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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46화 (14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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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7장. 멍석을 깔아 주고 기다린다(3)

무림맹(武林盟)은 강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초거대 연합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맹주가 존재하지 않아 단합된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단순히 무공만 고강하다고 무림맹주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품은 물론이고 강력한 지도력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지도력을 가진 강력한 무인들은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파의 문주였다.

일파의 문주가 무림맹의 맹주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림맹의 맹주는 그 어떤 문파에도 얽매여서는 안 됐다. 자칫하다가는 대의보다는 자파의 이익을 우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맹주를 인선하는 작업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와 같은 거대 문파들과 관련이 없으면서도 고강한 무공을 가진 인물. 그러면서도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인사를 찾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천거되었다가 떨어졌다.

어림잡아 수백 명의 인사들이 떨어지고 최종적으로 단 한 사람이 남았다.

신창(神槍) 남천산.

일인전승의 문파 신창문(神槍門)의 당대 문주이자 유일한 전승자가 남천산이었다.

문도가 없다 보니 문파 간의 이해관계에 얽매일 이유가 없었고, 무공 또한 신창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강했다.

남천산은 적어도 강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초고수였다. 무림맹의 맹주가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무림맹의 장로들은 남천산을 찾아가 맹주가 되어 주길 청했다. 남천산은 처음엔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은 무도를 추구하는 순수한 무인이지, 초월적인 단체인 무림맹을 이끌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거절에도 불구하고 세 번, 네 번 찾아와 강호 정의를 지켜 달라는 장로들의 청원에 어쩔 수 없이 맹주직을 받아들였다.

남천산은 그렇게 무림맹의 맹주가 되었다.

마찬가지 과정을 통해 부맹주가 된 이는 점창파 출신의 고수인 광풍신권(狂風神拳) 조의명이었다.

그래도 구대문파 출신의 무인이 요직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에 그가 선택된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군사직엔 남궁세가의 남궁창이 선출되었다.

그들은 마교의 침공에 맞서 중원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맹주부는 무림맹의 수많은 전각들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했다. 맹주부의 태사의에는 남천산이 앉아 있었다.

남천산의 나이는 오십이 넘었다. 하지만 강력한 내공으로 인해 그의 외모는 삼십 대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천산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문사라고 착각할 만큼 청수한 이목구비와 멋스럽게 기른 수염의 소유자였다.

남천산의 왼쪽에는 장대한 체구에 커다란 도를 찬 사십 대 후반의 장년인이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부맹주인 광풍신도 조의명이었다.

조의명의 맞은편에는 남궁창이 앉아 있었다.

깊은 밤 무림맹의 수뇌부 세 명이 회동을 한 것이다.

남천산이 미소를 지으며 조의명과 남궁창을 바라봤다.

“많이 부족한 본인이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소이다. 앞으로 두 분의 많은 도움 부탁드리겠소.”

“부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당연히 맹주님을 보필하여 마교를 이 땅에서 몰아내야지요.”

조의명이 자신의 가슴을 쾅쾅 치며 큰소리를 쳤다.

남천산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조의명은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을 즐겨 하는 천생 무골이었다.

남천산 입장에서는 당연히 다루기 편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반대편에 앉은 남궁창은 껄끄러운 상대였다.

남궁창의 별호는 좌망천리안(座盳千里眼).

그만큼 머리가 좋고 심계가 뛰어났다.

무공이 뛰어난 자보다 머리가 뛰어난 자가 상대하기 힘든 법이다. 그렇게 본다면 남궁창은 무척이나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더구나 아무런 배경도 없는 자신과 달리 그에게는 남궁세가를 비롯한 오대세가라는 막강한 배후가 존재했다.

남천산으로서도 마냥 편하게 대할 수만은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속내를 감추며 말을 이었다.

“우선 군사의 고견을 듣고 싶구려. 어떻게 하면 무림맹의 힘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소?”

“우선 정보를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보?”

“그렇습니다. 마교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계속 말씀하시구려.”

남천산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궁창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중원에는 정보를 사고파는 문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파들마다 일장일단이 있지요. 예를 들어 개방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이가 없어 헛되이 흘려보내기 일쑤지요. 반대로 하오문의 정보는 정확한 것이 많지만, 개방처럼 방대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남궁창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 문파들의 장단점을 남천산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남천산은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납득했다.

“확실히 군사의 말이 옳구려. 그럼 우리가 정보를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선 어떡하면 좋겠소? 군사도 아시다시피 단기간 안에 그런 조직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물론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정보 조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요.”

남궁창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왠지 모르게 섬뜩하게 느껴지는 그런 미소였다.

“그래서 저는 기존의 문파를 흡수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기존의 문파를?”

남천산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그게 가능하겠소?”

“가능합니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이라면.”

“군사께서 염두에 두고 계시는 문파가 있소?”

“저는 하오문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하오문? 개방이 아니라?”

