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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29화 (12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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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2장. 악연의 끈은 더욱 독하게 꼬이기 마련이다(1)

묵일광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크게 휘청였다. 하지만 그는 도끼 한 자루를 지지대 삼아 겨우 버텼다.

“놈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몰아쳐라.”

남궁수의 외침에 다시금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일광!”

황혜령이 묵일광을 향해 달려오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이 너무 많았다.

황혜령은 연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의 상대는 일반적인 무인들이 아니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에서 뽑은 정예들이었다. 그들의 무위는 결코 황혜령에 뒤지지 않았다.

실력은 호각인데 숫자는 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결국 황혜령은 열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

묵일광이 황혜령의 위기를 보고 노성을 내뱉었다.

억지로 허리를 펴고 두 자루 도끼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휘잉!

부기가 소용돌이치며 일대에 휘몰아쳤다.

선풍광렬참(旋風狂裂斬).

그가 익힌 혈천부법(血天斧法)의 상승 절초였다.

쿠콰가각!

“크윽!”

“헉!”

도끼에 부딪친 무기들이 쇠 갉아먹는 소리를 내고, 무인들이 새된 신음성을 토해 냈다. 하지만 다행히도 죽거나 다친 자는 없었다.

거대한 바위도 산산이 분해할만한 위력을 갖고 있는 절초였지만, 공력이 딸리는 데다가 남궁수의 기습에 부상까지 입어 제대로 된 힘을 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놈을 몰아쳐.”

남궁수가 무인들을 독려했다.

묵일광에게 많은 동료들을 잃은 무림맹의 무인들도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다.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묵일광에게 달려들었다.

채챙!

“와아아!”

무기 부딪치는 소리와 악다구니 같은 함성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묵일광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혈천부법을 펼쳤다. 하지만 적들은 끊임없이 몰려왔고, 그의 전신에는 상처가 어느새 가득했다.

“헉헉!”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두 눈은 실핏줄이 터져 금방이라도 핏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충혈되어 있었다.

“후욱! 아가씨.”

묵일광이 고개를 들어 황혜령을 바라봤다. 아직도 그와 황혜령 사이엔 쓰러트려야 할 자가 너무 많았다.

스걱!

그사이 황혜령의 어깨에 기다란 자상이 생겨났다.

황혜령이 비틀거리는 모습에 묵일광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아가씨!’

황혜령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등룡대가 되었고, 그녀의 곁에서 지킬 수 있어 행복했다.

그녀의 고운 눈에 어린 눈물이 보였다. 이 두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훔쳐 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묵일광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도끼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전신의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굵은 힘줄이 지렁이처럼 불거져 나왔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기세에 남궁수가 외쳤다.

“모두 조심해!”

“크아아!”

그 순간 묵일광이 괴성을 터트리며 황혜령을 공격하고 있는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아아악!

그의 도끼에서 거친 기파가 흘러나와 사위를 휩쓸었다.

“크헉!”

“으아악!”

기파에 휩쓸린 무인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두 동강이가 났다.

“일……광.”

황혜령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묵일광이 보이는 믿을 수 없는 무위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지금 묵일광은 내공을 역류시켜 폭발시키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태보다 몇 배는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대신 그 짧은 시간이 지나면 막대한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묵일광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역혈대법(易血大法)을 펼친 것이다.

가가각!

섬뜩한 소성과 함께 수많은 무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묵일광은 역혈대법의 도움을 받아 겨우 황혜령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왜 그런 거야? 역혈대법은…….”

“아가씨를 지키는 것만이 이놈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제 목숨 따윈 어떻게 되도 아깝지 않습니다.”

“일광!”

“제 등에 업히십시오.”

묵일광이 뒤돌아섰다.

널따란 등이 보였지만 황혜령은 쉽게 업히지 못했다. 자신이 업히면 그만큼 묵일광에게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묵일광이 채근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아가씨.”

결국 황혜령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등에 업혔다.

묵일광은 소맷자락을 길게 찢어 그녀와 자신을 칭칭 동여맸다. 이로써 그들은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꼭 잡으십시오, 아가씨.”

“응!”

황혜령의 대답을 들은 묵일광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반드시 아가씨만은 살리겠다. 이 한 목숨을 버려서라도.’

결심은 굳혔다. 행동하는 일만 남았을 뿐.

묵일광이 악양 외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당연히 무림맹의 무인들이 그를 막아섰다. 그들의 눈에도 독기가 풀풀 넘쳐흘렀다.

이 자리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황혜령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전력으로 공격했다.

“크아악!”

묵일광이 괴성을 지르며 두 자루 도끼를 휘둘렀다. 황혜령은 그런 묵일광의 등에 매미처럼 매달려 눈을 감았다.

묵일광의 등을 타고 격렬한 심장고동 소리가 느껴졌다.

두근! 두근!

지옥과 같은 풍경 속에서 오직 묵일광의 심장 소리만이 유일한 위안이 됐다.

“…….”

순간 황혜령이 움찔했다.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다. 왠지 모를 기시감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번 경험했던 것 같은 안도감과 분위기.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패왕채에서 태어나 쭉 자라왔다. 몇 차례 산을 내려와 세상을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위기를 경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치열한 경험을 했을 리가 없었다.

‘착각이겠지.’

황혜령이 고개를 저었다.

타앗!

그 순간 묵일광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경공을 펼쳐 신형을 허공으로 뽑아 올렸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포위망을 뚫어버린 묵일광은 그대로 질주했다.

