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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28화 (12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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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1장. 재앙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3)

짜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남궁수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손바닥에 얻어맞은 뺨이 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남궁수가 이를 악물며 자신의 뺨을 때린 남자를 바라보았다.

“숙부님! 어떻게?”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남궁수를 보며 노기를 피워 올리는 이는 바로 남궁창이었다.

“숙부님?”

“내가 소재만 파악하라지 않았더냐? 누가 함부로 공격하라고 했더냐?”

남궁창의 노기 어린 눈빛에 남궁수가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엔 반성하는 빛 따윈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반항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너?”

“그럼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그녀의 공격에 목숨을 잃어야 옳았다는 겁니까?”

남궁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남궁창이 미간을 찌푸린 채 남궁수를 노려보았다. 남궁수도 지지 않고 남궁창을 바라보았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남궁수의 도전적인 눈빛에 남궁창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휴! 너 한 명 때문에 남궁세가는 어쩌면 누란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겨우 녹림도 하나 때문에 수백 년의 역사와 저력을 가진 남궁세가가 위기를 맞이하다뇨?”

남궁수는 도저히 숙부 남궁창의 걱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숙부는 그날 마음이 꺾였어. 예전의 숙부가 아니야.’

자신의 오른팔이 부러지고, 금검대가 몰살당했던 그날 이후 숙부 남궁창은 변했다.

소극적이 되고, 신중해졌다. 평소 원대한 야망을 논하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실망했다. 그것이 남궁수가 남궁창의 명령을 어기고 독자적으로 움직인 이유였다.

남궁창이 남궁수를 질타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황혜령이 연관된 일이다. 이 일이 알려지면 황경문이 가만있을 줄 아느냐? 악양이 전쟁터로 변할 것이야.”

“그래 봤자 겨우 도적들의 집단일 뿐입니다.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명문의 저력이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별거 아닌 도적들의 집단이 몇 만 명이 넘는다. 개미도 그 정도 모이면 코끼리도 죽일 수 있는 법이야.”

“저희에겐 무림맹이 있습니다.”

“무림맹은 마교를 견제해야 한다.”

“무림맹의 힘은 차고 넘칩니다. 녹림도까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너?”

남궁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영민하기 그지없던 그의 조카 마음에 심마(心魔)가 깃들었다. 비록 남궁수가 독선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었다.

남궁창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쨌거나 일은 벌어졌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는 일.’

결정을 해야 했다.

잠시 동안 수많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이내 그가 이를 악물며 눈을 떴다.

“무림맹에 요청해 천라지망을 펼치거라.”

“숙부님!”

“반드시 황혜령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황경문과 협상을 할 수 있다.”

“그러겠습니다.”

“이번에도 내 명령을 어기면 반드시 큰 처벌을 받게 만들겠다. 네가 아무리 가주님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남궁수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의 만면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남궁창의 시선은 여전히 미덥지 않았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단순히 남궁수의 독선 때문이 아니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가슴속 기저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남궁수가 밖으로 나간 후에도 남궁창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휴우!”

황혜령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묵일광이 그런 황혜령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황혜령의 전신에는 자잘한 상처가 십여 개나 나 있었다.

그나마 묵일광이 혼신을 다해 보호했기에 그 정도였다. 앞장서 싸운 묵일광의 전신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강력한 육체와 내공이 있기에 이정도로 버티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운신조차 하기 힘든 상처들이 다수였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난 괜찮아. 일광이 고생이지.”

“아닙니다. 제가 불민해서 아가씨를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묵일광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악양의 외곽의 빈민가에 있는 조그만 모옥이었다. 빈민들이 모여 사는 곳답게 빈민가는 오물이 넘쳐흘렀고, 그 덕에 악취가 가득했다.

거리엔 쥐와 벌레들이 들끓는 데다가 흉악한 범죄자들 또한 많아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들어오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누군가 모옥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언니.”

모옥으로 들어온 이는 바로 은소청이었다.

“소청.”

황혜령이 반색을 했다.

모옥은 은소청이 비밀리에 겨우 마련한 안가였다.

하루 전 황혜령과 묵일광은 겨우 은소청과 접선을 할 수 있었다. 은소청은 황혜령과 묵일광을 이곳에 숨긴 후 악양 내의 상황을 살피러 나갔다.

“어떻게 됐니?”

“좋지 않아요.”

“얼마나?”

“천라지망이 펼쳐졌어요.”

“으음!”

황혜령의 입술을 비집고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처음엔 오대세가만 움직였는데, 지금은 구대문파까지 합류했어요. 무림맹 전체가 움직인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대답을 하는 은소청의 표정은 어두웠다.

은소청은 황혜령을 악양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은가보의 힘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은가보 역시 무림맹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은가보가 횡액을 당할 수도 있기에 은소청은 대놓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 역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가지만은 확실해요.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언니가 불리해요. 이곳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예요.”

“어떻게 내 행적이 드러난 거지?”

“누군가 남궁세가에 제보를 했다고 해요.”

“제보?”

황혜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보자의 정체는?”

“아직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어요.”

“으음!”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

“하지만 어떻게?”

“악양 외곽에 마차를 대기시켜 놨어요.”

