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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45화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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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7장. 멍석을 깔아 주고 기다린다(2)

참회동은 황산의 북쪽 만장 단애 중간에 있는 조그만 동혈이었다. 참회동의 입구는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잔도로 이어져 있었다.

잔도만 지키면 그 누구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천험의 요지가 바로 참회동이었다.

담호는 금마구를 찬 채 참회동 안을 둘러보았다. 입구는 어른 팔뚝만 한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안쪽은 어른 서너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면 답답하다 느낄 정도로 비좁았다.

“문을 열어 줄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시오.”

패왕채의 무인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담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참회동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천금마옥에서 십이 년이란 세월을 보냈던 담호였다. 그곳은 외부에서 빛 한 점 새어 들어오지 않던 지옥 같은 공간. 그곳에 비하면 이곳은 햇볕도 들어오는 데다가 제법 아늑하기까지 했다.

잠시 담호를 바라보던 패왕채의 무인이 감옥의 입구를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잔도를 지키고 있는 무인들에게 말했다.

“잘 지키고 있거라. 총채주님의 명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 열어 줘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무인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담호의 귀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손발에 찬 금마구가 제법 거치적거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금마구를 차는 것만으로도 탈구가 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졌다.

담호는 금마구는 신경 쓰지 않고 눈을 감았다.

이보다 더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담호였다. 이 정도의 구속에 불편함 따위를 느낄 리도 없었다.

담호는 조윤산을 떠올렸다.

조윤산은 전형적인 효웅이자 기회주의자였다.

이제까지 흑수채에 숨어 은인자중하던 조윤산이었다.

말단 도적으로 시작해 채주가 되었고, 채주가 되어서도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 보통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인내심과 집요함을 가진 조윤산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산채를 떠나 이곳 황산에 왔다.

단순히 황경문을 보기 위해서? 아니면 진짜로 마교의 등장 때문에?

웃기지도 않는 핑계였다.

조윤산과 같은 자는 절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일단 움직이면 무언가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어 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다.

그런 조윤산을 위해 멍석을 깔아 줬다.

그의 야망에 방해물이 될 스스로를 제거해 주면서까지.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담호가 눈을 떴다.

여전히 손발을 제압하고 있는 금마구가 거추장스러웠다.

문득 담호가 암형권을 펼쳐보았다.

쉬익!

금마구 때문에 투로가 자꾸 어긋났다.

수천, 수만 번의 단련을 통해 눈 감고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조그만 변화에도 인체는 본래의 정묘함을 잃을 정도로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도 담호는 인내심이 강한 남자였다. 조윤산보다도 인내심이 강했으며, 결코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갖고 있었다.

한 가지 동작을 만 번 이상 반복할 체력과 집요함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곳이 감옥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담호에게는 천하에서 가장 안전한 수련처였다.

담호는 금마구를 쓴 채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쉬쉭!

참회동 안에 담호가 몸을 움직이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

“으악!”

이가흔이 비명과 함께 깨어났다.

그녀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고, 부러진 팔목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방 안에는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윤산을 비롯해 곽삼, 오종삼 등이 앉아 있었다.

곽삼이 물었다.

“괜찮은가?”

“으아아! 개새끼! 죽일 거야. 죽일 거라고.”

이가흔이 대답 대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윤산 등은 입을 다문 채 그녀의 발광을 조용히 지켜봤다.

“살점을 도려내 기름에 튀기고, 눈깔을 개 먹이로 줄 거야. 개새끼! 똥통에 튀겨 죽일 새끼! 제깟 게 뭔데 내 팔을 분질러? 응! 죽일 거야. 처참하게 죽일 거라고.”

그녀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을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후 조윤산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오.”

“뭐가요? 내 팔이 부러졌는데 뭐가 잘된 일이라는 건가요?”

“덕분에 놈이 참회동에 갇혔지. 놈이 건재했다면 거사를 미뤄야 했을 거야.”

조윤산의 말에 곽삼 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호 단 한 명에 불과했지만, 그가 주는 압박감과 존재감은 여타 고수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단 한 명의 절대고수가 전황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권마라고 하더니 성격이 정말 지랄 맞더군.”

“난 그렇게 좆같은 성격을 가진 새끼는 또 처음 보았소. 권마, 권마 이야기만 많이 들었지, 그렇게 개차반 같을 줄이야.”

곽삼과 오종삼이 한마디씩 했다.

그들도 녹림의 채주로서 할 일 못 할 일 많이 해 봤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봤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담호에 비견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가흔이 조윤산을 노려봤다.

“설마 놈이 참회동에 갇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따르지 않을 거예요.”

“물론이오.”

조윤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굳이 그녀의 말 때문이 아니어도 그는 담호를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놈은 분명 나를 알고 있다.’

문제는 자신이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은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았다.

흑호단을 이끌고 닥치는 대로 약탈을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

너무 많이 죽여서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한을 갖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눈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눈빛. 그런데 명확히 생각나지 않았다.

조윤산이 습관처럼 뺨의 흉터를 어루만졌다. 이상하게 상처가 욱신거렸다.

***

타닥! 타닥!

방진보의 주도가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도마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싱싱한 채소가 썰려 나가고, 투박하기만 했던 고기에 칼집이 들어갔다.

치이익!

