔고, 철관 진인은 다시 일 층의 식당으로 돌아갔다.

식당에는 어젯밤 객잔에 묵었던 이들이 모조리 나와 있었다. 구궁문의 도사들이 모조리 깨운 것이다.

잠을 자다가 졸지에 끌려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만의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대놓고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었다.

그들도 대충 이야기를 들었기에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다.

구궁문의 문주가 습격을 당한 일대사건이었다. 자칫했다가는 구궁문뿐만 아니라 일대에 있는 정도 문파들의 원한을 살 수도 있었다.

구궁문의 도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에워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기세에 위축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철관 진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대충 돌아가는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오. 우리는 본문의 문주님을 습격한 흉수를 찾고 있소. 그러니 모두 순순히 협조해 주길 바라겠소.”

“하지만 우리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왜소한 체구의 상인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철양 진인의 대답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것이오. 당신들은 그저 아는 것을 말하기만 하면 되오.”

“그, 그거야…….”

“알겠소?”

“알……겠습니다.”

상인이 목을 움츠렸다. 기가 죽은 것이다.

“당신부터 먼저 그녀에 대해 말해 보시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그녀가 어제 저녁 갑자기 이곳에 찾아왔다는 것뿐입니다. 그녀는 수작을 걸던 몇몇 파락호들을 손봐 주고 혼자 식사를 했습지요.”

“그녀와 이야기를 한 다른 사람은?”

상인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녀는 그 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난 후에는 그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철관 진인은 그 후로도 몇몇 사람들에게 더 질문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상인과 동일했다.

“크윽!”

소득이 없자 철관 진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문득 그의 시선이 식당 한쪽에 있는 담호를 향했다. 모두가 구궁문의 기세에 불길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오직 그만은 태연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

철관 진인이 담호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담호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식사를 계속했다.

“내 말 못 들었는가?”

철관 진인이 노성을 터트렸다.

그제야 담호가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철관 진인을 올려다봤다.

“큭!”

담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마치 목덜미가 맹수에게 그대로 노출된 듯했다.

그의 손은 어느새 허리의 검을 찾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로님.”

그런 철관 진인의 모습에 구궁문의 도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담호를 에워쌌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담호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철관 진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지?”

“크윽! 내가 한 말 듣지 못했나? 마녀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하지 않았나?”

“몰라.”

“뭣이?”

“그러니까 할 말도 없어.”

“이익!”

철관 진인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그에 젊은 도사들이 먼저 분노했다.

“무엄하구나. 지금 장로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냐?”

“무엄?”

담호의 눈동자가 스륵 말을 꺼낸 젊은 도사를 향했다. 그러자 젊은 도사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담호의 눈동자를 본 순간 젊은 도사는 자신이 죽는 환상을 보았다. 등줄기가 어느새 축축해져 오고 있었다.

‘무슨?’

젊은 도사는 진저리를 쳤다.

그는 방금 전 본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름이 끼치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담호가 몸을 일으켰다.

순간 철관 진인과 도사들은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막아선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럴 수가!’

철관 진인과 젊은 도사들은 그제야 눈앞의 사내가 보통의 무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과 칠흑처럼 검은 장포. 그리고 깊게 침잠된 검은 눈동자.

언젠가 그런 무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쉽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담호가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살짝 저는 왼발을 보는 순간 그들의 입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궈, 권마?”

당금 무림을 울리는 전설적인 이름 하나.

담호의 명성은 호북성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특히 구궁문 같은 문파에게 권마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권마는 정과 마를 가리지 않고 오직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강호의 정의나 도의 따위는 그에게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철관 진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권마 담 대협이 맞소이까?”

“그렇다면?”

“으음!”

철관 진인은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남자에 관한 소문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흉흉한 것들뿐이었다. 분명한 것은 그와 대적했던 문파와 무인들 중 성한 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철관 진인이 슬쩍 곁눈질로 제자들을 바라봤다.

마치 호랑이를 만난 양들처럼 파리하게 질린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철관 진인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을 탓할 수도 없었다. 자신도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담호와 같은 절대고수의 존재감을 그들과 같은 일반 무인들이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조용히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정체를 밝히자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담 대협께서 이곳에 머물고 계신 줄 몰랐소이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하오만 우린 마녀에 대한 정보가 절실하오. 혹시 그녀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다면 알려 주실 수 있겠소이까?”

“말했잖아. 모른다고.”

“정말이오?”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그럼 통산에는 왜 온 목적은 무엇이오?”

“그냥 지나가던 길이야.”

“목적지는?”

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문을 하는 듯한 철관 진인의 태도가 거슬렸기 때문이다.

철관 진인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내가 왜 그걸 말해 줘야 하지?”

“서로 간의 오해를 없애기 위함이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소?”

“웃기는군.”

“지금 뭐라고 하셨소?”

“다시 듣고 싶나? 웃긴다고 했어.”

“감히!”

“덤비려고?”

담호가 철관 진인을 빤히 바라봤다.

철관 진인은 담호의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슬그머니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으음!”

“흉수를 잡고 싶으면 발로 뛰어. 애먼 사람 붙잡고 지랄하지 말고.”

“크윽!”

담호의 신랄한 말에 철관 진인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그에 다른 젊은 도사들이 발끈했지만, 섣불리 움직이는 않았다.

철관 진인이 담호에게 포권을 취했다.

“담 대협의 말대로 우리는 발로 뛰겠소.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부디 그 마녀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으면 좋겠소. 이건 진심이오.”

“고맙군!”

“그럼 부디 무운을 빌겠소.”

철관 진인 포권을 취한 후 뒤돌아섰다.

뿌드득!

그는 이빨이 부러져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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