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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22화 (1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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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8장.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부른다(1)

담호와 방진보는 객잔을 나섰다.

간밤의 사건 때문에 통산현은 발칵 뒤집혀져 있었다. 사람들은 외출을 삼갔고, 거리엔 구궁문의 도사들이 쫙 깔려 있었다.

도사들은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붙잡고 검문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누구도 담호와 방진보에겐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관 진인은 구궁문의 제자들에게 담호에게 절대 접근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래서 경계만 할 뿐 구궁문의 제자들은 담호의 곁으로 절대 다가오지 않았다.

사위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방진보가 고개를 내저었다. 담호를 따라다니다 보니 이젠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다가 나도 유명 인사가 되는 것 아닌가 몰라?’

방진보가 슬쩍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는 여전히 말없이 흑귀를 몰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그 어떤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구궁문과 충돌을 일으킬 뻔한 것이 일대사건이었을 텐데, 담호에겐 별거 아닌 듯싶었다.

‘형도 참 어지간하구나.’

방진보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담호와 함께 하면서 한 번도 여정이 평탄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와 헤어지기는 싫었다.

“헤헤!”

방진보가 살짝 웃음을 흘렸다.

다행히 담호는 그런 방진보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해 흑귀를 몰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말을 몰았을까? 두 사람은 통산현에서 외부로 통하는 관도에 도착했다.

관도에는 거의 백여 명에 달하는 도사들이 모여 있었다. 구궁문에서 나온 도사들이 밖으로 통하는 관도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관도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을 철저히 검문하고 있었다. 특히 여자는 나이를 불문하고 더욱 철저히 검색했다.

담호와 방진보가 접근하자 도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한쪽은 검은 말에 올라탄 검은 일색의 무인, 다른 한 명은 커다란 봇짐을 짊어진 통통한 소년.

단연 어디서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구궁문의 도사들 중 누구 한 명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서도 철관 진인의 명령이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 것이다.

접근하지도 말고, 막지도 말라.

그것이 철관 진인의 명령이었다.

담호와 방진보가 그들을 지나쳐 통산현을 빠져나갈 때였다. 도사 두 명이 전력으로 이곳을 향해 달려왔다.

“마녀를 찾아냈다.”

“이곳에서 십여 리 밖에서 마녀를 발견했다.”

그들의 외침에 관도에 대기하고 있던 도사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관도는 순식간에 한산해졌고, 덕분에 담호와 방진보는 마음 편히 통산현을 나설 수 있었다.

방진보가 문득 물었다.

“그 누나가 정말 구궁문의 문주님에게 중상을 입힌 걸까요?”

“그럴 게다.”

“어떻게 알아요?”

“너도 무공을 익히면 알게 될 것이다.”

“정말요?”

“그래!”

담호의 말에 방진보가 인상을 썼다. 한참을 생각하던 방진보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형, 저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뜻밖의 말에 담호가 고개를 돌려 방진보를 바라봤다.

방진보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방진보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네!”

“강해지고 싶으냐?”

“아니요.”

방진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요.”

“…….”

“무공을 익히면 내공을 쌓을 수 있잖아요. 그냥 그 내공이란 것을 잘만 활용하면 음식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담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이냐?”

“언젠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공이란 것은 참으로 신비한 것이잖아요. 형처럼 강하게도 만들어 주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고. 그렇다면 그 내공이란 기운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면 분명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렇구나.”

“제게 무공을 가르쳐주시겠어요?”

“아니!”

“역시 전 안되나요?”

“네가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요?”

“내 무공은 파괴하기 위한 무공. 네가 생각하는 그런 개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독행류라고 알려진 암형권은 오직 담호만이 익힐 수 있는 권이다. 독행류를 익히기 위해선 담호와 같은 살기와 독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방진보에겐 그와 같은 살기가 없었다. 방진보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독행류를 익힐 수가 없었다.

“그럼 다른 무공을 익히는 것은 괜찮은 건가요?”

“사람마다 어울리는 무공이 있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너와 어울리는 무공이 있을 것이다.”

“정말요?”

“그래!”

“그런 무공이 있으면 익혀도 되나요?”

“물론이다.”

담호가 커다란 손을 뻗어 방진보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러자 방진보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담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강에서 우연히 인연이 닿아 동행하게 된 방진보는 이젠 그의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자신과 달리 방진보는 어떻게든 음식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생각만 한다.

이젠 맛있는 음식을 넘어 사람의 몸에 이로운 음식을 만들려고 하는 방진보의 마음은 담호의 가슴에도 작은 울림을 남겼다.

“너에게 어울리는 무공을 반드시 찾아 주마.”

“고마워요, 형.”

방진보는 정말 기뻐했다.

담호는 한다면 반드시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약속을 어기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담호는 반드시 그에게 맞는 무공을 구해 줄 것이다. 약속했으니까.

방진보는 금방 무공을 익히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담호가 그런 방진보를 보며 생각했다.

‘진보에겐 오행(五行)의 기운이 조화된 무공이 어울려.’

그런 무공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찾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집념을 갖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꽤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담호는 알고 있었다.