뜨겁게 달군 과자에 돼지비계가 녹았다. 기름을 먹어 번들거리는 과자 위에 잘 손질된 채소가 들어갔다.

순식간에 숨이 죽는 채소 위로 돼지고기가 쏟아졌다. 그 위로 부어지는 술 반 잔.

화륵!

과자 위로 시퍼런 불길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방진보의 이마를 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땀이 눈으로 들어가면서 따끔거렸다. 그래도 방진보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요리에 집중했다.

황혜령은 주방 구석에서 방진보가 요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화덕에서 일어난 불길 때문에 주방 안은 찜통을 연상케 했다. 뜨거운 열기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그런데도 방진보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요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진보는 정말 대단하구나.’

나이는 어리지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걷는 방진보의 모습은 황혜령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요리가 완성되었다.

간단한 돼지고기 볶음이었지만, 후각을 자극하는 향이나 느낌이 범상치 않았다.

방진보는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그릇 안에는 미리 담아 둔 밥과 각종 요리가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돼지고기 볶음을 담자 그릇이 빈틈없이 꽉 찼다.

“됐다.”

그제야 방진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방진보는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 담긴 그릇을 보자기에 쌌다.

“너도 정말 어지간하구나.”

황혜령이 고개를 절래 저었다.

방진보가 만든 음식은 담호를 위한 것이었다. 이른바 옥바라지를 하는 것이다.

“힘들지 않니?”

“아니요.”

방진보가 딱 잘라 말했다.

참회동에 갇힌 자들에게 주어지는 음식은 허여멀건 죽이 전부다. 그런 죽을 먹고 기운을 차릴 수 있을 리 없었다.

자고로 남자는 배가 든든해야 힘을 쓸 수 있는 법이다.

“가죠.”

방진보가 그릇을 들고 앞장섰다.

황혜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참회동으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디를 가는 게냐?”

그들의 앞을 막아선 사람 때문이었다.

왼쪽 뺨을 가로지르는 자상이 인상적인 남자, 조윤산이 길 한가운데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 채주님.”

황혜령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인지 이유는 몰랐다. 조윤산을 볼 때면 항상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쳐 평정심을 찾을 수가 없었다.

조윤산의 시선이 보따리를 들고 있는 방진보를 향했다.

“그건 뭐냐?”

방진보가 보따리를 뒤로 숨겼다. 그러자 조윤산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설마 죄인에게 음식을 주려는 건 아니겠지?”

“그, 그건…….”

방진보가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에 조윤산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죄인에게는 산채에서 주는 음식 말고는 그 어떤 음식도 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녹림십팔채의 중죄인이다.”

조윤산의 음성은 서릿발처럼 한기가 풀풀 날리고 있었고, 눈빛은 뱀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방진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황혜령이 방진보의 앞을 막아섰다.

“진보는 제 손님이에요. 그를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네가 아무리 총채주의 딸이라고 해도 녹림의 규율을 어길 수는 없다.”

“언제부터 흑수채의 규율이 녹림 전체의 규율이 된 거죠?”

황혜령이 제법 대차게 나오자 조윤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장내의 분위기가 더욱 싸늘하게 식었다.

“네가 지금 죄인의 편을 드는 것이냐?”

“진보는 죄인이 아니에요.”

“하지만 죄인의 동생이지.”

“그게 문제가 되나요?”

“문제가 되지. 그것도 아주 많이.”

“말도 안 돼요.”

“말이 되고, 안 되고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란다. 녹림의 규율이 결정하는 것이지. 녹림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는 결코 녹림의 규율을 어겨서는 안 된다. 아, 너는 녹림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니 상관이 없으려나?”

조윤산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황혜령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나는 녹림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조윤산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마치 ‘나는 네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조윤산의 태도에 황혜령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조윤산은 늘 이랬다.

언제나 황혜령을 깔보고,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불편했다.

조윤산이 피식 웃었다.

“그것이 네 생각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거라.”

듣기엔 따라선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말이었다.

황혜령의 눈썹이 성큼 치켜 올라갔다.

“지금 저를 조롱하는 건가요?”

“설마? 내가 어떻게 총채주의 외동딸을 조롱할 수 있겠느냐. 총채주께서 저리 건재하신데.”

“그 말은 아빠만 아니었으면 저를 조롱했을 거란 뜻인가요?”

“너는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구나. 그렇게 인내심이 없어서야. 쯧쯧!”

조윤산의 말에 황혜령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말로는 그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힘든 굴욕감이 그녀의 전신을 지배했다. 조윤산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녀의 굴욕 어린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그때 방진보가 황혜령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할 말 다했으면 이젠 비켜 주시겠어요.”

“뭐?”

“녹림 전체의 규율이 아닌 흑수채의 규율이라면서요? 난 형에게 음식을 갖다 줘야겠어요.”

“감히!”

“이곳은 패왕채. 손님으로 왔으면 예의를 지키세요. 그쪽도 저처럼 객에 불과하니까요.”

“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죽일 수 있으면 죽여요. 그따위 말도 안 되는 녹림의 규율을 들먹이지 마시고요.”

방진보가 조윤산을 노려봤다.

그의 눈에 어려 있던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권마 담호의 동생이었다.

이 정도의 위협은 수도 없이 겪었다.

‘뚱보 새끼가 감히!’

조윤산의 얼굴에 기분 나쁜 표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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