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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2장. 악연의 끈은 더욱 독하게 꼬이기 마련이다(3)
남궁수가 뒤로 튕겨나갔다. 입에선 피를 토하면서.
“크윽!”
온몸을 관통하는 충격에 내장이 진탕되었다. 그래도 목숨은 구했다.
몸을 바쳐 그를 구한 남궁세가의 무인들 덕분이다.
그의 앞에는 세 명의 남궁세가 무인들이 피 떡이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이 담호의 파성추를 대신 받아 낸 것이다.
“놈을 막아!”
남궁세가 무인들이 몸을 던졌다.
그렇지 않아도 담호를 향한 원한이 극에 달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몸을 날렸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놈을 죽여랏!”
무림맹의 무인들이 일제히 담호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먹이를 보고 달려드는 늑대들처럼 무인들은 그렇게 몰려들었다.
광기와 살기가 지배하는 공간.
그 한가운데 담호가 서 있었다.
등에는 황혜령을 업고, 옆구리엔 묵일광을 낀 채로.
묵일광은 정신을 잃은 지 오래였다.
담호가 묵일광을 전면에서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던졌다.
쿠와앙!
“크윽!”
“컥!”
묵일광의 거대한 동체와 충돌한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담호의 손에는 어느새 두 자루의 도끼가 들려 있었다. 묵일광의 무기였다.
담호가 묵일광의 도끼를 전면을 향해 던졌다.
후웅!
거대한 도끼가 무섭게 회전하며 달려들던 적들을 휩쓸어 버렸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담호의 반대쪽 손에 들려있던 도끼가 반대편을 향해 날아갔다.
쿠콰가각!
살이 갈라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친!”
그 광경을 본 남궁수가 치를 떨었다.
마치 양 떼 속에 홀로 뛰어든 호랑이 같았다.
피에 굶주린 호랑이가 닥치는 대로 양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피가 튀고, 사람들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남궁수가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이 이상 두려움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두 번 다시 놈을 만나지 않겠다.’
그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 순간 그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놈이다.’
누가 말해 주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어느새 그가 남궁수의 등 뒤를 점유한 것이다.
남궁수가 번개처럼 몸을 돌리며 남궁세가의 지공인 천뢰지(天雷指)를 펼쳤다.
강맹한 지력이 담호의 이마를 노리고 날아왔다. 하지만 담호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것만으로 남궁수의 지력을 피하고 순식간에 가슴팍까지 파고들었다.
담호와 눈이 마주쳤다. 살기와 비린내가 범벅된 뜨거운 숨결이 훅하고 느껴졌다.
역겹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콰드득!
대신 가슴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다.
담호의 주먹이 틀어박힌 것이다.
가슴뼈를 부수고 손목까지 파고들었다. 팔딱거리는 심장이 담호의 손에 잡힌 것이 느껴졌다.
“커헉!”
남궁수가 피를 토했다.
고통보다 담호의 무심한 눈빛이 남궁수를 전율케 했다.
퍼석!
담호의 손에 잡힌 심장이 터졌다.
남궁수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꺼져 가는 그의 눈빛 속에는 한 줄기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난 더 이상 너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어디 지옥 끝까지 쫓아올 수 있으면 와 보라구.’
그것이 남궁수의 살아서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남궁수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렸다.
청구 진인에 이어 남궁수까지 쓰러지자 무림맹 무인들은 구심점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그사이 담호가 몸을 날렸다.
그가 몸을 날린 곳은 바로 군웅들 한가운데였다.
“어?”
그곳에 한 남자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도주할 엄두도 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재밌나?”
“무, 무슨 말이냐?”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담호의 눈빛이 거칠게 일렁였다.
“아까부터 궁금했거든. 누가 자꾸 그렇게 선동하는지.”
군웅들의 광기는 절로 타오른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뒤에 숨어 고비마다 부채질을 한 것이다.
남자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의 눈에는 공포의 빛이 역력했다.
남자의 이름은 공소추.
흑수채의 부채주인 곽거철의 심복이었다.
그가 이제까지 무림맹 무인들 사이에 숨어들어 선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림맹 무인들의 힘을 빌려 황혜령을 죽이려는 계략이었다.
처음엔 그들의 의도대로 되어가는 듯했다.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무림맹의 무인들은 신이 나서 묵일광과 황혜령을 공격했다.
그야말로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었다.
‘그런데 이런 괴물이 끼어들 줄이야.’
담호 단 한 명에 의해서 그들의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그에겐 강호의 상식도, 도의도 통하지 않았다.
수많은 무인들이 오히려 그 한 명에게 휘둘려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공소추를 바라보던 담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너였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얼굴들. 공소추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담호의 미소를 보는 순간 공소추는 전신에 오한을 느꼈다.
