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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6장. 과거를 잊은 자, 잊지 못하는 자(1)
초연운은 바짝 얼어 있었다.
언제나 웃음이 사라지지 않던 그의 얼굴엔 경직된 미소만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하하!”
그의 입술을 비집고 어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그의 앞에 서 있는 봉두난발의 중년인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웃기냐?”
“아니요.”
대답과 함께 초연운이 고개를 숙였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초연운이었지만, 단 한 명. 눈앞에 있는 남자는 예외였다.
까치가 집을 지은 듯 봉두난발의 머리카락과 족히 백여 번을 기운 듯한 누더기 옷,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는 커다란 거치도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는 중년인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봉두난발 속에 가려져 있는 그의 두 눈이었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두 눈에는 패기와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나이보다 훨씬 더 젊게 보였다.
남자의 이름은 장일산.
참마신도(斬魔神刀)라는 위대한 별호로 강호를 위진(威振)시킨 전적이 있는 남자였다.
그는 백전문의 문주였고, 백전전승기의 주인이었으며, 초연운의 사부이기도 했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초연운이었지만, 사부 장일산 앞에서만큼은 오금을 펴지 못했다.
장일산은 한심하단 표정으로 초연운을 바라보았다. 초연운은 그런 장일산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여 피했다.
“쯧! 그래, 이야기나 들어 보자. 그러니까 권마가 네놈의 친구란 말이지?”
“예!”
“무림맹이 공적으로 지목한 녀석이 친구라고?”
“네!”
“허, 참!”
뻔뻔하게 대답하는 초연운의 모습에 장일산이 혀를 차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교를 추적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마인과 친구가 되다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망할 놈!”
“죄송합니다.”
“됐다. 이미 친구가 되었다니 더 말해 무얼 하겠느냐?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하거라. 일단 마음을 주었으면 최선을 다해 교분을 나누거라. 절대 후회하지 않게.”
“명심하겠습니다.”
초연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자 장일산이 커다란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쿵!
“아얏! 사부님, 그러다가 머리 나빠지면 어쩌려구요?”
“더 나빠질 머리라도 있느냐?”
“큭!”
초연운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장일산이 그런 초연운의 얼굴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제야 초연운도 장난기를 지우고 사부를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사부와 제자의 해후를 즐기는 여흥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공적인 대화를 나눠야 할 시점이었다.
“이제부터 바빠질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장일산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마교는 강하다.”
“예!”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은 강하다. 삼십 년 전에는 운이 좋아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지금도 그런 운이 따라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말거라.”
장일산의 목소리엔 한기마저 담겨 있었다.
일문의 문주가 되었으니 안주할 만도 하건만, 장일산은 단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수련에 열중했다.
언젠가는 마교가 다시 나오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마교가 다시 나타났으니 천하는 분명 혼돈에 빠져들 것이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칠 것이다.”
“하지만 삼십 년 전에도 물리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그때는 운이 좋았을 뿐이야.”
“예?”
초연운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삼십 년 전 마교와의 전쟁에서 제일선에 섰던 장일산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피를 흘렸고, 수많은 마인들을 도륙했다.
그의 도에서는 하루도 피가 마를 날이 없었고, 매일같이 치열한 싸움을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별호가 참마신도.
그를 따르는 무인들이 만든 문파가 지금의 백전문이었다.
그런 장일산이 마교를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장일산은 늘 그랬다.
항상 마교를 두려워하고 견제하려 노력했다. 어떤 때는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초연운은 그런 장일산의 모습을 보면서 의문을 갖곤 했다.
그가 아는 사부는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장일산이 초연운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았다.
“연운.”
“예! 사부님.”
“너는 더 강해져야 한다.”
“예?”
“더 강해져서 백전전승기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알겠습니다.”
초연운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장일산이 뒤돌아서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사신제가 도와주면 좋으련만…….”
“사신제?”
초연운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장일산은 이미 문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초연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신제가 누구지?”
***
슥슥!
방진보의 눈앞에서 도축된 소의 커다란 몸통이 잘게 해체되고 있었다. 방진보는 부위별로 먹기 좋게 썰려 나가는 소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살아 있는 소와 돼지를 잡는 광경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진보의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방진보는 부위별로 해체된 고기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발골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옳지! 저렇게 돌리고, 힘줄을 끊으면 쉽게 뼈를 추릴 수 있구나.”
혼자 감탄하고 추임새를 넣는 방진보의 모습에 근처에 있던 녹림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소 잡는 게 그리 신기하냐?”
“헤헤!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요.”
“그럼 요리도 잘 만들어?”
“조금요.”
