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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34화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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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3장. 피는 물보다 진하다(3)

윤창화는 점창파 출신의 무인이었다.

점창파 내에서도 제법 주목받는 기재였지만, 직계 제자가 아닌 방계였기에 문파 내에서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무공에 대한 열망도 강하고,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도 충분히 있었지만 점창파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무림맹이 만들어진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 점창파에서는 한계가 있었지만, 무림맹에서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창화는 장문인에게 청원을 넣어 결국 무림맹으로 파견 나올 수 있었다. 무림맹에 합류한 직후 윤창화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 결과 장로들의 신임을 얻어 추격대의 조장이 될 수 있었다.

“어서 놈들을 추적해야 한다.”

그의 조에 배속된 무인들은 모두 서른 명이었다.

그런 추적조가 스무 개가 넘었다.

추적조들은 마치 그물로 호수 바닥을 훑듯이 담호의 흔적을 쫓아 포위망을 좁혀 가고 있었다.

“놈들이 호남성을 빠져나가면 잡기 힘들다. 반드시 그 전에 따라잡아야 한다.”

윤창화가 수하들을 독려했다.

그때 윤창화의 곁으로 또래의 무인이 다가왔다. 부조장인 복우겸이었다.

복우겸은 종남파 출신의 무인으로 윤창화와는 무척이나 죽이 잘 맞는 사이였다.

“조장. 괜찮겠소?”

“뭐가?”

“권마를 쫓는 것 말이오. 조장도 보지 않았소. 그의 무지막지한 무위를.”

“그래서?”

“어찌 운 좋게 추적에 성공한다고 하더라고 권마와 마주치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오.”

“그렇겠지.”

“그런데도 권마를 추적할 생각이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나?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제길! 관짝이나 미리 맞춰 둬야겠군.”

“놈을 먼저 발견하고 연통만 날리면 돼. 그러면 지원 병력이 달려올 거야. 놈도 인간이야.”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자요.”

“그래 봤자 혼자야. 합공에 차륜전까지 동원하면 놈도 쓰러질 게야.”

“하지만…….”

“걱정해도 답은 나오지 않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윤창화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의 심기가 불편한 듯하자 복우겸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윤창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천하의 권마를 추적하는 일이다. 서른 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윤창화 입장에서는 심적 부담이 큰 것이 당연했다.

“놈의 흔적은?”

“그게 이상하오.”

“뭐가?”

“장강 쪽으로 이어져 있소.”

“그게 뭐가 이상한가? 장강을 타고 호남성을 빠져나가려는 모양이지.”

“그게 이상하단 말이오.”

“그러니까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배를 타면 호남성을 훨씬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을 텐데.”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잘못하면 배에 고립될 수 있소. 장강 한가운데서 고립되면 빠져나갈 곳이 없을 텐데 뭐하러 배에 탄다 말이오?”

“으음!”

“권마는 결코 멍청하지 않소. 아니, 오히려 상당히 똑똑한 편이오. 그런 그가 이런 패착을 두었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소.”

복우겸은 매우 신중한데다가 생각도 깊었다. 때문에 그가 말하는 내용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럼 놈이 일부러 우리를 유인한다는 말인가?”

“내 짐작일 뿐이오.”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군.”

“그렇소!”

“그렇다면 이대로 추적을 진행하게. 증거가 없는 이상 지금이 최선이야.”

“으음!”

“알겠는가?”

“명대로 하겠소. 결정은 어차피 조장이 하는 것이니까.”

결국 복우겸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부조장인 그가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어도 결국 결정하는 것은 조장인 윤창화였다.

설혹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도 윤창화가 결정을 했다면 그대로 따라야 했다.

윤창화가 이끄는 추적조는 담호의 흔적을 쫓아 북상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웬 놈이냐?”

갑자기 선두에서 담호의 흔적을 추적하던 무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무슨 일이냐?”

“앞에 수상한 자가 길로 가로막고 있습니다.”

수하들의 말에 윤창화와 복우겸이 수하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길 한가운데를 막고 서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수수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였다. 어디 하나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그런 촌부였다. 인상적인 것은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비파였다.

따라랑!

남자는 길 한가운데 서서 비파를 여유롭게 튕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이질적으로 보였다.

윤창화가 앞으로 나섰다.

“우린 무림맹 소속의 무인들이오. 형장은 뉘신데 길 한가운데를 막고 있는 것이오?”

“내 이름은 소천산이라고 하네.”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비파를 튕기고 있었다.

듣기 좋은 가락이 관도에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윤창화는 찌푸린 미간을 쉽게 펴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다.

윤창화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슬쩍 곁눈질로 바라보니 복우겸의 눈이 게슴츠레한 것이 보였다. 약간은 감정적인 그와 달리 냉철한 이성으로 중무장한 복우겸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추적조의 수하들 모두 복우겸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다.’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서른 명 전원이 저렇게 넋을 잃은 표정을 짓고 있다니.

모두가 비파 소리에 심취한 듯한 모습이었다.

‘비파?’

그의 시선이 남자가 들고 있는 비파를 향했다.

비파에서는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음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그가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헛!”

“무슨?”

다행히 효과가 있었던지 복우겸과 수하들이 정신을 차렸다.

“놈이 비파로 홀리고 있다. 모두 내공을 끌어 올려 비파 소리에 대항하라.”

복우겸과 수하들이 기겁해 내공을 끌어올려 비파 소리에 대항했다.

