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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37화 (13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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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4장. 비워지는 만큼 채워지기 마련이다(3)

묵일광은 빠른 속도로 내상을 회복해서 이제는 자유자재로 운신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른 회복력이었다.

양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묵일광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황혜령이 그런 묵일광을 보며 한마디 했다.

“무서워!”

묵일광의 양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런 묵일광을 보며 황혜령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완쾌돼서 다행이다.”

“예!”

묵일광이 언제 어깨가 늘어졌었냐는 듯이 크게 대답했다. 그런 묵일광의 모습에 방진보가 중얼거렸다.

“저 형도 꽤 심각한데.”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겉보기엔 악귀도 씹어 먹게 생긴 묵일광이었다. 하지만 그는 황혜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위압적인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놓고 웃을 수 없기에 방진보는 고개를 돌린 채 웃음을 참아야 했다.

현재 그들은 호남성을 지나 안휘성 초입 악서(岳西) 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안휘성은 산이 많았고, 호수는 더욱 많았다. 산을 넘으면 어느새 커다란 호수가 앞을 가로막았고, 호수를 건너면 커다란 산이 위압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연히 같은 거리를 가는데도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행은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른다고 호수를 빨리 건널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산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묵일광은 내상이 완쾌되자 말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대신 방진보가 말을 탔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은 지쳐 있던 방진보에겐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들이 지나는 악서 지역은 차(茶)가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차를 취란(翠蘭)이라고 불렀는데, 향이 무척이나 깊고 쌉싸래해서 인기가 많았다. 그 때문인지 악서에 들어가자 거리마다 짙은 차향이 넘쳐났다.

담호 등이 숙소로 잡은 청연객잔에도 다향은 짙게 배여 있었다. 덕분에 객잔에 들어오자마자 짙은 다향에 기분이 좋아졌다.

황혜령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꽤 많은 노숙을 해야 했다. 산에서 살았기에 노숙하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따뜻한 물에서 수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담호는 따로 독립되어 있는 별채를 얻었다.

“저 먼저 수욕할게요.”

황혜령이 재빠르게 욕실로 달려갔다.

묵일광은 그런 황혜령을 지키기 위해 별채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담호와 방진보는 두 사람을 놔두고 먼저 식당으로 나왔다.

식당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무공을 익힌 무인들로 보였다.

담호와 방진보는 사람들을 피해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방진보가 나서 점소이에게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 담호는 창밖을 바라봤다.

담호가 알기에 잠산에는 유명한 문파나 무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거리에 보이는 이들 중 상당수가 무기를 차고 있었다.

근처 탁자에 앉아 있는 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담호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마교의 재등장이라니. 정말 큰일 났군. 곧 천하가 피에 잠기겠어.”

“누가 아니라는가? 나도 겁이 나서 검 한 자루를 장만했네.”

그들은 무공을 익힌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허리엔 검을 차고 있었다.

그만큼 마교의 등장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졌다는 증거였다.

“그나저나 마교도 꽤나 대담하군. 무림맹의 안방이라 할 수 있는 악양에서 수백 명이나 죽이다니.”

“그들이 괜히 마교라고 불리는겠는가? 다 그만큼 잔인무도하니까 마교라고 불리는 걸세.”

“하기는…… 그러니까 남궁세가에도 초비상이 걸렸겠지.”

남궁세가가 안휘성에 정착한 것이 수백 년 전의 일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남궁세가는 착실하게 기반을 다졌고, 작금에는 천하 오대세가 중 하나로 꼽히며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남궁세가는 안휘성의 패자였다.

남궁세가가 재채기를 하면 안휘성 전체가 몸살을 앓는다. 때문에 안휘성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남궁세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마교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가장 분주히 움직이는 곳이 바로 남궁세가였다.

남궁세가는 전력을 둘로 나눠서 무림맹에 파견하는 한편, 본가의 경계를 더욱 엄중히 했다. 가문 밖으로 나가 있던 방계의 제자들을 불러들이고 힘이 되어 줄 무인들을 모집했다.