담호 역시 그렇게 성장한 인물이었다.

먼저 험난한 길을 걸었기에 타인에게 조금 더 안전한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담호가 상념에서 깨어나 전방을 바라봤다. 바람에 실려 온 강렬한 혈향이 후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생각보다 혈향이 지독했다.

상관하고 싶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가는 방향에서 혈향이 풍겨오고 있다는 것이다.

“형?”

방진보도 피비린내를 맡았는지 상념에서 깨어났다.

담호와 함께 다니다 보니 이젠 피비린내에 유독 예민해진 방진보였다. 아마 어지간한 고수들보다 그의 후각이 더 발달했을지도 모른다.

관도를 걸을수록 혈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혈향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관도에 수많은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도복과 도관을 갖춰 입은 도사들이었다.

“구궁문의 도사들인가 봐요?”

방진보의 말에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일 검에 깔끔하게 죽었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큰 고통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깔끔한 검격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죽어 있었지만 담호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방진보는 달랐다.

담호가 곁에 있어 그나마 안심이긴 했지만, 인근에서 칼부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를 위축되게 만들기 충분했다.

방진보는 연신 두리번거리며 말을 몰았다.

반면 담호의 표정에는 그 어떤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주위에서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든 간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란 것이 꼭 담호의 마음처럼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불과 십여 리를 가기도 전에 구궁문의 도사들과 면사 여인이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크윽!”

“조금만 더 힘내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구궁문의 도사들이 분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상대하고 있는 면사 여인은 마치 철벽 같이 굳건했다.

면사 여인은 바로 음유경이었다.

구궁문의 도사들이 악착같이 달려들고 있었지만, 음유경은 그다지 큰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구궁문의 도사들은 분명 강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강함에 불과했다. 이들의 검에는 필사의 의지가 담겨 있지 않았다.

반드시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담기지 않은 검에 당할 만큼 그녀의 수양은 얕지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약육강식의 대지.

약한 것이 죄가 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는 것이 당연한 지옥 같은 곳이었다.

음유경은 그곳에서도 제일 밑바닥에서 태어나 지금의 자리로 기어 올라온 여인이었다.

그녀의 마음과 무공은 구궁문의 무인들에게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마녀여!”

철관 진인이 음유경을 보며 노호성을 터트렸다.

그의 눈에 어려 있는 비분강개한 빛을 보면서 음유경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의 분노는 이해한다.

하지만 분노는 이렇게 헛되이 터트리면 안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만났을 때는 전력을 보존하는 것도 복수의 한 방편이다. 분노에 눈이 멀어 모든 수하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자는 결코 좋은 우두머리가 될 수 없었다.

탓!

음유경이 대지를 박찼다.

허공 높이 치솟아 올랐던 그녀의 신형은 이내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쏜살처럼 내리꽂혔다. 바로 철관 진인이 있는 곳이었다.

“누가 물러설 줄 아느냐? 이야앗!”

철관 진인은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절초를 펼쳤다.

쉬아악!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음유경이 피할 방향까지 미리 예측해 봉쇄하려는 것이다.

검기가 바로 코앞까지 날아왔음에도 음유경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음유경이 허공에서 허리를 뒤틀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 전체가 예측할 수 없는 곡선을 그리며 돌아갔다.

팽!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튕겨져 나왔다.

음유경의 검에는 검기와 같은 기운이 맺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검과 마주한 철관 진인은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느꼈다.

“마녀, 너…….”

스걱!

그 순간 모든 것이 잘라졌다.

철관 진인이 만들어 낸 검기도, 그의 가슴도.

핏!

피가 튀었다. 그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철관 진인의 심맥을 자르고 숨통을 끊기엔 충분했다.

철관 진인이 검을 놓친 손으로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몸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장로님!”

구궁문의 도사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들의 눈은 시뻘게져 있었고, 가슴은 온통 노기로 들끓고 있었다.

그들의 분노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힘이 동반되지 않는 분노는 오히려 스스로를 잠식할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머리는 냉철해야 하고, 가슴의 고동을 억누를 줄 알아야 한다.

쉬쉭!

그녀의 검이 연이어 공기를 갈랐다. 그리고 그나마 살아 있던 구궁문의 도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검술이었다.

방진보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런 무서운 검술을 본 적이 없었다.

음유경의 모든 것은 극한까지 절제되어 있었다.

검을 펼치는 움직임 하나부터 숨소리까지. 모든 것이 극도로 절제되어 극한의 효율성을 자랑했다.

“끄으! 마녀여…….”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도사 한 명이 무서운 눈빛으로 음유경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눈동자에서 생명의 기운이 초점과 함께 사라졌다.

“휴!”

그제야 음유경이 한숨을 쉬며 검을 거뒀다.

그녀의 눈에 문득 낯선 시선 두 개가 느껴졌다.

음유경의 눈에 말을 타고 있는 두 남자, 담호와 방진보가 보였다.

“당신들도 저를 쫓아온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에 어려 있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방진보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담호는 대답 대신 그녀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런 담호의 눈빛에 음유경이 움찔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볼 듯한 강한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담호의 입술이 열렸다.

“당신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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