그 순간 여유롭게 비파를 튕기고 있던 남자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제법이구나. 섭혼단심곡(攝魂斷心曲)을 듣고도 정신을 차리다니.”

섭혼단심곡은 이름 그대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효능이 있는 곡이었다. 내공이 약하거나, 마음이 굳건하지 못한 자들은 섭혼단심곡에 넋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촤앙!

윤창화가 검을 뽑아 남자를 겨눴다.

“웬 놈이냐? 정체를 밝혀라. 이런 요사스러운 곡을 연주하다니.”

“말하지 않았더냐? 내 이름은 소천산이라고.”

스스로를 소천산이라고 밝힌 남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부드러워 듣기가 좋았다. 하지만 윤창화와 추적조는 그의 목소리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가 평범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느꼈다.

“누구냐? 혹시 권마와 연관이 있는 자냐?”

“권마? 아,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는 그 아이 말이군. 관심 가는 후배긴 하지만 연관은 없다네.”

“그렇다면 왜 우리를 막아선 것이냐? 우리가 무림맹의 무인들이란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그래서 막아선 것이네. 자네들이 무림맹의 무인들이라서.”

“무슨?”

“본교를 막기 위해 무림맹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윤창화가 잠시 소천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본교? 설마…….”

“그래! 신교에서 나왔다네.”

신교(神敎).

마교도가 스스로를 지칭할 때 쓰는 단어였다. 일반적인 무인들은 절대로 쓰지 않는 단어이기도 했다.

“네놈 마교도구나.”

“신교라니까.”

“감히 무림맹의 영역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배짱도 좋구나.”

윤창화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목소리엔 무시하기 힘든 기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소천산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무림맹이 대수던가?”

“감히!”

“‘감히’라는 말은 자네 같은 별 볼 일 없는 무인이 쓸 수 있을 만큼 가치 없는 단어가 아니라네.”

따라랑!

말을 하면서도 소천산은 비파를 탄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윤창화가 소리쳤다.

“쳐랏! 놈을 잡아 무림맹으로 압송한다.”

담호를 추적해야 한다는 사실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것은 그의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아아!”

추적조가 일제히 소천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소천산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런 그의 눈엔 어느새 짙은 혈광이 일렁이고 있었다.

소천산이 비판의 현을 크게 튕겼다.

따앙!

순간 한 줄기 음파가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벽력이 대지에 내리 꽂히듯, 거대한 파도가 홀로 서 있는 바위를 때리듯, 음파는 그렇게 윤창화와 추적조를 때리고 지나갔다.

“컥!”

“크웩!”

음파에 노출된 이들이 몸을 크게 휘청이더니 피를 토했다. 바닥에 쏟아진 핏속에 부스러진 내장 조각이 섞여 있었다.

“어, 어떻게?”

윤창화와 복우겸의 동공이 흔들렸다.

머릿속에서는 이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고, 세상이 온통 붉게 보였다.

단 한 번의 음파에 심맥이 짓이겨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공할 위력의 음공이었다.

소천산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십리멸절음이라고 하네. 오랜만에 펼쳐봤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

십리멸절음(十里滅絶音).

말 그대로 십 리 안의 생명체를 모조리 죽일 수 있는 가공할 음공이었다.

소천산은 십리멸절음의 유일한 전승자였다.

마교 내에서 그의 별호는 십리무생(十里無生).

즉 그의 반경 십리 안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없다는 뜻이었다.

털썩!

윤창화와 복우겸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 싶었다. 하지만 심맥이 짓이겨지고도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졌다.

소천산이 냉소를 흘렸다.

“그러게 왜 우리를 건드렸는가?”

“우리가 언제?”

“그토록 조용히 지내고 싶었는데, 자네들이 도발하지 않았던가? 그 대가를 치러야지.”

“크윽!”

“그리 억울해하지 않아도 될 걸세. 다른 이들도 곧 자네들을 따를 테니.”

“우, 웃기지 마라. 우리는 이대로 죽지만, 무림맹이 반드시 복수를 해 줄 것이다. 마교의 더러운 종자들이여, 이 땅에 너희들이 발 붙일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크헉!”

저주를 퍼붓던 윤창화가 한 됫박은 됨 직한 피를 토하더니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절명한 것이다.

복우겸도 잠시 후 그 뒤를 따랐다.

소천산이 그들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아직 모르는군. 본교의 힘을. 하긴 그러니까 배짱도 좋게 본교를 도발한 거겠지만.”

소천산은 마교의 칠대마인(七大魔人) 중 일인.

정파와의 전쟁이 벌어지면 최선봉에 설 자였다. 그가 나왔다는 것은 마교가 세상에 나온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수십 년 동안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그 긴 시간 동안 힘을 키웠다.

이제 세상은 알게 될 것이다.

마교의 힘을.

문득 소천산이 중얼거렸다.

“권마라……. 강호에 제법 쓸 만한 녀석이 나온 모양이군.”

이곳까지 오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별호가 바로 권마였다.

화산파 출신이면서도 사문을 부정한 마인.

소천산은 왠지 그가 마음에 들었다.

“뭐,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그가 자리를 떴다.

그날 전멸한 이는 비단 윤창화가 이끈 추적조만이 아니었다.

소천산을 중심으로 십 리 반경 안에 있던 십여 개의 추적조 삼백여 명이 모두 칠공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십리무생(十里無生).

십 리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강호 대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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