그의 입가에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시꺼멓게 죽은 피였다. 역혈대법이 한계에 달했다는 증거였다.

‘이곳만 벗어나면 돼.’

묵일광은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전장을 빠져 나갔다. 그의 의도가 성공하는 듯한 그 순간이었다.

쾅!

“컥!”

갑자기 굉음과 함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묵일광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왔다.

묵일광의 몸이 바닥을 뒹굴고, 업혀 있던 황혜령도 떨어졌다.

“크윽!”

“흑!”

두 사람이 답답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쯧! 하마터면 놓칠 뻔했군.”

그들이 튕겨져 나온 자리에 허연 백발이 인상적인 노무인이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크게 반색을 했다.

“청구 진인.”

백발의 노무인은 청성파의 장로인 청구 진인이었다.

청성파가 악양에 입성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 때문에 청성파의 무인들은 누구보다 의욕에 차 있었다.

청구 진인은 청성파 내에서도 중요 요직을 맡고 있는 장로였다. 무공이 고강할 뿐만 아니라 악(惡)이라면 치가 떨릴 정도로 증오했다.

마를 상대함에 한 치의 자비도 없고, 반드시 응징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무인이 바로 청구 진인이었다.

오죽했으면 도가의 무인인 그의 별호가 척마사신(斥魔死神)이었을까.

악양에 황혜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추적에 나섰고, 때마침 묵일광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청구 진인이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쯧쯧! 한낱 도적들 따위에 이 무슨 험한 꼴이란 말인가?”

“죄송합니다. 진인. 하지만 저들의 반항이 너무 거세서…….”

앞으로 나선 이는 남궁수였다. 그의 사죄에 청구 진인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저 계집이 황경문의 딸이 맞느냐?”

“그렇습니다.”

“잘되었구나.”

청구 진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사천 지역에서 알아주는 고수였다. 하지만 일평생 단 한 번 치욕을 당한 적이 있으니 바로 황경문에 의해서였다.

황경문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기 전에 싸웠고, 결과는 그의 대패였다. 그날 이후 청구 진인은 단 한 번도 그날의 치욕을 잊은 적이 없었다.

청구 진인은 다시 한 번 황경문과 자웅을 겨루길 소원했지만, 황경문은 그와 두 번 다시 싸우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녹림의 안위였지, 개인의 명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년을 잡아 협박하면 황경문도 더 이상 나와의 싸움을 회피할 수 없을 터.’

청구 진인이 황혜령을 향해 다가갔다.

묵일광이 이를 악물고 그를 막아섰다. 묵일광은 이미 혈인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크윽! 아……가씨에겐 가지 못한다.”

묵일광의 두 다리가 벌벌 떨렸다.

이미 내공은 바닥을 드러냈다.

역혈대법의 후유증으로 전신의 심맥이 끊어지는 듯했고, 기혈이 꼬여 똑바로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그래도 묵일광은 두 자루 도끼를 지지대 삼아 억지로 버티고 섰다. 그런 묵일광의 모습에 청구 진인이 코웃음을 쳤다.

“큿! 근성은 그런대로 봐 줄만 하구나. 하지만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지.”

청구 진인이 묵일광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내뻗었다.

콰앙!

“컥!”

순간 굉음과 함께 묵일광의 거대한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통혈권(通血拳).

청성파의 수많은 절기 중에서도 당당히 상위에 속하는 권공이었다. 일단 대성하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제대로 펼칠 수 있기 전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청성파 내에서도 익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무공이었다.

청구 진인은 그런 통혈권을 너무 쉽게 펼쳤다. 대성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거기 누워 있거라. 네놈의 처분은 따로 내릴 테니.”

우두둑!

청구 진인의 발이 묵일광의 팔을 짓눌렀다. 그러자 섬뜩한 파골음과 함께 묵일광의 팔목이 부러졌다.

“아가씨에겐 못 간다.”

묵일광이 나머지 팔로 청구 진인의 왼쪽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청구 진인의 눈에 한기가 스쳐지나갔다.

“버러지 같은 놈이 쓸데없이 끈질기구나.”

퍼억!

그의 오른쪽 다리가 묵일광의 가슴을 강타했다.

“커억!”

묵일광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겉보기엔 그저 가벼운 발길질 같았지만, 그 안엔 침투경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던 묵일광의 기혈이,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짓이겨졌다.

“일광!”

황혜령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기어서 묵일광을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묵일광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청구 진인에게 가로막혔다.

“네년이 황경문의 딸이구나.”

청구 진인이 황혜령의 목을 잡아 일으켰다. 목을 잡힌 황혜령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컥! 컥!”

황혜령이 발버둥을 쳤지만 청구 진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네년을 살려 두는 것은 어여뻐서가 아니다. 네년의 아비인 황경문을 끌어내기 위함이지. 네년이 보는 앞에서 황경문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마.”

“크윽!”

“녹림도면 녹림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어디 무림맹의 영역에서 분탕질을 치려는 것이냐?”

“이익! 퉷!”

황혜령이 청구 진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피가 섞인 침이 청구 진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청구 진인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그의 손바닥이 황혜령의 뺨을 갈겼다.

쫘악!

“악!”

황혜령의 뺨이 순식간에 퉁퉁 부어올랐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청구 진인이 다시 황혜령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이번엔 공력이 응집되어 있었다. 뺨을 맞는다면 겨우 이빨이 부러지거나 살점이 찢기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숨만 붙어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청구 진인의 생각이었다.

청구 진인이 다시 손을 날리려는 그 순간이었다.

쿠웅!

갑작스러운 진동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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