“마차?”

“하오문이 준비한 것이니 안심해도 될 거예요.”

“고마워! 은 매. 부담이 적잖았을 텐데.”

황혜령이 은소청의 손을 붙잡았다.

세상 모두가 적으로 돌변했지만, 이 어린 동생은 그녀에 대한 의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황혜령으로서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감사의 인사는 일러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면 마차도 타지 못해요.”

“그래!”

황혜령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아가씨!”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종리수가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무림맹 무인들이 빈민가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이 들통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어서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종리수의 얼굴엔 다급한 빛이 가득했다.

마치 그물로 바닥을 훑듯이 적들의 포위망이 좁혀져 오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적들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황혜령이 은소청을 바라봤다.

“은 매는 어서 가.”

“하지만…….”

“괜히 나랑 연관 있는 것을 들켰다간 은가보도 화를 면치 못할 거야. 어서 가.”

“어니!”

“난 괜찮아. 은 매는 충분히 최선을 다했어.”

황혜령이 은소청의 어깨를 다독여 줬다.

은소청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힘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분하고,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는 것이 슬퍼서였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

황혜령과 묵일광이 먼저 나갔다. 은소청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였다.

은소청은 망연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그러자 종리수가 그녀를 채근했다.

“아가씨! 어서 가셔야 합니다.”

“응!”

결국 은소청은 종리수와 함께 모옥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빠져나가고 얼마 후 무림맹의 추적대가 모옥에 들이닥쳤다.

“연놈들이 이미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추적대의 선두에 선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쥐새끼들 같으니라구.”

추적조를 이끌고 온 남궁수가 이를 꽉 깨물었다.

빈민가는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더러운 곳이었다. 평소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오물과 악취 때문에 몇 번이나 몸서리를 쳤는지 몰랐다.

“잡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한낱 녹림도가 무림맹의 심장부에 와서 분탕질을 치다니.”

평소 녹림도를 벌레 보듯 생각했던 남궁수에게 황혜령은 그야말로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녀 때문에 최악의 환경에서 옷을 더럽히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남궁수가 분노를 불태우고 있을 때였다.

“이곳이다. 연놈들이다.”

갑자기 빈민가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황혜령과 묵일광의 행적이 노출된 것이다.

남궁수의 안색이 변했다.

“어서 추적해.”

그는 추적대를 급히 이끌고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갔다.

“큭!”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빈민가가 처참히 파괴되어 있었다.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모옥은 겨우 흔적만 남아 있었고, 곳곳에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신들은 모두 무림맹에서 파견된 추적대였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남궁수와도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다.

“호청, 문일…….”

아직 무림맹이 정식으로 출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림맹이라는 이름하에 모여서 술자리를 몇 번 함께한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마지막 술자리를 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그들이 지금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저들은 절대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다.

남궁수의 턱 근육이 씰룩거렸다. 그는 이미 분노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죽여 버리겠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갈 때였다.

“크악!”

비명성이 근처에서 울려 퍼졌다.

“이쪽이다.”

남궁수가 추적대와 함께 골목을 돌았다. 그러자 공터에서 무림맹의 무인들과 치열하게 격전을 벌이는 황혜령과 묵일광의 모습이 보였다.

표홀하게 움직이는 황혜령의 무위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바로 묵일광이었다.

거대한 도끼 두 자루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무림맹의 무인들을 도살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 백정이나 다름없었다.

찐득한 피가 거대한 도끼를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그 대부분은 무림맹 무인들의 것이었지만, 묵일광 본인의 것도 섞여 있었다.

“흐으!”

묵일광의 입술을 비집고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애써 빠져나간다고 했는데 결국은 무림맹 무인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모습이었다.

벌써 수십여 명의 적을 쓰러트렸다. 하지만 적들은 굴에서 기어 나오는 개미처럼 끝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놈을 죽여라.”

남궁수가 추적대의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와아!”

“놈도 지쳤다.”

추적대가 묵일광과 황혜령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 순간 묵일광이 혼신의 공력을 끌어올려 도끼를 크게 종횡으로 휘둘렀다.

후웅!

강력한 부기(斧氣)가 일어나 사방을 휩쓸어 갔다.

혈월관살(血月貫殺)의 초식이었다. 끔찍한 위력만큼이나 공력의 소모가 극심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크아악!”

“컥!”

순식간에 십여 명의 무인들이 두 동강이 나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분리된 상, 하체에서 흘러나온 내장과 흥건한 핏물, 그리고 사람들의 신음성.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지옥을 연 당사자인 묵일광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워낙 막대한 공력이 빠져나가다보니 일시적으로 탈진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의 커다란 몸이 잠시 휘청거릴 때 은밀하게 뒤로 접근하는 인영이 있었다.

“일광!”

그 모습을 본 황혜령이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묵일광이 급히 뒤돌아보려할 때였다.

푸욱!

갑자기 허리에 불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은밀히 접근한 인영이 단검을 밖아 넣은 것이다.

“크윽!”

묵일광이 비틀거리며 검은 그림자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기습을 한 검은 인영은 이미 뒤로 물러나 있었다.

“흐흐!”

기습을 한 인영은 바로 남궁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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