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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30화 (1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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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2장. 악연의 끈은 더욱 독하게 꼬이기 마련이다(2)

투웅!

심령을 송두리째 흔드는 기파에 청구 진인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청구 진인은 절정의 경지를 넘어선 고수였다. 그런 고수의 속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무슨?”

청구 진인이 뒤돌아봤다. 그러자 양쪽으로 갈라진 무림맹 무인들이 보였다. 갈라진 사람들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해지는 석양을 뒤로 하고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린 검은 인영에게서 알 수 없는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청구 진인이 황혜령을 바닥에 팽개쳤다. 황혜령은 더 이상 그에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네놈은 누구냐?”

“그, 그자입니다. 담호.”

대답은 남궁수에게서 나왔다.

남궁수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술은 퍼렇게 질려 있었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 새겨진 공포가 담호를 보는 순간 다시 살아났다. 독하게 마음을 먹으려 입술을 힘껏 깨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청구 진인이 의문을 표했다.

“담호?”

“권마 말입니다. 신강혈성이라고도 불리는…….”

“흥! 근래 흉명이 자자하다는 그 마인 말이구나.”

청구 진인이 코웃음을 쳤다.

악양에 들어온 이후 가장 많이들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청구진인은 소문을 믿지 않았다. 소문만큼 부풀려지기 쉬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권마라니? 그렇다면 마인 아닌가? 마인의 싹을 제거하는 것이 무림맹의 역할.’

단 한 명의 마인을 제거해서 수백 명의 선인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진인들의 역할이었다.

저벅!

담호가 걸어왔다.

일대를 포위하고 있던 무림맹의 무인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당신이 왜?”

무인들은 담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담호는 그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똑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길이 향한 곳에 황혜령이 있었다.

황혜령은 피투성이가 된 채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담호의 눈빛이 무섭게 일렁거렸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 황혜령이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을 본 그 순간부터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강렬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크으!”

“헉!”

담호의 분노에 근처에 있던 무인들이 진저리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안색은 그야말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라……버니.”

황혜령이 담호를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새하얗던 치열이 피로 붉게 물든 모습은 너무나 처참해 보였다.

담호가 말없이 황혜령의 앞으로 다가갈 때였다.

“멈춰라.”

청구 진인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담호가 걸음을 멈추고 청구 진인을 바라봤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청구 진인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깊고 검은 눈동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한 줄기 살기.

청구 진인은 급히 공력을 끌어올리며 기수식을 취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담호의 고개가 삐딱하게 돌아갔다.

“비켜!”

“그럴 순 없다. 네놈이야말로 이곳에서 썩 물러나거라. 다른 곳도 아닌 무림맹의 행사다. 무림맹의 공적이 되고 싶지 않다면 썩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림맹?”

“그렇다. 이곳은 무림맹의 관할이다.”

청구 진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덩달아 용기를 얻었다.

“그래! 이곳은 무림맹의 영역. 우리가 놈에게 겁을 집어먹을 이유가 없다.”

“놈도 인간이다.”

일대에 포진한 무림맹 무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도 여럿이 있으면 용기를 얻기 마련이다. 하물며 이곳에 있는 이들은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었다.

평생 누군가의 눈치를 본 적이 없는 자들인 만큼 자존심도 대단했다. 단 한 사람의 눈치만 보기엔 그들의 인내심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무임들의 웅성거림이 곧 거대한 살기가 되어 담호에게 쏟아졌다. 수백의 눈동자가 담호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심신이 위축되어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담호는 웃었다.

입술이 뒤틀린 것도 웃음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비키지 않겠단 말이지?”

“감히 어디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냐?”

청구 진인이 뒤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의 몸에서는 이미 서릿발 같은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놈은 불씨다. 놈을 그냥 놔두면 불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붙을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가 만든 질서에 반하는 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청구 진인이 단순히 황혜령 때문에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담호에게서 반골의 기운을 봤다.

담호는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제 멋대로 살아가는 독행자였다. 만일 담호가 일반적인 무인이었다면 내버려 둬도 상관없겠지만, 불행히도 그는 고수였다.

담호가 제멋대로 놔두게 놓아두면 그를 따라 기존의 질서에 반항하는 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와 같은 명문가들이 만든 질서는 무척이나 공고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의외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담호와 같은 자를 그냥 방치했다가는 그런 의외성을 찌르고 들어올 것이다.

‘백성들은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의외의 존재에 환호를 보내는 법. 분명 놈을 추종하는 자들도 생길 것이다. 그 전에 반드시 삭초제근 해야 한다.’

청구진인이 암암리에 공력을 운용하는 그 순간이었다.

쾅!

갑자기 뇌음이 울려 퍼졌다.

청구 진인의 머리가 덜컥 뒤로 넘어갔다.

골이 울리고 세상이 흔들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앗!”

“자, 장로님!”

무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명처럼 울려 퍼졌다.

청구 진인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해 눈만 끔뻑거렸다.

“크헉!”

갑자기 극통이 느껴지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모든 감각이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가슴에 담호의 주먹이 꽂혀 있었다. 암암리에 공력을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구멍이 뻥 뚫렸을 만큼 강력한 일격이 작렬한 것이다.