“그래?”
말을 걸었던 녹림인의 눈이 반짝였다.
방진보는 아직도 등에 과자가 든 보따리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우습게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진지해 보이기도 했다.
“어이!”
녹림인이 갑자기 소를 잡고 있던 동료를 불렀다.
“왜?”
“이 녀석에게 칼 좀 줘 봐.”
“무슨 말이야?”
“이 뚱보 녀석이 발골 하는 법하고 고기 다듬는 것을 배우고 싶은 모양이야.”
“그런 것을 뭐 하러 배워?”
“잔말 말고 칼 좀 주고 가르쳐 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알았어.”
친우의 타박에 고기를 잡던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 봐라, 뚱보야.”
“예!”
방진보가 반색을 하며 달려갔다.
“쯧! 저렇게 신날까? 고기 자르는 게 뭐가 좋다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녹림인들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방진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몸통을 해체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 큰 칼을 들어라.”
“예!”
방진보가 널찍한 주도를 집어 들었다.
어찌나 잘 갈았는지 날이 시퍼런 빛을 뿌리고 있었다.
“조심해라. 잘못 다뤘다가는 오히려 네 손가락이 잘려 나갈 수 있으니까.”
“옙!”
“일단 그 칼을 여기 가슴뼈 사이로 찔러 넣어라. 그런 후에 이렇게 살짝 돌리고…….”
방진보는 소를 잡던 남자가 가르쳐주는 대로 주도를 움직였다.
서걱! 서걱!
고기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옳지! 거기서 힘줄을 자르는 거야.”
“이렇게요?”
“그렇지! 그 후엔 다시 반대로 돌려서 뼈 사이에 집어넣어. 그런 후에 힘을 주면…….”
퉁!
소의 흉곽을 지탱하던 갈비뼈 하나가 튕겨져 나왔다.
“그렇지! 잘하네.”
남자의 칭찬에 방진보가 미소를 지었다.
슥슥!
주도를 움직일 때마다 고기가 부위별로 먹기 좋게 해체되었다.
“거기가 등심살이여. 갈비 안쪽에 붙어서 육질이 연하고 맛도 좋지. 잘 기억해 둬.”
“예!”
“그다음은 목심이여. 살이 두터워 칼이 잘 들어가지 않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지, 그렇게 칼을 찔러 넣고 척추 결대로 움직여. 조심스럽게…….”
방진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칼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슥! 슥!
그의 전신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커다란 소를 해체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손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져 왔다.
하지만 방진보는 주도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런 방진보의 모습에 녹림도들이 떠들었다.
“저 녀석 봐. 시뻘건 고기를 자르는 게 저렇게 좋은가?”
“그러게! 미소까지 짓고 있네.”
그들이 무어라 떠들건 말건 방진보는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해 고기를 잘랐다.
텅!
마침내 그가 주도를 놓았을 때는 커다란 소가 부위별로 먹기 좋게 잘려 있었다.
그 큰 소를 혼자만의 힘으로 해체한 것이다.
“휴우!”
방진보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쳤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지만, 그의 가슴에는 큰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잘하네. 수고했다.”
방진보에게 고기를 자르는 법을 가르쳐 준 남자가 어깨를 두들겼다.
“헤헤!”
“거, 녀석 하고는.”
“요리도 아저씨들이 하나요?”
“요리는 아낙들이 하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낙들이 광주리에 잘게 자른 고기들을 담았다.
“왜, 요리도 하고 싶으냐?”
“예!”
“그럴 줄 알았다. 저 여편네들을 따라가 봐라.”
“그래도 돼요?”
“말려도 따라갈 것 아니었냐?”
“헤헤!”
“가 봐! 저 여편네들도 네가 고기 다루는 솜씨를 봤으니 반대하지 않을 게다.”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덕분에 좋은 기술 배웠습니다. 잊지 않고 잘 사용할게요.”
“뭐, 대단한 기술이라고. 얼른 가 봐.”
“예!”
방진보가 남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아낙들을 따라갔다.
그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헤헤! 산채에서는 어떤 요리를 만들어 먹을까?’
새로운 조리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방진보는 행복했다.
“같이 가요.”
“호호호!”
아낙들이 방진보를 에워싸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며 녹림도들이 중얼거렸다.
“저렇게 좋을까?”
“그러게 말이여.”
“그나저나 기대되는군. 저녁에 또 어떤 요리가 나올지.”
그렇게 사람들이 웃고 떠들 때였다.
갑자기 산채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어, 전서구다.”
황산 밑에 있는 마을에서 날아온 전서구였다.
전서구는 곧장 황경문의 거처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