안휘성에서 남궁세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어서 많은 이들이 그들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다.

그 때문에 안휘성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런 분위기는 담호가 머물고 있는 객잔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

방진보가 조용히 속삭였다.

“마교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네요. 천하 어디를 가도 마교 이야기뿐이니. 과연 마교로부터 안전한 곳이 있을까요?”

“글쎄!”

담호가 감흥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교의 등장으로 인해 천하가 떠들썩했지만, 담호에게는 큰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현재 담호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황혜령이었다.

황혜령을 황산에 무사히 데려다주는 것뿐이다. 그 외에 천하가 어떻게 되든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마교의 침공으로부터 중원을 지키겠다고 나선 이는 바닷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이 널려 있었고, 그들 중 상당수는 그럴 만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자들이 모여 만든 곳이 바로 무림맹이었다. 무림맹이 있는 이상 담호가 나설 여지는 없었다.

담호가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음식이 나왔다. 방진보가 제일 먼저 반색을 하며 먹기 좋게 음식을 그릇에 나눴다.

“우와! 냄새가 끝내주는데요. 어서 드세요, 형.”

“음!”

방진보의 호들갑처럼 음식은 꽤나 맛있는 편이었다.

담호는 음식을 조금씩 음미했다. 방진보도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먹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묵일광과 황혜령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방진보가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음식이 맛있어요.”

“냄새부터 좋네.”

황혜령이 미소를 지었다.

수욕을 하고 나서 그녀의 미모는 더욱 눈이 부시게 빛났다.

물기가 가시지 않은 피부와 머리카락은 객잔 안에 있는 많은 이들의 심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몇몇 남자들의 눈에 음심의 빛이 떠올랐지만, 묵일광의 거대한 등장과 험악한 인상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헉! 무슨 얼굴이?”

“컥!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제아무리 황혜령이 아름다워도 묵일광과 같은 험상궂은 덩치를 뚫고 다가갈 자신은 없었다. 그들도 목숨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황혜령이 음식을 조물조물 씹으며 중얼거렸다.

“맛있는데 진보가 한 것만은 못하네.”

“헤헤!”

“진보는 어떻게 그렇게 음식을 잘해?”

황혜령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방진보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열심히 만들다 보니까요.”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어?”

“요리에 관심 있으세요?”

황혜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방진보가 활짝 웃었다.

“관심만 있으면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그래도 돼?”

“어차피 황산까지 함께할 테고, 또 요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럼 나야 좋지. 약속한 거다?”

“네!”

방진보의 대답에 황혜령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황혜령을 바라보는 묵일광의 입가에도 덩달아 미소가 떠올랐다.

“소형제, 고마워!”

“뭘요.”

황혜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필요한 거 있어?”

“없어요. 아, 밤에 시장에 같이 가면 되겠네요.”

“시장?”

“요리를 잘 만들려면 좋은 재료를 고르는 법부터 배워야 해요.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래?”

황혜령의 눈이 반짝였다.

이제까지 시장은 많이 가봤지만, 요리 재료를 사기 위해 방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황혜령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시장에 갔다 와도 돼요? 오라버니.”

“음!”

담호가 허락하자 황혜령의 얼굴에 눈부신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잘됐다. 우리 장보자, 장.”

“헤헤!”

황혜령이 신난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고, 방진보는 특유의 웃음을 흘렸다.

묵일광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담호에게도 같이 갈 것을 제안했지만, 담호는 조용히 거절했다.

식사를 모두 끝낸 후 세 사람은 함께 시장으로 갔고, 담호는 별채로 돌아왔다.

별채 안마당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있었다. 청연객잔이 이곳에 들어서기 전부터 있던 나무였다.

담호는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다란 나무둥치에 기댄 채 눈을 감자 수많은 상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담호는 쓸데없는 상념들을 가지치기 해 내고 단 하나의 주제만 남겨 뒀다.

암형권(暗形拳).

이제는 독행류라고 불리는 그만의 권이었다.