“비, 비겁한…….”

쐐애액!

그 순간 담호의 주먹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 꽂혔다.

쾅!

청구 진인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이빨이 우수수 떨어지고, 피가 얼굴과 가슴을 적셨다.

청구 진인의 몸이 통나무처럼 대지에 쓰러졌다.

“…….”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사태에 장내의 들뜬 열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청구 진인이 피를 토한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의식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처음 기세등등했던 모습에 비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몰골이었다.

겨우 숨이 붙어 있었지만, 기식이 엄엄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아마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두 번 다시 자신의 이빨로 식사를 하긴 힘들 것이다.

“장로님!”

“감히!”

처참한 청구 진인의 모습에 그를 따라온 청성파의 제자들이 분노했다.

그들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노기를 터트리고 있었지만, 정작 담호는 그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피투성이가 된 황혜령에게 꽂혀 있었다.

전신에 피를 흘리면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노기가 들끓어 견딜 수가 없었다.

강호에 나온 이후 이렇게 감정에 동요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체 왜?’

담호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들었다.

“오……라버니.”

황혜령의 목소리가 떨리고, 호흡이 미약했다.

담호가 황혜령을 들쳐 업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황혜령이 묵일광을 가리켰다.

“그도 데려가야 해요.”

“그래!”

담호가 대답과 함께 묵일광을 옆구리에 끼었다.

두 사람이나 짊어졌지만 담호는 전혀 무거운 기색이 없었다.

그런 담호의 모습이 중인들에겐 안하무인으로 비쳐졌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허수아비 취급하는 담호의 모습에 그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권마!”

남궁수의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담호를 노려보는 그의 눈은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 것인지 알고 있느냐? 감히 무림맹의 행사에 반기를 들다니.”

“무림맹?”

“그렇다. 마교에 대항해 강호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무림맹이다. 그런데 네놈은 그런 무림맹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이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 항상 네놈 같은 놈들이 문제다. 지 잘난 줄만 알지, 그 힘을 강호를 위해 어떻게 쓸지 고민하지 않는 무책임한 불한당 같은 놈들이.”

남궁수는 빠른 말로 담호에게 모든 분노를 쏟아냈다.

‘네놈만 없었다면……. 네놈만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의 가슴에서 들끓은 열화와 같은 불길이 머리까지 타고 올라왔다.

그렇지 않아도 시뻘겋게 충혈 된 눈동자에 광기가 떠올랐다.

담호가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꼬였다.

잘나가던 그의 인생에 제동을 건 것도 담호였고, 그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치욕에 모멸감까지 겪어야 했다.

하지만 힘이 없기에 참아야 했다.

남궁세가의 금검대를 몰살시킨 담호의 무력은 실로 무서웠으니까.

숙부인 남궁창의 마음까지 꺾은 담호였다. 남궁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주위엔 수백 명의 무인들이 있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뿐만 아니라 구파와 오대세가의 무인들이 골고루 섞여 있다.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곧 천하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그 계집을 내놓거라. 만일 이 제안을 거절하면 중원 어디에도 네놈이 발을 붙일 곳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남궁 소협의 말이 옳다.”

“강호의 뜻에 더 이상 반한다면 놈을 강호 공적으로 지명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남궁수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그들의 웅성거림은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커져갔다.

하지만 담호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등에 업은 황혜령의 상세에만 신경을 썼다.

“오라버니. 어떻게…….”

“말을 아끼고 운공부터 하거라.”

“하지만…….”

황혜령이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이들이 오직 그들만 노려보고 있었다. 제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살이 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담호는 마치 무인지경인 양 그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다.

결국 화가 폭발한 남궁수가 소리쳤다.

“네놈은 내말이 들리지도 않느냐? 이 근본도 없는 개새끼가…….”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다 듣고 있어.”

“너?”

“그리고 내 경고, 잊은 모양이군.”

순간 남궁수는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기분을 느꼈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날의 치욕을.

그날 담호의 말을.

두려움이 갑자기 밀물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이대로 도주하면 언제까지나 담호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것만은 죽기보다 싫었다.

남궁수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말고 계집이나 내놓거라.”

“싫다면?”

“오늘부터 너는 무림맹의 공적이다.”

“웃기는군.”

“뭐?”

“누가 그런 걸 결정하지? 네가? 아니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담호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무림맹의 무인들이 움찔했다.

그 순간 무인들 중 한 명이 외쳤다.

“중원 전체의 뜻이다.”

“그렇다.”

한 명의 목소리가 열 명, 백 명의 목소리로 번져갔다.

기이한 광기가 장내를 지배하고 있었다.

담호가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스르륵! 쿵! 스르륵! 쿵!

왼발을 끌고, 오른 발로 대지를 찍는 특유의 엇박자 걸음이 그들의 가슴에 불길한 울림을 남겼다.

“크윽!”

남궁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쯤에서 물러서야 했다. 그의 마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가슴의 울림을 거부했다.

“쳐라! 놈에게 무림맹이 강호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려 줘라.”

탓!

그 순간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보법은 충보.

무기는 파성추.

목표는 남궁수였다.

그의 경악한 얼굴 표정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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