“나, 나를 아느냐?”
“기억하지 못하나 보군.”
담호의 말에 공소추가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헛소리라 치부했다. 담호와 같은 자를 한 번만이라도 만났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했다.
이렇게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자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담호가 물었다.
“혼자 했을 리는 없고. 누구지? 너를 사주한 자가.”
“무, 무슨 헛소리냐? 누가 사주를 했다고.”
공소추가 급히 변명했다.
“조윤산인가?”
“그, 그걸 어떻게?”
콰직!
공소추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그 순간 담호의 주먹이 공소추의 배에 작렬했다.
“우웨엑!”
공소추가 허리를 숙인 채 아침에 먹은 것을 모조리 토해 냈다.
복부가 끊어지는 것 같아 숨조차 쉬기 힘이 들었다.
담호가 공소추의 목덜미를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공소추의 몸이 마비되어 질질 끌려갔다.
“으으!”
수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담호를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담호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이럴 수가 없었다.
“우웨엑!”
몇몇 이들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담호와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담호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묵일광을 옆구리에 끼웠다.
등에는 황혜령을 업고, 양팔에 각자 남자를 안은 채 그가 몸을 날렸다.
담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추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쾅!
남궁창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런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거라. 지금 무어라 했느냐?”
“그게…….”
보고를 하러 온 남궁세가의 무인이 머뭇거렸다.
“어서!”
“남궁수 공자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남궁창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물었다.
“수의 시신은 어디에 있느냐?”
“밖에 있습니다.”
남궁창이 문을 박차고 나왔다.
대전 밖 마당에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도열해 있었고, 한가운데 흰 천이 덮인 물체가 누워 있었다.
“설마?”
남궁창이 벌벌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흰 천은 선혈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남궁창이 조심스럽게 흰 천을 들었다. 그러자 안에 누워 있는 남궁수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가 반쯤 깨져 나간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남궁수의 얼굴엔 생전 느꼈던 공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어, 어떻게?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이냐?”
“권마가…….”
“권마? 담호가 말이냐? 그가 도대체 왜?”
“그것이…….”
무인이 그간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남궁창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결국!’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호흡이 가빠져 왔다.
담호라는 이름이 언급된 그 순간부터 그에게 일어난 변화였다. 담호라는 이름은 그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두려움을 낙인으로 남겼다.
“그 때문에 수십 명의 무인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는 지금 어디 있느냐?”
“악양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번 일로 무림맹 전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를 강호 공적으로 지목하고 추적대를 구성하는 중입니다. 어서 장로님을 모시고 오라는 명입니다.”
남궁창이 급히 무림맹의 대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안색은 더할 수 없이 처참했다.
‘그 한 명 때문에…….’
남궁창이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그와 남궁세가 만든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림맹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대전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무 쌍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모두 무림맹의 장로직을 맡고 있는 인사들이었다.
“어서 오시오. 남궁 장로.”
“기다리고 있었소.”
남궁창이 급히 자리에 앉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모두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오. 권마라는 자가 무림맹의 권위를 실추시켰소.”
“그를 반드시 제거해 무림맹의 권위를 세워야 하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제대로 분탕질을 치고 있소. 더 이상은 좌시할 수 없소.”
장로들이 한목소리로 담호를 벌할 것을 주장했다.
남궁창의 시선이 화산파의 장로인 현무 진인을 향했다.
“현무 진인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걸 왜 저에게 묻습니까?”
“권마가 화산파 출신이잖습니까?”
“과거에는 그랬지요.”
“허면 지금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그가 먼저 화산파를 거부했습니다.”
대답을 하는 현무 진인의 목소리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아직도 담호에게 당한 수모를 잊지 않고 있었다.
사문을 부정하는 제자라니?
그것도 명문 화산에서.
현무 진인은 담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를 용인하는 것은 화산파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허면 화산파는 우리가 권마를 어떻게 처리하든 상관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화산파도 무림맹의 일원입니다. 이 점, 명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산파의 뜻 잘 알겠습니다.”
남궁창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로들의 얼굴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만일 화산파에서 끝까지 권마를 보호하고자 우겼으면 무림맹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뻔했기 때문이다.
청성파의 장로 청월 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 추적대를 조직합시다. 놈이 더 거대한 위협이 되기 전에 반드시 제거해야 하오.”
“옳소!”
장로들이 청월 진인의 의견에 동조했다.
남궁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림맹이 움직였다. 이제 천하에 권마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권마의 무공이 제아무리 강할지라도 천하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는 살수 없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였고, 남궁창이 알고 있는 강호의 법칙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 불안하단 말인가?’
한기가 밀려왔다.
그가 양어깨를 감싸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