암형권은 전장에서 거의 완벽한 위력을 발휘했다. 초식의 운용이나 파괴력은 여타 무공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완벽했다.

그나마 문제가 있다면 일 대 다의 대결에서 효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뿐.

하지만 그것도 초식의 운용에 변화를 주면 얼마든지 대비를 할 수 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심마경이었다.

이전에도 독행자라는 단어에 끌려 심마경에 빠질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야 인적이 없는 고서점이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치열한 격전 중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큰 위기에 처할 것이다.

담호는 찬찬히 자신과 암형권을 관조했다.

그의 육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흉기나 다름없었다. 왼쪽 다리의 근육이 상해 살짝 발을 저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싸움을 치르는 동안 담호는 왼쪽 다리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은 다시 암형권에 녹아들었다.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없었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담호는 자신이 정상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고장이 단단히 나 있었다.

어린 시절의 상실감과 화산에서의 고립된 경험, 잘못된 인간관계가 꼬여서 뒤틀리고, 한쪽으로 크게 치우쳤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 위주로 생각했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했다.

그가 소중히 생각하는 몇 가지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철저히 혼자인 삶. 고립된 인생이었다.

‘그래서 독행자라는 단어에 그토록 끌렸던 것인가?’

마을이 몰살을 당한 후 그의 마음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사부와 함께 있을 때도, 동생과 만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둠은 걷히지 않고 있었다.

어둠은 그의 일부, 아니 그 자체였다.

그의 마음속에서 어둠을 걷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담호 자신이 어둠을 걷어낼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담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단순한 상념일 뿐이지만, 그는 필사적이었다.

어려서부터 필사적으로 살아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 여유란 방심을 의미했고, 방심은 곧 죽음을 뜻했다.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항상 경계를 철저히 하고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다.

그가 곁을 준 이는 단 한 명, 현소 진인뿐이었다.

현소 진인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미친 듯이 보고 싶었다.

그가 웃는 모습이, 인자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담호는 당황스러웠다.

쿠웅!

암혼심공이 갑자기 크게 요동쳤다.

이제까지 철저하게 통제되던 암혼심공의 기운들이 제멋대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왜지?’

담호는 당황했다.

처음엔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폭주하기 시작한 암혼심공을 단번에 통제하는 것은 무리였다.

“크윽!”

담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툭툭!

혈관이 피부 위로 불거져 나왔다. 온몸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전신이 찢겨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이제는 고통에 무감각해졌다고 생각했던 담호였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통은 그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려 주겠다는 듯이 전신을 들쑤시고 있었다.

마치 전신 혈관을 용암이 치닫는 듯 했다. 강렬한 열기는 담호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했다.

담호의 입가로 혈흔이 내비쳤다. 선홍색 피였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큰 내상을 입거나,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전신을 폭주하는 진기를 가라앉혀야 했다.

덜덜!

하지만 그것은 담호의 바람에 불과했다.

전신을 치닫던 용암 같은 기운은 담호의 뇌리에 침습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이대로 정신을 놓아 버리면 그의 육체는 암혼심공에 잡아먹혀 버리고 말 터였다.

‘놓아 버릴까?’

그런 생각이 들 때였다.

심상상천(心上像天)―마음에 하늘의 형상을 담고,

심중중천(心中重天)―마음 가운데 하늘의 무거움을 담는다.

동심이천(動心理天)―마음이 움직이면 하늘을 다스릴 수 있다.

중심동천(重心動天)―무거운 마음이 하늘을 움직이게 한다.

문득 중천심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암혼심공을 익히면서 어느새 잊어버렸던 구절이었다.

‘무거운 마음이 하늘을 움직이게 한다?’

끝까지 이해가 되지 않던 구절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왠지 이해가 될 듯싶었다.

그 순간 현소 진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네 마음만 단단하면 된다. 그거 하나면 족하단다.

그의 마음이 만들어 낸 환청이었다. 그 사실을 담호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소가 떠올랐다.

―호야, 그렇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스승이 묻고 제자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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