“개방은 너무나 크고 방대해서 우리가 함부로 흡수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개방 방주의 영향력은 구대문파에 비견될 만큼 엄청나지요. 협조는 요청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을 흡수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하오문은 다릅니다.”

“다르다? 뭐가 말이오?”

“일단 그들은 개방과 달리 특출 난 무력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하층민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 발생한 조직이니까요.”

“으음!”

“하오문 모두를 흡수할 필요도 없습니다. 수뇌부 몇몇만 포섭하면 됩니다.”

“장점은?”

“이쪽의 희생 없이 정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하류 인생들이라 부담 없이 소모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남궁창의 거침없는 말에 남천산이 거부감을 드러냈다.

아무리 대의를 위해서라지만 사람의 목숨을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큰 거부감을 주었다.

그때 조의명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는 군사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마교와의 전쟁이 코앞입니다. 전 무림의 힘을 하나로 모아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서 사사로운 인정에 얽매여 대사를 그르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이용해야 합니다.”

“으음!”

남천산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의 가치관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의견을 이들은 너무도 태연히 말하고 있었다.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맹주님은 단순한 일개인이 아닌 무림 전체의 운명을 쥐고 있는 분입니다. 맹주님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강호의 앞날이 바뀔 겁니다.”

“으음!”

“영웅의 길을 걸으십시오. 열 명, 백 명을 희생해서라도 천 명의 목숨을 구한다면 그 사람이 영웅입니다. 맹주님께서는 강호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할 영웅으로 간택되신 분.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남궁창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조의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침묵이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남천산은 깨달았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피를 대신해 묻혀 줄 허수아비였구나.’

남천산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무림맹주가 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

담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이 박인 주먹은 정(釘)을 연상케 했다. 깔끔함이나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손이었다.

그의 주먹은 세상 그 어떤 무기보다 무서운 흉기였다. 이제까지 수많은 생명이 그의 주먹 아래 새벽이슬처럼 사라져 갔다.

강호에 나온 지 겨우 서너 달에 불과한데 그의 손에 죽은 사람의 수는 수백 명이 넘어간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을 죽일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삶은 투쟁으로 점철됐다.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무공을 익히기 위해 싸우고, 살아가기 위해 싸우고…….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담호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그의 삶이기에.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싸우겠지.’

담호의 눈빛이 깊이 침잠 되는 그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방진보의 목소리였다.

쇠창살 너머 보따리를 든 방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황혜령이 따르고 있었다.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방진보. 그리고 친혈육 황혜령.

그들의 등장은 표정 없던 담호의 얼굴에 살짝 균열을 만들어 냈다.

“어쩐 일이냐?”

“헤헤!”

방진보가 대답 대신 웃음을 흘리며 손에 들고 있던 보따리를 내밀었다.

“뭐냐?”

“형 식사요.”

“…….”

“감옥에서 제대로 된 식사가 나올 리 없잖아요. 어서 드세요.”

“고맙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난 형 동생이잖아요.”

“그래!”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보따리를 받았다.

보따리를 풀자 그릇이 나왔다. 그 안에는 방진보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 담겨 있었다.

“어서 드세요, 형.”

“그래!”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었다.

황혜령은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담호와 방진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주르륵!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왜 이러지?’

그녀가 소매로 급히 눈물을 훔쳤다.

눈동자가 금세 벌겋게 충혈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있는 곳은 방진보의 뒤편 그늘진 곳이었다. 그늘은 그녀의 눈물을 감춰 줬다.

‘대체 왜?’

마치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다.

무언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뿌연 안개 때문에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그 순간 조윤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너는 녹림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니 상관이 없으려나?

순간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해졌다.

황혜령이 고개를 저었다.

순간 흐릿한 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조그만 여자아이와 그녀를 돌봐 주는 소년, 그리고 낯선 중년 부부…….

“아!”

너무 흐릿해서 얼굴조차 구별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도대체?’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음식을 먹던 담호가 그런 황혜령의 모습을 보았다. 황혜령이 갑자기 밖으로 나가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담호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그러세요? 음식이 맛없나요?”

“아니, 충분히 맛있다.”

“그런데 왜?”

방진보가 울상이 되었다. 혹시 자신이 만든 음식이 맛이 없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 이야기가 있다.”

“예!”

담호의 음성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방진보가 빠르게 대답했다.

“변고가 생길 것이다.”

“변고라면?”

“큰 싸움이 벌어질 게다.”

방진보가 눈을 크게 치떴다. 어떻게 아느냐 따위의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담호는 결코 허튼소리를 하지 않으니까.

“싸움이 벌어지면 혜령과 함께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피하거라.”

“예!”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오직 혜령과 일광만 믿어라.”

“그럴게요.”

“일광에게도 그리 전하고.”

“네!”

방진보가 대답과 함께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담호는 눈을 감았다.

산채의 공기가 뜨겁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담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혈란(血亂)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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